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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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종열(李鍾烈 / Jong-yeul Lee)
생년월일1973년 1월 28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출신학교길동초-장충중-장충고
포지션내야수
투타우투양타
프로입단1991년 고졸연고 자유계약(LG 트윈스)
소속팀LG 트윈스(1991~2009)
"LG에 단 한 명 프랜차이즈 선수가 있다면 이종열이다."

이상훈
LG 트윈스 역대 주장
서용빈
(2006)
이종열
(2007~2008)
조인성
(2009)

1 소개

LG 트윈스 소속 프로야구 선수이자 코치. 현 SBS Sports 야구 해설위원.

선수 시절에는 특출난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LG의 소금 같았던 존재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다. LG의 영광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산 증인이기에 더더욱. 시즌 초반에는 팀 내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밀려 보이지 않다가 후반으로 가면 2군이나 부상 등으로 사라진 그 스타플레이어들을 대신해 내야 어딘가에서 꼭 활약을 보였다는 면에서 LG 내야의 단추 구멍들을 막아준 선수였다.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오로지 LG에서만 뛰다가 은퇴했는데, 21년간이란 한 팀 선수 생활은 송진우 선수에 이어 2번째이고, 야수로는 으뜸이다.[1]

대표적인 별명은 단추. 눈이 단추구멍만큼 작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또한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맡아가며 묵묵히 활약하는 모습으로 아래에서도 소개될 변신괴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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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장충고를 졸업하고 바로 LG에 입단했다. 당시로서는 고졸 선수가 대학이 아닌 프로로 직행하는 일이 흔치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하필 이종열과 함께 LG에 입단한 선수가 동대문상고의 우승 주역이자 당시 청소년대표팀 주장이었던 이우수였기에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입단 초엔 존재감없는 그저 그런 내야수였지만, 그나마 수비에 강점을 보였기 때문에 백업 2루수, 3루수로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가다가 주전 3루수였던 윤찬의 부진을 틈타 본격적인 레귤러 멤버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다.

여담이지만 입단 당시 이종열보다 훨씬 주목을 받았던 이우수가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본 포지션인 유격수를 포기하고 2, 3루 백업을 서며 잡초처럼 자신의 입지를 넓혀나갔던 이종열과는 달리, 프로에 와서도 전문 유격수로 길러지던 이우수는 나중에 데뷔한 유지현의 맹활약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잃게 된다.[2]

문제는 타격이었는데, 주전 3루수가 되고 나서도 2할 5푼도 힘든 수준이었다. 게다가 94년에는 한대화까지 입단하며 주전에서 밀려났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낀 이종열은 1995년, 김용달 코치의 조언에 따라 스위치 히터로 변신하는 모험을 선택한다. 그가 스위치 히터를 선택한 건 단순히 타격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2번 타자로서 작전수행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고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이렇게 우직하게 내야 전 포지션을 넘나들며 붙은 별명이 '변신 괴물'.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로 다양한 활용도를 자랑하게 된 그에게 썩 어울리는 별명이다. LG 암흑기(...) 시절에는 외야수를 본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투수, 포수를 제외한 7포지션 플레이어 타이틀 획득!

99년엔 타율 0.291, 9홈런 55타점으로 타격도 일취월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2002년에는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하는 영광도 누린다. 이후 감독추천으로 2005, 2007년에 올스타에 뽑힌다.

99년 이후 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팬들 사이에서 철밥통이라고 까이기도 했는데, 2007시즌에 타율 0.285, 4홈런 53타점의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8월 29일에 한 이닝에 양타석에서 안타를 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이종열이 유일하다.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었는지 2008시즌에 타율 0.232의 부진한 성적을 내고, 2009시즌엔 베테랑 박종호를 비롯해 박용근, 김태완 등에게 밀리면서 거의 2군에만 머무르게 된다. 결국 2009시즌 종료 후 은퇴하고, LG 육성군 코치로 지도자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47, 1175안타, 52홈런, 131도루.

2011년경, LG에 서동욱이 등장해 이종열의 뒤를 잇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3] 이종열이 내야의 어느 포지션을 봐도 평균 이상의 수비를 해줬던 점에 비해 서동욱은 수비고 타격이고 유틸리티 플레이어라고 보기엔 여러 모로 어중간했다. 결국 서동욱은 이후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3 은퇴 후

2011시즌 후 김기태로 감독이 바뀌면서 김영직, 최계훈, 허문회 등의 코치들과 같이 해임되고 2년간 미국 대학야구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되었다. 미국에서 리틀야구 코치부터 시작.

