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로랑

(입생로랑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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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ves Henri Donat Mathieu-Saint-Laurent
이브 앙리 도나 마티외생로랑

1936년 8월 1일 - 2008년 6월 1일

1 개요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1957년, 21세의 나이에 파리 최대 오트 쿠튀르 하우스인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 혜성과 같이 패션계에 등장. 1966년에 처음으로 여성 정장에 바지 정장을 도입하였으며 사파리 재킷을 고안했다. 2002년 65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혁명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20세기 후반 패션을 이끌었다.

2 생애와 업적

어린시절에 병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종이 인형을 만들거나 어머니와 두명의 여동생을 위해 옷을 디자인해주기도 했다. 14세가 되던 해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 크리스티앙 베라르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을 접한 후 연극에 매료되어 무대 세트와 무대 의상을 디자인 하는 등 창작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1954년 국제 양모 사무국 컨테스트에 참가하여 18세의 나이에 1등을 차지했다. 이후 보그지의 편집장 미셸 브뤼노프가 크리스티앙 디오르에게 그를 소개하여 1955년부터 그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7년 디오르가 갑자기 타계하자, 당시 21세였던 생로랑이 후계자로 지목되어 디오르의 아트 디렉터를 맞게 되었다.

1962년 디오르에서 독립해서 생로랑의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1]와 함께 이브 생 로랑을 창설하여 파리 패션계를 사실상 제패하다시피했다.

1974년 남성복 분야에도 진출. 1981년에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FDA)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 메트로폴리탄 아트 뮤지엄 의상 협회에서, 생존하는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25년 회고전을 개최했다. 클래식 엘레강스에 기초를 두고 단순하면서도 지적으로 우아한 여성다움을 표현. 낮의 일상복으로는 심플하고 입을 만한 스타일을, 이브닝 웨어로는 호화롭고 육감적인 스타일을 전개했다. 이러한 그만의 독특하고 멋있는 분위기를 '생로랑 시크'라 하였는데, '모던 트림'이나 '슬림 앤드 트림 패션' 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복장 감각 패션의 세계적인 대두로 거기에 가장 잘 매치하는 것이 생로랑의 작품이었다.

또한 그는 1968년에 노브라시스루 드레스를 선보이면서 '누드 룩'을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는 러시아중국오리엔탈리즘의 의상들을 발표하면서 히피 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밖에 그가 패션계에 몸담은 4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가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의상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생로랑은 디자이너로서 빠르게 성장하고 바쁘게 생활한 나머지 종종 극도의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의 천부적인 디자인 능력과 재능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을 받았다. 2002년 자신의 브랜드를 새로운 신진 디자이너에게 내어주고 은퇴.

2008년 6월 1일 지병인 뇌종양으로 영면하였다.

3 기타

  • 2000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코망되르 등급) 훈장을 수여 받았다.
  • 많은 남성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그도 동성애자였다. 어린시절 엄격한 가톨릭 커뮤니티에서 받은 괴롭힘과 내성적 성격이 겹쳐 알제리에서 몰래 다른 동성애자 소년들과 교제했다고.
  • 알제리 독립전쟁인 알제리 전쟁 때 강제 징집되어 연약한 성격으로 무척 고생을 했다. 결국 3주만에 신경쇠약으로 돌아왔다.
  • 한국에서 그의 이름을 아직도 입생로랑이라고 표기하는데, 정확한 표기로는 이브 생로랑이 맞다.
  • 패션 뿐만 아니라 화장품 브랜드로도 유명한데, 특히 립 틴트가 영롱한 발색력과 예쁜 색상으로 인기가 많다. 또한 2016년에는 쿠션 파운데이션이 출시되어 영롱한 케이스와 가격깡패로 주목을 받고 있다.

4 로고

이전로고. 80년대 초반까지는 이브생로랑 본인의 서명을 본딴 필기체 형식의 로고도 있었다.

saintlaurentparis.jpg 새 로고.

2013년에 전 디올 옴므 수석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을 영입하면서 패션부문 로고도 생로랑으로 바꿨다. 화장품 부문은 기존으로 유지했지만 어쨌든 팬들에게 엄청난 뭇매를 맞는 중. 현재는 에디 슬리먼의 스타일 대로 록/스키니 룩을 잇는 중이다.

그리고 2016년 4월 1일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을 떠난다고 발표했다.기사

이 후, 후임자가 정해졌다 ! 베르사체의 세컨라인인 베르수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맏고 있는 안소니 바카렐로가
에디 슬리먼을 이어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로 앉게 되었다.

5 관련 항목

  1. 생로랑의 평생지기이자 연인이었다. 참고로 둘 다 남자. 생로랑 사후 재단을 운영하며 많은 자선활동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