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셀틱스

NBA 동부 컨퍼런스
애틀랜틱 디비전
50px보스턴 셀틱스
(Boston Celtics)
50px브루클린 네츠
(Brooklyn Nets)
50px뉴욕 닉스
(New York Knicks)
50px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Philadelphia 76ers)
50px토론토 랩터스
(Toronto Raptors)
­
250px
보스턴 셀틱스
Boston Celtics
창단1946년
연고지매사추세츠보스턴
컨퍼런스동부 컨퍼런스
디비전애틀랜틱
구단 연고지 변천보스턴 (1946~)
구단명 변천보스턴 셀틱스 (1946~)
구단주보스턴 배스킷볼 파트너스 (Boston Basketball Partners)
단장대니 에인지 (Danny Ainge)
감독브래드 스티븐스 (Brad Stevens)
파이널 우승
(17회)
1957,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6, 2008
컨퍼런스 우승
(21회)
1957,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5, 1986, 1987, 2008, 2010
디비전 우승
(30회)
1957,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72, 1973, 1974,
1975, 1976, 1980, 1981, 1982, 1984, 1985, 1986, 1987, 1988, 1991, 1992,
2005, 2008, 2009, 2010, 2011, 2012
홈구장TD 가든(1995년 건립)[1]
약칭BOS
홈페이지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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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얼터네이트

1 소개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애틀랜틱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보스턴.

NBA의 전통적인 강팀으로 셀틱스라는 팀 이름의 유래는 켈트족을 말하는 것으로, 보스턴에 아일랜드 계통 이민자가 많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17회라는 우승 횟수를 자랑하는 NBA 최다 우승팀이다. 2위는 16회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전성기는 크게 네 번으로 볼 수 있는데, 첫 전성기가 레드 아워백 - 빌 러셀의 시대, 러셀의 은퇴 이후 데이비드 코웬스와 조조 화이트를 앞세워 리그 우승 두 번을 차지한 70년대,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의 래리 버드 시대, 그리고 가장 최근인 빅3 시대 정도로 볼 수 있다. 다만 네 번째 전성기는 우승 횟수 1회에 케빈 가넷의 나이까지 고려하면 앞선 전성 시대만큼의 위용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특히 1959년부터 1966년까지 기록한 8년 연속 우승 기록은 프로 스포츠 리그만 따질 경우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레인저스 F.C.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9년 연속 우승에 이은 2위 기록일 정도로 압도적이다.

무려 21개의 영구 결번이 있고, 우승 배너가 17개나 걸려 있기 때문에 일단 물량 면에서 품격이 다른 게 보스턴의 홈 코트 분위기다. 전통적으로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수비 위주의 블루 컬러 팀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건 선수들의 프로 의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2 라이벌

가장 유명한 라이벌리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로 결승에서만 12회 만났다. 전적은 9승 3패. 이중 7번이 빌 러셀이 있을때 거둔 승리이며 그 이후에는 2승 3패. 그런 만큼 2008년에 셀틱스-레이커스로 결승전이 결정됐을때 팬들과 NBA사무국의 대환호는 필수. 보스턴의 동부 우승으로 셀틱스-레이커스가 결정났을 때에는 보스턴 관중 모두가 'Beat LA (엘에이를 이겨라)'를 외쳤을 정도.

1년에 2번, 그리고 파이널에서만 붙을 수 있는 레이커스와 달리 같은 동부에서 가장 처절하게 치고받았던 라이벌리는 바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필라델피아와 보스턴이라는 동부지역 최고의 전통을 가진 대도시[2]간 자부심 경쟁도 있었는가 하면, 빌 러셀 vs 윌트 체임벌린, 데이브 코웬스 vs 줄리어스 어빙, 래리 버드 vs 줄리어스 어빙 등 선수들 입장에서도 매년 처절하게 파이널 진출을 위해 치고받았던 그런 사이다.

그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의 보스턴은 매년 플레이오프 자체가 도시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었다. 그러다보니 1982년 동부 파이널에서 이 두팀이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뤘으나 결국 보스턴의 패색이 짙어지자 홈에서 팀의 탈락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던 보스턴 홈구장의 팬들이 지금은 우리가 졌지만 레이커스에게는 절대 지지 말아달라라는 뜻으로 'Beat LA'라는 구호를 합창했을 정도.

