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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무 No.3 | |
이웅희 (李雄熙 / Lee Woong-Hee) | |
출생 | 1988년 7월 18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대전광역시 |
포지션 | 센터백, 오른쪽 풀백 |
신체조건 | 182cm, 78kg |
소속팀 | 대전 시티즌 (2011~2013) FC 서울 (2014~2016) 상주 상무 (2016~) |
K리그 클래식 상주상무 소속의 축구선수. 빠른 발과 탄탄한 대인마크를 무기로 하는 수비수이다. 포백과 쓰리백에서 모두 활용이 가능하다. 오른쪽 풀백으로 데뷔했으나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도 가능하며 대전 시절 잠깐이나마 포워드로 뛴 적도 있다.
대전 출신으로 유성생명과학고와 배재대를 거쳐 번외지명으로 2011년 대전에 입단했다. 첫 해 준족을 살려 오른쪽 풀백으로 17경기에 출전했다. 팬들에겐 과거 대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풀백 우승제와 비견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음해부턴 당당한 주전 멤버로 도약, 2012년 34경기, 2013년 32경기에 나섰다. 13시즌에는 감독의 권유로 센터백으로도 출전해 준수한 폼을 보였으나 팀 전력이 워낙 약해 강등을 막진 못했다. 14시즌 개막을 앞두고 쓰리백으로 전술변환을 시도하던 FC 서울의 러브콜을 받아 이적했다.
월드컵 브레이크때 까지는 주야장천 베스트11만 돌려쓰던 최용수 감독의 성향과[1] 갑작스런 쓰리백 전환에 따른 혼란과 부진으로 벤치를 달궜다. 가끔 김진규, 오스마르, 김주영 중 한몀이 빠질때나 대타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14년 7월 9일 포항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김주영 대신 출전해 탄탄한 수비력을 보이며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 마침 최용수 감독이 고집을 버리고 후보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로테이션을 운용하기 시작하는 중이었는데 제대로 PR에 성공했고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정비되기 시작한 서울의 쓰리백의 주전 수비수로 발돋움했다.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전남전에서 서울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던 최현태가 부상을 당하자, 최용수 감독은 강승조나 이상협을 최현태의 백업으로 쓰는 대신,왼쪽 센터백을 보던 오스마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리고, 오른쪽 주전 센터백이던 김주영을 왼쪽으로 돌리고, 이웅희를 오른쪽 주전 센터백으로 기용했다.[2] 이는 결국 오스마르와 이웅희 모두에게 서울의 에이스로 거듭나는 기회를 제공한 최용수의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이후 최현태가 부상에서 회복했지만 이웅희는 주전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브라질 월드컵 휴식기 이후 서울의 주전 수비진을 살펴보면 김주영-김진규-이웅희가 쓰리백을 형성했는데, 주장 김진규는 노련하고 몸싸움과 공중볼 다툼에 강점을 보이는 대신 발이 느려서 빠르고 무게중심을 잘 활용하는 선수들에겐 약세를 보인다. 발빠르고 유연성 좋았던 레전드 수비수 아디의 은퇴로 이 약점이 크게 불거질수 있었는데, 그 여백을 100m를 11초대로 끊는 두 준족 수비수 김주영, 이웅희가 잘 메워주웠다. 동시에 이웅희의 주전 합류로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모두 소화할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 오스마르를 전진 배치시켜 중원의 1차 저지선 역할을 수행케 하면서 미들진도 두터워졌다. 물론 2-2 무승부를 기록한 울산전에서 커버링 미스로 만회골을 허용한것 같이 실수가 없진 않았지만 전반적으로는 2014시즌 서울 최고의 영입이라 할 만하다.[3] 2015시즌에는 김주영이 이적하고 김진규가 장기부상을 끊은 상황에서 김동우, 박용우, 김남춘 등 여러 파트너들과 짝을 이뤄 준수한 폼을 보여주고 있다. 2015년 11월 25일 상주 상무에 최종 합격해 시즌 종료 후 입대하게 되었다. 김주영에 이어 이웅희까지 발 빠른 스토퍼 2명이 연이어 빠지면서 수비진 보강이 중요해졌다. 이에 서울은 김원식과 김원균을 임대복귀시키고, 정인환과 심우연의 영입으로 수비진 보강을 꾀하긴 했으나, 이들 중 김주영이나 이웅희와 같은 발빠른 센터백은 없어 최용수 감독이 3백을 어떻게 운용할지 주목된다. 가고시마 전지훈련 연습경기 결과가 준수한 것으로 보아 해결책을 발견하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 베스트11 집착이 너무 심해서 기껏 다른팀에서 선수 데려와 놓고도 제대로 안쓰는걸로 유명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인천에서 맹활약했음에도 서울에선 아무런 기회도 한번 못받고 벤치만 달궈야 했던 이재권. 14시즌 스스로 문제점을 인정하며 한 발언에 의하면 그동안은 후보 선수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고 한다.
- ↑ 즉, 최현태 부상 이전에는 서울의 3백이 오스마르-김진규-김주영 형태였으나, 최현태 부상 이후 김주영-김진규-이웅희로 굳어지면서 오스마르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갔다.
- ↑ 같이 영입한 강승조는 플레이메이커를 원한 최용수 감독의 의중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패스 미스만 남발해 완전히 망한 영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