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고로

001_size4.jpg

1 개요

吾朗.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로 1967년생.

2 상세

본래 직업은 일종의 정원사로, 공원이나 녹지를 설계하는 건설 컨설턴트였다. 아버지 뒤를 따르는 인생이 내키지 않아 애니메이션과는 관계없는 직업을 택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따르면 뭘 해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소리를 듣는 게 싫어 나름대로 노력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엔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려니 싶어서 포기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기획 견학에 자주 따라간 적이 있어서 오시이 마모루와도 안면이 있었다. 고로는 이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보다는 오시이 감독의 작품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도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는 친분이 깊다.
1998년 지브리 미술관의 종합 디자인을 맡았고, 지브리의 제작자인 스즈키 토시오가 그를 지브리 박물관에 일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에 2001년 이후 스튜디오 지브리 박물관의 관장으로 일했다. 스즈키 토시오의 말에 의하면, 지브리 미술관의 건축을 미야자키 고로가 맡게 된 이유도 워낙 까다롭고 완고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격 때문에 다른 건축업자들은 학을 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꼬리를 말고 도망쳤는데, 미야자키 고로만은 "니예~ 니예~" 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을 흘려듣고 휼륭하게 지브리 미술관을 완성시켰기 때문이라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이 때의 긍정적인 인상이 계기가 되어 후일 스즈키 토시오는 게드전기의 감독직을 고로에게 맡기는 실험을 하게 된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인 듯. 어린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가 항상 바쁜 탓에 집에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아버지와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가 말하는 비화 중의 하나로, 지브리 미술관 건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초안을 잡은 미술관이라 이래저래 참견을 하고 사사건건 고로와 충돌했는데, 어느 날은 서로 팩스로 문서를 주고 받으면서 싸우다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 말대로 하라'는 식으로 팩스를 보내니, 고로가 オレはあんたに育てられたおぼえはない! (직역하자면 나는 당신한테 키워진 기억은 없어!) 라고 팩스로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길길이 화를 냈고, 옆에서 지켜보던 스즈키 토시오는 그 장면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2006년, 미야자키 고로는 갑자기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인 게드전기의 스토리 보드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인터뷰에 따르면 고로는 마침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고, 게드 전기의 계획안에 끌려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도 뒷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수십 년 전부터 이 작품을 영상화하기를 원했지만, 원작자 어슐러 K. 르 귄이 애니메이션은 디즈니 수준의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을 몇 번이고 거부한 탓에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후일 자신의 작품의 일본어판 번역자의 소개로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감동을 받은 뒤에야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자신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뜻을 전하게 된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미 게드전기의 영상화에 흥미를 잃은 상태에 가까워 감독직을 맡기를 거부했고, 이에 스즈키 토시오가 '하야오가 거절했어도 스튜디오 지브리가 거절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다른 감독을 내세워 작품의 영상화를 추진하게 되었으며, 그 때 머리속에 떠오른 인물이 바로 미야자키 고로였다. 스즈키 토시오의 말에 의하면, "미술관도 훌륭히 완성해냈으니, 영화도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고.

미야자키 고로가 스토리 보드를 그린 후에 스즈키 토시오는 그가 이 작품을 맡아야 된다고 주장하였지만, 지금까지 특별히 애니메이션 제작에 종사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금치 못했고 햐아오 또한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야오는 고로가 영화를 감독할 수 있을 만큼 경험을 쌓지 못했으며, 영화의 발달사 전체에 걸쳐서 등장하는 용어를 단 두 개도 말하지 못한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야자키 고로는 영화 감독을 맡게 되었고, 일본에서 흥행은 대박이었지만(관객 6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1] 평은 심각하게 좋지 않았으며 일본을 뺀 전세계 흥행은 참혹했다.

