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세 히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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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No.13
이와세 히토키(李臥世岩瀬仁紀)
생년월일1974년 11월 10일
국적일본
출신지아이치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프로입단1998년 드래프트 2위
소속팀주니치 드래곤즈 (1999~)

1 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이자 한국의 합법적 병역 브로커. 李臥世 고마워요. 이와세.

데뷔한 해인 1999년부터 줄곧 불펜 투수로 활약했으며, 전임 마무리였던 오츠카 아키노리메이저리그로 이적한 2004년부터 마무리 투수로 전향, 좌완으로서는 일본 내에 단 4명뿐인 통산 200세이브의 위업을 달성한 투수. 현재는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다세이브 기록 보유자.

선동열이 일본에서 활약하던 시절 최강 불펜진의 한 축[1]이기도 했을 정도로 노련한 셋업맨이다.

2009년까지 기준으로 11년동안 1점대 평균자책점만도 6번을 찍고, 3점대를 찍은 시즌도 단 한 번일 정도로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데뷔 시즌부터 15시즌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는 철완이다. 2009년 이후에는 슬슬 노쇠화가 눈에 보일 정도라 주니치에서 후임 마무리를 열심히 키웠다...만, 2014년까지 주니치의 주전 마무리는 여전히 이와세.

스타일은 전형적인 일본인 기교파 투수. 힘으로 윽박지르는 스타일의 마무리가 유행하는 요즘 대세에도 빠른 공보다는 정교한 컨트롤과 예리한 각의 슬라이더[2], 싱커, 스플리터 등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구사하며, 털리는 날도 심하게 털리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투구의 기복도 작다.

그러나...

1.1 베이징 올림픽의 악몽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에 일본 대표팀 마무리로 발탁되었는데 이것이 이와세의 흑역사가 될 줄은 누가 알았으랴.

우선 본선 리그 한국전 첫경기에서 동점 상황에 중계 등판했으나 대타로 기용된 좌타 김현수에게 적시타를 맞고 격침(…). 참고로 이와세는 통산 좌타자 피안타율 1할대의 자타 공인 좌타 킬러. 그래도 이때까지는 다들 '뭐,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리그전 종료 후 준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한국. 이미 여기까지 올라왔을 때 본선 리그에서 4패중 2패나 혼자 쳐맞은 이와세인지라 한국전에서 어떻게든 그 굴욕을 씻고 싶었을 것이다. 8회 2:2 동점 상황에서 후지카와 큐지의 다음 투수로 등판했으나 이용규에게 안타를 맞고 1사 1루 상황에서 당시 완전 캐망중이였던 이승엽을 만났다. 일본에서도 對 이승엽 성적이 상당히 좋아서 '이번 만큼은 문제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역전 우월 투런 홈런을 맞았다.[3]

결국 이 후 G.G.사토의 캐삽질 등이 나오며 일본이 스코어 6:2로 패하면서 일본의 결승 진출도 좌절(…).

경기 후 그에 대한 양국 네티즌의 평가는 극과 극을 이루었다. 한국은 우리에게 귀중한 승리를 2번씩이나 적선해 준 그에게 전주 이씨, 한국팀의 숨겨진 병역브로커, 허용투수의 칭호를 부여했고, 일본에서는 '저거 혹시 한국팀의 스파이 아니냐?' 라는 뜻의 イ・ワセ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부여했다[4].

결국 이와세의 베이징 올림픽 최종 성적은 0승 3패 10실점에 평균자책점 13.75. 저게 얼마나 대단한 위업이냐면, 일본팀의 총 전적이 4승 5패에 총 실점은 28점.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혼자 반을 넘게 말아먹은 거다. 일본 국대 먹튀

1.2 올림픽 이후

이 영향으로 인해 2008 시즌에는 무려(…) 2.94이나 되는 시즌 방어율을 찍으면서 결국 통산 평균자책점도 다시 2점대로 올라갔다. 또 이 해 복귀한 뒤 리그전 후반에 등판하여 이승엽과 재대결한 적이 있는데,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1루가 비어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고의사구 사인을 내는 바람에 고의사구로 걸러버린 안습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해설자들은 감독의 배려라고 애써 변호해주었지만 글쎄(…).

