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석(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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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동석(李東錫)
생년월일1964년 1월 11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전라북도 군산시
출신학교군산상고 - 동국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7년 2차 1라운드 1순위(빙그레 이글스)
소속팀빙그레 이글스(1987~1991)
쌍방울 레이더스(1992~1993)

1 개요

선동열에게 노히트 노런 패배를 안긴 2년차 신인 투수

빙그레 이글스, 쌍방울 레이더스의 야구 선수.

2 선수시절

1987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다.

데뷔 첫 해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1988년에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다. 1988년 4월 17일 빙그레해태의 맞대결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1:0 승리를 거두었는데, 선발 맞대결 투수가 각동님선동열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출루 2개가 수비 실책인 무사사구 노히트 노런이었다는 점이다.

그 해 빙그레는 이상군, 한희민 등의 원조 빙그레 에이스와 새로운 신성 이동석, 장종훈, 이정훈 등의 활약에 힘입어 창단 3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이 해 이동석의 성적은 평균자책점 3.67 7승 3패 2세이브.

빙그레 vs 해태의 1988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선동열이상군, 한희민을 피하게 하기 위한 김영덕 감독의 작전으로 또 다시 선동열과 맞대결하게 된 이동석은 이순철에게 솔로 홈런 1방만 맞으며 6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문제는 상대가 선동열이라는 것. 결국 패전의 멍에를 썼다. 이동석은 빙그레가 3:2로 열세인 1988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정말 꾸역꾸역 막다가 4회 초에 안타를 맞고 김대중으로 교체되어 패전 투수는 되지 않았다. 어쨌거나 빙그레는 해태에게 패배했다.이 때부터 콩그레의 전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신인으로 촉망받았으나, 그 이후 코치와 감독 등의 불화와 구위 저하로 출장 기회는 점점 줄어갔고, 결국 1992년 4월 10일 쌍방울 레이더스에 현금 트레이드됐다.(당시 트레이드 머니는 2,250만 원) 그러나 쌍방울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한 채 1993년 시즌 후 은퇴하게 된다.

통산 기록은 평균자책점 5.01, 12승 16패 7세이브.

3 은퇴 이후

지도자로 변신했으며 속초상업고등학교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2004년 화순고에 이동석 감독이 부임하여 2004년 미추홀기 준우승, 2006년 대통령배 4강, 올해 청룡기와 대붕기 16강 등 굉장한 성적을 기록했다.
현재는 세한대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지내고 있다.[1]

4 기타

선수 시절 경기에 내 보내 주지 않는다고 감독과 코치들과 불화가 많아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투수 치고 짧은 선수 생활을 보냈다. 노히트 노런 공을 아직도 소중하게 보관하신다고 한다.

여담으로 노히트 노런 당시 신었던 양말을 그 이후로도 계속 신었으며, 구멍이 나서도 계속 신었다고 한다.
  1. 종전 세한대학교 야구부 감독은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었던 장정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