閻忠
(? ~ 187)
후한 말의 인물.
한양 사람으로 가후가 젊은 시절에 아무런 명성도 없었지만 염충은 가후를 기이하게 여겨 장량, 진평의 기묘한 꾀, 계책이 있다고 평가했으며, 신도령을 지내다가 184년에 파직되자 황건적의 난을 토벌한 황보숭을 찾아가 거병할 것을 권하면서 방책을 제시했지만 황보숭이 듣지 않자 떠났다.
187년에 마등, 왕국 등이 반란을 일으켜 삼보 지방을 노략질했는데, 기록에 따라서 황보숭전에는 왕국의 협박으로 염충은 주장으로 추대되어 36개의 부를 통괄하게 하면서 거기장군이라 불렀고 자치통감에는 한수가 왕국의 지위를 폐지하고 염충을 추대했다고 한다.
이후 염충은 이를 한탄하다가 병사했으며, 그가 죽자 한수 등이 권세, 이익을 두고 다투어 서로 죽이면서 점차 쇠퇴했다.
다른 사람의 인물평을 해주고 한수 등의 반란군이 그를 추대한 점으로 봐선 염충은 그 당대에는 이름 높은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 믹스
삼국지 가후전에서는 가후의 스승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염충(삼국지 가후전)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