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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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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먹튀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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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를 거쳐 NC 다이노스로 복귀
NC 다이노스 No.89 | |
박명환 (朴明桓 / myong-hwan Park) | |
생년월일 | 1977년 6월 7일 |
출신지 | 서울특별시 중구 |
학력 | 서울청구초-충암중-충암고[1]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고졸우선지명 |
소속팀 | OB-두산 베어스 (1996~2006) LG 트윈스 (2007~2012) NC 다이노스 (2014~2015) |
지도자 경력 | NC 다이노스 2군 보조투수코치 (2016~ ) |
199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 |||||
김상태 (덕수상업고등학교) | → | 박명환(충암고등학교) | → | 정대현(군산상업고등학교)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 |||||
셰인 바워스(현대 유니콘스) | → | 박명환(두산 베어스) | → | 손민한(롯데 자이언츠) |
2004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 |||||
이승호(LG 트윈스) | → | 박명환(두산 베어스) | → | 다니엘 리오스(두산 베어스) 배영수(삼성 라이온즈) |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 ||||
홍우태(1994~1997) | ➡ | 박명환 (1998~2006) | ➡ | 다니엘 리오스 (2007) |
LG 트윈스 등번호 27번 | ||||
장준관 (2004~2006) | ➡ | 박명환 (2007~2012) | ➡ | 김기표 (2013~2014) |
NC 다이노스 등번호 41번 | ||||
➡ | 박명환(2014) | ➡ | 김성계(2015~ ) |
목차
1 개요
前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NC 다이노스의 투수이자 현재는 고양 다이노스 보조 투수코치. 그리고 금지약물 복용자이자 LG 먹튀 산맥의 한 축(홍현우, 진필중, 마해영, 박명환)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2 선수 경력
2.1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절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OB 베어스의 고졸우선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2] OB-두산 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완 파워 피처 중 한 명이었다. 140km/h 중후반대를 기록하는 묵직한 강속구와 슬라이더 조합이 위력적이었으며, 데뷔 시즌이었던 1996년 시즌에 10승은 실패했으나 피안타율 .221, 185.1이닝 139삼진 평균자책점 3.84라는 인상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그 뒤에도 부상으로 공친 1999년~2000년 시즌, 그리고 2003년 시즌을 제외하고 나름대로 안정적인 성적을 기록한 투수였다.
그렇긴 한데, 2000년에 아예 공친 건 아니고, 한국시리즈에 등판하기도 했었다. 6차전을 마무리한게 그였으니...
2001년에는 팀 내 선발진에서 최다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2001년 두산의 선발진이 작살나서 박명환의 승수는 단 8승이었고, 정작 마무리 진필중이 9승으로 팀 내 최다승을 거두었었다.
이 시절부터 부상이 잦은 게 문제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00이닝을 넘겨 본 적이 없으며, 특히 두산에서 보낸 마지막 두 시즌 역시 피안타율 2할대 초반, 이닝당 1개 이상의 탈삼진율 등 비율 성적은 매우 좋았지만, 부상으로 두 시즌 합쳐 234.2이닝 투구에 그쳤다.[3]
2005년에는 갑상선 항진증으로 인해 양배추를 넣고 투구하다가 규정 위반으로 걸린 사건으로 인해 "박배추"라는 별명이 생겼다. 양배추잎을 모자에 넣으면 시원해지지만 이 일 이후 KBO는 양배추잎을 '이물질'로 규정, 위반으로 판명하고 그 이후에 양배추잎을 모자에 넣는 행위를 금지하게 된다. 이 해프닝은 당시 MLB에서도 나름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었다.[4][5]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두산의 선발진을 쭉 지키며 매년 10승 정도는 거둬서 제 몫을 했다.
2.2 LG 트윈스 시절
첫 해를 제외하고 해마다 겨울을 뜨겁게 달군 투수.[6]
2.2.1 2007년 ~ 2010년
어쨌건 당시 FA 선수 수집에 돈을 아끼지 않던 LG 트윈스가 4년 40억 원이라는 거액에 그를 낚아챘다.[7][8] LG에서의 첫 시즌인 2007년에는 10승 6패 평균자책점 3.19, 155.1이닝 동안 117삼진이라는 나름대로 괜찮은 기록(물론 연봉 10억짜리 선수에게 기대할 만한 기록은 아니다.)을 내며 전년도 꼴찌[9]였던 LG를 5위로 끌어올리는 데 일익을 담당했으나….