이 당시에는 팀 간의 라이벌 의식을 넘어 동서부 컨퍼런스 간에도 라이벌 의식이 샘솟았다. 유사한 이유로 올스타전도 단순 쇼를 넘어서 피 튀는 혈전이 벌어졌었고... 여하튼 이런 연유로 보스턴팬들은 어차피 우리가 못 가질 거 동부의 자존심이라도 세워라!라는 까닭으로 Beat LA를 외쳐댄 것. 그런데 필라델피아는 보스턴 팬들의 이런 열화와 같은 성원을 저버리고 결국 LA 레이커스에 4:2로 패하고 만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 필라델피아는 다시 파이널에서 레이커스를 만나 4:0으로 완승하며 보스턴 팬들의 소망(?)을 대신 이뤄준다.

3 역사

3.1 1990년대 이전

1946년에 NBA의 전신인 BAA가 창설되자 보스턴 가든의 주인인 월터 브라운에 의해 창설되었다. 창단 초기인 1948년에 플옵에 진출한 걸 빼고는 거의 안습한 나날을 보내다 1950년에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현 애틀랜타 호크스)의 감독이던 레드 아워백을 감독으로 앉히고 난 뒤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픽으로 밥 쿠지를 뽑으면서[3]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거기에 1951년에는 워싱턴 캐피톨스로부터 빌 셔먼을 트레이드로 영입했고, 1956년에는 마침내 빌 러셀을 1라운드 2순위로 지명하여 강팀으로 변모, 마침내 1956/57 시즌에 첫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에 승승장구한 셀틱스는 1959년부터 1966년까지 총 8번 연속으로 우승하며 1960년대 NBA의 패권을 장악해왔다. 이후 1966년에 레드 아워백 감독이 물러나 단장 일에 전념하게 되자 빌 러셀이 선수 겸 감독으로 취임, 1967년에는 디비전 파이널에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패배하여 결승은 가지 못했으나, 1968년과 1969년에는 존 하블리첵, 돈 넬슨, 샘 존스, 새치 샌더스, 돈 체이니 등의 활약으로 두 차례 리그 우승을 했다.

1969년에 셀틱스 황금기 멤버이던 톰 하인손이 부임한 뒤 초반 2시즌은 플레이오프에 못 갔으나, 존 하블리첵-조조 화이트-데이브 코웬스 3인방을 축으로 하여 1974년과 1976년에 두 차례 우승을 했고, 이후 1977~1979년까지는 잠시 부진하다가 1979년에 1라운드 2픽으로 래리 버드를 지명하면서 팀이 180도 달라지기 시작, 1980년에 1라운드 3픽으로 케빈 맥헤일을 영입한 데 이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부터 로버트 패리시를 영입하면서 '빅3'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1981년, 1984년, 1986년에 세 차례 리그 우승을 하면서 1980년대 초~중반에는 쇼타임 레이커스의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다.

그러나 1986년 우승 이후 셀틱스의 몰락은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1985/86 시즌에 케빈 맥헤일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14경기를 결장하게 되자 결국 팀은 새로운 구심점을 되찾고자 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케빈 맥헤일 이후 신인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1986년 드래프트에서 메릴랜드 대학교의 천재 포워드 렌 바이어스[4]를 전체 2번픽으로 뽑으면서 '보스턴의 향후 10년을 책임질 드래프트'라고 자부했으나, 결국 리그 데뷔도 하기 전에 약물중독 쇼크로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 다음해인 1987년에 전체 22번 픽으로 노스이스턴 대학교 출신 스윙맨 레지 루이스를 뽑으며 미래를 준비하려 하는데...

3.2 1990년대 ~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생각외로 낮은 편인데, 국내에서의 NBA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90년대 중후반이 이 팀에게는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래리 버드가 은퇴하고 1993년에 마지막으로 플옵에 나간 뒤 1995년 플옵 진출을 빼고 2001년까지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못했을 정도니.

