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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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Schloss[1]
1916. 8. 28 ~ 2012. 2. 19
뉴욕 시 출생

1 이력

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바로 다음날 입영해서 통신대대의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4년간 참전했다.

대학에 간 적은 없지만 NYSE의 부설 교육기관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주식투자를 배웠다. 그레이엄의 투자회사를 사직하고 1955년부터 자신만의 회사를 차렸다. 1955년부터 45년동안 721배[2]의 수익을 거뒀다.

1984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워런 버핏의 연설할 때 버핏이 슐로스를 슈퍼 투자자(Super Investor)[3]중의 한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6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 서한에서도 버핏은 슐로스를 "one of the good guys of Wall Street"라고 평가했다.

2002년펀드 운영을 그만뒀으며 2012년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아들 에드윈은 아버지가 장수한 것에 대해 아버지의 투자 철학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펀드매니저들이 분기마다 실적 걱정을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적이 없었고 매일 잠을 잘 잤다고 한다.

2 투자관

어떤 사람이 그에게 "같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제자인데 왜 워런 버핏과 다른 방식으로 투자합니까?"라고 묻자 "버핏의 투자 방식이 내 방식보다 기대 수익률이 확실히 높지만 난 내 방식이 편하다. 워런의 투자 방식은 그에게 적합하지 나와는 맞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는 투자자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다. 버핏은 슐로스의 투자 방식을 담배 꽁초식 투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재무제표를 보고 자산 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고 있는 주식을 매입해 5년간 보유하는 전략을 취했으며 개별 종목의 목표 수익률은 2배였다. 5년이 되기 전에 2배가 될 경우에는 더 오를 것 같아도 원칙대로 매도했다. 평균적으로 종목당 4년간 보유했다고 한다.

  • 밸류트랩을 피하기 위해 100개 이상의 기업으로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 부채비율이 100%를 넘지 않는 기업이 좋다고 생각했다.
  • 순이익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흑자였지만 적자로 바뀌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산에 더 신경을 썼는데 자산은 이익에 비해 천천히 변하기 때문이다.
  • 애널리스트 그리고 기업 경영자들과의 만남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공매도를 한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사실은 2000년 폭락전에 아마존야후공매도했었다.
  1. Schloss는 성(城), 궁전이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
  2. 연평균 수익률 15.3%이며 시장은 연평균 10%의 성과를 내던 시기였다
  3. 당시 18명을 슈퍼 투자자라고 예를 들었으며 찰스 멍거와 버핏 자신도 그중의 한사람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