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빈

蔣斌[1]
(? ~ 264년)

1 개요

삼국시대 촉나라의 신하로 장완의 장남이자 장현의 형.

2 정사

246년에 아버지 장완이 죽자 뒤를 이어 수무장군, 한성호군으로 임명되었으며, 258년에 강유의 건의로 5천 명을 이끌고 한성을 수비하게 되었다. 263년에 위나라의 촉한 정벌 때 종회군의 부장 순개[2]의 1만 군사에 포위되면서 이 때 종회가 장빈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길

파와 촉에는 재능과 지혜가 있는 문인과 무인이 많은데, 그대와 제갈첨에 이르러서는 초목에 비유되며, 나와 똑같은 천지의 기를 받았습니다. 옛 선인에 대한 존경은 지금이나 과거나 중시했던 일입니다. 서쪽에 도착하면 그대 부친의 산소를 찾아가 받들어 인사하고, 묘지를 깨끗이 청소해 경의를 표하려고 합니다. 선친의 산소 위치를 알려주기 원합니다!

장빈이 답하길

같은 부류로써 선친의 묘지를 찾아보려는 생각이 융성함을 알았습니다. 세상 일을 떠나 의뢰하거나 교류할 경우는 거절할 수 없습니다. 망부는 과거 중병으로 부현에서 세상을 떠나셨는데, 점치는 사람이 묘지의 길함을 점쳐서 부현에 안장시켰습니다. 그대가 서쪽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으니 수레를 굽혀 선친의 묘지를 가지런히 하고 경의를 표해 주십시오. 그대가 나를 보는 것과 같이 나의 부친을 대하는 것은 안자의 어짐입니다. 나는 그대가 상심해 슬퍼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증가했습니다.

종회는 장빈의 편지를 받아보고 감탄해 부현에 도착한 뒤 편지에 적힌 그대로 행동하자 유선등애에 투항한 후에 부현에 있는 종회에 가서 교우의 예절로써 대해줬다고 하며, 종회를 따라 성도에 도착했지만 264년에 종회의 반란 때 동생 장현과 함께 살해되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258년에 강유가 출병할 때 왕함과 함께 좌군이 되어 종군했으며, 기산에서 영채를 세워 싸우려고 할 때 왕함과 함께 영채를 온전하게 세우지 못했을 때 위군이 와서 영채를 습격할까 두려워 감히 갑옷을 벗고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위나라의 정륜이 이끄는 굴자군 500명의 공격을 받아 왕함과 함께 맞서다가 달아났으며, 다음날에 패잔병을 모아 왕함과 함께 강유에게 죄를 청했지만 강유가 용서하면서 그의 명령으로 다시 영채를 세우면서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을 땅굴에 묻어 흙으로 덮었다.

263년에 위나라의 촉 정벌 때 5천 명의 병력으로 한성을 지키면서 위군의 기세가 큰 것을 보고 싸우러 나가지 못해 문을 닫고 지키기만 했으며, 순개에게 한성이 포위되었다가 한중을 잃은 소식을 듣자 문을 열고 항복했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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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10,11
삼국지 12,13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8부터 등장한다. 일러스트는 무관같이 생겼지만 막상 능력치는 아버지의 마이너 버전인 평범한 문관 수준.

삼국지 9에서는 전투용 전법이 제사(무력에 피해가 비례)뿐인데, 무력이 26으로 매우 낮아 거의 무용지물이다. 이건 전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여.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30/28/67/74/71인데 막상 특기는 능력치를 살리는데는 도움이 안되는 고무, 보수 2개 뿐이다. 한마디로, 걍 노답(...)이다.
  1. 김원중역 삼국지에서 이 斌를 '무'로 오독하는 바람에 장무라는 표기로 퍼졌지만 삼국지 시리즈에는 장빈으로 올바르게 번역되었다.
  2. 진서에는 역개라고도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