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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田理代子 1947.12.18~
일본의 만화가, 성악가. 순정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오르페우스의 창으로 일본과 한국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까지 쓸어버린 사람. 순정만화광들의 세계사 점수 상승에도 일조한 사람.
귀족이 있는 유럽의 시대을 배경으로 삼아 격정적인 로맨스를 담아내는 것은 당대 일본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방식 중 하나였고, 이케다 리요코 역시 일단은 이 노선을 따라갔다. 하지만 이케다 리요코는 더욱 적극적으로 역사의 격동 속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밀어넣고 실제 역사속의 인물들을 담아내면서 여타 작가들과 차별되는 면모를 드러냈고, 이를 통해 캐릭터들의 비극적인 로맨스 역시 실제 역사적 사건들과 결부시키면서,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역사의 수레바퀴가 만드는 비극으로 승화시켰다.
이케다 리요코가 보여준 역사성과 순정만화적 요소의 적극적 결합은 이후 80년대에 등장하는 한국 순정만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원래는 학자가 꿈이어서 도쿄교육대학(지금의 츠쿠바대학)의 문학부 철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자주제에(......) 학문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보수적인 부친은 학비를 1년만 주었고, 결국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 만화였다.
평소 마리 앙투아네트 생애에 흥미를 갖고 있던 이케다 리요코는 이를 작품화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일부 편집자에게 "그런 건 여자아이들에게 먹히지 않아!!"란 소리를 들었지만 "인기 없으면 바로 끝낸다"는 조건으로 연재를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는 "반드시 히트해 보이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녀의 다짐대로 베르사이유의 장미는 1972년 첫연재 후 약 2년간의 연재기간 동안 빅히트를 했으며, 순정만화계의 전설적인 작품으로 등극한다. 이케다 리요코의 작품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주인공인 오스칼, 앙드레, 마리 앙트와네트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음료, 의류, 자동차, 빠칭코의 광고 모델로 등장하며, 작품을 모티브로 한 화장품까지 상품화가 될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놀라운 점은 베르사이유의 장미 연재를 시작하면서 제대로 된 그림 공부를 해봤다는 것. 보통 그림 공부를 하고 데뷔하는 것에 비해, 이케다 리요코는 순서가 거꾸로였던 셈이다. 본인의 그림 실력에 부족함을 느껴 석고 데생부터 유화까지 차례대로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보면 초기에는 약간 동글동글하던 그림체가 중반부터 조각상처럼 상당히 섬세하고 유려해진다.
아쉽다면 베르사이유의 장미와 오르페우스의 창 이후로는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을 만들지 못한 점. 게다가 특유의 매력적인 그림체도 완전히 변해버려서, 전성기 시절 작품의 팬들은 안타까워 한다. 역변 수준을 넘어 아예 다른 사람이 그린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2014년 일본의 결혼정보 잡지 「젝시」 12월호에 실린 베르사이유의 장미 앙드레와 오스칼의 결혼식 일러스트.
나이가 들어가면서 갱년기 장애 속에 삶의 목표를 잃고 고민하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성악에 입문, 음대를 졸업하고 성악가로도 활동한다. 현재는 성악가로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으며 개인 공식홈에도 꾸준히 성악활동에 관한 글을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잠시 절필하기도 했으나 1999년 니벨룽겐의 반지를 만화화하면서 다시 복귀해, 지금도 성악활동과 겸하며 꾸준히 그리고 있다.
레종 도뇌르 훈장 중에선 최하급이라지만, 베르사이유의 장미로 프랑스에 대해 널리 알렸다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장을 수여받았다.
2007년에는 태왕사신기 만화판을 그리기도 했다.
젊었을 적에 고위 관료와 불륜을 저지른 일이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