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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아노 오카야마 No.33 | |
김진규 (金珍圭 / Kim Jin-gyu) | |
출생 | 1985년 2월 16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경상북도 영덕군 |
포지션 | 센터백 |
신체조건 | 184cm, 80kg |
등번호 | FC 서울 - 6번 파타야 유나이티드 - 6 파지아노 오카야마 - 추가바람 |
소속팀 | 전남 드래곤즈(2003~2004) 주빌로 이와타(2005~2006) 전남 드래곤즈(2007) FC 서울(2007~2010) 다롄 스더(2011) 반포레 고후(2011) FC 서울(2012~2015) 무앙통 유나이티드(2016) 파타야 유나이티드(2016~,임대) 파지아노 오카야마(2016~) |
국가대표 | 42경기, 3골 |
1 소개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 소속 축구선수.
2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파이터형 수비수로 터프한 몸싸움과 대인마크가 트레이드 마크이며 겉으로도 드러나는[1] 강력한 다리힘에서 나온 롱패스를 활용한 공격전개 능력이 좋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힘진규, 허벅진규 등이다. 프리킥도 곧잘 차는데 김진규의 프리킥은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딱 세 번 들어간 실로 부정확한 물건으로[2], 삼동현의 골과 함께 지구멸망의 징조로 불렸다. 골키퍼나 수비진이 아닌 골대 뒤 관중들을 두렵게 하는 프리킥으로 유명하다.[3] 그래서 김치우나 몰리나가 주로 찬다. 경험이 쌓이고 수비진 고참이 되고 나서는 라인을 조율하는 커맨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단점은 발이 느려서 발 빠르고 무게중심을 잘 활용하는 선수들에게 취약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 FC 서울은 귀네슈 시절부터 다이렉트 패스를 통한 공격축구를 모토로 삼았고 주전 센터백인 김진규의 괜찮은 롱패스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수비진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김진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아디나 김주영같이 발 빠르고 활동량 많은 동료 수비수와의 호흡이 필수다. 이외 다혈질인 성격탓에 불필요한 카드를 수집하거나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로 눈총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어 타 팀 팬들은 싫어하는 편이다. 그래도 나이 들어 후배 수비수들을 리드해야 할 위치가 되고 나선 다소 나아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전성기에 K리그에선 손꼽혔던 뛰어난 수비수이다. 서울이 2007, 2009, 2012시즌 리그 최소 실점, 2010시즌 최소실점 2위를 기록하는데는 김병지, 김용대, 아디 등 뛰어난 동료들의 공도 컸지만 동료들이 바뀌는 동안에도 쭉 팀의 중앙수비 라인을 책임진 김진규의 공이 컸다.
3 경력
3.1 클럽
2003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데뷔하여, 2004년 AFC U-20 축구 선수권 대표팀 주장으로 선발되는 등 주목받다가 2005년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하여 활약했다.
독일 월드컵 직후 박주영과 함께 이탈리에 세리에 A 토리노와 링크가 뜨기도 했지만 불발로 그쳤고, 2007시즌 J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친정팀 전남 드래곤즈로 복귀했다. 전남에서 반시즌 정도 소화한 다음 곽태휘와 트레이드 되어 FC 서울로 팀을 옮겼고 매 시즌 20경기 이상 꾸준히 출전하며 주전으로 뛰었다.
2011년 FA로 풀리자 이적료 없이 중국의 다롄 스더로 이적해 안정환과 한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때마침 스트라이커 정조국도 프랑스 오세르로 이적했기에 순식간에 주축 선수들을 잃은 서울 팬들은 격하게 분노했다. 그나마 정조국은 더 큰 무대로 간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김진규는 K리그보다 한 수준 아래로 평가 받는 중국 리그로 이적하여 팬들의 분노가 더 심했다. K리그 디펜딩 챔피언 팀의 주전 센터백이 중국 리그로 이적한 것이니 리그 격 운운하며 눈에서 불을 뿝는 팬들 많았고 이 때문에 그가 승부조작 블랙리스트에 올라서 K리그 이적이 불가능하게 되어 중국으로 추방된 것이라는 인신공격성 낭설까지 떠돌았다.
