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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신 볼 수 없는 현역 시절
눈물의 은퇴식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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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코치다!
FC 서울 코치 | |
아지우송 두스 산투스 (Adilson Dos Santos) | |
생년월일 | 1976년 5월 12일 |
국적 | 브라질 |
출신지 | 아라카주 |
포지션 | 왼쪽 풀백, 센터백,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
신체조건 | 183cm, 81kg |
등번호 | 8번 |
프로입단 | 1998년 아푸카라나 아틀레치쿠 클럽 |
선수시절 소속팀 | 아푸카라나 아틀레치쿠 클럽(1997) 파라나 클럽(1997~1998) 츠르베나 즈베즈다(1998~1999) 레알 베티스(2000) 세비야 FC(2000) 다롄 스더(임대) (2000) 다롄 스더(2001~2005) FC 서울(2006~2013) |
스태프 커리어 | FC 서울 (2014~ / 코치) |
별명 | 이지스 |
아이디가 아니다.
2007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이근호 | FW 까보레 | ||||||||||
MF 따바레즈 | MF 이관우 | MF 김기동 | MF 김두현 | ||||||||
DF 아디 | DF 마토 | DF 황재원 | DF 장학영 | ||||||||
GK 김병지 | |||||||||||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이근호 | FW 에두 | ||||||||||
MF 김형범 | MF 조원희 | MF 기성용 | MF 이청용 | ||||||||
DF 아디 | DF 마토 | DF 박동혁 | DF 최효진 | ||||||||
GK 이운재 | |||||||||||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김은중 | FW 데얀 | ||||||||||
MF 몰리나 | MF 윤빛가람 | MF 구자철 | MF 에닝요 | ||||||||
DF 홍정호 | DF 아디 | DF 사샤 | DF 최효진 | ||||||||
GK 김용대 | |||||||||||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이동국 | FW 데얀 | ||||||||||
MF 몰리나 | MF 하대성 | MF 황진성 | MF 이근호 | ||||||||
DF 아디 | DF 정인환 | DF 곽태휘 | DF 김창수 | ||||||||
GK 김용대 | |||||||||||
2013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 |||||||||||
FW 김신욱 | FW 데얀 | ||||||||||
MF 고무열 | MF 이명주 | MF 하대성 | MF 레오나르도 | ||||||||
DF 아디 | DF 김치곤 | DF 김원일 | DF 이용 | ||||||||
GK 김승규 |
1 개요
이지스라는 별명에 걸맞는 철벽 수비를 보여준 K리그의 역대급 수비수
선수로 시작해 코치로 FC 서울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레전드 오브 레전드
브라질 태생의 前 축구 선수. K리그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통산 264경기 출전으로 K리그를 거쳐간 외국인 선수들 중 최다 출장기록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 파라나에서 성장해 프로에 데뷔했으며, 세르비아 리그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를 거쳐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베티스와 세비야 FC에서도 몸담았으나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2000년 중국 슈퍼리그 다롄 스더로 임대되었다. 이후 다롄 스더로 완전 이적하여 활약하다가 2006년 이장수 감독의 눈에 들어 FC 서울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후 FC 서울 수비진의 중심으로 종횡무진 활약했다.[2]
K리그에서 뛰는 동안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경험했다. 그밖에 2007, 2009, 2012년 리그 최소 실점에 크게 기여했으며 2007, 2008, 2010, 2012, 2013년 총 5번에 걸쳐 K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010 시즌 10월 9일 경남전에서 김병지와 공중볼을 다투다가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입고 장기간 결장했다. 이때만 해도 시즌중 복귀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느나, 서울이 리그 상위를 지키며 사실상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하자 컨디션을 끌어올려 12월 1일 챔피언 결정전에 복귀했다. 많은 이들이 부상 후유증과 50일 넘는 공백으로 인한 실전 감각 상실을 우려했으나 다행히 큰 실수는 없었으며, 후반 근육경련으로 교체되었다. 12월 5일 홈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FC서울에 4번째 우승을 선사했다.
가족 때문에 2010 시즌 종료 후 브라질로 돌아갈 것이란 루머가 있었으나 재계약에 성공했다. 가족들도 한국말을 익히며 잘 지낸다고. 팬들은 서울의 전설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그가 은퇴식까지 치르며 명예롭게 떠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2011 시즌에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여전한 실력을 과시하며 리그 전경기에 출장했고, 2012 시즌에도 여전한 모습으로 팀의 우승과 베스트 11 선정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았다.
2014년 1월 28일 소속팀 FC 서울이 제안한 코치직을 수락하면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었다.[3] 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의 새 출발을 축복하고 레전드에게 합당한 예우를 한 구단을 칭찬하고 있다. 또한 한 시대를 풍미한 명선수가 코치로서 리그에 그대로 남아 후학을 지도한다는 점은[4] 장기적으로 리그를 살찌우는 길이기도 한만큼 차후 행보를 주목할 가치가 있다.