그 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부상에 시달렸다. 3년 동안 던진 투구 이닝이 115이닝, 올린 승수가 단 4승이며, 이마저도 2010년 한 해 올린 승수이다.
2010년 시즌엔 76이닝을 던지면서 94안타를 처맞고 삼진 개수가 46개에 불과하다. 이미 전성기의 구위는 잃어버린 지 오래인 듯. 그나마 인상적인 경기는 6월 10일, 6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시전한 경기였다.환러데이 물론 야갤러들이 설레발 치자마자 박살났지만...
LG에서 4년 동안 40억을 받으면서 던진 투구 이닝이 270⅓이닝, 쌓은 승패가 14승 16패, 전매특허였던 탈삼진 역시 185개에 불과하다. 참고로 류현진이 2010년 1년간 기록한 삼진 개수가 187개, 본인 최다 기록이 181개였다…. 1승=3억
2.2.2 2011년
결국 2011 시즌을 앞두고 연봉이 5억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무려 90%가 삭감되는 위업을 달성했다.[10]이 삭감률은 한국프로야구 출범 이래 최대 삭감액이라고 한다. 흠좀무. 사실 연봉만을 따졌을 때 90%일 뿐이지, 실제 계약 액수를 감안해 본다면 1/20토막(95% 삭감)이 된 것. 흠좀무 하지만 LG 팬들은 연승을 끊는 남자와 더불어 왜 5,000만원씩이나 주냐고 분노했었다.
거기에 새로 취임한 백순길 LG 트윈스 단장에게 언론을 통해 직접적으로 디스까지 당했다. 그러게 진작에 잘했으면 이런 일을 당하나
들려 오는 소식으로는 대학 팀하고 연습경기에 등판했지만 신나게 두들겨 맞고 떡실신했다고 한다. 구위를 회복한다고 해도 LG 트윈스의 마운드 상황이 창단 이래 가장 널널한 편이었기 때문에 박명환이 껴들수 있을 여지도 없던 데다가, 구속 & 변화구 모두 무뎌진 상황이라 이대로 간다면 은퇴할 가능성이 짙다고 평가되었다.
2.2.3 2012년
LG에서는 그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았고, 연봉도 동결했다. 이로써 그에게 2012년 한 해 더 기회가 주어졌다. 라고 쓰고 선수협 총알받이라고 읽는다[11] 그리고 기회만 주어졌고 여전히 소식은 없다.
7월 10일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선수들에게 배트·글러브 교환권을 제공했다고 한다.그나마 훈훈하다
결국 노쇠화로 부활에 실패하며 구단에서는 2012년 시즌 종료를 앞두고 경헌호, 김유선, 심광호, 이대환, 손인호와 함께 박명환을 방출하기로 했다.
2012년 11월 8일 기사에 의하면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선수 자신은 LG 트윈스에서 재기를 노리고 싶다고 밝혔다. 무슨 배짱으로?
2013년 1월 10일 기사에 따르면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해외 진출을 도전할 것이라고... 뭐, 어찌 됐든 도전한다고 하니 잘 해보시길... 이후 최원호가 운영하는 피칭 센터에서 꾸준히 준비했다.[12]
2.3 NC 다이노스 시절
공개 테스트를 자청하여 입단 테스트를 받은 후 2013년 10월 5일 연봉 5,000만원의 조건으로 NC 다이노스에 입단했다. 로케이션으로 승부해 왔던 손민한과는 달리 직구 & 슬라이더 일변도의 구종으로 승부했던 박명환이었던지라 부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는 팬이 많았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라는 팬들도 많다.
2.3.1 2014년
2014년 2월 22일 대만의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와 맞붙은 연습경기에서 첫 실전 등판, 1이닝 3실점으로 부진했다.
3월 11일 LG와의 시범경기에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활약하였다. 이 경기를 계기로 계투조로 낙점받았다.#
이후 최고 구속 144km/h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손민한에 이어 부활해 준다면 젊은 선수들 위주인 NC에 큰 플러스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그저 그런 성적을 보이며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6월 1일 1군에 등록되었다.# 원래는 올스타전 전후에 등록 예정이었지만, 김경문 감독이 일정을 앞당겼다.