이는 사실 래리 버드의 전성기 시절때부터 조금씩 조짐이 보였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셀틱스의 성쇠는 버드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바닥권 팀이었던 셀틱스는 버드 입단 이후 우승후보가 되었고, 버드가 부상으로 내리막을 걸으면서 함께 몰락했다. 버드가 최정상급 선수였던 88시즌까지 셀틱스는 비록 동부컨퍼런스 결승에서 피스톤즈에 석패했지만 57승을 하며 강호로 군림했다. 그러나 89시즌 개막 5경기만에 버드가 부상으로 아웃되자[5] 42승으로 추락하고, 피스톤즈에게 1라운드에서 허무하게 패했다. 버드와 맥헤일이 부상없이 마지막으로 같이 뛰었던 90시즌에 57승을 거두긴 했으나 떠오르는 신진스타 패트릭 유잉이 이끄는 닉스에게 1라운드에 2승3패로 석패하고, 91시즌에는 버드&맥헤일의 부상에도 분발해 56승을 거두고 2라운드까지 나갔으나 피스톤즈에게 6경기만에 패하고 만다.

그 동안 셀틱스의 차세대 기둥으로 성장하던 스윙맨 레지 루이스는 데뷔 6년차이던 1993년 플옵에서 샬럿 호네츠와의 경기 도중 쓰러지고도 회복되나 싶더니 그해 7월에 연습시합 도중 심장마비로 2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렇게 세대교체의 구심점이 될 젊은 인재를 허무하게 잃고 버드, 맥헤일, 패리쉬 3인방이 30대가 넘어가면서 체력과 힘이 떨어지기 시작한 보스턴 셀틱스는 디 브라운, 릭 폭스 등을 주축으로 삼으며 1994년에 애틀랜타 호크스의 심장으로 알려진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 도미니크 윌킨스를 영입해 보기도 하고, 1997년에는 켄터키 대학교의 명장으로 알려진 릭 피티노를 사장 겸 감독으로 영입하여 그 난관을 타개해보자 했으나, 그 효력을 보지 못하고 암담한 나날을 보내왔다.

1998년 폴 피어스를 드래프트 10번으로 지명한 이후 조금 성적이 오르기 시작, 2002년에 오랜만에 5할 승률을 넘기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가는 성과를 거둔다. 그러나 그 이후, 폴 피어스와 함께 팀을 이끌어 줄 거라고 믿었던 포워드 앤트완 워커[6]

가 전격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되고 나서 다시 성적이 떨어졌고 2004년에 닥 리버스 감독이 부임해 그 시즌에는 디비전 1위를 하기도 했으나 다음 2년동안 또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2007-08 시즌이 시작되기 전 새로 취임한 과거 버드-맥헤일-패리쉬 시대의 조연이었던 대니 에인지 단장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와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개고생만 하고 있던 케빈 가넷레이 알렌을 영입하는데 성공, 셀틱스를 외롭게 지키고 있던 피어스와 가넷, 알렌이 만나 빅3를 구축한다. 여기에 인성문제가 있었지만 가능성은 확실했던 켄터키 대학교의 포인트가드 라존 론도가 빅3의 시너지효과를 입어 크게 성장하면서 2008년에 바로 우승을 차지한다. 다만 정규시즌은 66승 16패로 전체 1위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상당히 고생해야했는데, 1라운드에서 정규시즌 37승 45패를 기록했던 애틀란타 호크스에게 원정 경기를 전부 내주며 7차전까지 가며 힘을 빼야했다. 홈 경기를 모조리 잡으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이어 2라운드에서 만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도 원정 경기를 전부 내주며 7차전까지 갔으며, 7차전에서 르브론 제임스폴 피어스의 엄청난 쇼다운 끝에 신승을 거두며 간신히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컨파에서 만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상대로 2차전에서 플레이오프 홈 전승이 깨져버리며 위험했지만, 3차전에서 바로 원정 전패 기록을 깨버렸고 결국 4:2로 디트로이트까지 격파하며 전통의 라이벌 LA 레이커스를 파이널에서 만나게 되었다. 레이커스를 상대로 1차전에서 폴 피어스가 무릎을 다쳐 시리즈 아웃되는듯한 아찔한 순간이 있었지만 라커룸으로 들어갔던 피어스가 컴백하자 오히려 TD 가든의 분위기가 달아올랐으며, 그 기세를 몰아 1,2차전 홈 경기를 잡아내었다. 그리고 원정에서 3,4,5차전이 열렸는데, 3차전을 내줬지만 4차전에서 한때 24점차까지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뒤집어내는 대역전극을 보여주며 사실상 시리즈의 승기를 가져오게 된다. 결국 5차전을 패배했지만 홈으로 돌아온 6차전에서 압승을 거두며 감격적인 파이널 우승에 성공했다. 많은 선수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우승을 만끽했으며, 케빈 가넷은 "Anything is possible!!" 이라는 보스턴 팬들과 가넷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만한 명대사를 남겼다.

