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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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蘭影
(1916년 6월 6일 ~ 1965년 4월 11일)

1 개요

이난영은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이옥례이다.

2 기구한 인생

1916년 전라남도 목포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빠인 이봉룡과 함께 갖은 고생을 하며 자랐다. 16세 때에 제주도에서 삼천가극단의 순회 공연 중 막간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가 노래실력을 인정받아 순회극단을 따라다니게 됐다. 삼천가극단이 일본에서 순회 공연을 할 때 작사가강사랑이 이난영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오케레코드사의 사장인 이철에게 추천해서, 1932년에 문호월의 곡 <고적>을 처음으로 취입했다.[1]

1934년 <목포의 눈물>을 불러 크게 히트를 쳐서 가요계의 스타로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1936년, 20세에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했다. <목포는 항구다>, <다방의 푸른 꿈>[2] 등으로 당대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유명인이 되었다. 광복 후에도 가수로 활약하였는데, 한국 전쟁때 김해송이 납북된 이후 KPK악단을 직접 운영했다. 이 시절, 동료가수였던 남인수와 사랑에 빠진다. 자신을 챙겨주고 아껴주는 남인수의 모습에 반해서 사실혼관계로 지낼 정도였지만, 남인수가 폐결핵으로 갑자기 죽게된다.

이후, 이난영은 자식들을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귀국하고 얼마 후에 생을 마감했다. 이난영의 자식들은 미국에서 김시스터스, 김보이스 라는 이름으로 연예활동을 했고 1963년에는 내한공연도 했다. 인생이 참 기구하고 불행해보인다(...)

3 대중매체에서

해어화에서 특별출연했다. 배우는 차지연.
  1. 그런데 다른데서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이철이 쌩고생을 해야 했다고…이 사건을 MBC 프로그램 타임머신에서 방영해줬었다.
  2. 1939년에 발표된 이 '다방의 푸른 꿈'이라는 곡은 한국 최초의 블루스 곡이다. 남편인 김해송씨가 이난영씨를 위해 작곡해준 곡이기도 하다. 옛날 노래치고는 정말 세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