이후 2011년 7월, 반 시즌만에 중국 생활을 청산하고 J리그 반포레 고후로 이적했으나 역시 오래 머물지 못했고 2012년 계약이 만료되자 FC 서울로 돌아왔다. 팬들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아디는 물론 김주영, 김동우 등 팀 내 젊은 선수들과의 조화를 기대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한동안 라이벌인 수원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수원을 맞아 자책골 2번과 함께 잦은 실책성 플레이를 보여주었으며 2012년 첫 라이벌전에서는 결정적인 찬스에서의 헤딩슛이 골문을 크게 빗겨나가며 팀의 0:2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래서 일부 수원 팬들은 김진규를 상대로 "수원의 13번째 선수"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진규는 일본 주빌로 이와타에서 뛰던 당시 수원과의 아시아 챔피온스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반칙으로 PK를 헌납한 적이 있었고 요행이 골키퍼의 선방으로 체면은 살렸으나 얼마후 높은 공에 헛발질을 하며 나드손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베테랑 선수지만 아무래도 수원과의 상성이 안 좋은 듯. 8월 18일 벌어진 2012시즌 3번째 수원전에서도 페널티 박스안에서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내줬고, 후반엔 공중볼 클리어링에 실패하는 결정적인 실책으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며 0대2 완패의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2013시즌 8월 3일에 열린 슈퍼매치에서는 몰리나의 프리킥을 헤딩 결승골로 연결시켜 팀에게 3년만의 슈퍼매치 승리를 안겼다. 자신의 자책골로 시작되었던 슈퍼매치 무승의 기록을 자신의 결승골로 끊어낸 것이다.
그리고 슈퍼매치에서 몇번 안좋은 모습을 보였을 뿐[4] 팀은 시즌 내내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우승했고 김진규와 아디가 버틴 수비진은 최소 파울로 최소 실점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시즌 종료후 마음 편하게 상무에 입대해 13시즌은 2부리그에서 시작할 줄 알았으나 훈련소 입소 후 받은 재검에서 예전에 입은 오른쪽 무릎부상이 재발해 훈련소에서 나와[5] 수술을 마치고 재활에 들어갔고 FC 서울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시즌 초반에는 수술 여파로 폼이 떨어졌고 파트너 김주영도 동반 부진하는 바람에 서울 수비진은 완전히 붕괴, 7경기 연속 무승의 원흉이 되었으나 시즌 중반 폼이 어느정도 회복되면서 다시 준수한 폼을 되찾았다. 십자인대 부상이후 주력이 예전만 못한 김주영 보다는 노련한 아디와 호흡을 맞출때 더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팀의 주포 데얀이 부상 여파와 최용수 감독의 혹사로 12시즌만 못한 가운데 갑자기 공격본능을 폭발, 17라운드 성남전부터 21라운드 수원전까지 5경기 연속 공격포인트(5경기 4골 1도움)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2시즌까지 통산 172경기 9골을 기록하던 선수가 2013시즌 20경기에서 6골을 기록했다. 최종성적은 35경기 6골 1도움. 14시즌에는 기존의 김주영, 새로 영입된 이웅희와 함께 쓰리백을 이뤄 출전했다. 시즌 초반에는 적응에 애를 먹으며 고생했으나 시즌 중반이 되자 쓰리백에 훌룡하게 적응해 공격수들이 부진한 와중에도 좋은 폼을 보여주었다. 시즌 기록은 33경기 출장 2골 2도움.
15시즌에는 무난한 활약을 이어가다 4월 26일 광주전에서 왼쪽 종아리 근육파열 부상을 진단, 전치 10주를 끊었다. 회복하는 동안 빈자리는 신예 박용우와 경찰청에서 복귀한 김동우가 성공적으로 채웠고 이때문에 15시즌 후반에는 주전에서 완전히 밀렸다. 쓰리백의 중앙 수비수는 박용우와 오스마르가 상황에 따라 번갈아가며 담당하고 2개의 스토퍼 자리는 김진규보다 젊고 빠른 김동우와 김남춘, 이웅희가 맡고 있어 들어갈 틈이 없어졌다.