6월 4일 넥센 히어로즈전 9회초에 등판, 1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오랜만에 등판에 긴장했는지 몸이 덜 풀렸는지 몰라도 볼넷만 3개를 내줘 위기를 자초했지만, 1루수 플라이 아웃과 삼진 2개로 이닝을 마무리했다.[13] 이날 1,425일만에 올라온 1군 무대에서 박헌도를 삼진 아웃으로 잡으면서 역대 5번째 1400K 기록을 세웠다. 경기후 인터뷰
6월 13일 태드 웨버가 부상으로 한 이닝도 던지지 못하고 강판된 경기에서 9회말에 등판했지만, 1사 상황에서 민병헌에게 볼넷을 준 이후 폭투와 오재원 타석에서 삼진을 잡을때 슬라이더가 빠지며 끝내기 폭투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후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김경문 감독의 말에 의하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같다며 말소 이유를 밝혔다. 얼마 던지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슬라이더는 건재했으니, 다시 올라오면 괜찮은 모습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된다.
7월 22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 10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등판하였으나, 2연속 볼넷으로 결국 결승점을 헌납하였다.
김경문 감독이 남은 시즌은 선발로 기용한다고했다.
10월 17일 시즌 마지막 경기 두산 베어스전 연장 10회말 1:1 상황에 등판하였다. 선두 타자 김응민에게 몸에 맞는 볼을 허용하며 흔들리나 싶었지만 이후 11회말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지명타자 소멸로 12회초 타석에 올라와서 3구 삼진을 당하였다. 12회말 1사 1루에서 정수빈의 타구가 애매하게 빠져나가고 NC 내야수들의 개그수비로 1,3루가 되었고 결국 김진형에게 적시타를 맞아 패전 투수가 되었다. 비록 지기는 했지만 투구 내용은 나쁘지 않았던 편.
준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되었으며, 다음 시즌 선발로 활약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고한다. 나이가 많은데다가 2014년 성적이 좋다고만은 볼 수 없는지라 다음 시즌엔 어떨지 미지수.
2.3.2 2015년
올해도 2군에서 시작하며 어김없이 부활기사가 나오고 있다.
연습경기의 투구 내용도 나쁘진 않은 편이기에 이번 시즌에 손민한처럼 재기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팬들은 딱히 기대는 없지만 손민한처럼 부활하면 좋겠다는 미적지근한 반응만 보였다. 그 와중에 2군에서도 탈탈 털리는 이승호가 까인 건 덤이다.
하지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고, 시즌 개막 직후 2군에서 열심히 얻어맞았다(...)
그러다가 언제 1군에 등록되었는지 5월 6일 KIA전 선발로 예고되었다. 상대도 하필이면 양현종이라 팬들도 로또 긁는 심정으로 경기를 지켜봤으나 의외로 5이닝 2실점으로 나쁘지 않은 피칭을 보여 줬다. 그러나 팀의 깝깝한 타격으로 패전 투수가 될 뻔했다가 팀이 8회 3득점, 9회 끝내기 안타로 팀이 승리하면서 패전은 면했다.
5월 1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 2피안타 무사사구 4삼진으로 호투하여 1,789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뒤로 1군에서 사라졌다. 2군 성적을 보면 은퇴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10월 28일 있었던 프야매 카드깡 이벤트 방송에서 정수근의 언급에 따르면 투수코치로 새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2군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고 하며, 2015년 11월 9일 NC 다이노스에서 공식 은퇴를 발표했다. 보직은 2군 투수 보조코치라고 하며, PO 종료 이후 지도자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가 남긴 통산 성적은 103승 93패 8세이브 9홀드.
먹튀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이 선수도 통산 100승 투수이며 OB-두산 베어스의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임은 사실이다.
사실 잔부상만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승수를 올렸을 지 모른다. 그의 마지막 전성기인 2007년에는 130승까지 노려 본다는 분석도 있었으니...
2000년대에 그와 함께 우완 3대 트로이카라고 불리던 손민한이나 배영수가 FA 먹튀가 되긴 했어도 110승을 돌파하면서 현역으로 뛴다는 점에서도 이래저래 아쉬울 따름이다.하지만 손민한마저 은퇴하고...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압도적인 스터프와 슬라이더만으로 리그를 씹어먹었던 완성형 투피치 투수. 150km/h에 육박하는 빠른 공으로 승부를 하다 큰 폭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14]에 대부분의 타자들은 알면서도 헛스윙 삼진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먹튀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통산 100승 투수에 통산 탈삼진 5위에 랭크되어 있다 그의 위에 있는 4명은 송진우,이강철,선동렬,정민철 뿐이다...10걸안에 현역투수론 배영수와 임창용이 있긴 하지만 박명환을 넘진 못할것으로 보인다모자 안에 배추를 넣는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정점을 찍었던 2004년 이후, 스터프가 점점 하락하였고 2008년 부상과 수술 이후에는 구속, 구위 모두 수준 이하의 투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2010년 시즌엔 아직 쓸 만한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맞춰 잡는 피칭 스타일로 변신을 시도하였고 2010년 6월 10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6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하는 등의 호조를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슬라이더 하나에 의존하는 투구 패턴의 약점을 드러나고 이후 난타당하며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고 그나마도 부상으로 시즌을 접고 말았다.
