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니케아 제국 시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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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Ιωάννης Γ΄ Δούκας Βατάτζης(요안니스 3세 두카스 바타지스)
생애 : 1192~1254
재위 : 1221~1254(니케아 제국의 황제)
로마 제국의 마지막 중흥 군주
니케아 제국의 황제이며 라스카리스 왕조(Δυναστεία Λάσκαρης)의 2대 황제. 그가 사위황제였기 때문에 이후 그의 아들과 손자로 이어지는 왕조를 바타지스-라스카리스 왕조로 칭하기도 한다.
길고 긴 로마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명군이다. 대제국 시절에 비하면 영토도 작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한 팔레올로고스 왕조에 의해 니케아 제국이 지방정권으로 격하되어 빛바랜 감이 있지만 실상 그의 통치가 남긴 유산은 이후에 등장하는 안드로니코스 2세의 피눈물나는 조정기와 함께 제국이 마지막까지 버티게 해준 근간이 되었다. 미리오케팔론 전투 이후 동방 영토에 대한 마지막 공세가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며, 이러한 요안니스 시절에 대한 향수는 역설적이게도 후기 제국 역사에 큰 그림자를 남긴 아르세니오스 분열(Arsenian schism)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2 생애
2.1 제위 계승
바타지스 가문은 아드리아노폴리스 주변에 정착해 '마케도니아 파'로 불린 가문 중의 하나로, 요안니스 2세의 딸 유도키아 콤니니와 결혼하여 친왕(Despotes)이 된 테오도로스 바타지스를 시작으로 가문원들이 제국군 총사령관(Megas Domestikos)등을 비롯한 군 요직을 맡으며 두각을 드러낸 가문이다.
요안니스 3세는 이러한 가문의 배경과 함께 군사적인 역량으로 인해 테오도로스 1세의 사위가 된 것으로 보이며, 더 나아가 1221년에는 선황제의 형제들이 있음에도 후계자로 선택받았다. 불만을 품은 테오도로스의 형제들은 라틴 제국으로 향해 로베르 황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새파란 젊은이인 요안니스는 첫 시련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1224년의 니케아는 예전과 달랐고, 요안니스 3세는 선황제 시절 야전에서 이기질 못했던 라틴 제국을 상대로 13년전에 대패했던 포이마네논에서 보란듯이 승리하였다. 단숨에 소아시아 영토까지 회복한 요안니스는 마르마라해를 건너 유럽영토 일부까지 수복했으나, 곧 이피로스의 테오도로스 두카스에게 아드리아노폴리스를 빼앗기게 되었다. 그러나 라틴 제국을 완전히 몰락시켰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고, 요안니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곧 동방으로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