2 플레이 스타일
수준급 외국인 선수조차 뚫기 어려워하는 맨마킹과 K리그 최고 수준의 태클, 왕성한 활동량과 좋은 내구성, 브라질리언 특유의 뛰어난 스피드와 유연성을 살린 공격력, 측면 수비수, 중앙 수비수,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가 모두 가능한 멀티 플레이 능력의 소유자로 공수겸장의 만능 외국인 선수이다.
선수단 태반이 부상으로 이탈했던 2007 시즌 멀티 플레이 능력을 살려 세뇰 귀네슈 감독의 전술폭을 넓혀줬으며, 2008년 준플레이오프에선 당시 물올랐던 울산의 측면 공격을 완벽히 분쇄하며 서울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2010 시즌에는 보직을 옮겨 중앙 미드필더와 센터백으로 출전했으며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사실, FC 서울의 팬이 아니더라도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K리그 팬들은 아무도 없으며 팬층도 두텁다.
샤다라빠 김근석은 성남 FC의 팬임에도 공공연한 아디빠로 웹툰에서 몇번이나 인증하기도 했다.
3 기타
- FC 서울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2009년 7월 벌이진 맨유와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날 아디는 중앙 수비로 나와 '패스의 줄기를 아주 끊어버리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는데[5] 서울이 당한 실점과 위기상황은 모두 아디가 실수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 외국인 선수지만 팀에 대한 애착은 누구보다 강해서 2006년 플레이오프에서 서울이 성남에게 패하여 결승 진출이 좌절되자 눈물을 흘렸다. 팬들이 이런 선수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서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들도 있었지만 서울만큼 마음 편하게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제공해주는 구단이 없다고 생각해 남았고 서울에서 은퇴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장수한 외국인 선수들이 으래 그렇듯이 한국 음식을 즐기며 한국 문화에도 능숙하다. 동료들과의 사이도 굉장히 좋은데 데얀은 몬테네그로와 한국이 월드컵에서 만나면 가장 고민할 사람은 누구를 위해 삼바를 춰야할지 모를 아디라는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했다. 다만 한국어는 코치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어는 꽤 하는데 아디는 이에 대해서 중국에서는 구단이 아무 것도 해 주는 게 없어서 진짜 살려고 중국어를 배웠고, 한국에서는 통역이 잘 해줘서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 2012년 5월 6일, 르꼬끄스포르티브 직원을 사칭한
개네티즌이 한 커뮤니티에서 인종차별 발언을 남겼다. 격분한 축구팬들이 재빨리 이 사건을 전파하고, 마침내 언론에도 보도되었다. 마침 사건 발생일이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사태 파악이 늦었던 르꼬끄측은 조사결과 자사 직원이 아닌 사칭이며, 법적 대응을 준비중이라고.여기 인생퇴갤 추가요여담으로 저 커뮤니티는 가입제한이 1971년 이전 출생이라고.애도 아니고 나이 마흔씩이나 처먹고서 저 지랄(...)
- 아디의 가족들도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는데 자녀들은(아들 니콜라스, 딸 이사도라) 포르투갈어와 한국어가 모두 능숙해 중간에서 통역도 해주고 선수들과 친근하게 지낸다고 한다. 고명진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아디 아들 니콜라스가 혼자서 벨 누르며 수시로 찾아와서 얘기도 하고 밥도 얻어먹고 놀다 가곤 했다고.
- 청춘 FC 가 FC 서울 올드스타와 경기할 때 잠깐 현역 복귀를 했었고 이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본방이 방영될 때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었다.
- 2015년 팀에 합류해 2016년까지 서울의 쾌진격을 이끌고 있는 브라질 출신 공격수 아드리아노가 아디 덕분에 팀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고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밝혀서[6] FC 서울의 팬들에게 역시 아디라며 찬양을 받았다.
- 경기장에서 가장 높은 관람석 주변에서 분석을 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혹시 사진이나 싸인을 바라는 팬은 참고할것.
- ↑ 가족들도 함께 했다. 왼쪽부터 아들 니콜라스, 딸 이사도라, 부인.
- ↑ 서울 팬들은 이장수가 남긴 최고의 작품으로 아디를 꼽는다. 이장수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아디를 중국으로 데려갈 기회가 있었지만 팀을 떠나는 마당에 선수까지 빼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아디를 잔류시켰다고 밝혔다.
- ↑ K리그에서 뛴 외국인 선수가 은퇴 후 바로 코치가 된 케이스로는 발레리 사리체프(신의손)에 이어 2번째다.
- ↑ 흔히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장차 코칭 스태프로서 성공할지 망할지는 현역 시절에 싹수가 대충 보인다.(가장 대표적인 예가 황선홍과 홍명보) 아디는 관계자들 사이에서 코치로서도 유망할 듯 하다고 높게 평가받았다.
- ↑ 맨유의 마케다를 가지고 노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 ↑ 사실 외국인 선수들 입장에서 타지에서 만난 고향 사람들은 정말로 반갑고 의지가 되는 존재일수 밖에 없다. 일단 말이 잘 통한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 하나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일례로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는 홍정호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다른 한국 선수들인 박주호, 구자철, 지동원, 김진수, 손흥민(이후 EPL로 이적) 등과 뭉쳐서 밥도 먹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면서 스트레스도 해소한다고 하니 남의 나라 일은 아닌 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