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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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시청 소재지.

시흥시 법정동
법정동
대야동계수동신천동방산동포동미산동
은행동안현동매화동도창동금이동목감동
물왕동산현동조남동논곡동군자동거모동
월곶동정왕동죽율동과림동무지내동하중동
하상동광석동장현동장곡동능곡동화정동


  • 시흥시청 전경. 주소는 시청로 20(장현동 300번지)[1]광명시청과 도로명과 건물번호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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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始興市 / Siheung City
국가대한민국
면적134.57km2
광역시도경기도
하위 행정구역14
시간대UTC+9
인구400,017명
(2016년 9월 기준 주민등록인구)[2]
인구밀도3,152.84명/km2
시장김윤식 (더불어민주당)
3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회의원갑 : 함진규 (새누리당)
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을 :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4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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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는 거꾸로 해도 시흥시


1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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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始興市 / Siheung City)는 경기도 남서부에 위치한 다. 현재 인구는 42만명. 동쪽으론 광명시, 그리고 안양시, 서쪽은 인천광역시, 남쪽은 안산시시화호를 끼고 화성시, 그리고 북쪽은 부천시와 접해있다. 슬로건은 1998년 백청수 시장 시절부터 '뜻모아 시흥사랑! 힘모아 시흥건설!'이었다가 2002년 정종흔 시장 시절부터 'Wow! Siheung'으로 바뀌었다.

왜 이렇게 인구 많고 큰 시 사이에 껴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당연한 것이 현재의 시흥은 1989년 시흥시 승격 당시 옛 시흥군(및 시흥군에 포함되었던 곳)에서 도시화 지역(노른자위)만 쏙 빠져나가고 이름만 남았기 때문이다.

택시 탈 때, 종종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과 혼동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택시값 날리기 싫으면 주의할 것.

에 둘러싸인 시흥시 그래도 광명시보다는 인구를 앞질렀다. 광명시 안습(...)[3]


2 시흥의 유래(옛 시흥군의 역사)

'시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지금의 영등포, 금천, 광명 일대를 차지하던 원래의 시흥군이라는 고을에 두고 있었다. 이들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잉벌노현, 통일신라시대에는 곡양현, 고려시대에는 금주현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금천현이 되었고 정조때 시흥현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시흥'이라는 타이틀만 달고 있는 지금의 시흥시는 원래 인천광역시(미추홀), 안산시(장항구)였던 것이 에러(...).

자세한 사항은 시흥시/역사 문서 참조.


3 역사

시흥시 행정구역 변천사 (현 시흥시 지역)
년도당시 행정구역
1896인천부 (仁川府)안산군 (安山郡)
1914부천군 소래면 (富川郡 蘇來面)시흥군 군자면 / 수암면
(始興郡 君子面 / 秀巖面)
1973시흥군 소래면 (始興郡 蘇來面)
1980시흥군 소래읍 (蘇來邑)
1989시흥시 (始興市)

시흥군으로서의 정통성이 가장 약한 곳(...)

현재의 시흥시 지역은 원래 인천도호부(소래)와 안산군(군자, 수암)의 땅으로, 원래의 과는 단 한 치의 연관도 없다. 왜냐하면 구 시흥군의 중심지인 금천구 시흥동을 비롯한 원 시흥군 지역이 광명시 일대를 제외하고는 일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서울특별시 확장 정책에 따라 편입되었고[4], 나머지 시흥군 지역은 수도권의 팽창으로 분리되어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원래 인천, 안산땅이었던 지금의 시흥시 지역이기 때문이다. [시흥시 당국에서도 아예 대놓고 인천, 안산의 일부였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시청 소재지인 연성동의 시흥군 편입 10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벌였지 시흥문화원 측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시흥시에는 '시흥'이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일제 시기 시행된 부군면 통폐합의 폐해 중 하나이자, 광복 이후 수도권 도시화로 인해 역사성과 정체성이 완전히 꼬여버린 지자체라고 볼 수 있다. 행정구역 변화가 가장 스펙터클했던 도시인 셈.(...)

지금의 시흥시 지역을 이루는 소래/대야/신천 지구와 군자/정왕 지구에 대한 1914년(구 군자면, 수암면 지역)~1973년(구 소래읍 지역)까지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인천광역시/역사, 부천시/역사, 안산시/역사 문서를 참조할 것.

자세한 내용은 시흥시/역사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군 행정구역 변천사 도표도 해당 문서 참조바람.


3.1 현재의 시흥시 지역의 역사

지금의 시흥시 북부(옛 소래읍)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동구, 남구, 연수구, 남동구 일대와 함께 삼국시대에는 미추홀/매소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소성현이었다가 고려시대에 경원부 → 인주였고 조선시대에는 인천도호부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인천부 신현면, 전반면, 황등천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부의 영역이 축소됨에 따라 지금의 인천광역시 남구, 연수구, 남동구 지역과 함께 부천군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부천군 소래면이었다가 1973년에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옛 부천군의 잔여지역 중 하나인 소래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에 시흥군 소래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에 계수리의 일부와 옥길리의 일부가 부천시에, 옥길리의 나머지 일부가 광명시에 편입되었다. 1989년에 남부의 군자면, 수암면과 함께 시흥시로 승격했다. 1989년 시흥시 승격을 앞두고 인천직할시와 부천시는 서로 시흥군 소래읍을 자기 관할로 넘겨달라고 내무부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시흥시 남부(옛 군자면, 수암면)는 지금의 안산시 일대와 함께 삼국시대에는 장항구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장구군이었다. 고려시대에 안산군으로 이름이 바뀐 이래로 안산군이라는 고을이 1913년까지 이어졌다. 1914년에 안산군과 과천군이 시흥군에 통폐합되어 시흥군 군자면, 수암면이 되었고, 군자면과 수암면의 각 일부(경기도 반월출장소 편입 지역)가 1986년에 안산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잔여지역은 1989년에 북부의 소래읍과 합하여 시흥시로 승격했다.

1995년 내무부 주도의 인천 추가 확장을 앞두고 시흥시도 인천 편입 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인천 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참고 기사]), 장상동, 장하동, 수암동 및 화정동 일부가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2009년에는 안산시와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했었다.


