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강

陸康
(127 ~ 196)

후한 말의 지방관으로 자는 계녕(季寧).

양주 오군 오현 출신으로 육적의 아버지이자 육손의 숙조부(작은 할아버지).

군에서 벼슬해 의기가 있다고 칭송되어 장민으로부터 무재에 천거되어 고성령이 되었는데, 부임하자 장리가 징발했던 것을 모두 돌려보내 백성들을 기쁘게 하고 잘 다스려서 178년에 무릉태수로 승진했다가 계양, 낙안 등으로 옮겼고 가는 곳마다 잘 다스렸다.

185년에 낙안태수를 지내면서 영제가 구리로 사람의 형상을 한 장식물을 만들기 위해 농토를 조사해 거두려고 하자 이를 간언했다가 참소당해 함거에 갇히다가 유대의 도움으로 면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에서 그쳤으며, 다시 부름을 받아 의랑이 되었다. 여강에서 황양이 강하만과 연합해 10여 만 명이 4개의 현을 함락하자 여강태수로 임명되면서 그들을 격파하고 항복시켰으며, 헌제가 즉위하고 효렴, 계리 등을 보내 공물을 바쳐 충의장군에 임명되었다.

원술이 서주를 공격하기 위해 군량 3만 석을 빌리려고 하자 거부했으며, 그 일에 원술은 화가 나서 손책을 시켜 육강을 공격하도록 시켰다. 손책 또한 전에 육강을 만나러 갔을 때 육강 대신 주부가 나와서 영접한 것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위기를 감지한 육강은 일가 친족을 나이가 어린 육적 대신에 육손에게 맡겨 오현으로 대피시키면서 2년간 싸웠지만 손책에게 패했고 성이 함락된 지 한 달에 사망하며, 육강을 공격한 손책은 원술에게 약속받은 여강태수 자리를 유훈이 가져가 자신이 받지 못하자 분노해서 손책이 독립하는 계기가 된다.[1]

육강의 가문은 오[2]의 사성[3] 중 하나로 유력한 호족이었는데, 그의 죽음으로 손가와 육가의 사이는 나빠지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손권은 손책의 딸 손씨를 육손에게 시집보낸다.

연의에서는 손책의 육강 토벌에 대해 짧게 언급하긴 하지만, 상세한 과정은 없고, 육강이란 인물에 대한 설명도 없으므로 그냥 군벌A와의 전쟁 정도로만 인식된다.

창작물에서

삼국전투기에서는 처음에는 도박묵시록 카이지토네가와 유키오로 등장해 전투시에는 어느새 콧수염을 기르고 푸른갑옷을 입은 람바 랄로 나왔으며,조인과는 다르다! 조인과는! 손책에게 찔리자 자살하는 연출을 보여준다.
  1. 그런데 어째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손책은 양주 정벌을 195년부터 시작하여 197년까지 쭈욱 이어왔는데, 여강을 토벌한 시점에서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후한서》 〈육강전〉을 제외하고는, 손책이 육강을 치고 돌아와서 유요를 치러 가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육강의 농성기간과 손책의 양주 평정 기간이 겹치는데 분신술을 쓰지 않는 한 손책이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가 없다. 진실은 불명확하지만, 〈육강전〉의 내용을 적극 반영하면, 농성기간이 길어지자 원술이 손책을 불러들이고, 대신 유훈을 보낸 것으로도 추측이 가능해진다. 아니면 손책의 군대가 일부 남아서, 여강공격을 계속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2. 오나라가 아니고 오군 또는 오현을 뜻함.
  3. 육손의 육씨, 고옹의 고씨, 주환의 주씨, 장온의 장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