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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1297609867 loptimist .jpg
Radio에서 흘러나오는 수 많은 노래. 그들은 말해 "꿈을 이루세요." "희망을 가지세요." 그런 가사에 감동한 나이는 지난지 오래, 그 말은 단지 "돈이 최고예요, 없으면 평생 고생해요."- 85 Paradise 中
무시했잖아, "혁기는 밥은 먹고 사니?" 걱정마쇼, 엄마 손에 쥐어진 만원짜리- 걱정마쇼 中
a.k.a. 21세기 최고의 소통형 래퍼[1]
1 개요
1985년생, 본명은 이혁기. 힙합 프로듀서이자 MC[2]지만 프로듀서의 비중이 더 크다. 나이에 비해 크게 인정받는 수준급의 프로듀싱, 유명 아티스트 및 해외 아티스트와의 활발한 교류로 주목받는 인물이다.[3] 랍티미스트라는 이름은 긍정주의자라는 뜻의 Optimist 앞에 성씨에서 따온 L을 붙여서 만들어 졌다. Loop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loop + optimist).
아마추어 힙합 뮤지션들이 활발히 활동했던 밀림닷컴에서 라임어택, 딥플로우, 마일드 비츠, 425 등과 함께 Infected Beats Crew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실질적인 데뷔도 Infected Beats Crew 뮤지션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었던 라임어택의 온라인 EP 'Story at night'에 'Queit Night'이라는 곡의 프로듀싱을 통해서 였다.
이후 빅딜 레코드의 멤버로 빅딜 레코드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린 데드피의 1집 Undisputed에 참여, 로우파이한 비트를 선보인 결과 이 앨범은 클래식의 정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5년 같은 빅딜 레코드 소속 래처 어드스피치의 1집에도 참여하였으나 그 이후 빅딜 레코드에서 탈퇴하고 가리온의 싱글에 '불멸을 말하며'라는 곡을 제공했는데[4] 이것을 계기로 당시 가리온의 소속사였던 타일 뮤직과 계약을 맺게 된다. K-Otix (Legendary K.O)나 Army Of The Pharaohs, Big John 등 해외 유명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기도 했다.
1집 시절까지는 한국 고전 가요에서 샘플을 따서 샘플링 하는 경향이 강했다. 부모님이 과거 트로트 가수 팬클럽이라 집에 LP 판이 많았기에 이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5] [6]
2007년에는 1집인 22 Channels을 발매하였다. 데드피, 나찰, 배치기, 사이먼 도미닉 등 국내 MC들과 더불어, K-Otix, Unknown Prophets, Braille 등 해외 언더 MC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하였다.
앨범의 구성이나 몇몇 트랙에서 밸런스를 깨버리는 강렬한 스네어로 인해 조금은 아쉽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역시 모두의 기대에 걸맞는 명반으로 극찬을 받았다.
2008년에는 2집인 Mind-Expander가 발매되었다. 소울컴퍼니로 이적한 뒤의 앨범인지라 이전의 하드코어 힙합 위주의 프로듀싱에서 벗어나 감성적인 경향이 강한 비트를 프로듀싱하였다. 작법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는데 주로 고전 가요 LP를 샘플링하던 작법에서 벗어나 2집에서부터는 실제 세션 연주를 녹음하여 샘플을 따오는 작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작법은 바뀌었을지언정 그 쾅쾅 때려대는 스네어는 소신있게 계속 고수했던지라 꽤 호불호가 갈리는 편.
일본에서 '2집스타일로 일본에 앨범을 낼 생각 없느냐?'라는 식의 연락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측에서 자신이 하드코어 프로듀서인줄 몰랏다고한다. 현재 정말로 발매 할지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본의 DJ인 BRON-K에게 2집 수록곡인 '갈증'의 비트를 제공한 바 있다.
2009년, 아웃사이더(가수)의 2집 수록곡 Speed Racer의 작곡을 담당한다.
그리곤... 드렁큰 타이거의 8집에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오오 랍티 오오.
랍티미스트에 의하면 이 때 이 앨범이 없었더라면 본인은 프로듀싱을 포기했을 거라고 한다. 당시 부모님이 음악 활동에 반대하고 있었는데, 드렁큰 타이거 앨범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좀 유명한 가수인거 같은데 네 음악을 싣는다고?' 라고 하였고 그 뒤로는 음악 활동에 간섭을 안 한다고 한다. 이 대화 내용이 드렁큰 타이거 8집 앨범에 스킷 형식으로 실려 있다. 원래 7집 때도 참여하려고 했었으나 집안 반대로 인해 잠수 타고 있다가, 본인이 음악해야겠다고 다시 연락해서 8집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광우병 파동 때 제리케이는 "우민정책"이란 곡도 발표했는데, 이 곡의 비트가 2집에 수록된 'Dedicated to MC'. 이 공개곡의 발표로 MC라는 게 Mad Cow가 아니냐는 의견이 기정사실화 된 듯.
2010년 4월에는 시크릿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011년 3월 14일, 근 2년동안 미뤄왔던 3집을 발매했다. 앨범 제목은 Lilac이며 타이틀곡은 본인이 직접 랩을 한 '다른 사람'. 이뿐만 아니라 앨범 전반적으로 스스로의 랩과 보컬의 비중이 꽤 늘어났다. 다만 1집의 'Dear. Unknown'이나 2집의 '이빨' 같은 킬링 트랙이 없어서 허전하다는 평가.