4 지역특성

남으로는 시화 매립지가 있으며 북으로는 주로 산지가 있으며 농토도 있다. 여기서 시흥시 자체 브랜드인 햇토미(쌀)가 나온다. 광고는 엄청 많이하는데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안산스마트허브 옆에 있는 시흥스마트허브로 유명하다. 그러나 시흥스마트허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때문에 지역주민들은 기피한다. 그래도 시흥의 큰 밥줄인건 이래저래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버스 부문에선 행선지 표기 중 산업단지 쪽은 시화공단으로 표기 중이어서, 관련 노선 문서 내에서도 편집자 간의 싸움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5 도시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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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는 광명시의 도시구조이다. 광명-철산-하안-소하(북부)가 연담화되어 있다.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광명시 지도는 일부러 뿌옇게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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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는 시흥시의 도시 구조이다.[5] 남양주시? 용인시?

도시 구조가 매우 엉망이다. 위성지도로 자세히 보면, 더욱 엉망진창인 모습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제각각 분리되어 있는 시가지들을 보다 보면 참 혼란스럽다(...). 어, 도시가 왜 이래?

사실상 시흥시는 하나의 도시라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옛 시흥군 시절 일찍이 시가지가 형성된 알짜배기 구역들(영등포, 안양, 광명, 군포, 의왕[6], 과천 등)이 전부 서울 편입이나 시 승격으로 시흥군에서 떨어져 나간 후, 남아있는 자투리 구역들(구 시흥군 소래읍+군자면+수암면)을 궁여지책으로 묶어서 만든 억지 지자체이기 때문이다.[7] 저 지도에 나와있는 옆동네 안산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단일한 도시권이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초에 안산은 창원시세종시같은 순수 계획도시지만...

북쪽에 있는 신천-은행-대야 지역과 남쪽에 있는 정왕-군자-월곶 지역이 별개로 발전한 가운데, 도시 중앙부에는 크고 아름다운 논밭 사이로 시흥시청을 중심으로 한 연성-능곡 지역을 시작으로 자그마한 시가지가 따로따로 성립된 이상한 도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에 근접한 지역치고는 농경지가 많아서 능곡지구 등 각종 택지지구가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신도시나 택지지구를 개발한다면 기존 시가지와 붙여서 시가지를 키워 나가면 좋았으련만, 시흥시는 이곳 저곳에 시가지를 막 싸질러 흩어 놓아서 위성 지도를 보면 시흥시 영역 내에 마치 점조직처럼 시가지가 흩어져있는 카오스한 모습을 볼 수 있다.족제비가 아파트 주차장에 붙어있다 황조롱이도

때문에 수도 서울의 인접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까지도 도시계획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현재까지도 교통 인프라가 시망급이며, 시흥시 내에 이렇다 할 자체적인 상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태생 자체가 문제가 많다 보니 제대로 된 중심지 없이 각자 따로 노는 모양새라, 북쪽에 있는 대야동, 신천동 지역 및 서쪽에 있는 월곶동 지역은 부천, 인천과 붙어 놀고, 남쪽에 있는 군자동, 정왕동 지역은 안산과 붙어 놀며, 동쪽에 있는 과림동, 목감동 지역은 광명, 안양과 붙어 노는 괴상한 도시구조가정불화를 보여준다. 연성동은 그저 촌동네

그런데 이게 이렇게 된 이유는 구 시흥군 지역이 1970년대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될 당시 많은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이였는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인구밀집지역이 다 떨어져 나간 나머지 지역은 거의 전부가 넓고 아름다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였기 때문이다. 즉 신천-은행지구(구 시흥시청)을 제외하고 시가지 거의 전역이 그린벨트인 가운데 자연촌락지역(즉 시골집이 몇 채 있는 곳)만 그린벨트가 아니다 보니 이들 지역만 소규모로 개발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왕지역(시화공단)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시가지 구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은행동 1도심에 나머지 지역은 그냥 소규모 취락지구라서 도시구조가 단순했다. 도시라고 말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즉, 소규모 전원도시 정도로는 적절했던 것.

하지만 남쪽의 정왕동(시화)[8] 지역은 애당초 갯벌이었거나 시화방조제로 인한 매립지(즉 이전에는 바다였던 곳)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그린벨트로 지정될 이유가 없었으며, 그 결과 지금과 같이 개발되었다.[9] 그러다 보니 인구도 그리 많지 않은 지자체가 북쪽 은행동 남쪽 정왕동의 2도심 체제가 되고 중간이 텅 빈 형태가 되자 전체적인 도시계획을 다시 한다고 해서 혹은 그 두 개 도심의 힘겨루기 때문에 그 둘의 정 가운데인 연성지구로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해서 시흥시청을 이전하고 행정중심지로 개발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3개의 도심이 따로 노는 상황이 된다. 덤으로 그린벨트에서 빠진 소규모 취락지구 또한 그 면적 그대로 고밀도 개발을 하게 되고 그 결과가 위 지도대로다.

이러다 보니, 외지인들이 어디 사냐고 물으면 "시흥시 산다"는 말을 거의 안 한다. 도시 자체가 뭔가 중구난방으로 개발되고 찢어지고 합쳐지고 하다보니 '시흥시'라는 정체성(Identity)이 없고, 말만 하나의 시흥시일 뿐 실제 생활권은 안산, 부천, 인천, 광명 등으로 쪼개져 있다. 일례로 정왕동 일대의 경우 차라리 안산시 정왕구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럴 거면 차라리 시흥시를 찢어서 인천, 안산, 광명, 부천 등지에 분할 편입시키는 게 더 나을 지경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보니 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나올 때마다 시흥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시흥시 북부는 1914년까지 구 인천부(인천도호부), 시흥시 남부는 1914년까지 구 안산군이었던 것처럼 정체성이 다르다.