이후 애틀랜틱 디비전에서는 꾸준히 1위를 하는 동부의 강팀으로 다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리핏을 노릴 기세로 달렸던 08-09 시즌에는 케빈 가넷이 시즌 도중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62승 20패 동부 2위로 정규시즌을 끝마쳤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시카고 불스를 만나 역대급 혈전을 벌인끝에 간신히 4:3 승리를 거두며 2라운드에 진출했으나, 다음 상대인 올랜도 매직에게 결국 홈에서 7차전을 치르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패배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09-10 시즌에는 정규시즌 50승 32패 동부 4위로 이전의 2시즌에 비해 꽤 아쉬운 성적이었던지라 플레이오프에서 어렵지 않겠느냐하는 예상이 많았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폴 피어스의 버저비터를 필두로 마이애미 히트를 4-1로 제압하고, 2라운드에서 동부 1위였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홈코트 어드밴티지도 없고 2-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내리 3연승을 거두며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난 동부 올랜도 매직에게 역시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없음에도 1~3차전을 먼저 따내는데 성공했으며, 비록 4,5차전을 내주며 주춤하긴 했지만 6차전 홈 경기에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파이널에 진출했다. 파이널에서 2년전에 이어 LA 레이커스를 또 만나게 되었는데, 엎치락 뒤치락하는 접전끝에 시리즈 스코어 3:2 우위를 점하며 6,7차전이 원정경기이긴 했지만 우승에 가까워졌었다. 그러나 6차전 1쿼터 도중 핵심센터 켄드릭 퍼킨스가 부상으로 시리즈 아웃되더니 패배하면서 암운이 드리워졌고, 7차전에서 대혈전을 펼쳤지만 결국 레이커스의 복수를 허용해야만 했다. 이 3시즌간 1회 우승, 1회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왕조라 부르기엔 뭔가 모자란 성적을 거둔데다 2010년부터는 마이애미 히트르브론 제임스크리스 보쉬를 불러 신흥 빅3를 만드는 바람에 NBA 우승과는 갈수록 멀어졌다. 빅3의 구성원들은 늙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레이 알렌이 론도와의 불화로 12-13 시즌부터 히트에 합류하면서 해체된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펼쳐진 빅3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1-12 시즌은 보스턴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단축시즌에서 39승 27패 동부 4위[7]를 기록하며 많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많았지만, 1라운드에서 만난 상대인 애틀란타 호크스에게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4-2로 승리했고, 2라운드는 시즌 전체 1위 시카고 불스를 업셋하고 올라온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격파하며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갔다. 컨파에서 만난 마이애미 히트는 비록 크리스 보쉬가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입은 부상으로 시리즈 초중반 결장했다지만 매우 힘든 상대였으며, 실제로 1,2차전 원정 경기를 내주며 어렵게 시리즈를 시작했다. 특히 2차전은 라존 론도의 득점이 대폭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배했기에 더욱 아쉬웠다. 그러나 3차전부터 가넷, 론도, 피어스등의 활약으로 저력을 발휘하여 내리 3연승을 거두는데 성공하면서 기적적으로 파이널 진출을 눈앞에 두게되었고, TD 가든에서 열리는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나 했지만, 각성한 르브론 제임스의 대활약에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결국 7차전 원정 경기에서 접전끝에 체력이 방전되며 탈락, 파란만장했던 시즌을 끝마치고 말았다.

3.2.1 2013-14 시즌

2012-13 시즌이 끝나고 닥 리버스 감독과 가넷의 트레이드 루머가 나왔다. 그 루머란 리버스 감독과 가넷이 LA 클리퍼스로 가고, 저베일 맥기와 더불어 축복받은 몸을 병신같은 EQ로 말아먹는 디안드레 조던과 드래프트 픽이 셀틱스로 간다는 것. 하지만 감독과 선수가 함께 트레이드 될 수는 없다는 사무국의 입장에 결국 리버스 감독만이 드래프트 픽을 대가로 LA 클리퍼스로 떠났고, 빅3의 남은 일원인 케빈 가넷과 프랜차이즈 스타 폴 피어스마저 제이슨 테리와 묶어 브루클린 네츠로 보내고 본격 리빌딩에 들어갔다. 셀틱스가 받아오는 것은 크리스 험프리스, 제럴드 월러스, 키스 보건스(사인 앤 트레이드), 마션 브룩스, 크리스 조셉, 네츠의 1라운드 픽 3장(2014, 2016, 2018)이다.

