米林 宏昌(よねばやし ひろまさ) 1973년 이시카와현 이시카와군 노노이치시 출생. 애칭은 마로(麻呂)
1 약력
카나자와 미술 공예 대학에서 상업 디자인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1996년 스튜디오 지브리 입사. 이후 동화,원화맨으로 활동.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한 게드전기에서는 작화감독 보조. 단편 영화 空想の空とぶ機械達에서는 작화감독. 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에서는 연출도 경험했다. 특히, 벼랑 위의 포뇨에서 담당한 원화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도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1] 그런데, 그 전에는 일 때문에 잘 했다고 칭찬받은 기억은 별로 없고, 비가 오는 어느 날 스튜디오 건물의 다른 창문은 냅두고 자신이 앉는 자리의 창문만 닫는 그를 보고 미야자키가 화를 내며 "고향으로 돌아 가!"라고 혼난 경험도 있다고 한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년작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으로 전격 발탁.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는 최연소 감독 데뷔를 달성했다. [2]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브렌드 네임, 이름값으로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일단 각본이 미야자키 하야오. [3]
본인도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 바람이 분다가 제작되고 있는 중에 스즈키 토시오를 찾아가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는 못 다한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 작품의 감독을 맡겨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번째 감독작, 추억의 마니는 탈(脫)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었지만, 흥행에서나 비평에서나 그저 그런 결과가 나왔다.
그나마 스즈키 토시오는 두 거장보다 절반의 짧은 제작 기간에 작품을 완성한 점을 칭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후 호평을 했다.
2 평가
주어진 그림 콘티를 영상으로 옮기는 애니메이터로써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스스로 그림 콘티를 짜고 연출을 해야하는 감독으로써의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두 거장이 사라진 스튜디오 지브리의 현실에서 과연 다음 감독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련지? 결국 다음 작품 전에 지브리가 해체됐다(...)
그리고 지브리의 제작 부서가 해체되기 전인 2014년 연말 쯤에 이미 지브리를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1]
- ↑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모에~"라고 말했다고 한다.
- ↑ 이 때 스즈키 토시오는 지브리에서는 가장 뛰어난 애니메이터라고 그의 그림실력은 인정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딱히 감독을 맡길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감으로 라고 잘라 말했다.
- ↑ 그리고 요네바야시 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매일 같은 공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한테 감시당하면서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로는 자신은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손도 대고 발도 들이대고'해서 추억의 마니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작품처럼 두 소녀의 섬세한 심리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도 작품에 참견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평소에 요네바야시가 미소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