여담으로, 소래권과 군자·수암권의 이질적인 성격(흔적)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천주교 교구의 경우, 소래권은 인천교구, 군자·수암권은 수원교구에 속해 있다.[10] 전화번호 앞자리 역시 소래권은 3xx국 번호를, 군자·수암권은 4xx국 번호를 사용한다.[11]

똑같이 도시면적의 대부분이 그린벨트인 과천시와는 비교되는데 과천시의 경우 시 면적의 97%가 그린벨트지만 그린벨트가 아닌 지역이 주암동 일부 빼고[12] 시흥시처럼 흩어져 있지 않고 정부청사 주변 1곳으로 집중되었기 때문에 단일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다만 넓이도 상당하고 자생적 시가지 위주인 시흥시와 작은 면 지역에 정부 주도로 개발된 행정도시인 과천시를 비교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


6 행정구역 개편 문제

행정구역 개편/경기권#s-4.3 문서 참조.

  • 현재 시흥에서는 반대 중이나 부천시안산시와의 통합이 협의 진행 중이다. 정확히 확정난 것은 아니고, 부천시도 지네 달라, 안산시도 지네 달라라서 상당히 어떻게 될지 난감한 상황. 유력한 안은 시흥시청이 있는 장곡동, 연성동 일대를 기준으로 반으로 뚝 나누자[13]였는데, 주민투표 결과 무산되었다. 안산시에 흡수 통합되는 방식이었는데, 시흥시민들이 '그렇게 되면 혐오시설을 다 시흥시 쪽에 놓을 것'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기 때문. 반대가 67%였고, 안산시 쪽은 찬성이 60%였다고 한다.[14]
  • 1980년대에 안양시와 가까운 목감동에서 안양시에 편입해 달라고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실제로 목감동은 지리적으로 안양시 시가지와 가까우며, 안양역으로 가는 버스 노선도 많다. 고등학교 학군도 안양시 학군에 속해있다고 한다.
  • 행정구역 개편 문제에서 시흥시는 인천광역시, 부천시, 안산시의 러브콜을 받지만 시흥시는 그래도 '시흥'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자존심 때문인지 오리지널 시흥도 아닌 주제에 자존심은 무슨... 일제 조선총독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시흥시란 이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청 차원에서는 이들 도시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만일 실질생활권 중심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시흥시는 여러 지방자치단체로 찢겨질 가능성이 높다. 즉, 시흥시가 인천광역시[15] or 부천시(부천이 인천과 통합되지 않았을 경우)/부평시[16], 안산시[17], 광명시(혹은 서울특별시 광명구)[18], (통합) 안양시[19]분할 편입된다는 것. 시흥시 정중앙에 있는 연성동, 장곡동 등은 애매하긴 하지만 생활권 상 소래권에 가깝긴 하다.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유지시키기에도 현 시흥시 지역은 조선시대 옛 시흥군과의 역사적 정통성과 거리가 매우 멀다. 이와 같이 시흥시가 해체될 경우 옛 시흥군의 향토사료의 관리는 시흥시에서 조선시대 시흥현의 중심이자 이름의 기원이 시흥의 옛 이름인 서울특별시 금천구로 이관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 다음 유력한 곳은 시흥군청 소재지였던 안양시영등포구와 경기도 시들 중 유일하게 원래 시흥 지역에 속했던 광명시.
  •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행정구역이 인근도시에 의해 찢겨지거나 인근도시와 통합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흥시 입장에서는 배곧신도시 등 시세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기도 하고, 시흥시에 소재된 시화공단에서 나오는 세금이 시 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흥시(특히 시화지구)에서는 안산시에서 시흥(특히 시화지구)를 흡수통합하려는 가장 큰 이유가 시화공단에서 발생되는 세금일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7 하위 행정구역

시흥시/행정 문서 참조.


8 교통

시흥시/교통 문서 참조.


9 교육

9.1 고등학교

경기도 시흥시 고등학교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군서고등학교군자공업고등학교시흥능곡고등학교
매화고등학교서해고등학교소래고등학교시화공업고등학교
시흥고등학교신천고등학교은행고등학교장곡고등학교
정왕고등학교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함현고등학교배곧고등학교

심슨가족의 스프링필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교육도 그다지 좋진 않다. 뭐 이렇게 안 좋은 게 많아 유명한 학교라면 소래고(구 소래종고), 서해고, 시흥고, 비리조리과학고[20], 함현고 등이 있으나 타 지역에 있는 학교에 비하면 매우 안습하다곤 적혀있지만, 그래도 SKY 대학 합격자도 여럿 내고, 괜찮은 학교들 많이 보낸다. 타 지역보다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부천이 평준화되기 이전(그러니까 2002년 이전) 많은 학생들이 타 지역으로 버스타고 학교가는 경우가 꽤 많다. 이 때는 시골에서 왔다는 놀림을 받는 경우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근 도시에서 시흥으로 학교다니는 학생도 꽤 많았다. 주로 광명, 안산쪽에서 오고, 안양, 부천에서도 어느 정도 온다. 그런데 대개 공부 못해서 왔었다. 4년 넘게 살면서 교복 개조 안 한 학생을 못 봤다는 증언도... 어느 해엔 군자공고에서 서울대 합격생을 총 1명을 배출해내는 바람에 난리가 난적이 있었다. 수시에 올인하는 은행고 등의 학교가 많긴 하지만, 정시로 서울 사대문 내의 학교에 꾸준히 많은 입학생을 배출시키는 소래고, 서해고 등의 고등학교도 존재. 사실 비평준화 지역 특성상 같은 일반계고 간에도 격차가 대단히 큰 지역이다.

전통적으로는 시흥시의 일부 우등생들은(특히 소래권) 소래고등학교 대신에 바로 인접한 부천시의 부천고등학교[21], 부천여자고등학교와 서울 시계에 심히 가까운 광명의 광명북고등학교 등에 진학해 왔으며, 이들 학생을 위한 사설 통학버스까지 있을 정도였으나 요즘은 그 비중이 낮아진 상태라지만 가는 애들은 많이 간다.그런데 왜 얘기가 부천 쪽으로 흐르는 것 같지

2011년부터 함현고등학교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예산만 해도 몇 억씩이라고 하니 사람이 당연히 몰리게 되었다. 자율형 공립고 시행 첫 해 당시 내신 커트라인이 160대로 매우 낮은(?) 커트라인이었으나, 2013년 입학생 커트라인이 190대라고 하니, 오이도역을 앞에 끼었던 편리한 교통빨로 타 지역 학생은 안산 하위권들이나 왔던 예전 모습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가 없다.