라존 론도도 부상에서 뒤늦게야 돌아왔고, 에이버리 브래들리, 자레드 설린저가 조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분전했지만 그 외에는 경쟁력 없는 선수단에 힘입어 라이벌 레이커스와 함께 3할 승률을 기록하며 사이좋게 플레이오프 탈락. 최종 성적은 유타 재즈와 동률인 25승 57패(.302) 동률인 재즈와 뒤에서 공동 4위의 승률이며, 드래프트 픽 순위를 위한 동전 던지기에서는 패배함으로서, 순위대로라면 전체 5위의 드래프트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의 가드 마커스 스마트를 뽑으면서 론도를 트레이드 시킬 의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3.2.2 2014-15 시즌

시즌 1/4을 보낸 시점에서 동부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브래들리, 설린저, 올리닉 등 유망주들을 육성중이고 좋은 조직력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승부처에서 득점을 해줄 에이스가 없다 보니 4쿼터에 털리는 경기들이 많다. 리더인 론도는 루키시즌 이래 처음으로 평균득점이 한자리대로 떨어지는 등 위력이 감소한 상태.

2014년 12월 19일 론도가 댈러스로 트레이드되었다. 셀틱스는 론도와 드와이트 파월을 보내고 자미어 넬슨, 브랜든 라이트, 제이 크라우더와 추가로 2015 드래프트 1라운드 티켓, 2016 드래프트 2라운드 티켓, 그리고 1290만 달러에 달하는 트레이드 익셉션도 받았다.

그렇게 본격 탱킹모드에 들어가는 듯 했으나 다른 동부팀들이 의외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노선을 전환, 후반기가 시작되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기간에 피닉스 선즈아이제아 토마스를 영입하며 플레이오프 진출 욕심을 보여준다. 그 결과 시즌 막판에 6연승을 기록하며 동부 7위인 40승 42패로 시즌을 마치며 진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한건 좋았으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스윕당하며 광탈. 로스터 정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은 상황이라 오프시즌에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3.2.3 2015-16 시즌

2015-16 시즌을 앞두고 아미르 존슨과 데이비드 리를 각각 FA와 트레이드로 영입해 빅맨진을 강화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선전하고 있다.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2차 연장까지 가는 혈전끝에 패배하기는 했지만 젊은 선수들의 분전이 돋보이는 경기였다.

2월 14일 시점에서 32승 23패로 포스트시즌 커트라인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1월 중순 이후로는 마커스 스마트를 필두로 한 리그 정상급의 수비를 앞세워 연승가도를 달리기도 하는 등 상당히 빠른 리빌딩 속도를 보이며 전반기를 동부 3위라는 호성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아이제아 토마스도 팀의 주전 가드로 활약하며 4월 2일까지 15경기 연속 20득점 이상을 퍼부면서 팀의 순위 상승을 이끄는 중이다. 그리고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한번도 홈코트에서 져본적이 없는 스테픈 커리의 골든스테이트를 109-106의 스코어로 잡아내며 골든스테이트의 홈경기 연승을 끊었을 뿐 아니라 성장하는 신진세력의 무서움을 과시했다.

4월 14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마이애미 히트와의 홈 경기에서 전반전 종료기준 24점차 리드를 당했지만 후반전 대역전에 성공하며 98-88로 승리를 거뒀다. 최종성적은 48승 34패. 그런데 문제는 보스턴과 동부 3~6번 시드 다툼을 하던 애틀란타 호크스, 샬럿 호네츠, 마이애미 히트가 똑같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결국 4팀 동률로 타이브레이커까지 따져본 끝에 보스턴은 동부 5번시드로 플레이오프를 시작하게 되었고, 정규시즌 상대전적에서 1:3으로 밀렸던 상대인 4번시드 애틀란타를 1라운드에서 만나게 되었다.

결국 정규시즌 상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애틀란타에게 시리즈를 2:4로 내주게 된다[8]. 그나마 3,4차전 토마스의 대활약으로 반격을 한것까지는 좋았지만, 5차전에서 그 토마스가 부진에 빠지며 대패했고 6차전에서 보스턴 선수들의 슛감이 단체로 난조를 보였다. 그래도 브래드 스티븐스 감독 집권기간 동안 성적이 점점 좋아지고 있고 미래가 더 기대되는 팀이기에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프시즌을 잘 보내는 것이 선결과제겠지만.

