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윤찬 |
생년월일 | 1967년 10월 17일 |
학력 | 미국 밥티스트대 |
포지션 | 내야수(유격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1년 LG 트윈스 해외교포 입단 |
소속팀 | LG 트윈스(1991~1996) |
전 LG 트윈스의 재미교포 출신 야구선수. 포지션은 유격수.
초등학교 때 이명수, 김기덕과 함께 리틀야구 대표를 하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 유학을 간 케이스로, 대학 4학년 때 전미야구협회의 '올해의 대학 선수'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재박의 은퇴 이후 민경삼, 이종열, 박준태 등을 유격수로 돌려쓰다가 실패한 LG는 언어 소통에 불편함이 없으면서 미국에서도 검증된 실력이었다고 하는 그를 1993년 주전 유격수로 낙점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김재박의 지능적인 수비에 익숙했던 LG팬들에게 추승우의 유격수 버전이었던 그는 영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1993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의 주루사가 치명적이었다.
9회말 무사 1루. 스코어 3:2 삼성이 리드한 가운데 김영직의 대주자로 투입된 그는 후속 타자 최훈재의 2루타성 타구 때 타격음과 동시에 스타트를 끊었다. 그러나 삼성 우익수 이종두가 전력질주해 볼을 잡아냈고, 이종도 3루코치는 그에게 귀루를 지시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계속 달리라는 사인으로 착각하고 홈까지 전력질주한 뒤 병살당한 줄도 모르고 만세를 부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고, 그대로 더블아웃. 후속타자 송구홍이 안타를 쳤으니 LG로선 두고두고 뼈아픈 경기였다. 이후 윤찬에게는 '폭주기관차'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었다.[2]
이 역대급 본헤드플레이로 그는 당시 이광환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에게 찍혔고[3], 1996년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게 된다. 이후 황당한 주루플레이가 나오면 종종 그의 폭주사건이 거론되곤 한다. 문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