또한 2011년 5월 1일자로 소울컴퍼니에서 이적하여 정글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드렁큰 타이거 8집과 맞아서 들어오게 된 듯.
2011년에는 사이먼 도미닉의 솔로 앨범인 'Simon Dominic Presents 'SNL LEAGUE BEGINS'의 전곡을 프로듀싱하였다. 실질적으로 사이먼 도미닉과 랍티미스트의 합작 앨범으로, 앨범 제목의 SNL League도 Simon Dominic & Loptimist를 의미한다.
2013년 발매한 배치기의 4집 Part 2 앨범을 프로듀싱했다. 하지만 이미 이땐 국방부 퀘스트를 수행중이였기에 군대에서 듣게 되었다. 군입대후에 발매됐지만 훈련소가기 전날 잠들기 전까지 트래킹하고 갔다고 한다.[7]
2013년 7월 현재, 군 입대 후 국방홍보원(연예병사) 소속이었으나 항목에서 보듯이 후임들이 거하게 사고를 쳐주는 바람에 속절없이 일반부대(21사단)으로 재배치되었으며, 영창 4일 처분을 받았다.
2014년 5월 4일 드디어 전역을 했다.트윗 참조 이후 오랜 친구 사이인 Teth와 함께 케미스트릿 레코즈를 설립하면서 독립했다.
2014년 10월 31일 4집 앨범 Veranda를 발매했다. 전작들보다 더 연주 트랙의 사용 비율이 증가했다. 색소폰과 어쿠스틱 기타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여 풍부한 사운드를 빚어내면서 음악 색깔의 변화를 모색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후 싱글 발매 위주로 활동하다가 2016년 9월 30일 EP 'Early Bird'를 발매했다. 그런데 그 랍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스타일을 아예 일렉트로니카 + 하우스 성향으로 바꿨다.
여담이지만 웹툰 헬퍼의 BGM도 자주 담당하는 듯하다.
2 발매한 앨범 리스트
- 2007.02.24 1집 '22 CHANNELS'
- 2008.04.29 2집 'Mind-Expander'
- 2008.12.23 'Mind-Expander (Instrumental)'
- 2010.08.03 싱글 'Love is Over'
- 2011.01.05 싱글[8] 'Amazing Gift Vol.1'
- 2011.03.14 3집 'Lilac'
- 2014.06.02 싱글 'Ma Day'
- 2014.07.01 싱글 '지나가던 길에'
- 2014.10.13 싱글 '의심병'
- 2014.10.31 4집 'Veranda'
- 2014.11.20 비트테잎 Amazing Gift Vol. 3
- 2014.12.31 싱글 '돌아보기'
- 2015.01.16 싱글 '다시는'
- 2015.03.04 싱글 '아르페오'
- 2016.01.21 싱글 'Me'
- 2016.02.24 싱글 'Seoul Bossa Nova'
- 2016.03.30 싱글 '얌신'
- 2016.04.28 싱글 'Che Bella'
- ↑ 새로 나오게 되는 노래의 제목을 정하려다 마땅한 아이디어가 없자 자신의 페북에다가 "노래 제목을 정해야하는데 4시간째 침대에 누워서 결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추천해주세여. 분위기는 얌전했다가 신납니다."라고 올렸는데 베댓이 저것을 줄인 얌신이였다(..) 그것이 마음에 든 랍티미스트는 답글로 친절히 "감사합니다 얌신으로 가겠습니다. 3월 30일에 발매됩니다."라고 단 뒤 실제로 그렇게 발매하여 생긴 별명.
- ↑ 과거 MC로만 활동할 때는 Fake Cross라는 예명을 썼다. 딥플로우에 따르면 시대를 앞선 프리스타일 래핑을 했다고 한다.
- ↑ 네이버 웹툰 헬퍼의 작가 삭과도 인연이 있는 듯 하다. 헬퍼에 본인의
버린짧은 곡들도 넣게 허락했다 - ↑ 이 불멸을 말하여 비트는 PC방에서 8시간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1집 이전까지 장비라고는 컴퓨터랑 LP 밖에 없었다고...
- ↑ 참고로 LP 플레이어는 고등학생때 청계천에서 5만원 주고 샀다고 한다. 프로듀싱 하다가 어떤 샘플이 필요할 때면 전국의 LP 상가를 찾아가서 그걸 찾아내기도 하고, 누군가가 LP판 수 천 장을 팔려고 할 때 그 집에 가서 수백장을 헐 값에 사고 기특하다고 밥도 얻어먹었을 정도로 샘플링에 대한 욕망이 매우 강했다고 한다.
- ↑ 외국 포럼에서 자신의 곡의 샘플이 뭔지를 찾을 수 없어 궁금해 할 때가 즐거웠다고 한다. 외국 아티스트들의 샘플이 궁금해서 외국 커뮤니티를 자주 찾아다니는데, 본인의 곡이 언급되자 웃으면서 컴퓨터를 껐던 경험도 있다고.
- ↑ 이 앨범 수록된 타이틀곡 눈물샤워덕분에 배치기는 데뷔한 후 처음으로 1위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랍티미스트는 울뻔했다고... 길거리에서 자기 노래나오는것도 듣고싶은데 못들어서 답답하다고 한다... 자세한건 배치기 인터뷰 참조
- ↑ 이자 첫번째 비트테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