16-17시즌을 앞두고 애틀란타에서 매물로 나온 알 호포드와 4년 1억 1300만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계약기간이 만료된 케빈 듀란트의 유력한 행선지로 꼽혔지만[9] 듀란트는 결국 골스행을 택했다.

4 영구결번

보스턴 셀틱스의 영구결번
0012361014
로버트 패리시월터 브라운레드 아워백데니스 존슨빌 러셀조조 화이트밥 쿠지
15161718192122
톰 하인슨새치 샌더스존 하블리첵데이브 코웬스돈 넬슨빌 셔먼에드 매카울리
23242531323335
프랭크 램지샘 존스K.C 존스세드릭 맥스웰케빈 맥헤일래리 버드레지 루이스
  • 1번(월터 브라운) - 보스턴 셀틱스의 초대 구단주이며 보스턴 셀틱스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사람이다. 구단 창단된 46년부터 63년까지 보스턴은 6번의 우승을 했다.
  • 2번(레드 아워백) -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 그 자체. 그는 1950년부터 2006년 사망시까지 감독(1966년까지), 단장(1954~1984), 사장(1970~1997/2001~2006), 부회장(1984~2001)으로 종횡무진 활동하면서 총 17개의 우승 반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 3번(데니스 존슨)
  • 6번(빌 러셀) -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NBA 8연패통산 11회 우승을 일궈낸 반지의 제왕.
  • 10번(조조 화이트)
  • 14번(밥 쿠지)
  • 15번(톰 하인슨) - 보스턴 셀틱스의 선수(1956~1965)와 감독(1969~1978)으로써 총 10개의 우승 반지를 가진 '셀틱스 맨'.
  • 16번(새치 샌더스)
  • 18번(데이브 코웬스)
  • 19번(돈 넬슨) - 2010년까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닥치고 공격농구를 하던 바로 그 양반이다.
  • 21번(빌 셔먼)
  • 22번(에드 매카울리)
  • 23번(프랭크 램지)
  • 24번(샘 존스) - 뱅크샷의 달인으로 유명했던 슈터. 커리어 우승 횟수 10회로 역대 선수 중 빌 러셀의 11회 다음 2위이다.
  • 25번(K.C 존스)
  • 31번(세드릭 맥스웰)
  • 33번(래리 버드) - 역대 2위의 스몰 포워드로 정교한 슛팅과 엄청난 BQ를 가졌던 셀틱스의 전설.
  • 35번(레지 루이스) - 당시 래리 버드를 비롯한 주축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노쇠화로 몰락해가던 보스턴의 희망이었던 선수였다. 왜냐면 그가 한창 전성기를 달려가던 시절에 셀틱스는 비록 파이널은 못가도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이었기 때문이다. 91-92 시즌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셀틱스의 미래를 책임질 기대주였으나, 루이스는 9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 샬럿 호네츠와 경기도중 갑자기 심장발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회복되는듯 보였지만 같은해 7월 27일 2차 발작을 일으켜 다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그의 사망후 보스턴은 2001년까지 플레이오프에 딱 한번 진출했고, 아예 00-01 시즌까지 5할 이상의 승률도 챙기기 못했다. 그의 사망은 레드 아워벡의 시대(감독으로서가 아닌 유능한 구단 행정가로써)도 끝났음을 뜻했다.

여기에 영구 결번은 아니나 1953년부터 1990년까지 보스턴 셀틱스의 경기를 중계한 케스터인 조니 모스트,[10] 그리고 짐 로스컷오프 등이 특별 영구 결번식으로 대접받고 있다.[11]

LA 레이커스와 더불어 NBA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문팀이기에 당연히 영구결번이 많을 수 밖에 없으나, 단지 오래 활동했을뿐 큰 활약이 없었던 선수나 시즌 중 갑자기 사망한 선수들까지 애도 차원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영구결번이 지나치게 많은 것도 사실이다. 라이벌인 LA 레이커스만 해도 영구결번 선정에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10명이 채 되질 않는다. 같은 지역 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과는 정반대.

