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劉靖
(? ~ 254)
유복의 아들로 아버지가 사망하자 황초 연간에 황문시랑에서 여강태수로 승진하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지 애비가 일을 너무 잘해서 그도 잘 할 것이라는 생각에 임명되었다. 그 후 하내태수가 임명되어 일의 처리는 자질구레하고 세밀했지만 결국에는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고 한다.
후에 승진해서 진북장군 겸 하북의 군사를 총괄하는 가절도독하북제군사(假節都督河北諸軍事)에 오른다. 또한 아버지가 했듯이 자신도 누릉거의 큰 제방을 수리했고 3년에 한 번 벼농사를 짓지 않는 휴경지를 이용한 농업을 하니 많은 백성이 그로 인해 이득을 봤다.
254년에 죽은 후에는 정북장군, 건성향후가 추증되고 시호는 경후라 했으며 뒤는 유희가 이었고 유희의 동생 유홍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아서 정치를 잘 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술취한 조조가 노래를 부르다 유복이 노래 안에 불길한 가사가 있다고 했다가 화가 난 조조의 칼에 찔려죽자 다음 날 술 깬 조조 앞에서 유복의 시체를 안고 조조 앞에서 엉엉 우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2 후한 말 위나라의 인물
劉楨
(? ~ 217)
후한 말과 위나라의 관리이자 문학가 건안칠자(建安七子) 중에 한 사람. 자는 공간(公幹).
동평 영양 사람으로 조조에게 초빙되어 승상연속이 되었다가 조조가 조비를 모시게 했는데, 조비가 신하들과 문객을 불러 연회를 베풀어 부인 견씨를 부르자 모두 예의를 갖춰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유정은 계속 견씨를 훑어봤다. 조조가 예의를 어겼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둬 죽이려고 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청원으로 죽이지 않았다고 하며, 기물을 제작하는 작부로 좌천되어 돌을 가는 일을 하게 되었다.
- [세설신어]언어편에 따르면 유공간(유정)이 실경죄(失敬罪)에 걸려 잡혀 오자 문제(조비)가 묻길
"경은 어찌 법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가?"
이에 유정이 대답하길
"신이 진실로 어리석기도 하였지만, 폐하의 법망 역시 허술하지 않군요!"
조조가 소부의 속관인 상방에 이르자 진지하게 돌을 갈고 있는 유정을 보고 돌이 어떠하냐고 묻자 자기를 돌에 비유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꿇어 앉아 말했다.
"이 돌은 형주의 깎아지른 바위 꼭대기에서 나온 것으로 밖으로는 오색의 빛남이 있고 안으로는 변씨[1]의 진귀함을 머금고 있어서 갈아도 더 이상 빛나지 않고 아로 새겨도 더 이상 무늬를 더할 수가 없습니다. 타고난 기품이 굳세고 곧은 것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그 결을 살펴보면 구비지고 휘감겨져서 펼 수가 없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조조가 좌우를 돌아보면서 크게 웃으면서 사면해줬다고 하며, 이후에는 리(吏)에 임명되었지만 관중에 역병이 유행해서 217년에 사망했다.
조비가 일찍이 유정에게 곽락대(廓落帶)를 내렸다가 이후 장인이 죽자 이를 빌려 틀로 삼고자 해서 편지를 보내 조롱했는데, 그 편지에 대한 유정의 대답은 그 말의 교모함이 있어 여러 공자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수십편의 문과 부를 지었다고 하며, 조비가 원성현의 현령으로 지내던 오질에게 보낸 편지에서 쏟아붓는 듯한 기상이 있었지만 강건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전략, 문사전, 위지 등에서 이같은 기록이 나오며, 세설신어에서는 불경죄에 걸려 조비가 어찌하여 법도를 삼가 지키지 않았냐고 묻자 유정이 "진실이 진실로 용렬하면서 또한 폐하의 법망에 허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태평어람에는 유비가 조비에게 대구(帶鉤)라는 허리띠고리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지만 명나라의 장훤이 저술한 의요 제4권에는 유정으로 인용되었는데, 조비와의 친분이나 보낸 편지에서 현형이라고 부른 것으로 볼 때 유정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양나라의 종영이 지은 문학비평서인 시품에서도 나온다. 동국이상국전집 제6권의 고율시 92수에는 "장포주에 병들어 눕게 해 지체하게 하네"라는 표현이 있는데, 유정은 병이 있어 늘 장포(漳浦)에 누웠기 때문에 장포라는 말이 앓고 있는 시골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해몽가 주선과의 일화는 해당 항목 참조.
코에이의 게임인 삼국지 시리즈의 삼국지 7에서 한시대회에서 시를 평가하는 역할로 나온다.
3 후한 말의 인물
劉政
생몰년도 미상
북해군 사람으로 병원과 함께 용기, 지략, 영웅의 기개가 있었는데, 공손도가 유정을 두려워하고 미워해 그 가족을 체포하자 유정은 혼자 탈출했다. 공손도가 여러 현에 유정을 숨기는 자가 있으면 유정과 같은 죄로 다스리자고 했으며, 유정은 궁지에 몰려 다급하자 병원에게로 갔다.
유정은 병원에게서 한 달 남짓 숨었고 태사자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태사자에게 의탁했으며, 병원이 공손도를 설득해 유정의 가족들이 풀려났다.
3.1 창작물에서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는 낙양, 장안을 손책이 안정시키면서 조정에서 각지의 명사들을 초빙하자 그 명을 받고 낙양으로 가기 위해 중산에 잠깐 머무르면서 문소황후에게 글을 가르쳤다.
손책이 황제를 옹립해 전권을 휘두르면서 암살 대상이 되었는데, 위험을 알리는 서신을 보내기로 하자 이준경이 진씨에게 유정을 추천받았다. 위험을 알리는 서신은 이준경이 유정을 통해서 주유에게 전하게 했으며, 한편으로는 가후에게도 별도의 서신을 보내도록 했다.
그러나 유정은 낙양에 도착해서 동소와 손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이 손책에게 서신을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동소에게 일부러 감옥에 갇혔으며, 결국 손책은 낙양에서 강경하게 나가다가 낙양의 중신들에게 암살당했다.
이준경이 손책의 조문을 위해 낙양으로 오자 이 이야기를 말했다가 이준경에게 질타를 들었는데, 유정은 이준경이 천하를 안정시킬 사람으로 보았고 손책이 암살당하면 이준경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해서 이렇게 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가끔씩 등장해 이준경을 찾아와 정보를 알려주는 등의 도움을 준다.- ↑ 춘추시대 때 초왕에게 화씨의 옥을 바친 변화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