무지내동에 있는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는 고등학교 주제에 대학교보다 더한 실습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흥시민의 인지도는 그저 옛날의 한인고등학교 수준이다.[22][23] 확실히 시흥의 다른 특성화고에 비하면 두발규제가 좀 엄격한 편이었다. 그러나 2011년 들어 두발규제가 풀렸다. 이로 인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학생부장 선생님의 권력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참고로 사립학교라서 비리가 많다는 카더라가 전해져온다. 실제로도 이사장이 워낙에 골골하셔서 교장이 권력이란 권력을 다 쥐고 있는 판국이다. 더구나 이사장의 아들이기도 하고. 금수저 2014년 기준 실적을 위해 위장취업도 망설이지 않는다.(...) 대학 진학 현황도 같은 학생이 여러 곳을 붙은 경우에도 가리지 않고 전부 표기함으로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2010년 1월 초 폭설 때, 소래고에서 서울대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서울대로 가려던 학생이 전철이 지연되어 면접을 보러가지 못했던 사건이 있었다. 지역 주민들과 각종 누리꾼들이 구명운동을 했으나 서울대는 끝내 가지 못하였으나, 연세대에서 특례 장학입학을 시켰다. 다 시흥 교통이 막장이라 이렇게 된 것...이지만, 이 기사의 내용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이 학생이 소사역에서 열차를 기다렸던 그 시각 50분 후에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전혀 관계가 없으며, 평소에도 빠듯할 판에 폭설이 내렸는데도 그 시간에 나온 그 학생의 전적인 잘못이다. 중앙일보가 이 기사를 실었는데, 이는 당시 벌어졌던 철도 파업으로 인해 미숙한 군 병력이 운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한 학생이 대학에 떨어졌다(특히 서울대)는 점을 강조하여 철도파업이 정당하지 않다는 점을 부당하게 비난한 것이다. 결국 중앙일보는 시정명령을 받았다.

그 외에도 과학중점학교[24]인 시흥매화고등학교가 있다. 2009년에 개교한 신설학교로, 개교한 직후에는 학교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았으며[25], 실제로도 그랬지만...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된 이후 큰 발전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된 은행고와 마찬가지로 학생들 거의 대다수가 수시를 지원한다. 역시나 대입 성적도 그리 좋지는 못한 편... 그러나 학생들의 스펙 면에서는 꽤나 화려하다. 실제로 제2회 청소년 기술창업올림피아드에서 시흥매화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동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회 때의 공동 금상 수상자는 전북과학고와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이었다고. 이러한 실적 덕분에 [기사]와 뉴스가 뜨기도 했으나, 내용에 과장이 많고 실상과는 꽤나 차이가 많아 실제 재학생들은...절레절레


9.2 대학교

한국산업기술대학교경기과학기술대학교[26]가 함께 붙어있다. 서울대학교와 시흥시가 조약을 맺어 시흥시 배곧신도시에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를 만들기로 했다.


10 상권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상한 도시구조로 인해 상권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편이다. 그나마 시화지구 이마트 근처 상권[27]이 시흥시에서는 큰 편인데, 거의 다 주점이라서 청소년들이 이용할만한 상업시설은 턱 없이 부족하다. 이는 소래읍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주점이라고 해도 젊은 층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조리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가는 상황.(...)

이는 지역의 공업단지에서 기인하는 문제도 있다. 일반적인 상권이라면 보통 다종 다양한 식당과 상점들이 얽혀 있겠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상권과 산단 특유의 어른의 문화(?)가 맞물려 시흥 관광호텔부터 시화 이마트 뒤편까지 이어지는 상권은 대부분 고깃집과 술집, 노래방, 그리고 풍속점등이 뒤엉켜 있다. 유흥가는 물론, 주택가 구석구석까지 출장 마사지와 다방 등의 전단지가 늘 돌아다닐 정도다.

대형 할인매장 같은 경우 대야동에 롯데마트(구 코오롱마트-GS마트)[28]가 있고, 정왕동에 이마트(2000년 개업.), 롯데마트(구 LG-GS마트), 홈플러스가 있다. 다만 대야동에 있는 롯데마트는 작은편이라[29] 이 부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마트 부천점을 주로 이용한다. 이마트에서 은계지구에 부지를 구매했다고는 하나 은계지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옥길지구(부천시 범박동)에 지하 6층, 지상 6층 규모의 크고 아름다운 이마트타운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에 현재 이마트 입점 계획에는 빠져있다. 안산시와 시흥시의 경계 즈음(신길파출소 주변) 이마트 트레이더스 안산점이 있어 군자동(거모동) 주민들은 그래도 편리한 장보기를 할 수 있다.

영화관은 정왕동에 롯데시네마(2003~2011년까지는 월드시네마), 대야동에 CGV 단 두 곳밖에 없다.


11 정치

15대16대17대18대19대20대
시흥시제정구/재선[30]
통합민주당
박병윤/초선
새천년민주당
갑구백원우/초선
열린우리당
백원우/재선
민주당
함진규/초선
새누리당
함진규/재선
새누리당
김의재/초선
자유민주연합
을구조정식/초선
열린우리당
조정식/재선
민주당
조정식/3선
민주통합당
조정식/4선
더불어민주당

과거엔 경기 서남부 지역이 으레 그렇듯 대체적으로 민주당계 강세 지역이었지만,[31] 2010년대 들어서부턴 이 지역들 중 그나마 새누리당이 숨통을 튼 지역 중 하나다.

구 소래읍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갑 선거구에선 함진규 새누리당 후보가 백원우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19대 총선, 20대 총선 연속 2연승을 거두었기 때문.[32] 인근 부천시, 광명시와는 달리 시흥시 갑 선거구는 구 소래읍 지역의 구시가와 농촌 지역을 끼고 있다 보니 새누리당이 근소한 우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33]

다만 시흥스마트허브(시화공단)를 끼고 있는 을 선거구 지역은 그런 거 없이 여전히 민주당계 정당의 강고한 텃밭이다. 을구 지역을 이루는 정왕동, 군자동 일대에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데다가 수도권 산단들이 밀집하여 산단 근로자들의 진보 성향 표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쪽 산단들은 대부분 중소기업 근로자들이다.

