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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50 Greatest Players in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History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 in 1996. ESPN / 영상 | ||||||
네이트 서몬드 | 네이트 아치볼트 | 데이브 빙 | 데이비드 로빈슨 | 데이브 코웬스 | 돌프 세이즈 | 레니 윌킨스 |
래리 버드 | 로버트 패리시 | 릭 베리 | 마이클 조던 | 매직 존슨 | 모제스 말론 | 밥 페팃 |
빌 러셀 | 빌 셔먼 | 빌 커닝햄 | 빌 월튼 | 샤킬 오닐 | 샘 존스 | 스카티 피펜 |
아이재아 토마스 | 얼 먼로 | 엘빈 헤이즈 | 엘진 베일러 | 오스카 로버트슨 | 웨스 언셀드 | 윌리스 리드 |
윌트 체임벌린 | 월트 프레이저 | 제리 루카스 | 제리 웨스트 | 제임스 워디 | 조지 거빈 | 조지 마이칸 |
존 스탁턴 | 존 하블리첵 | 줄리어스 어빙 | 카림 압둘 자바 | 칼 말론 | 케빈 맥헤일 | 클라이드 드렉슬러 |
폴 아리진 | 패트릭 유잉 | 피트 마라비치 | 하킴 올라주원 | 할 그리어 | 찰스 바클리 | 밥 쿠지 |
파일:Attachment/클라이드 드렉슬러/Drexler.jpg
이름 | 클라이드 드렉슬러(Clyde Austin "The Glide" Drexler) |
생년월일 | 1962년 6월 22일생 |
키 | 201cm (6 ft 7 in) |
체중 | 95kg (210 lb) |
출신학교 | 휴스턴 대학교 |
포지션 | 슈팅가드/스몰포워드 |
드래프트 | 1983년 드래프트 1라운드 14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지명 |
소속팀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1983~1995) 휴스턴 로키츠 (1995~1998) |
지도자 경력 | 휴스턴 대학교 (1998~2000, 감독) |
등번호 | 22번 |
수상내역 | NBA All-Star 10회 (1986,1988-1994,1996-1997) All-NBA First Team (1992) All-NBA Second Team 2회 (1988,1991) All-NBA Third Team 2회 (1990,1995)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NBA 챔피언 (1995) 명예의 전당 헌액 |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영구결번 | |
No. 22 | |
휴스턴 로키츠 영구결번 | |
No. 22 |
1 소개
전 NBA의 농구선수로, 80~90년대에 이름을 날린 전설의 슈팅 가드. 포틀랜드 구단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으며 NBA가 선정한 위대한 50인의 농구선수중 한명이기도 하다. 별명은 The Glide.
2 커리어
태어난 곳은 뉴올리언스였지만 휴스턴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휴스턴 토박이로, 대학도 휴스턴 대학교를 선택했다. 하킴 올라주원과 함께 휴스턴 대학 농구팀, 별칭 "Phi Slama Jama" 를 강호로 이끌었고 1983년에 NCAA 토너먼트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의 로렌조 찰스에게 결승 덩크를 맞고 52-54로 패배했다.
이후 NBA 드래프트에 참가한 드렉슬러는 전체 14번째로 포틀랜드의 지명을 받았다. 루키 시즌에는 다른 선배 가드들의 백업으로 평균 17분 정도밖에 뛰지 못했지만 2년차부터 주전으로 발탁되며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 데뷔 이후 세번째 시즌에 올스타 가드로 자라났다. 드렉슬러의 성장과 함께 포틀랜드는 우승에 도전하는 팀으로 올라섰으며 1990년에 59승 23패로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NBA 파이널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이재아 토마스가 지휘하는 전 시즌 챔피언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1-4로 밀리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듬해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매직 존슨의 LA 레이커스와 만나 패배한 이후 절치부심한 드렉슬러는 NBA 퍼스트 팀에 선정될 정도의 활약을 하며 1992년에 다시 한번 파이널 무대를 밟으나, 이번 상대는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가 샘 보위라는 유리몸 센터를 선택하며 지나친 선수가 이끄는 시카고 불스였다. 드렉슬러는 시리즈 평균 24.8득점/7.8리바운드/5.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선전했으나 당시 최전성기였던 마이클 조던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1] 결과는 2-4로 다시 준우승. 그와는 별도로 조던과 함께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드림팀]멤버로 활약하여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두번째 파이널에서 패배한 이후 부상으로 기량이 감퇴하기 시작한 드렉슬러는 구단에게 우승권 팀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포틀랜드는 결국 1995년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휴스턴 로키츠로 그를 트레이드시켰고, 드렉슬러는 고향팀에서 예전의 동료였던 올라주원과 다시 결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플레이오프에서 평균 20.5득점을 기록하며 올라주원을 잘 도운 드렉슬러는 파이널에서 올랜도 매직을 꺾으며 꿈에 그리던 우승컵을 안게 되었다.
그 이후에는 부상을 겪으며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계속 휴스턴의 주전으로 뛰었고 1998년에 모교인 휴스턴 대학교의 감독직 제의를 받으며 깔끔하게 은퇴했다.
3 은퇴 이후
1998년에 휴스턴 대학교의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감독생활 2년동안 19승 37패라는 안습한 성적을 거두고 사임했다.
2004년에는 명예에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0년에는 1992년 드림팀 멤버로써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4 플레이스타일
조던의 하위호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게임리딩, 득점,리바운드 등이 전체적으로 뛰어난 만능선수였다. 최전성기때는 경기당 27.2득점, 7.9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했을 정도. 다만 수비는 스틸은 잘했지만 한번도 올 디펜스 팀에 오르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준수한 수비수였지만 조던과 존 스탁턴과 전성기가 겹치는 데다 후배인 게리 페이튼까지 있었다....
그러나 리바운드 기록,, 특히 공격리바운드는 조던보다 다소 우세했다. 또 하나 조던보다 낫다고 평가받은 건 외곽슛인데, 성공률은 의외로 크게 차이는 안 났지만(오히려 커리어 전체로 보면 조던이 살짝 높다.많이 안 쏜 탓이 크지만.) 92시즌 이후 꾸준히 경기당 한 개 이상 성공시키며 조던과 달리 주요무기 중 하나로 활용했다. 실제로 92파이널 당시에도 해설진이 외곽슛 능력의 차이를 지적했고, 드렉슬러는 조던에게 공간을 주며 돌파를 견제하고 외곽은 허용하는 수비를 했는데 빡친 조던이 최다 삼점슛 기록을 1차전부터 세우며 외곽슛에서조차 드렉슬러를 발라버린다. 앞서 언급한대로 결코 수비가 약한 선수다 아니었음에도 조던에게 시리즈 평균 35점을 내주며 안드로메다 관광을 탔지만, 본인도 자기몫을 해주긴 했다. 상대가 워낙 괴물이라 그렇지...
- ↑ 조던의 92년 파이널 평균 기록은 35.8득점 4.8 리바운드 6.5 어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