그 뒤 메이저 진출을 포기하고 연봉 4억 3,000만 엔으로 계약하였다. 그후엔 일이 좀 잘 풀리려는지 2009시즌에는 2.1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함과 동시에 구원왕까지 획득히였다.

이후 2010년 시즌도 별반 다를게 없어서 세이브를 차곡차곡 쌓으면서 구원왕을 차지하였는데, 블론세이브 개수가 생각보다 좀 있고 평균자책점임창용에 비해 높은 편인데다가 임창용의 소속팀인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이와세의 소속팀인 주니치 드래곤즈의 전력차이를 생각하면 결국 세이브 숫자를 제외하고는 임창용에게 밀렸다라는 평가가 일본 내에서도 정설. 성적만 놓고 보면 2008, 2010 시즌이 그의 흑역사에 가깝게 된 셈이다.

2011년 6월 16일 다카쓰 신고를 제치고 일본 통산 세이브 1위에 등극했다. 9월 4일에는 일본 통산 300세이브를 달성하였다.

2013년 4월 18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는 일본 통산 350세이브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이렇게 이와세가 기록의 사나이가 된 탓에 이와세가 은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아사오 타쿠야는 영원히 마무리로의 길이 막힌 채 특급 셋업맨으로 남아있을 기세다... 2013 시즌 아사오는 부상으로 휴업중이지만

2014년 7월 27일 요미우리전에서 일본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이 해에는 아래에서도 보이듯 정말 오래간만에 3점대 방어율을 찍고 등판 경기 수도 30경기대로 줄어들었다. 결국 후반기에는 마무리 자리를 영건 후쿠타니 코지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2015년에는 부상으로 인해 단 한차례도 등판하지 못했다. 이로인해 연봉도 2억 5천만엔 에서 83%나 깎인 5천만엔에 사인했다.

2015 시즌 후 일본프로야구 현역 선수 중 차고령자가 되었다. 시즌 시작 시점에 이와세의 나이 순위는 11위였으나 앞에 있던 10명 중 하마의 번장을 제외한 모든 선수가 은퇴선언을 했다. 때문에 이와세는 드디어 노인정 주니치의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추카추카 [5]

2016년 5월 현재 일본 프로야구 1군에 등록된 선수 중에서는 최고령 선수이다. 아직 미우라 다이스케가 1군에 등판하지 못했기 때문. 하지만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2.00을 기록하는 부진을 겪으며 2군에 내려가 있다.

2 기타

신인 시절 로베르토 페타지니에게 빈볼을 던졌는데 페타지니가 달려들자 마자 빛의 속도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NPB)
년도소속팀경기수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이닝 WHIP
1999주니치 드래곤즈65102-11.5767247374⅓1.20
200058105-11.9066296580⅓1.17
20016183-03.3051196262⅔1.07
20025242-01.0638186659⅔0.89
20035852-41.4147136963⅔0.93
20046023-222.8053175363⅓1.04
200560122461.8851105257⅓1.03
200656225401.304084455⅓0.87
200761243432.4453950591.05
200851335362.94551041491.33
200954231412.1241153446⅔1.16
201054133422.25471541481.25
201156017371.4850124548⅔1.23
201254136332.29441530511.12
201355238361.8648203753⅓1.26
201434124203.5237101830⅔1.53
통산NPB 16시즌8895443364022.087882447809041.11
  1. 이와세 히토키-오치아이 에이지-이상훈-선동열
  2. 커터로 분류되기도 한다.
  3. 훗날 인터뷰에서 윤석민 曰 "이와세 공이요, 되게 치기 쉽대요 ( 누가 말했는지는 영상에서 나레이션과 겹쳐 잘 들리지 않음.) 근데 마침 이와세가 나와주는 거예요ㅋㅋ 그래서 '야, 이와세 나왔다. 이거 치자'."
  4. 한국 이름을 표기하는 식으로 이 와세라고 쓴 것 전주이씨 맞네. 즉, 이와세더러 네가 한국인이냐 X발이라는 소리.
  5.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 팀 내에 선배들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 주니치가 얼마나 세대교체가 더뎠는지를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