참고로 갑 선거구에서 18대 총선까지 현역 의원이었던 민주통합당 백원우 후보가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원인으론 "지역 현안은 다 팽개치고 중앙 정치에만 몰두"한다고 지역 주민들한테 민심이 안 좋았던 탓과 총선 당시 백원우 후보가 유세를 게을리하는 듯한 모습에 지역구 주민들이 괘씸죄를 물린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시흥교통 버스 어쩔 거야

다만 19대 땐 그래도 202표라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져서 희망을 가졌지만, 미운털이 꽤나 단단히 박혔는지 20대 총선에선 39,789표를 득표하며 44,846표를 득표한 함진규 후보에게 오히려 19대 때보다 더 큰 5,057표차로 낙선했다.(...) 벌어질 표차는 벌어진다 한편, 국민의당 후보로는 임승철 후보가 시흥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11%대에 불과한 득표율로 낙선하였다. 임승철 후보는 당이 시흥시 선거에 별로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민주당 강세였던 시흥시 갑 선거구가 아예 성향 자체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후보 경쟁력이 문제였던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있다. 시흥시는 2012년 19대 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갑&을 모두 민주당 후보들이 당선된 곳이었고, 함진규 의원도 두 차례의 선거에서 당선됐다지만 아직 50% 이상의 과반 득표율을 기록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 두 후보 사이의 표 차이는 많이 커졌다지만 득표율로 비교해보면 46.4% VS 41.2%로 백원우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의 수 또한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20대 총선 당시에는 국민의당 임승철 후보가 약 10%의 표를 잠식한 탓에 함 후보가 과반을 넘지 못한 거라는 반론도 있다. 근데 임 후보가 온전히 야권 표만 가져간 건지, 아니면 새누리당 표도 같이 가져왔는지는 알 수 없다. 전자의 경우라면, 임승철 후보 덕에 比새누리당 표가 나뉘는 바람에 백원우 후보가 더 큰 표 차로 떨어진 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갑 지역에는 함진규 의원이 입성하는데 성공했지만, 을 지역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정식 의원이 연속 4선에 성공하며 여전히 민주당 지지세가 철벽 같음을 내보였다. 고로 갑 지역에도 경쟁력 있는 새로운 후보가 도전장을 내민다면 예전처럼 더민주 소속 의원들이 다시 갑&을 모두를 싹쓸이 할 수도 있는 곳이라는 얘기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엔 박근혜 후보가 102,267표(47.6%)를 얻으며 12,012표(52.1%)를 얻은 문재인 후보에게 뒤졌다. 여담으로 과거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유명 정치인으로는 제정구의원, 이재형국회의장, 이택돈[34] 전 변호사 등이 있었다.

지방선거에선 과거 양당이 서로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치열한 시장직 접전을 벌였다. 1기 민선 시장은 민주당의 정언양, 2기 시장은 국민회의의 백청수, 3기 시장은 한나라당의 정종흔, 4기 시장은 한나라당의 이연수가 당선되었지만, 납골당과 군자매립지 사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게 [걸리는 바람에] 시장직에서 쫓겨나 보궐선거를 치뤘고,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김윤식 후보가 당선됐다.

김윤식 시장은 보궐선거로 당선된 이래 2009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3선 시장을 지내고 있다. 참고로 김 시장은 유일하게 비리에 안 엮이고(...) 3선에 성공한 시흥시장으로,[35] 김윤식 시장 이전의 시장은 모두 비리로 불명예 퇴직한 흑역사를 남겼다.

시장 및 도지사는 3연임까지만 가능하다고 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선 김윤식 시장이 더 이상 시장직을 맡을 수 없다. 고로 향후 진로를 시흥시 국회의원에 맞출 가능성이 있다. 시흥 을 지역은 현역 조정식 의원의 기반이 탄탄할 테니 들어가기가 어렵겠지만, 갑 지역은 백원우 전 의원이 두 번이나 낙선했으니 아마도 갑 지역에 도전할 듯 싶다. 만약 김윤식 시장이 시흥시 국회의원으로 나온다면, 8년 넘게 시흥시의 수장으로 일하면서 시정을 지휘했다는 점과 그의 시장 재직 기간에 시흥시가 그동안 진 빚을 모두 갚았다는 점이 제법 쏠쏠한 메리트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12 주민

주민의 대부분은 노동, 상업, 사무직,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바다와 인접해있기 떄문에 소수지만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도 있다. 오이도 주변엔 수산업, 회집, 영어법인 등이 존재한다.


13 군사

은근히 군부대가 없을 거 같은 지역이지만, 사실 중요 군사시설이 위치한 곳이다.

애초 김포에서 인천으로 내려오는 수도권 서해안 방어선의 마지막 부분이며, 부대 전력만으로 인천, 안양을 능가하는 수준, 시흥시에는 상비사단 기갑부대 중 최후방인 제17보병사단 전차대대가 위치해 있으며, 인근에 수도군단 직속 수도포병여단, 3군지사 예하 80정비대대, 1사격대(MLRS)가 위치해있다. 그 외에도 예비군 훈련부대(52사단 예하 강서양천훈련장, 17사단 예하 부천훈련장)와 유류, 수송, 보급부대들이 줄지어 있어 전시에 병참기지로서 중요한 지역이다.

경기도 서남부권인지라 제51보병사단의 위수지역이며 예비군훈련 역시 51사단 휘하연대 소속 대대에서 시행한다. 시흥시 해안선의 방어책임은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 있다. 인천해역방어사령부는 경기도 남부 해안까지 담당하는데 2함대 본진이 NLL 및 서해5도 방어에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단, 부속 도서였던 오이도는 매립되어 육지가 되었다. 운전하다가 도로에 안전통제하는 군인을 보면 경적 울리거나 무시하고 지나가지 말자. 전차 지나간다.