결국 15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날게 확실시 되었다. 일단 동계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은 듯 하며, 해시태그 중 하나가 백수로 써져있는데다가, 2016년 이적해온 주세종이 김진규의 등번호였던 6번을 물려받는 등 여러 상황으로 보아 이적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인 듯. 게다가 정인환의 영입과 김원식의 임대 복귀로 센터백으로서의 입지도 애매했던 상황이었고, 결국 태국 프리미어 리그로 떠나게 되면서 FC 서울과 이별하게 되었다. 이후 무앙통 유나이티드와 계약...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얼마 되지 않아 파타야 유나이티드로 임대되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과거 황진성이 뛰었던 J2리그 파지아노 오카야마로 다시 이적했다. 김진규 본인이 인스타그램에 유니폼을 입고 올린 사진 파지아노 오카야마 공식 홈페이지 뉴스
3.2 국가대표
각급 청소년 대표를 경험하고 성인 대표팀 데뷔는 조 본프레레 감독 부임 초기인 2004년 7월 14일 트리니다드 토바고 전에서 했다. 당시 같은 소속팀이었던 베테랑 김태영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아 2004년 AFC 아시안컵 명단에 발탁되었지만 8강 이란전에서 왼쪽의 이영표와 함께 시종일관 털리는 모습으로 수비불안에 일조하면서 3-4 패배로 탈락한다. 당시 이란 벤치를 향해 법규(!)를 난사하기도...
그 이후 2005년부터 박재홍, 박동혁과 함께 3백의 한 축으로 대표팀에 차출되면서 기회를 부여받았고, 2006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 선임 이후에도 대표팀에 눈도장을 받으면서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주전 센터백으로 출장했다.[6]
핌 베어백 감독 재임 시절에는 부동의 국대 주전 센터백이었으나 2007년 아시안컵 포함한 성인 대표팀 무대, 올림픽 대표, K리그 등 수십 경기에 번갈아 가며 출장하며 굴려지다 부상으로 폼이 떨어져 고생했다. 허정무 감독 부임 이후 곽태휘, 조용형이 부상하면서 2008년 올림픽 대표팀 이후로 한동안 태극마크와는 인연이 없다가 최강희 감독 부임한 12년 8월 5년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4 구설수
거친 플레이와 다혈질적인 성격, 거기에 소속팀까지 K리그 팬덤 내에서 공공의 적 취급인 FC 서울 출신이라는 3박자가 겹쳐지면서 K리그에서 구설수 많고 안티팬 많기로는 1, 2위를 다투는 선수였다. 사실상 FC 서울 팬들을 제외하면 모든 팀에서 다 싫어하는 선수로 봐도 무방하다. 풋볼케이닷넷이 선정한 K리그 워스트 11 멤버에도 들어갔다. 이게 뭐 대단한 거라고 링크까지
2015년 시즌, 득점도 기록하는 등 무난한 활약을 보여주다가 4월 18일 슈퍼매치와 4월 26일 광주전 두 경기 연속 논란을 일으켰다. 슈퍼매치에서는 큰 점수차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염기훈 선수의 왼쪽 무릎으로 향하는 살인적인 태클을 시도하였고 이에 서정원 수원 감독이 흥분하여 레드 카드를 안 준 심판에게 강하게 항의하였다. 보러가기 보면 알겠지만 당연히 퇴장이 나와야 했고 추가적인 징계까지 감수해야 할 심각한 태클이다. 그럼에도 주심은 단순 경고로 넘어갔고, 사후 분석을 통한 사후 징계도 내려지지 않았다.
