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정길 |
생년월일 | 1973년 3월 19일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학력 | 배재고-연세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LG 트윈스 1차 지명 |
소속팀 | LG 트윈스(1996~2000) |
1 소개
전 LG 트윈스 소속 투수이자, 골수 올드 LG팬 감별사 2급 문제 정도에 해당하는 LG 트윈스 신인지명 흑역사의 상징
사실상 먹튀라는 용어를 최초로 탄생시킨 인물.
2 고교시절
좋은 체격에 150km/h에 가까운 빠른 공을 던졌던 우완 정통파로, 배재고 3학년 때 봉황대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고 연세대학교 4학년 때 한미친선야구대회 MVP를 수상했다.
3 프로 입단
3.1 4억의 계약금, 그리고...
그리고 1996년, LG 트윈스는 그를 1차 지명하며 당시 역대 최고액인 4억 원(계약금 3억 8천만 원+연봉 2천만원)을 쥐어주는 모험을 하는데, 물론 이정길이 나쁜 투수는 아니었지만 연세대학교 내에서도 1년 선배 문동환, 동기생 임선동의 그늘에 가려진 2인자에 지나지 않았고 연세대학교 시절 보여준 성적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계약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이정길이 이토록 상상 이상의 많은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일단 당시 거대 실업야구 팀 현대 피닉스가 국가대표급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거 쓸어담는 바람에 아마추어 신인들의 몸값 거품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던 데다가, LG가 이미 휘문고 시절에 1차 지명해 두었던 임선동이 일본프로야구(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진출을 선언하며 LG 입단이 불투명해지자 결국 LG는 꿩 대신 닭이라고, 임선동을 잡기 위해 모아둔 돈을 이정길에게 쏟아부은 것이다.
- 또한 당시 OB 베어스가 고교최대어로 꼽히던 박명환을 거액으로 입단시키자,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정길에 많은 돈을 주고 지명하는 라이벌의식을 보였다는 점도 있다.
그래도 역대 최고 계약금을 받고 들어온 투수에게 LG 팬들은 제법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입단하자마자 어깨 부상으로 오키나와 전지훈련지에서 돌연 귀국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무려 3년의 세월을 재활군과 2군에서 보낸 것이다. 언론과 팬들의 반응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임의탈퇴 처리되기까지 했다.
3.2 1군 등판, 그리고 은퇴
1999년에 드디어 입단 후 처음으로 1군에 올라와 한화 이글스전에서 감격의 첫 승을 거두는데, 이때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떠올랐는지 인터뷰 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후 또다시 부상이 도졌고 그는 결국 쓸쓸히 유니폼을 벗게 된다. 1999년에 기록한 5경기 10⅔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12.66이 이정길이 프로에서 남긴 성적의 전부였다.
어쨌든 이정길은 이후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먹튀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LG 트윈스에 있어서도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된 선수. 분명 큰 기대를 걸만한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큰 금액을 지불한 건 LG 트윈스 구단의 무리한 투자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는 건 먹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참담한 성적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