14 트리비아

  • 오이도라는 (?)이 있는데 사실 여긴 섬이 아니다. 왜냐하면 육지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섬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수인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간척해버렸다. 그래도 오이도 자체는 꽤 볼만하다고 한다. 특히 조개구이는 별미이며, 오이도의 빨간등대에서 보는 노을은 매우 아름답다. 이 외에도 월곶포구나 연꽃테마파크가 볼만하다. 바가지 씌인 조개구이도 4호선의 종착역인 오이도역은 이름만 봐선 오이도와 매우 가까워보이지만, 꽤 멀다. 게다가 정왕역과의 차이도 별로 안난다.
  • 가끔 금천구 시흥동과 착각해서 잘못 오는 사람들도 몇몇 있다.[37][38] 시흥역은 이것 때문에 금천구청역으로 개칭했다. 나이드신 분에게 시흥시 위치를 알려주고 싶을 때에는 '소래'나 '신천리'라고 하면 이해하신다. 참고로 서울 서남부(영등포 권역)에서 '시흥'은 시흥시보다는 서울 시흥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서울 서남부에서 시흥시로 가려면 광명시나 부천시, 안양시를 거쳐가야 한다.
  • 이 지역에 세무서가 생긴 것은 1992년, 경찰서가 생긴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세무, 경찰, 소방 업무 전부 광명시에서 지소/지서를 두고 담당했다.[39] 때문에 "○○시민은 무단횡단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교통 안내 표지판 아래에서는 "광명시장/광명경찰서" 명의로 세워져 있던 일도 있었다. 지역 교육청(지금의 교육지원청) 또한 처음엔 부천교육청(시흥시 북부지역 한정. 시흥시 남부지역은 시흥군 시절에는 구 시흥군교육청의 후신인 안양교육청 관할이었음)에 속하다가, 이후 안양광명을 거쳐(...) 안산교육청 관할이 되었다. 현 시흥교육지원청이 개청한 것은 2004년.(...) 등기소의 경우 안산등기소를 쓰는 바람에 전자등기도 없던 시절 신천 사람들은 안산까지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1996년도에 MBC "카메라 출동 경기도 시흥시, 자체 관공서 없어"라는 내용으로 시흥시의 안습한 행정 실태를 보도했었다.[경기도 시흥시, 자체 관공서 없어]
  • 상기한 막장스런 행정 문제 때문에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시흥 내에서 시외통화를 해야 했다. 정왕 등 안산시에 인접한 지역은 안산 지역번호였던 0345, 시흥시청 및 신천 일대 지역은 인천 지역번호인 032를 썼다. 그냥 이것만이면 좋겠는데 광명시 인근 지역(앞의 각주에서 언급했던 과림동 일부 지역)에서는 서울 지역번호인 02까지 썼다.(...) 하나의 시에서 지역번호가 3개나 혼재했던 것. 이후 2000년 7월 2일 기존 지역번호를 144개-4자리에서 16개-3자리로 바꾸면서 경기도 지역번호인 031로 완전히 통일(단, 아까전 언급한 과림동 일부지역은 제외)되어 이러한 불편함이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인접도시로 거는 시내전화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내요금과 동일하게 정해졌으므로 요금상 불이익은 사실 없었다.
  • 2010년 2월 9일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진앙지가 이곳과 광명시 경계 지점이었다. 강도는 3.0.
  • 전국에서 가장 '예산 대비 부채 비중'이 높은 도시였다고 한다. 물론 금액 기준으로는 인천광역시넘사벽이다. 무려 43.2%에 금액으로는 3414억이나 된다. 성남시보다 부채가 많으면서 모라토리엄 안 하는 게 참 용하다. 하지만 이 중 군자지구 배곧신도시 개발 사업으로 한화그룹에게 땅을 사면서 생긴 부채가 대부분이다.[40] [#] 부채에 대한 오해가 많아서 시흥시 공무원 전용망(공무원들은 핸디라고 부르는...)에만 올린 탓에 정작 시민들은 잘 모른다.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인 해명을 해야되는 게 아닐까 싶지만... 2015년 10월 30일 공영개발특별회계 빚 750억 원만을 남기고 일반 회계 채무 전액과 공영개발특별회계 부채 수천억 원을 모두 [갚았다!].
  • 유래를 보면 이해가 더 빠른 것으로서 시에서는 2013년을 시흥 100년이라고 기념하는 입장인데, 위의 상황으로 볼 때 상당히 애매한 점이 많이 있다. 일단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지만, 다른 시·구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지켜보는 금천구청, 광명시청, 그리고 지리덕후의 입가에 쓴 웃음이(...) 그리고 [실제로 시흥시 의회에서 '역사왜곡' 논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금천에서 시흥으로 명칭이 바뀐 때(1795년)를 기점으로 한다면, 2013년시흥 218주년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현 시흥시 지역까지 '시흥'이라 불리게 된 것은 1914년 일본 조선총독부부군면 통폐합 정책의 결과이기 때문에, 현 시흥시가 '시흥 100년' 운운하며 기념한다는 것은 결국 일제의 행정구역 마개조를 찬양하는 꼴이 된다.
  • 또한 시흥시에서는 '늠내길'이라는 일종의 트래킹 길을 조성하였는데, 문제는 이 '늠내'라는 단어는 지금의 서울 서남부(영등포 권역)경기 광명시 일대를 가리키던 삼국시대 명칭인 '잉벌노', 즉 '진짜 시흥'의 이칭(異稱)이라는 점. 미추홀(매소홀) 땅이었던 지금의 시흥시 북부지역에 남의 고을의 이름을 써먹는 것을 보면 아연실색할 만 하다. 요즘에는 늠내길이라는 이름 대신에 '갯골길'이라는 이름으로 물타기를 하는 듯 하다. 시흥시의 이런 짓거리에 민원을 넣어봤지만 시흥시에서는 시덥지 않은 변명이나 해댔다(...)
  • 2013년 5월 18일, 시흥시 정왕동 무진아파트 부근 도로에서 55%로 희석된 불산액이 40L 가량 유출되기도 했다.
  • 아이리스 2를 장곡동에서 촬영했지만, 많은 시흥시민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마찬가지로 타짜2를 정왕동 모 아파트에서 촬영했지만, 같은 동네 사람들도 대부분 모르는 분위기. 굳이 몰라도 큰 문젠 없잖아
  • 우아한 거짓말을 소래고등학교에서 찍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소래고등학교가 개교한지가 30년이 조금 넘었기 때문. 그런데 우아한 거짓말을 소래고에서 찍었다는 건 같은 동네 사람들이 잘 안다.(...)
  • 1977년에 만들어진 이원세 감독의 영화 <엄마없는 하늘아래>의 배경이 시흥 시화지구 염전이었다.
  • 1999년에 우봉규 씨가 지은 동화 <훈이와 장산곶 할아버지>의 배경이 시흥시 포동과 장곡동 염전 터였다.
  • 2016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봉이 김선달>의 촬영지가 시흥시 갯골생태공원이었다.
  • 시내에 공단이 있고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는 특성 때문인지 시흥시 쓰레기봉투에 적힌 안내문이 4개국어[41]로 되어있다. 이외에도 시에서 걸어놓는 각종 안내문과 현수막 또한 3~4개국어로 되어있다.
  • 몇몇 사람들은 시흥 남부를 시화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신문 뉴스에서도 시화시라고 할 정도.[#]