여기에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폴 피어스의 경우는 은퇴시 99% 영구결번 확정이라고 여겨진다. 우승도 했고, 선수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커리어를 보냈으며, 말년에 타의로 브루클린 네츠로 떠났지만 보스턴에서만 15년을 뛰며 헌신했다. 명감독 레드 아워백의 9회 우승 횟수는 한동안 안 깨지다가 2010년 LA 레이커스의 파이널 우승으로 필 잭슨이 깼다. 빌 러셀은 11회 우승의 명 센터로 레드 아워백의 은퇴 후 선수 겸 감독으로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도 했다. 레드 아워백 밑에서 9회 우승, 선수 겸 감독으로 2회 우승으로 선수로서는 최다 우승 횟수를 자랑한다.[12]

5 기타

  • NBA 역사상 최초로 주식회사 형태로 확립된 구단이다.

6 2016-17 시즌 선수단

2016-17 시즌 보스턴 셀틱스 선수단
감독 브래드 스티븐스
코치 제이미 영, 제이 라라냐가, 월터 맥카티, 마이카 슈루스베리, 제롬 알렌
가드 0.에이브리 브래들리 4.아이제아 토마스 9. 드미트리우스 잭슨 12.테리 로지어 36.마커스 스마트
포워드 7. 제일런 브라운 8.요나스 예레브코 30. 제럴드 그린 55.조단 미키 90.아미르 존슨 99.재 크라우더
포워드-센터 41.켈리 올리닉 42. 알 호포드 44.타일러 젤러
가드-포워드 13.제임스 영
  1. NHL 보스턴 브루인스와 공용
  2. 뉴욕이 미국을 대표하는 대도시긴 하지만, 보스턴은 식민지 시절부터 생겨난 미국 최고(最古)의 도시중 하나고, 필라델피아는 독립 미국의 수도가 됐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다. 그러니 이 두 도시 시민들간 자존심 대결이 장난 아니다. 당연하겠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뉴욕에게도 자부심으로는 안진다.
  3. 이 드래프트에서 셀틱스는 척 쿠퍼라는 흑인 선수도 지명했는데, 이는 NBA 역사상 최초이다.
  4. 드래프트 당시 마이클 조던에 비견되던 선수였다. 물론 여기서 조던은 우리가 아는 완전치 조던이 아니라 초창기 조던으로 85시즌 총득점 1위, 86플옵에서 한경기 역대 최다 득점을 쏟아붓던 득점기계 유망주
  5. 이때 2옵션인 맥헤일도 6경기만 소화했다.
  6. 그 유명한 96 드래프티로 2년차이던 98시즌에 벌써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파워포워드의 체격과 파워에 스몰포워드의 기술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선수로 기대를 받았다. NBA 라이브 99 게임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 그러나 게으른 천재형 선수였던 워커는 체중조절 실패와 더불어 점점 삼점슛 빈도수를 늘려가는 등 나태함을 보이며 효율이 떨어졌다. (물론 워커가 본 포지션인 파워포워드치곤 정상급의 슈팅력을 갖고 있었으나, 진짜 슈터 수준은 아닌데도 한때 리그에서 삼점을 가장 많이 시도할 정도로 난사를 해댔다) 댈러스로 트래이드될 당시엔 팀내 입지가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 올스타급과 주전급 중간 정도는 되었기에 댈러스에서 특급식스맨으로 위력을 보였다.
  7. 디비전 우승자격으로 4위였으며 실제 성적은 애틀란타에 밀려 5위. 그것 때문에 PO 1라운드 홈코트 어드밴티지가 애틀란타에게 넘어갔다.
  8. 참고로 애틀란타는 셀틱스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1958년 이후 첫 승리를 기록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9차례 맞대결을 펼쳤으나 모두 패배했었다.
  9. 듀란트의 등번호인 35번은 故 레지 루이스의 번호로서 셀틱스 영구결번인데 루이스의 어머니는 듀란트가 셀틱스에 합류한다면 35번을 써도 좋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10. 저 유명한 Havlicek steals it!의 주인공이시다. 2차 세계대전에서 공군으로 참전해서 B-24사수를 해서 훈장도 여럿타셨다.
  11. 이 선수는 원래 선수시절 18번을 달았고, 데이브 코웬스와 공동 영구결번이었다. 하지만 후에 보스턴은 로스컷오프의 별명인 Loscy가 새겨진 유니폼을 걸어주었다.
  12. 감독+선수까지 합치면 역대 최다 우승은 감독으로 11번 우승하고 선수로서 2번 우승한 필 잭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