양상문이 굉장히 좋아하는 투수로, 투수코치를 맡은 팀마다 직구가 빠른 투수들에게 반드시 슬라이더를 장착시킨 박명환 스타일의 투수를 만들어 냈으나[15] 좋은 결과를 내진 못하였다.
5 기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두고 국제야구연맹이 주관해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 약물 중 하나인 노르안드로스텐디아올이 검출되었다.[16] 이미 두산 베어스 시절에 어깨 통증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이게 결국 그의 발목을 잡고 만다. 그래서 박명환은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 2년 간 국제 경기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고 이후 LG로 이적한 후 반짝하다 FA로이드라고 불리는 양대 로이드 위업(...)을 달성했다.
참고로 같은 팀의 이혜천과 더불어 OB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중 최후의 2인이었다. OB 출신 타자는 진갑용이 은퇴하면서 전멸했다. 홍성흔은??? 이재우도....?[17]
그리고 박명환이 은퇴한 후 이혜천도 은퇴하게 되면서 OB 출신 선수들은 이제 역사로 사라지게 되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1996 | OB 베어스 | 28 | 185⅓ | 7 | 12 | 0 | - | 0.368 | 3.84 | 149 | 18 | 87 | 139 | 86 | 79 | 1.225 |
1997 | 26 | 154⅔ | 8 | 12 | 0 | - | 0.400 | 3.96 | 138 | 8 | 82 | 126 | 74 | 68 | 1.377 | |
1998 | 31 | 187 (2위) | 14 (5위) | 11 | 0 | - | 0.560 | 3.22 | 159 | 8 | 120 | 181 (2위) | 75 | 67 | 1.449 | |
1999 | 두산 베어스 | 7 | 16⅓ | 1 | 1 | 1 | - | 0.500 | 4.96 | 13 | 0 | 13 | 20 | 9 | 9 | 1.531 |
2000 | 6 | 11⅔ | 1 | 0 | 0 | 1 | 1.000 | 3.09 | 6 | 3 | 7 | 19 | 4 | 4 | 1.114 | |
2001 | 38 | 77⅔ | 8 | 5 | 7 | 3 | 0.615 | 4.29 | 76 | 6 | 34 | 77 | 41 | 37 | 1.378 | |
2002 | 30 | 185⅔ | 14 (5위) | 10 | 0 | 0 | 0.583 | 3.44 | 173 | 12 | 75 | 169 (2위) | 78 | 71 | 1.298 | |
2003 | 19 | 100⅔ | 5 | 10 | 0 | 0 | 0.333 | 5.19 | 113 | 13 | 49 | 76 | 65 | 58 | 1.579 | |
2004 | 26 | 158⅔ | 12 | 3 | 0 | 0 | 0.800 (2위) | 2.50 (1위) | 130 | 4 | 59 | 162 (1위) | 50 | 44 | 1.147 | |
2005 | 20 | 112⅓ | 11 | 3 | 0 | 0 | 0.786 (2위) | 2.96 | 81 | 4 | 64 | 113 | 40 | 37 | 1.237 | |
2006 | 28 | 122⅓ | 7 | 7 | 1 | 4 | 0.500 | 3.46 | 90 | 6 | 50 | 132 | 52 | 47 | 1.128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7 | LG 트윈스 | 27 | 155⅓ | 10 | 6 | 0 | 0 | 0.625 | 3.19 | 133 | 11 | 76 | 117 | 59 | 55 | 1.320 |
2008 | 5 | 23 | 0 | 3 | 0 | 0 | 0.000 | 8.61 | 32 | 1 | 21 | 16 | 22 | 22 | 2.217 | |
2009 | 4 | 16 | 0 | 1 | 0 | 0 | 0.000 | 6.19 | 14 | 2 | 9 | 6 | 12 | 11 | 1.438 | |
2010 | 15 | 76 | 4 | 6 | 0 | 0 | 0.400 | 6.63 | 94 | 17 | 34 | 46 | 62 | 56 | 1.645 | |