광주전에서는 후반 교체투입 후 후반 5분여 만에 근육 이상을 호소하며 쓰러졌는데 이를 광주 서포터스 측에서 돌을 던진 것으로 오해, 관중석으로 쌍욕을 시전하였고 한참 후배인 이웅희가 다가와 입을 급하게 막았다.보러가기 하필 이때 광주의 원래 홈경기장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시설보수 관계로 목포축구센터에서 경기가 치러졌는데 종합경기장인 광주월드컵경기장과 달리 목포축구센터는 피치와 관중석이 밀착된 전용구장이기 때문에 김진규의 욕설은 관중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가 당한 부상과 똑같은 것을 경험한 선수들의 증언에 의하면 마치 돌 같은 걸로 맞은 듯한 충격이 있다는 걸로 보아서 오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관중석에 쌍욕을 날린 건 도저히 쉴드가 불가능한 상황[7]. 그 이후의 대처가 논란을 더욱 가중시켰는데 28일까지 SNS질이나 하며 놀면서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다가 29일이 되어서야 사과문을 게재하였는데 안 그래도 늦은 대처에 시선이 곱지 않은데 내용이 문제였다.
대충 "난 크게 잘못한 거 없고 너네가 유발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사과하라니까 사과한다."라는 식의, 사과문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글이다. 선수가 팬들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상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연맹 측에서는 증거로 삼을 만한 녹취록이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핑계를 대며 선수에게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이래서 한웅수는 언제나처럼 개까임을 먹었다
이 사건 이후 한교원, 이범영이 논란이 일어날 짓을 하게 되자 구단에서 자체 징계를 내려 자필 사과문도 쓰게 했는데, 그들의 사과문은 김진규에 비해 훨씬 진심어린 사과라는 점에서 논란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네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십니다 그 와중에 하필 해당 경기에서 왼쪽 종아리 근육파열 부상을 진단, 전치 10주를 끊었다. 회복하는 동안 빈자리는 신예 박용우와 안산 경찰청에서 복귀한 김동우가 채웠다. 이에 따라 15시즌 후반에는 주전에서 완전히 밀린 모양새. 쓰리백의 중앙 수비수는 박용우와 오스마르가 상황에 따라 번갈아가며 담당하고 2개의 스토퍼 자리는 김진규보다 젊고 빠른 김동우와 김남춘, 이웅희가 맡고 있어 들어갈 틈이 없다. 실력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젊은 선수들에게 밀려버린 셈. FC 서울 갤러리같은 곳에선 15시즌 최용수의 가장 큰 업적으로 김진규 퇴출을 거론할 정도였다.
2016년 4월 27일, 아이러브사커 국내토크방에는 광주의 이종민이 문제의 영상을 공유한 포스팅에, 김진규가 "아주 동생 이미지 한번에 보낼려고 대단한 광주주장이구먼 ㅋㅋ"이라는 댓글을 단 페이스북 캡쳐가 올라와 다시금 빈축을 사고 있다. 현재 해당 페이스북 게시물 원본은 삭제된 것으로 보이며, 이종민이 어떤 의도로 해당 영상을 공유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8]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김진규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 다리힘이 중요한 축구선수들 중에서도 키에 비해 허벅지가 두꺼운 걸로 유명하다. 맞는 바지가 없어서 36인치를 억지로 입는다고.
- ↑ 그나마 한번도 2013 아챔에서 베갈타 센다이의 골키퍼가 알을 까서 들어간 골이다.
- ↑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보러가기 - ↑ 사실 안 좋았다고 하기도 뭐한게 실수가 좀 있어서 그렇지 전체적으론 꾸준했다. 특히 라돈치치-스테보라는 장신 트윈 타워를 저지하는데는 김진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 ↑ 이 뜻밖의 면제로 혜택을 입은 선수가 경남의 이용기. 밀렸다가 김진규가 빠지면서 남은 자리에 들어갔다.
- ↑ 첫경기 토고전에선 김진규-김영철-최진철의 쓰리백이었고 윙백인 이영표와 송종국도 수비적인 플레이로 일관해 전반전 내내 공격이 안 풀렸다.
- ↑ 프리미어리그의 리오 퍼디난드의 경우 관중이 던진 동전을 맞고 피부가 찢어지는 상처가 났지만 관중석에 욕은 하지 않았다.
- ↑ 이 둘이 서울에서 한솥밥 먹은 세월이 꽤 된다는걸 감안하면 별 생각없이 올렸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