15 출신인물

1914년 이전에 출생한 인물은 관점에 따라서 인천광역시안산시 출신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구 시흥군이 아닌 현 시흥시 지역을 기준으로 한다.[42]

  • -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45] 정확히는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나 시흥시에서 자란 것이다.
  • 정제두(1649~1736) -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원래 그는 한성부 반곡방(盤谷坊)에서 출생하였으나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 마을(당시 안산군 소속)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다.
  • 지창룡(1922~1999) - 시흥시 군자동 출생이며 한국의 유명한 지관. 이범석 전 내무부장관 묘역을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홍진기중앙일보 회장 묘역 등 당대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의 묏자리도 그가 잡아 놓았다.
  • 하우명(1413~1493) - 시흥시 신천동(당시 인천도호부 신현면 소속) 출생이며 조선 초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셋째 아들. 신천동 소래산 아래 계란마을 가는 길에 하우명 효자 정각이 있다.
  • 임도혁 - 슈퍼스타 K 시즌 6를 통해 2016년, 싱글 앨범 '사랑이란 말'로 가요계에 첫 발을 들인 가수. 시흥시 은행동에 있는 은행고등학교 출신이다. 그가 슈퍼스타 K 우승 후보군으로 올라갔을 때 시흥시청에서 응원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은행고의 학교 축제인 은행제에 출연해 가창력을 뽐내기도 했다.[#]
  1. 1997년 6월에 현 위치로 이전. 그전까지 대야동 현 시흥시보건소 자리가 시청(시흥군 시절 소래읍사무소)이었다.
  2. '16.9월 40만을 돌파했다.
  3. 광명시는 20년 넘게 인구가 30만명대에서 정체 중이다.
  4. 만일 휴전협정 체결 후에 서울로 환도하지 않아 경기권의 발전이 지연되었더라면 1995년에 영등포시(서울시에서 분리됨)+안양시+시흥군이 도농통합되었을지도 모른다.
  5. 참고로 연성동은 하중+하상동이다. 이 둘을 통틀어 연성동이라고 부르는 것. 하중, 하상의 기준은 월대봉이라는 자그마한 언덕을 기준으로 한다.
  6. 근데 웃기게도 의왕도 시가지가 연담화되지 않은 도시다. 엄밀히 말하면 의왕시 자체만 떼어놓고 보았을 때의 말이고, 의왕시 시가지는 안양시 시가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가지이다. 행정구역의 형태 자체가 괴이한 것일 뿐 시흥시와는 다른 케이스.
  7. 비슷한 사례로 고양시 역시 1992년 고양군에서 시로 승격될 당시 '6읍 1면'이라는, 보다 훨씬 많은 기형적인 도시 구조를 지닌 곳이었다. 그러나 고양시는 시흥시와는 달리 각 읍들이 별개의 시로 승격되는 일은 없었으며(검토된 적은 있었다. 고양시 문서 참조.), 각 읍들이 독자적인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역사적으로나 생활권으로서나 일단은 '고양군'이라는 단일성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1990년대 일산신도시 및 화정지구 등의 신시가지가 개발되어 이 두 신시가지를 양대 중심으로 한 상당한 규모를 갖춘 도시권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시흥시의 사정보다는 훨씬 낫다.
  8. 아이러니하게도 정왕동 일대 시화단지 지역을 칭할 때, 정왕이라는 명칭보다 시화라는 명칭이 더 자주 쓰인다. 무엇보다 이 곳에 있는 이마트는 정왕이마트가 아닌 시화이마트이다. 각종 체인점 지점명에도 정왕동 내의 본동, 1, 2동 구분 없이 통틀어서 '시화점'이라는 지점명이 붙는 게 사실상 일반적이다.
  9. 그런데 개발 또한 안산시의 반월공단과 같은 컨셉, 같은 도로계획으로 하다 보니 안산시의 일부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난다. 네모반듯한 도로, 엄청나게 많은 아파트 단지 등 닮은 게 많다. 단지 차이라고는 정왕동 쪽은 지반이 약해 전반적으로 10층 이하의 저층 아파트가 많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정왕동은 안산시와 마찬가지로 외국인도 많이 살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10. 안산시강원도 동해시, 평창군 역시 동일 지자체 내에서 천주교 교구가 나뉘는 곳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 참조.
  11. 게다가 소래권의 경우 2000년 시외전화 지역번호 통합 이전에는 아예 인천(부천) 번호인 032를 사용했으며, 군자·수암권은 안산 번호인 0345를 사용했다.
  12. 과천시 중심과 뚝 떨어져서 서초구 양재동에 붙어 있다.
  13. 실제로 매화동과 연성동 사이를 흐르는 보통천이란 하천이 있는데, 이 하천이 과거 부천군(구한말까지는 인천부)과 시흥군(구한말까지는 안산군)의 경계선이었다.
  14. 현 김윤식 시흥시장은 절대 (자신의 임기 동안에는) 안산시와는 통합할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15. 월곶동. 신천동, 대야동, 은행동, 신현동, 매화동 지역도 원래는 인천도호부 관할이었기에 인천 편입 가능성이 있다.
  16. 옛 소래읍에 해당되는 신천동, 대야동, 은행동, 매화동, 신현동.
  17. 정왕동, 군자동. 더 나아가 옛 안산군 지역이었던 연성동, 목감동 등도 포함될 수 있다.
  18. 과림동, 무지내동
  19. 목감동
  20. 합격 커트라인이 불과 170점대였다. 이래저래 무섭긴 하다... 그러나 선생이며 학생이며 싸그리몽땅 연루된 초특급 병크를 일으키는 바람에 한때 휴교 상태였다.
