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2002년

1 개요

2002년 1월 기준 ATP 싱글 랭킹 115위.

2 대회 상세

2.1 1월~2월

2002년 1월 둘째주에 호주시드니에서 열린 ATP 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남자 단식에 출전한 이형택은 세계 랭킹이 116위까지 하락한 상황이어서 예선전부터 출전했는데 예선전 3라운드를 모두 통과하여 본선에 올랐다.

ATP 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남자 단식 본선 32강전(1회전)에서 이형택이 대결한 선수는 우승 후보로서 과거 세계 랭킹 1위까지 했었던 선수로 세계 랭킹 19위를 기록하여 대회 7번 시드를 받은 카를로스 모야(스페인)였는데 이형택은 모야를 상대로 1세트와 2세트 모두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2-0(7-6<7-5>, 7-6<7-4>)의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16강전에서도 세계 랭킹 82위인 카롤 쿠체라[1](슬로바키아)에게 2-0(6-1, 6-2)로 승리하면서 8강에 진출하여 ATP 투어 남자 단식 8강 진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다음주에 열리는 매해 첫번째 그랜드슬램 대회인 호주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을 신청할 때의 이형택의 세계 랭킹이 116위까지 하락하여 예선전부터 출전해야 했기 때문에 ATP 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남자 단식 8강전과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예선전 일정이 겹치게 되었고 결국 이형택은 랭킹 포인트 획득을 우선하여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예선전 출전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ATP 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이형택이 붙은 상대는 세계 랭킹 15위로 대회 3번 시드를 받은 강호 앤디 로딕(미국)이었고 이형택은 앤디 로딕과 2시간 20분에 걸친 치열한 경기 끝에 세트 스코어 1-2(7-6<7-3>, 3-6, 5-7)로 아깝게 역전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2.2 3월~4월

2002년 4월에 미국 텍사스휴스턴에서 개최되는 전년도에 결승전까지 진출하였던 ATP 투어 US 클레이코트 챔피언십 남자 단식에 본선 자동 출전권을 받아 출전한 이형택은 본선 32강전(1회전)에서 본선 와일드카드를 받아서 본선에 출전한 세계 랭킹 195위에 올라있던 밥 브라이언(미국)에게 2-0(6-2, 6-3)으로 무난히 승리하며 16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이형택의 ATP 투어 US 클레이코트 챔피언십 남자 단식 16강전 상대는 우승 후보로 이 시기에는 약간 부진하여 세계 랭킹 10위로 하락한 상황이긴 했지만 대회 3번 시드를 부여받은 커리어 골드슬래머인 안드레 애거시(미국)였고 애거시한테 세트 스코어 0-2(4-6, 5-7)로 이형택이 패하여 탈락하였다.

2.3 5월

2002년 5월에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서는 출전 신청 때의 이형택의 세계 랭킹이 90위까지 상승하여 본선 자동 출전권을 받음으로써 이형택은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추가적으로 만 26세 4개월의 나이로 한국 테니스 선수 사상 최연소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 출전 기록[2]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이형택의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 첫 출전은 아쉽게도 본선 128강전(1회전)에서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올라온 세계 랭킹 277위를 기록하고 있던 옌스 크니프슐트(독일)에게 세트 스코어 3-2(4-6, 6-1, 6-3, 6-7<3-7>, 1-6)로 역전패하면서 탈락으로 끝나고 말았다.

2.4 6월

2002년 6월 중순에 영국런던에서 열린 ATP 투어 스텔라 아토이스 챔피언십 남자 단식에 본선 자동출전권을 받아서 출전한 이형택은 본선 64강전(1회전)에서 세계 랭킹 142위인 마그누스 라르손[3](스웨덴)에게 2-1(6-3, 6-7<4-7>, 7-6<7-1>)로 이기고 32강전(2회전)에선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출전한 세계 랭킹 213위에 올라있던 모토무라 고이치(일본)에게 2-0(6-4, 6-0)으로 승리를 따내며 16강에 올랐다.

연승의 기세를 몰아서 이형택은 ATP 투어 스텔라 아토이스 챔피언십 남자 단식 16강전에서도 세계 랭킹 73위를 기록하고 있던 빈센트 스파디아(미국)를 2-0(6-4, 6-3)으로 꺾으며 8강에 진출하였는데 이형택이 1년이 넘는 기간동안 ATP 투어 남자 단식 8강에 오르지 못하다가 기록한 ATP 투어 남자 단식 8강 진출이었다. 하지만 8강전에서 세계 랭킹 5위로 대회 2번 시드를 받은 강호 팀 헨먼[4](영국)에게 세트 스코어 1-2(6-3, 2-6, 2-6)로 역전패하였다.