원작자인 어슐러 K. 르 귄은 애니메이션 <게드전기>에 대해서 "Yes, It`s good movie. Not my book. It is your movie(좋은 영화네요. 이건 제 책이 아니라 당신의 영화지요.)"라는 평을 남겼다. 인터뷰에 의하면 미야자키 고로는 그 당시에 이걸 칭찬으로 알아들었던 모양이지만, 원작자인 어슐러는 웹사이트에서 이 영화를 강력하게 비판하기까지 하였으며 소설과 영화를 아예 별개로 만든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로 던진 말이었던 듯하다. 즉, 스토리 각색이 문제가 아니라, 어스시의 마법사의 주제의식까지 망가뜨린 원작파괴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2].

한술 더 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시사회를 보던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단순히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후 하야오 감독의 말을 봐선 주인공인 아렌 왕자가 아버지인 국왕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고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떠올렸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결국 흥행과 별개로, 2006년 말 게드 전기는 일본의 분슌 아유 시상식에서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영화상 2관왕의 영광을 받는 기회를 얻었다.

그 후 버로우 상태였다가 5년만에 신작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내놓았다. 이 애니메이션으로 35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전작인 게드전기보단 조금 나아졌긴 했지만, <코쿠리코 언덕에서> 역시 여전히 비판받을만한 점이 수두룩한 작품이라 고로의 감독적 역량에 대한 평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마찬가지로 전작과 더불어 일본을 뺀 흥행은 여전히 참혹했다.

2013년 미야자키 하야오가 결국 은퇴를 선언하면서 그의 이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의 역량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미야자키 은퇴이후 지브리를 이끌지는 불확실하다.

바람이 분다 제작 당시를 다룬 다큐멘터리 꿈과 광기의 왕국에서 "자신은 실수로 이 업계에 들어온거라고 생각한다" 라는 언급을 하기도 했다. "내 작품을 영상으로 만들고싶다" "애니메이션을 그리고 싶다" 같은 명분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기에 자신의 역량과 능력에 대한 의문과 경력이 없다는 문제등으로 인해 어떠한 명분으로 대의를 가질수 있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작품을 만든다는 즐거움이란 마음은 존재하지만 그보단 "지브리를 위해서" 란 생각이 더 강했다고. 그렇게 되서 "지브리와 지브리의 사람들을 위해서" 란게 대의명분이 되어버렸고, 영화를 만든다는거 자체가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에는 의구심이 있다고 한다.

한동안 잠잠했다가 2014년 가을 TVA 산적의 딸 로냐로 돌아온다고 한다. 단 지브리에서 만들지 않고 스튜디오 폴리곤에서 만든다고.

  1. 하지만 흥행이 좋은 것은 이전부터 제작사인 스튜디오 지브리와 감독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의 유명세로 흥행을 했지 관객들의 평이 좋지 않았다.
  2. 대표적으로, 주인공 게드의 피부색을 밝은 색으로 표현해버린 폭거를 들 수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흰색은 순수함, 순결함, 아름다움을 상징하고 검은 색은 음흉함이나 사악함, 추함의 이미지와 연결되며(당장 한국에서도 '속이 검다' 라는 표현이라거나, '백설처럼 깨끗한' 과 같은 표현이 있음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색에 대한 선입견은 인종차별 문제등과 연관되어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특히, 르 귄이 속한 백인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그리고 원작자 르 귄은 어스시 시리즈 내에서 이런 색에 대한 선입견을 뒤틀어 무색인종을 난폭한 약탈자 야만족으로, 유색인종을 문화적 수준이 높은 민족으로 묘사하는 일종의 '관념의 역전'을 통해 작품의 주제의식을 드러냈던 것.(이처럼 기존에 사람들이 가졌던 관념을 역전시켜서 묘사함으로써 이제까지 독자들이 당연시하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은 르 귄이 매우 선호하는 표현수법이다.) 그런데 고로새끼는 이런 작품의 주제의식을 무시하고 그냥 게드의 피부색을 살색으로 칠해버렸다.(...) 즉, 시각 매체를 통해 문자매체인 원작의 주제의식을 보다 확고히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감독 스스로 짓밟아 버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