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전철 4호선 및 수도권 전철 수인선 오이도역에 대해서는 오이도역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이 문서는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본토에 관한 관광 및 여행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烏耳島
Oido(island)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서해안변 지역 관광지. 원래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로 바뀌었다.
지명의 유래는 오이도 가까이 있는 옥구도(玉鉤島)[1]와 옥귀도(鈺貴島)가 함께 묶어서 오이도라고 불리게 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오이도(烏耳島) 한자 이름을 보고 섬의 모습이 까마귀의 귀와 비슷하다며 붙여진 이름으로 잘못 생각하기 쉬운데 결론적으로 옛날에 한자음을 빌려서 표현 한 것일 뿐이다.[2]
조선 초기에는 이 섬을 '오질애(吾叱哀)'라는 이름으로 불렀다.[3] 이후 '오질이도(吾叱耳島)'로 불렸다가 조선 정조 때 줄여서 오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즉 옛날에 옥구도와 옥귀도를 함께 오질애섬으로 부른 것이 오질이도가 되었고 그것의 줄임말로 오이도가 된 것이다. 즉 한자표기의 오이(烏耳)를 음차 한 것일 뿐이다.[4]
오이도는 인근의 옥구도와 함께 일명 옥귀섬(玉貴島)으로도 불리었다.[5] 그 이유는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임금이 배를 타고 가다가 이곳에 표류하였는데, 한 어부가 옥(玉)으로 만든 그릇에 물을 바치자 임금이 깜짝 놀라 이를 귀(貴)하게 여기고 옥귀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6] 물론 역사적으로 근거는 없다.
일제 때 조선의 소금을 헐값에 강탈할 목적으로 염전이 세워지기도 하였으며 그 소금을 운송하기 위해서 인근 지역에 협궤 철도인 수인선을 놓았고 지금도 염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가 육지와 연결할 목적으로 바다를 일부 메운 끝에 육지화가 되었지만 섬[島]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이어졌다.
예전까지는 안말을 중심으로 가운데살막, 신포동, 고주리, 돌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등 자연마을이 있었지만 도심 개발화로 모두 폐촌(廢村)이 되었었다. 하지만 섬지역 일부를 매립하여 조성한 이주단지로 모두 이전하게 되면서 생활의 터전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오이도로부터 대부도까지 약 11Km인 시화방조제 제방이 서해 경기만 바다와 시화호 경계를 이룬다.
이 방조제 중간에는 한국 최초로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한 조력발전소가 있으며 거기서부터 대부도까지는 행정구역상 안산시의 월경지가 된다.
주변에는 옥구공원, 갯벌단지, 민간업소들이 위치해 있으며 낚시꾼과 관광객들이 자주 왕래하고 있다.
수도권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의 역명도 이 섬에서 본따왔으며 지하철 노선이 연장되면서 잘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오이도 본섬과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역 앞으로 나가서 시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해 오이도 본섬으로 오든가 아니면 데려다준다는 오이도 민간업소 차량들을 이용해야 한다.
대부도로 연결하는 방조제 길을 따라 자전거 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맑은 날 밤에 가면 송도국제도시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지금은 오이도 처럼 내륙에 붙은 옥구공원이다.
- ↑ 시꺼먼 까마귀의 귀 모양을 상상해 볼 수 있는가? 경기도 관광 포탈의 섬 소개에도 유래가 잘못 설명되어 있다.
- ↑ '나를 꾸짖게 되니 슬프다'는 뜻이라지만 叱은 이두에서 ㅅ받침을 적는데 쓰는 글자이기도 하다. 즉 한자 뜻은 별 의미가 없으며 옛날 토박이말을 한자 음을 빌려서 표현한 것뿐이다.
- ↑ 이런식으로 옛 순우리말 혹은 토막이말을 한자의 음을 이용해 표기한 사례는 많다. 예로 우리가 잘 아는 독도(獨島)도 '홀로있는 섬'이라는 뜻은 아니고 석도(石島) 즉 돌섬을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 ↑ 오이도 북쪽 가까이에 인천과 시흥 사이에 있는 옥귀도라는 무인도가 있는데 원래 이름은 돌섬, 석도(石島)이었지만 후에 석출도(石出島), 석을주도(石乙注島), 석옥귀도(石玉龜島)이라고도 했다가 오귀섬이 되었다.
- ↑ 옥터초등학교가 이곳에 있는데 그 학교 이름이 이 이야기 때문에 붙여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