2002년 6월에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에선 출전 신청시의 이형택의 세계 랭킹이 117위까지 하락한 때문으로 예선 4번 시드를 받고 예선전부터 출전해야 했는데 무난하게 예선전 3라운드를 모두 돌파하면서 이형택으로서는 통산 두번째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 출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출전한 2002년 윔블던 남자 단식 본선 128강전(1회전)에서 이형택은 세계 랭킹 96위인 안드레이 스톨리아로프(러시아)에게 5세트까지 가는 풀세트 접전 끝에 3-2(6-3, 6-2, 4-6, 4-6, 6-2)로 승리하면서 이형택으로선 처음으로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128강전(1회전)을 이기고 64강(2회전)에 올라 한국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으로 윔블던 남자 단식 64강(2회전)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연히 만 26세 5개월의 나이로 한국 테니스 선수 사상 최연소 윔블던 남자 단식 64강(2회전) 진출 기록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윔블던 남자 단식 64강전(2회전)에서 이형택은 세계 랭킹 39위를 기록하고 있던 그렉 루세드스키[5](영국)에게 세트 스코어 1-3(1-6, 4-6, 7-5, 2-6)으로 패배하여 탈락했다.

2.5 7월

2002년 7월에 캐나다토론토에서 열린 테니스 마스터스 시리즈인 마스터스 캐나다 마스터스 남자 단식에 출전 신청할 때의 이형택의 세계 랭킹이 92위에 머물러서 예선전부터 출전하였고 예선 라운드를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하였다. 이형택은 본선 64강전(1회전)에서 세계 랭킹 36위에 올라있던 아르노 클레망[6](프랑스)을 2-0(6-3, 6-3)으로 꺾고 32강(2회전)에 진출하였다. 이형택의 32강전(2회전) 상대는 2000년 US 오픈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이형택과 대결하였던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라스였다.

이 무렵의 샘프라스는 2000년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 이후 몇몇 중요한 그랜드슬램 대회와 마스터스 시리즈 대회 남자 단식에서 여전히 준우승을 달성하면서 아직 기량이 완전히 녹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이었지만 노쇠화로 인한 기량 하락으로 성적이 부진하여 2년이 넘게 우승이 없는데다 전과 달리 무명의 선수에게 지는 경기도 속출하는 상황으로 세계 랭킹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5위까지 하락한 상황이었다.

즉, 이 무렵의 샘프라스는 분명 전성기보단 하락세여서 이형택의 입장에선 아직 버겁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전과 달리 충분히 승리에 도전해볼만한 상대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형택은 피트 샘프라스(미국)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1-2(6-3, 6-7<5-7>, 2-6)로 아쉽게 역전패하였다. 샘프라스를 상대로 1세트를 선취하며 앞서나갔으나 2세트에서 타이 브레이크까지 몰고 갔으나 패했고 그대로 기세가 샘프라스에게 넘어가면서 3세트를 무기력하게 내주며 패배한 경기였다.

2.6 8월

2002년 8월 초에 미국 오하이오신시내티에서 열린 테니스 마스터스 시리즈인 마스터스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 신청할 때의 이형택의 세계 랭킹이 96위였기 때문에 예선전부터 출전하였고 예선전 3라운드를 모두 통과하며 본선에 진출하였다.

그렇게 출전한 마스터스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 본선 64강전(1회전)에서 이형택이 붙은 상대는 세계 랭킹 76위인 보단 울리라흐(체코)로서 이형택은 울리라흐를 2-0(6-3, 7-5)로 누르고 32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32강전(2회전)에서 세계 랭킹 35위에 올라있던 야르코 니에미넨(핀란드)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1-2(2-6, 6-3, 5-7)로 석패하면서 탈락하고 말았다.

2002년 8월 말에 열린 US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서는 출전 신청 때의 이형택의 세계 랭킹이 94위까지 다시 상승한 덕에 본선 자동 출전권을 받아서 이형택으로서는 통산 3번째 US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출전하였는데 본선 128강전(1회전)에서 본선 와일드카드를 받아서 본선에 출전한 세계 랭킹 94위를 기록하고 있던 마디 피쉬[7](미국)에게 세트 스코어 1-3(6-7<6-8>, 6-4, 3-6, 3-6)으로 패하여 탈락하고 말았다.

2.7 9월

2002년 9월에 홍콩에서 열린 ATP 투어 세일럼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한 이형택은 본선 자동 출전권을 받아서 본선에 출전하였는데 본선 32강전(1회전)에서 세계 랭킹 97위인 율리안 크노블레(오스트리아)에게 2-1(7-5, 4-6, 6-1)로 승리하면서 16강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16강전에서 럭키 루저로 본선에 출전한 세계 랭킹 93위에 올라있던 안토니 뒤피(프랑스)에게 세트 스토어 0-2(3-6, 3-6)으로 패배하면서 탈락하였다.

2.8 10월

2002년 10월에는 한국부산에서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테니스 남자 단식에 이형택은 2번 시드를 받고 출전하여 결승전까지 올랐는데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28위로 대회 1번 시드를 받은 파라돈 스리차판[8](태국)에게 세트 스코어 0-2(6-7<3-7>, 4-6)로 아깝게 패배하여 은메달을 따냈다.

