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

1 유행(流行歌)

특정한 시기에 큰인기를 얻어서 많은 사람이 듣고 부르는 신나는노래.

대중가요와 유행가를 동일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중의 인기를 얻은 가요가 유행가가 될수는 있어도 모든 대중가요가 유행가가 될 수는 없다.

1.1 대한민국의 유행가

대한민국의 경우, 1960년대에는 라디오에서 주로 나오는 곡이 유행가로 통했고, TV가 보급된 1970년대 부터는 KBS를 필두로한 가요 프로그램에서 높은 순위를 얻은 곡이 유행가로 분류되었다.

이후 1980년대, 3S 정책의 후속으로 해외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며 팝송이 잠시 유행가의 자리에 오른적이 있으며 공중파 개그 프로그램인 쇼 비디오 쟈키에선 매주 전문적인 팝송을 소개하는 고정 코너를 마련하기도 했다.

대형 기획사의 일방적인 곡공급이 관례가 되기 직전이자 IMF가 터지기 전의 한국 가요의 황금기인 1990년대 초중반, 유행가는 여러 형태로 시행되었으며 한국 가요관련 기록 중 대다수가 이 시기에 집중 되어있다.[1]

2 특이 사례

2.1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

김현정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인 <그녀와의 이별>은 한국음반사에서 유행가는 대중이 만든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준 곡이다.

<그녀와의 이별>은 원래 1997년 발매되었으나, 대형기획사가 주름잡던 시장에서 이렇다할 판매 실적을 내지 못했다. 주요 음반매장에서 안팔리니 빼라라는 통지를 받아 전량회수되어 파기될 운명이었지만 강남쪽의 나이트 클럽 DJ들이 요즘 보기 드문 가창력 있는 여가수라며 비는 시간에 주구줄창 틀어주다보니 인지도가 생기고 앨범이 조금씩 팔려 발매 1년 뒤에 차트에 재진입하는 부활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1998년 재발매되어 5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2.2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전람회의 1집 대표곡인 기억의 습작은 MBC의 대학가요제를 통해 데뷔한 전람회의 멤버 중 한명인 김동률이 활동 중 영장이 꼬여 군입대를 하게 된 사실이 알려지며 불쌍하니 판을 사주자라는 여론이 조성되어 라디오를 통한 차트에 재진입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네이버뮤직》의 《전람회 - Exhibition》

2.3 원곡이 뒤로 밀려버린 케이스

대중의 지지로 성립되는 곡이다보니, 발표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 리메이크가 되어 유행가에 오르는 일도 생겨난다.

리메이크된 곡이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경우 원곡을 부른 사람이 완전히 묻혀버리는 일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등병의 편지거위의 꿈이 있는데, 이등병의 편지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이 이끌던 그룹 종이연에서 윤도현이 부른 곡이 원곡이지만,[2] 이후 1993년 5월 김광석리메이크 음반인 《다시 부르기》 1집에 김광석이 리메이크한 노래가 수록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서[3] 입영레전드의 자리에 올랐다. 훗날 원곡을 부른 ― 종이학의 ― 윤도현은 완전히 묻혔고 일부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내가 처음 불렀다"는 발언을 내놓자 "뻥까지마라"라는 반응이 실시간문자로 날아들기도 했다.

※더 자세한 건 이등병의 편지거위의 꿈 문서를 각각 참조하자.

3 송대관롤러코스터의 노래

송대관(2003)과 롤러코스터(2006)가 발표한 동명이곡(同名異曲).

상세 내용은 유행가(노래) 참조.
  1. 당시 연예인 강호동은 방송에 출연하여 "내가 유행가를 방송이나 사람들 있는 모임에서 불러보려고 차에서 맨날 들으며 연습을 해서 마스터를 하면, 바로 그 노래의 유행이 지나 버려 부르지 못하였다."며 한탄하기도 하였다. 그 정도로 유행가가 쏟아져 나오던 시대였다.
  2. 김현성이 작곡했고, 이 그룹에 속해있던 윤도현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3. 2000년영화 공동경비구역 JSAOST에도 수록되어 다시금 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