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후한)

후한의 역대 황제
17대 현종 명제 유장18대 숙종 장제 유달19대 목종 화제 유조
묘호숙종(肅宗)[1]
시호효장황제(孝章皇帝)
연호건초(建初, 76년~84년)
원화(元和, 84년~87년)
장화(章和, 87년~88년)
유(劉)
달(炟)
생몰기간57년 ~ 88년 4월 9일
재위기간75년 9월 5일 ~ 88년 4월 9일

章帝
(57년 ~ 88년)

한장제(漢章帝) 유달(劉炟). 재위기간은 75년부터 88년까지다.

명제의 5남으로 태어났으며 3살에 황태자가 되었다. 75년에 아버지인 명제가 붕어하여 19세에 즉위했다. 동시에 마황후를 황태후로 세워 후견을 하였고, 마황후는 보기 드물게 태후로서 몸을 사려 친가의 마씨 일족이 고위직에 오르는 것을 못하게 하였고, 그녀가 생존했던 장제의 시대에게는 아직 후한의 폐가 된 외척의 전권이 겉으로 나타난 것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유학을 좋아했다고 하는 장제는 관대한 성격으로, 유학의 덕목에 필적한 너그러운 덕치를 이끌었다. 장제의 치세에는, 큰 내우외환도 없었기 때문에, 후한은 명제의 시대부터 인계된 안정기를 계속 이어갈수 있었다.

그러나, 장제의 치세는 또, 규벌세력이 후한의 역사로 처음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황후 두씨는, 마황후가 죽으면서 후궁의 최고 권력자가 되고, 태자 유경의 생모 송귀인과 태자 유조를 낳은 양귀인을 죽어 쫓아 보내고, 또 태자를 폐하고 유조를 황태자로 세웠다.

그리고 원정에는 신통치 않아서, 서역에 대한 흉노의 공격이 자꾸 오자 일단은 서역 지역에서 철수하였고 서역은 흉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그 후 반초의 활약에 의해, 서역은 되찾아 통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외척 문제와 원정 등 장제의 시대는 후한 쇠퇴의 조짐이 보여 왔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골머리를 앓다가 그만 88년 장제가 32세의 젊은 나이로 붕어하여 10세 유조가 즉위했다. 이 사람이 환관에게 빌붙어서 나라를 망하는 길을 터준 화제이시겠다.[2]

장제 이후의 후한 황제들은 모두 장제의 후손들이다. 그의 뒤를 이은 화제의 후손들은 상제를 끝으로 황제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장제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1. 190년 좌중랑장 채옹의 건의로 취소되었다.
  2. 그러나 나이가 어려서 그럴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