2013년부터 미국의 고교 야구 팀에서 코치를 맡게 되었다. 오하이오 주 블링그린 하이스쿨 야구 팀 타격코치 이종열

2014년 11월에 자신의 페이스북 메인사진을 LG 트윈스에서 뛰던 현역시절 사진으로 바꿔서 팬들이 코치 복귀하는거 아니냐고 이래저래 설왕설래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디시 쥐갤엠팍에서 코치 복귀설이 나오고 있었던 상황이라 복귀한다면 제발 최태원 좀 1루나 다른 코치로 보내고 3루 코치 맡아달라고 할 정도. 그런데 결국 두 자리나 공석이 생긴 SBS Sports 해설을 맡게 되었다. 주로 현장 중계때는 최원호와 파트너를 이뤄 3인 중계로 참여하고 있고 간간히 단독으로 해설하는 경우도 있다. 이순철과 함께 해설하며 중계를 한 적도 있는데, 참고로 이종열-최원호는 이순철이 LG 감독일때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다. 한때 3명이 한솥밥을 먹었다는 뜻. 감동니뮤와 선수생활도 해설도 함께하는 뗄수 없는 인연의 끈[4]

해설 도중 최원호와 싸우는 듯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팬들은 재밌다고 하는 쪽도 있고 무섭다고 하는 쪽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들이 전혀 연출이나 짜고 치는 상황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백퍼센트 본인들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언쟁이라고 한다. 정말 두 사람이 야구를 보는 눈과 분석 성향이 다른 부분이 많다고 한다. 게다가 둘 다 선수 출신치고도 이론 공부를 많이 하고 해설자가 된 경우라 더더욱 깊이 있는 충돌이 많다. 심지어 두 사람은 LG 트윈스 시절 10년을 함께한 1년차 선후배 사이임에도 친하기는 커녕 오히려 껄끄러운 느낌이다.[5] 이종열의 말로는 선수시절 자신이 주장일때도 선수 모임때 주장으로써 본인이 이야기하는 상황이 올때마다 최원호의 (항의성) 질문이 많았다고 하고, 게다가 집에 가서 부인에게도 최원호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소연을 하다가 "내가 최원호만 설득할 수 있으면 이 세상 사람 다 설득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해설자 하기 전에도 이미 이런 사이였다는 것 이는 마치 진보와 보수처럼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은 관계인 듯. 20년 가까이 이어지는 앙숙 대신 최대한 논리 싸움으로만 가려고 하고 감정 싸움이나 주먹(?) 싸움으로는 안 가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사실 LG에서만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LG에서 코치로 부르지 않는 이유가 이종열이 구단 측과 좋지 않게 헤어져서라는 설도 있긴 하다.

2015년에는 프리미어12 전력분석관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대만에서 열렸던 조별예선 잔여경기와 8강전까지 최원호 해설위원과 함께 SBS 중계를 맡았다

4 논란

2015년 5월 1일 롯데 VS 한화 전 SBS Sports 중계 해설을 하는 동안 롯데의 타자들이 아웃을 당하거나 한화 타자들의 세이프 등의 상황 즉, 롯데에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 지속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등 상당한 편파 해설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에 등재되었다.

당시 중계 방송을 본 KBO 팬들은 이종열 해설에 대해 "편파왕 이종열", "이졸렬" 등의 비난과 항의를 했고 결국 캐스터 정우영이 중계방송을 마치며 "이종열 해설이 탄식을 내뱉는 건 이전부터 있어왔는데 이번 경기의 중요도 때문에 부각되는 것 같다며 양해 바란다"라는 멘트를 남겼다. 그런데 이종열을 나름 커버쳐준다고 한 이 멘트[6]가 이종열이 그전부터 편파해설을 해왔는 데 하필 오늘 부각되어서 사과하는 뉘앙스라 오히려 역효과만 낳고 말았다. 해설 입봉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 데 편파해설 논란[7](...)

이 후 위키백과가 "역대 최고의 편파해설 이종열" 등으로 반달[8]되는 등 또다른 논란을 빚었다.
  1. 야수 두번째는 태평양-현대-넥센에서 18년간 뛴 이숭용이다.
  2. 물론 신문기사에서도 나왔지만 이우수가 실패한 결정적 사유는 바로 멘탈 문제였다. 재활훈련 때도 너무 힘들다며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잦았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 탓도 컸다.
  3. 2011년 활약이 이종열을 닮았다 해서 트랜스포머2라 불리기도 했다.
  4. 주간야구에서 이종열과 최원호는 선수시절 얘기하다가 '그때 (이순철 위원님을 가리키며) 우리 감독님이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5. 물론 어떤 팀이건 원래 투수조와 야수조 사이는 같은 팀인 것에도 불구하고, 미묘하게 성향이 다른 부분이 많다.
  6. 타자 출신인 이종열에게는 타자 중심의, 투수 출신인 최원호에게는 투수 중심의 분업 형태 해설이라고 해명했다.
  7. 물론 초보라는걸 이해하야만 한다.
  8. 그 외에도 와 같은 반달들이 자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