2011 | 1군 기록 없음 | |||||||||||||||
2012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4 | NC 다이노스 | 5 | 5 | 0 | 2 | 0 | 0 | 0.000 | 7.20 | 7 | 1 | 9 | 7 | 5 | 4 | 3.000 |
2015 | 11 | 26 | 1 | 1 | 0 | 0 | 0.500 | 4.85 | 36 | 6 | 5 | 15 | 14 | 14 | 1.58 | |
KBO 통산(20시즌) | 326 | 1613⅔ | 103 | 93 | 9 | 8 | 0.526 | 3.89 | 1408 | 114 | 799 | 1444 | 734 | 669 | 1.344 |
완투, 완봉기록 | ||
년도 | 완투 | 완봉 |
1996년 | 5완투 | 3완봉 |
1997년 | 2완투 | 0완봉 |
1998년 | 5완투 | 1완봉 |
1999년 | 0완투 | 0완봉 |
2000년 | 0완투 | 0완봉 |
2001년 | 0완투 | 0완봉 |
2002년 | 0완투 | 0완봉 |
2003년 | 0완투 | 0완봉 |
2004년 | 0완투 | 0완봉 |
2005년 | 0완투 | 0완봉 |
2006년 | 1완투 | 0완봉 |
2007년 | 0완투 | 0완봉 |
2008년 | 0완투 | 0완봉 |
2009년 | 0완투 | 0완봉 |
2010년 | 0완투 | 0완봉 |
2014년 | 0완투 | 0완봉 |
2015년 | 0완투 | 0완봉 |
통산 | 13완투 | 4완봉 |
- ↑ 당시 고교 동기가 장성호다.
- ↑ 그 당시 같이 고졸우선 지명을 받았던 선수 중 한 명이 휘문고등학교의 김선우다.
- ↑ 구위로 먹고 사는 투 피치 파워 피처에게 유리몸은 최대의 약점이었으니, 결국 내구성 부족으로 FA 먹튀의 조짐이 보였다.
- ↑ 모자 속에 양배추를 넣은 것은 베이브 루스가 원조다.
- ↑ 이는 스펀지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었으며, 또한 일본에서도 모자 안에 양배추잎을 넣으면 시원해진다는 생활 속 지혜의 대표적인 예로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흠좀무 여담으로 당시 스펀지에서 양배추 실험 대상자중 한명이 민병헌...해당 항목 참조. 그리고 개그 콘서트에서도 패러디가 되기도 했을 정도로 임팩트가 컸던 사건이다.
- ↑ 엘지의 중후반 암흑기를 함께한 투수답게 매년 겨울 '박명환의 구속이 늘고 있다', '슬라이더를 던지고 있다'(!?), '불펜 피칭을 시작했다' 등의 설레발기사를 양산하는 투수였다. LG 팬들은 박명환의 기사를 보면서 드디어 겨울이 시작되었다고 느낀다고 한다.
- ↑ LG에서는 FA를 질렀으나, 줄곧 실패했었다.
- ↑ 홍현우를 18억으로 영입했으나 부상과 부진으로 퇴물로 전락, 진필중을 20억으로 영입했으나, 킬인식의 혹사로 망가진 그는 결국 진필패로 전락해서 2007년 방출, 마해영은 사실 계약은 기아에서 28억에 했으나, 트레이드로 인해 LG가 연봉을 대신 내줘야했었다. 그렇게해서 LG가 쓴 돈이 8억남짓. LG의 FA 잔혹사는 2009년에 끝난다.
- ↑ 뿐만 아니라, 6668 암흑기였다.
- ↑ 참고로 이 신연봉제의 여파로 인해서 심수창은
1수창3000만원으로, 경헌호는 3300만원으로 삭감되었다. 그리고 작은 이병규와 오지환이 억대연봉을 받게되었다. - ↑ 이 시기 박재홍 회장이 선수협 사무총장으로 박충식을 선임하려고 하던 걸, 두산의 이혜천, KIA의 김상현, 삼성의 현재윤과 같이 반대해서 욕을 먹었다.
- ↑ 2012 시즌을 끝으로 최원호는 코치일을 그만두고 피칭 연구소를 개업했다.
- ↑ 볼넷이 많아지면서 투구수가 32개로 1이닝을 던진것 치고는 많은 편이었다.
- ↑ 국내야구 게임에서는 이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대부분 스플리터, 혹은 포크볼로 대체하여 구질을 설정하고 있다.
- ↑ LG 이범준, 정찬헌, 롯데 진명호(진원재로 개명).
- ↑ 프로 선수들 간에 금지약물 복용 소문이 흉흉하게 퍼지게 되었다.
- ↑ 이 둘은 OB에 지명된 마지막 선수들이고 실제 선수생활은 두산에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