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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10 Coaches in NBA History NBA 역사상 위대한 감독 10인 | ||||
돈 넬슨 | 레니 윌킨스 | 레드 아워백 | 레드 홀즈먼 | 빌 피치 |
잭 램지 | 존 쿤들라 | 척 데일리 | 팻 라일리 | 필 잭슨 |
이름 | 존 트라빌라 "잭" 램지 John Travilla "Jack" Ramsay |
출생~사망 | 1925년 2월 21일~2014년 4월 28일 |
출신지 |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
출신학교 |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필라델피아) |
지도자 경력 | 농구 세인트 제임스 고등학교 (1949~1952, 감독) 마운트 플레젠트 고등학교 (1952~1955, 감독)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필라델피아) (1955~1966, 감독)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968~1972, 감독) 버펄로 브레이브스 (1972~1976, 감독)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76~1986, 감독) 인디애나 페이서스 (1986~1988, 감독) 야구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필라델피아) (1956~1958, 감독)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영구결번 | |
No. 77 |
1 개요
NBA의 前 감독. 래리 브라운과 함께 대학과 프로 두 곳에서 성공을 거둔 몇 안되는 명장이다. 별명은 'Dr.Jack'.
2 일생
2.1 출생과 성장
1925년 2월 21일에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코네티컷 주 밀포드에서 자랐는데, 이후 부모는 그의 스포츠 활동을 위해 필라델피아로 이사했다.
이후 어퍼 더비 고등학교 시절에 야구와 농구 활동을 했고, 1942년에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해 3년간 학교를 쉬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시 체육 활동에 전념하다 1949년에 졸업했고, 1962년과 1963년에 교육학에서 각각 박사와 학사 학위를 따기도 했다.
2.2 대학 감독 시절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 감독 시절의 모습.
전쟁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1949년부터 고등학교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였고, 1955년에 세인트 조지프 대학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1960/61 시즌에 농구팀을 전국대회 4강까지 끌어올리기도 하는 등 대학농구 감독으로써 나름 뛰어난 수완을 보여주었다.
2.3 프로 감독 시절
버팔로 브레이브스 시절의 모습.
1966년에 세인트 조지프 대학교 감독 퇴임 이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단장으로 1년간 재직하다가 1968년에 감독으로 부임하여 3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1972년부터 신생팀인 버펄로 브레이브스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1973/74 시즌부터 3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으나 연고지인 버펄로가 스몰마켓이라 적자를 너무 내서 결국 당시 구단주인 폴 스나이더와 함께 사임했다. 이로 인해 브레이브스는 후신인 LA 클리퍼스에 이르기까지 40여년간 기나긴 암흑기를 겪게 되었다.
1977년 파이널 우승 당시 빌 월튼과 함께.
1976년에 당시 신생팀이었던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감독으로 부임. 부임 첫 시즌인 1976-77 시즌에 첫 플레이오프 진출과 동시에 우승을 하는 대형 사고를 저지른다. 무릎만 건강했다면 NBA 역사를 바꿀수도 있었던 1974년 전체 1순위 출신 백인 센터 빌 월튼을 중심으로 강력한 팀을 구성해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접전 끝에 4승 2패로 승리한 것. 이전까지 별볼일 없던 신생팀이 갑툭튀해서 당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던 카림 압둘 자바와 닥터J를 연파하고 우승까지 거머쥔 것은 NBA 역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마침 볼 거리가 딱히 없던 포틀랜드 시민들에게 있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상당히 선전하는 이 농구팀은 지역의 자랑거리였고, 사람들은 블레이저스에게 열광했다. 언론에서는 이 팬덤 현상을 블레이저매니아(Blazermania)라고 불렀다. 이후 포틀랜드는 814경기 연속 매진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단순히 볼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포틀랜드는 정말 농구를 잘 했다. 비록 첫 우승의 주역인 빌 월튼이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팀을 일찍 떠났지만[1], 이후 짐 팩슨-클라이드 드렉슬러-제롬 커시-테리 포터 같은 대형 스타들을 영입해서 전력을 재편하여 꾸준히 서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군림했다. 그 증거가 1981-82 시즌부터 2002-03 시즌까지 기록한 NBA 역대 2위 기록인 21년 연속 PO 진출. 사실 이 것도 1980-81 시즌에 진출을 못해서 그렇지 이 때도 진출했으면 전무후무한 30시즌 연속 PO 진출도 가능할 뻔했다. 그러나 1984년 드래프트 당시 샘 보위 영입같은 실수도 있긴 하지만...
이후 1986년에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이적, 비록 플레이오프는 한번밖에 못갔지만 1987년에 레지 밀러를 영입하는 등 리빌딩을 위한 초석을 마련해 주고 1988/89 시즌 도중에 사임. 이로써 오랜 기간 동안의 지도자 생활은 끝을 고했다.
3 은퇴 이후
1992년에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1996년에 NBA 5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상 위대한 감독 1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ABC와 ESPN 등지에서 해설위원을 역임하다가 건강 악화로 인해 2013년에 하차하였고, 2014년 4월 28일에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빌 월튼은 이미 NBA 데뷔때부터 이건 사람의 무릎이 아니다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77-78 시즌 후 LA 클리퍼스의 전신 샌디에이고 클리퍼스에 팔려가서 거기서도 부상에 시달렸지만, 현역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보스턴 셀틱스에 이적해,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쉬를 받쳐주는 식스맨으로 부활해 1985-86 시즌 식스맨 어워드 수상과 개인 통산 2번째 파이널 우승을 맛본다. 결국 그의 무릎에 한계가 와 그 다음시즌인 86-87 시즌에 은퇴했지만, 무릎이 버텨줄때 보이는 경기력과 2번의 파이널 우승을 이끈 전력이 인정받아, 초라한 통산성적에도 불구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참고로 월튼이 포틀랜드에 있을 시절의 감독이었던 잭 램지는 월튼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했다. 빌 러셀은 블락 잘함, 윌트 체임벌린은 쩌는 공격형 센터임. 하지만 월튼은 두개 다 할 수 있음.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센터였다는 걸 말하고자 했던 것. 아들인 루크 월튼은 레이커스-캐브스에서 선수로 뛰다 지금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