2.9 11월~12월

2002년 12월에는 요코하마 챌린저 대회 남자 단식에서 이형택이 우승하여 이형택 본인의 통산 다섯번째 챌린저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기록했다.
  1. 1992년에 데뷔하여 2005년에 은퇴한 선수로 1998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6위를 기록하였으며 전성기가 1997년부터 1999년까지였던 선수로 이형택과 대결하였던 이 시기엔 1999년에 당한 부상 이후 긴 부진에 빠져있던 시기였으나 이후 어느 정도 재기하여 2003년에 쿠체라 본인의 6번째이면서 마지막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성적은 1998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1998년 테니스 마스터스 함부르크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6회, 준우승 4회를 기록하였다.
  2. 이형택이 가지고 있던 한국 테니스 선수 사상 최연소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 출전 기록은 정현이 2016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본선에 만 20세의 나이로 출전하면서 경신하게 된다.
  3. 1989년에 프로로 데뷔하여 2004년에 은퇴하였으며 1995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10위를 기록하였는데 테니스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였던 선수로 이형택과 대결하였던 이 시기엔 선수로서의 하락세가 확연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선수로서의 통산 커리어는 1994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그랜드 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3회, ATP 마스터스 시리즈 4강 진출 2회,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6회, 준우승 8회를 기록할 정도로 좋은 선수였다.
  4. 1992년에 프로에 데뷔하여 2007년에 은퇴한 선수로 이 경기 한달 후인 2002년 7월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인 4위까지 기록하였으며 전성기는 1997년부터 2004년까지였던 선수였는데 2002년 ATP 투어 스텔라 아토이스챔피언십 오픈 남자 단식에 출전할 무렵에는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4강 진출 3회, 8강 진출 2회, 1998년 마스터스 컵 4강 진출,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준우승 2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4회,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9회, 준우승 12회를 기록하고 있던 강호였다. 앤디 머레이가 등장하기 이전에 영국의 희망이라는 소리까지 들으며 영국에서 개최되는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을 이루어줄 영국 선수로 기대받았던 선수였다. 하지만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 4강에는 4번이나 올랐으나 결승 진출은 실패하였다. 은퇴할 때까지 거둔 주요 성적은 통산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은 4강 진출 6회, 8강 진출 4회, 1998년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 4강 진출, 2003년 마스터스 파리 오픈 남자 단식 우승,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준우승 3회, 4강 진출 4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0회, 준우승 14회를 기록하였다. 영국 국적의 테니스 선수의 윔블던 남자 단식 우승이라는 영국인들의 기대는 팀 헨먼 다음 세대의 선수인 앤디 머레이가 달성하게 된다.
  5. 1991년에 프로로 전환하여 2007년에 은퇴하였고 1997년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 4위까지 기록하였으며 전성기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였던 선수로 이형택과 대결하였던 2002년 윔블던 남자 단식에 출전할 무렵엔 전성기가 지난 상황이기는 했으나 아직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매년 1~2회 정도는 하면서 여전히 어느 정도 꾸준히 성적을 올리던 시기였다. 특이점으로 1995년 ATP 투어 KAL컵 코리아 오픈 남자 단식 우승 직후인 1995년 5월에 어머니의 모국인 영국 측의 집요한 설득으로 캐나다 국적을 버리고 영국으로 귀화하였다. 은퇴시의 통산 주요 성적은 1997년 US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1997년 윔블던 남자 단식 8강 진출, 1998년 마스터스 파리 오픈 남자 단식 우승, 마스터즈 시리즈 남자 단식 4강 진출 2회,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3회, 준우승 10회를 기록한 선수이다.
  6. 1996년에 프로에 뛰어들었고 2001년에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 10위까지 올랐었으며 전성기가 2000년부터 2003년까지였던 선수로 2002년 테니스 마스터스 캐나다 마스터스 남자 단식에 출전할 무렵에는 2001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2000년 US 오픈 남자 단식 8강 진출, 2000년 마스터스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기록중이었다. 2012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성적은 2001년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준우승,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2회, 2000년 마스터스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 4강 진출,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4회, 준우승 6회를 달성하였다.
  7. 2000년에 프로에 데뷔하여 2015년에 은퇴한 선수로 2011년에 세계 랭킹 최고 순위 7위를 기록하였고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전성기였던 선수로서 이형택과 대결하였던 이 시기엔 투어 대회에 본격적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겨우 만 20세의 신예 선수였다. 통산 성적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8강 진출 3회,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 준우승 4회, 4강 진출 2회, 2004 아테네 올림픽 테니스 남자 단식 은메달,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 6회, 준우승 9회를 기록하였다.
  8. 니시코리 케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역대 아시아 최고의 남자 테니스 선수를 꼽는다면 파라돈 스리차판을 꼽을 정도로 대단한 테니스 선수였다.(아시아 기준) 1997년에 프로에 데뷔하였는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무렵에는 ATP 투어 남자 단식에서 우승 1회, 준우승 2회를 기록중으로 2002년부터 2004년까지가 전성기였으며 니시코리 케이 이전의 아시아 최고의 남자 테니스 선수답게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세계 랭킹 최고 순위인 9위를 2003년에 기록하였다. 2010년 은퇴 때까지 ATP 투어 통산 우승 5회, 준우승 6회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 랭킹 최고 순위에 비해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은 1번도 8강에 진출하지 못했고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4강 진출 3회를 기록하여 큰 대회에서 부진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