  21. 비평준화 시절 대학입시 성적으로 전국 일반고 최상위권을 다투던 곳으로 부천, 시흥, 안양, 안산, 때때로 김포충청남도 등지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남학교라 여학생들은 부천여자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전 서술에서의 부천고의 서술은 많이 과장된 면이 있다.(...) 인천, 김포의 경우 상위권 학생 대부분 제물포고, 인천고, 부평고에 진학했고 이들 학교가 당시 부천고보다 결코 학력 수준이 떨어지는 학교들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부천고에 이들 지역의 학력 상위권 학생이 진학했을 확률은 매우 낮고, 서울 목동의 경우 서울특별시 관할로 광역자치단체가 달라 부천시로 굳이 이주하지 않는 이상 진학이 불가능하다! 그 예시로 인천, 김포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은 대개 제물포고, 인천고, 부평고를 졸업했다.
  22. 경기자동차과학고의 옛 이름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학교를 앞으로 지나가는 화영운수 39와 시흥교통 26의 방송에서도 여전히 한인고라고 나왔으나 최근들어 제대로 나오기 시작.
  23. 한인고 시절에는 그 안 좋은 이미지가 인근 광명시에도 익히 알려져 있어서 광명시내 X통인 충X고(당시 기준)도 못 가는 부진아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이렇게 깊고 나쁜 인상을 남긴 것은 단순하게 공부 못하는 애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한인고만 해도 극악한 깡패들이 우글거렸기에 일주일에 두어번은 교정에서 경찰차를 볼 수 있었다. 둘이 입학해서 셋이 나오는 학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가 하면, 3년 개근하면 졸업할 때 마티즈를 주는데 그 마티즈를 타 간 학생이 없다고까지...그 당시 지역 고교생들이었던 사람들은 비봉고, 정원고와 함께 3대 폭력학원으로 기억한다.
  24. 과학고등학교와는 다르다. 정말 많이 다르다. 과학고랑 비교를;;
  25. 그래도 1회 졸업생 중에는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기계공학과라고 한다.
  26. 2011년에 경기공업대학에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 학생들은 경기공대라고 부른다.
  27. 흔히 48, 49블럭이라고 부른다.
  28. 2000년 개업 당시 1층이었으나 2011년경에 4층으로 개축.
  29. 삼미시장 상인들의 반대로 인해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30. 99.2.9 별세
  31. 반대로 경기 동북부는 농촌 지역이 많아 새누리당 강세 지역이 많다.
  32. 참고로 이것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시흥군-과천시 지역구에서 민주정의당 황철수 후보가 당선된 이후 24년만에 새누리당계 정당이 시흥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도 13대 총선 당시에는 시흥군 단독 선거구가 아닌 과천시와 묶인 선거구였다. 물론 13대 총선이 치러진 1988년 당시에 시흥시는 아직 군이었을 때고, 군포시와 의왕시도 아직 읍이라 시흥군에 속했던 시절이기는 했다.
  33. 광명시도 학온동이라는 농촌 지역을 끼고는 있지만, 인구가 2천여명 수준으로 너무 적어서 선거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다.
  34. 출생지는 현재의 안산시이나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안산군이 시흥군에 흡수되었다.
  35. 참고로 김윤식 시장의 경우 시흥시 4기 시장 임기를 1년 남긴 상태인 2009년에 보궐선거를 치러 당선된 케이스라, 1년 후인 2010년 또다시 선거를 치뤄야했다.(...) 재선인듯 재선 아닌 재선 같은 너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며 3선 시장이 되었다.
  36.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이용 시 군포시, 안양시, 의왕시, 성남시 순으로 거친다.
  37. 당연하다. 금천구 시흥동이 바로 시흥시란 이름의 기원이니까. 1914년까지만 해도 현재의 금천구가 원래 시흥군의 중심지였다.
  38. 이 경우 시흥대로에서 5602번 버스를 타면 시흥에 올 수 있긴 하다.
  39. 세무서는 시흥시가 성장하면서 현재 시흥세무서가 오히려 광명시에 지소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광명지서가 2016년에 광명세무서로 재승격하였다.
  40. 배곧신도시 위치는 월곶 밑에 있는 풀만 있는 아무것도 없는 매립지, 서울대학교 로컬캠퍼스가 세워질 곳이다.
  41. 한국어,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42. 구 시흥군 출신이지만 현 시흥시 지역 출신은 아닌 손학규(현 금천구), 김종인(현 관악구), 이원익(현 광명시) 등은 추가하지 말라는 얘기.
  43. 1914년에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로 개편. 1973년 시흥군 편입.
  44. 출생 당시의 무지내동은 인천부 소속이었으니 인천 출신이라 해도 틀리진 않다.
  45. 검색해보면 다 알겠지만 모 고등학교 출신이라, 해당 고등학교에 다니는 팬들은 그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필요할까 싶지만 조언을 한마디 하자면 이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2010년 이전 기록을 보면 된다.
  46.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완도군이지만, 어릴 때부터 사는 곳은 시흥시이다. 학력에서 도창초등학교, 소래중학교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서민정이 진행했던 라디오에서도 매화동 도두머리에서 살았다고 했다.
  47. 2014년 시흥시장 후보에 새누리당 소속으로 나간적이 있으나 탈락.
  48. 출생지는 황해도, 성장지는 시흥시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