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치 드래곤즈 No.74 | |
오츠카 아키노리 (大塚晶則) | |
생년월일 | 1972년 1월 13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치바 현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2위 |
소속팀 | 긴테쓰 버팔로즈 (1997~2002) 주니치 드래곤즈 (200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4~2005) 텍사스 레인저스 (2006~2007) |
지도자 | 주니치 드래곤즈 2군 투수코치 (2015~) |
200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홀드왕 | |||||
옥타비오 도텔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오츠카 아키노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라이언 매드슨 (필라델피아 필리스) 훌리안 타바레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캇 아이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 개요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前 야구 선수. 現 주니치 드래곤즈 2군 투수코치.
2 선수 생활
2.1 일본프로야구 시절
대학 졸업 후 사회인 야구팀(일본통운 경식야구부)을 거쳐 199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순위 지명으로 긴테쓰 버팔로즈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인 1997년에는 셋업으로 나서며 82.2이닝동안 12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4승 5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07의 성적을 기록했고, 이듬해인 1998년에는 팀의 마무리가 되어 35세이브를 올리며 퍼시픽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1999년에는 부상으로 25경기 등판에 그쳤고 이후 다소 부침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연속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는 등 아카호리 모토유키의 뒤를 잇는 긴테쓰 부동의 마무리로 활약한다. 2002 시즌이 끝난 뒤 오츠카는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지만 무산되었는데, 포스팅 과정에서 긴테쓰 측의 업무처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구단과 불화가 생겼고, 결국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하게 된다.
주니치에서도 17세이브를 올리며 주축 불펜으로 활약한 오츠카는 2003시즌이 끝난 뒤 다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고, 30만달러에 낙찰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3년 계약을 맺는다. 주니치의 후임 마무리는 후일 일본프로야구 통산 세이브 기록을 세우게 되는 이와세 히토키.
2.2 메이저리그 시절
샌디에이고에서 처음 받은 보직은 추격조였지만 이후 호투를 거듭하며 셋업으로 승격, 마무리 트레버 호프만의 뒤를 든든히 받쳤다. 2004시즌 성적은 7승 2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1.75로,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에는 홈-어웨이 성적이 다소 극단적으로 벌어지면서 전년보다 떨어진 성적인 2승 8패 평균자책점 3.59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시즌 후, 샌디에이고는 텍사스 레인저스에게 오츠카와 선발투수 애덤 이튼을 내주고 아드리안 곤잘레스, 크리스 영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다.[1]
2006년 제1회 WBC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된 오츠카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도 안정적인 투구를 보였다. 그리고 개막 이후 한달동안 블론세이브만 5개를 적립하는 등 무시무시한 불쇼를 선보인 흑동렬 프란시스코 코데로 대신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고, 2승 4패 32세이브 평균자책점 2.11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07년에는 에릭 가니에가 들어오면서 다시 셋업으로 보직을 옮겼는데 2승 1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2.51의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그 해 7월에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시즌 후 팀을 나오게 된다.
2.3 재활, 그리고 은퇴
2008년 초에 토미 존 수술을 받고 재활에 전념했지만 쉽게 호전되지 않으면서 프로 복귀는 어려워졌다. 이후 2013년에 독립리그 팀인 시나노 그랜시로즈에 입단했지만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고, 이듬해인 2014년에는 시나노의 감독 겸 선수로 취임, 그 해 9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시절
2015 시즌부터 주니치 드래곤즈의 2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4 기타
- 트레버 호프먼과는 고아원 등에 함께 봉사활동을 하러 다닐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고 하며, 텍사스로 이적한 후에는 호프먼에게 허락을 받고 AC/DC의 'Hell's Bells'를 등장 음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 존경하는 선수는 노모 히데오. 이 때문에 긴테쓰에 입단했을 당시 노모가 남기고 간 등번호인 11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선택하기도 했다.
- 영상에서도 보이다시피 키킹 동작이 전형적인 일본인 투수들의 이중 키킹에 가까워서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부터 보크와 부정투구가 아니냐는 등 투구폼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MLB 사무국 측은 오츠카의 투구폼을 연속동작으로 간주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