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대 국왕 | ||||||
필리프 6세 | ← | 장 2세 | → | 샤를 5세 |
이름 | 장 선량왕 (Jean II le Bon / John II the Good) |
생몰년도 | 1319년 4월 16일 ~ 1364년 4월 8일 (44세) |
재위기간 | 1350년 8월 22일 ~ 1364년 4월 8일 |
출생지 | 프랑스 르망 |
사망지 | 영국 런던 |
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의 2대 왕으로 필리프 6세의 장남이다.
1354년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를 견제하기 위해 나바르 왕 샤를 2세와 망트 조약을 맺었으나 자주 깨졌고 이러던 중 백년 전쟁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해 아비뇽에서 영구적인 평화 협정을 맺는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 때 에드워드 3세는 장 2세에게 프랑스 왕위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아키텐의 잉글랜드 소유 인정 및 투레인, 앙주, 메인 등의 영토를 할양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장 2세는 당연히 이를 거부했고 이듬해 다시 전쟁이 재개되었다.
1355년 잉글랜드의 흑태자 에드워드 왕세자가 기엔느를 침공해오자 1356년 장남 샤를과 함께 푸아티에에서 맞서 싸웠으나, 상대가 되지 못하고 포로로 잡혔고 런던으로 이송당했다.
1360년 브레티니 조약으로 서남쪽의 영토를 상당부분을 먼저 넘겨주고 몸값은 차후 마련해서 지불하기로 했다. 볼모로는 자신을 대신하여 차남 앙주 공작 루이를 보냈다. 하지만 포로로 보낸 루이가 탈출하자 장 2세는 명예를 중시해 루이를 비난하고 또한 자신에게 배정된 상당수의 몸값을 프랑스 국민에게 거둘 수 없다 하여 스스로 런던으로 되돌아왔다. 장 2세는 흑태자의 극진한 대접을 받다가 런던에서 죽었다. 안습한 인생이었지만 그나마 사망 후 시신이 프랑스로 돌려보내졌다.
전쟁 와중에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몸값을 받을 수 없다며 아들 대신 스스로 런던으로 돌아가서 '선량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언뜻 보면 성군이나 대인배로 보이지만 한 나라의 군주로서 스스로 포로의 길을 택한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샤를 5세가 정치를 잘한 명군이라서 나라는 안정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