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러셀

The 50 Greatest Players in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History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
in 1996. ESPN / 영상
네이트 서몬드네이트 아치볼트데이브 빙데이비드 로빈슨데이브 코웬스돌프 세이즈레니 윌킨스
래리 버드로버트 패리시릭 베리마이클 조던매직 존슨모제스 말론밥 페팃
빌 러셀빌 셔먼빌 커닝햄빌 월튼샤킬 오닐샘 존스스카티 피펜
아이재아 토마스얼 먼로엘빈 헤이즈엘진 베일러오스카 로버트슨웨스 언셀드윌리스 리드
윌트 체임벌린월트 프레이저제리 루카스제리 웨스트제임스 워디조지 거빈조지 마이칸
존 스탁턴존 하블리첵줄리어스 어빙카림 압둘 자바칼 말론케빈 맥헤일클라이드 드렉슬러
폴 아리진패트릭 유잉피트 마라비치하킴 올라주원할 그리어찰스 바클리밥 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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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현재.

이름윌리엄 펠튼 러셀
William Felton Russell
생년월일1934년 2월 12일
신체 조건206cm, 102kg
포지션센터
드래프트1956년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세인트루이스 호크스에 지명[1]
선수경력보스턴 셀틱스 (1956~1969)
지도자 경력보스턴 셀틱스 (1966~1969, 감독)
시애틀 슈퍼소닉스 (1973~1977, 감독)
새크라멘토 킹스 (1987~1988, 감독)
수상내역정규시즌 MVP 5회
All-NBA First Team 3회
All-NBA Second Team 8회
NBA All-Defensive First Team 1회(1969)[2]
NBA All-Star Game MVP(1963)
NCAA champion 2회
NCAA Tournament Most Outstanding Player(1955)
그리고 11회 NBA Champion
등번호6번
1958년 NBA 정규시즌 MVP
밥 쿠지빌 러셀밥 페티트
1961년 NBA 정규시즌 MVP
윌트 체임벌린빌 러셀빌 러셀
1962년 NBA 정규시즌 MVP
빌 러셀빌 러셀빌 러셀
1963년 NBA 정규시즌 MVP
빌 러셀빌 러셀오스카 로버트슨
1965년 NBA 정규시즌 MVP
오스카 로버트슨빌 러셀윌트 체임벌린
1963년 NBA 올스타 MVP
밥 페티트빌 러셀오스카 로버트슨
보스턴 셀틱스 영구결번
No.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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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칼 야스트렘스키빌 러셀톰 시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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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3]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

전직 NBA 농구 선수이자 감독. 명문 구단 보스턴 셀틱스에 11번의 우승(게다가 NBA 8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이라는 어마어마한 영광을 안겨준 전설 중의 전설[4]. 우승이 최고의 지상과제인 프로스포츠, 그 중에서도 선수 평가에서 우승이 차지하는 위상이 어마어마한 NBA의 역사를 통틀어 그보다 더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반지를 손아귀에 집어 넣은 선수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 마저도.

역대 NBA 선수 서열논쟁에서 마이클 조던 다음에 위치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일명 "3대 센터(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카림 압둘자바)"의 필두로 불린다.[5] '센터 놀음' 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센터의 비중이 높은 스포츠가 농구이며, 따라서 센터 포지션은 NBA의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도 가장 두터운 레전드들의 숫자를 자랑한다. 하지만 빌 러셀은 그 모든 위대한 센터들 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센터 중 한명으로 손꼽히며 압둘자바, 체임벌린과 함께 그 지분을 삼분하고 있다. 비록 공격능력으로는 그 둘보다 떨어지지만, 수비력은 카림,윌트를 압도하기에 독보적인 11개의 우승반지를 획득할수있었다.

그야말로 위대한 승리자라고 부를 수 있는 전설 중의 전설.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다.

2 플레이 스타일

농구에 있어서 센터란 무엇인가라는 걸 전략적으로 정의한 사람중의 한명으로, 현대 농구에서 센터의 팀 수비에 대한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쓴 선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정확한 타이밍의 블록 슛이 트레이드 마크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것보다 무시무시한것은 블록 슛을 팀 전략의 바탕으로 삼아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 일명 "수비의 심리학"이라고도 하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도저히 뚫을 수 없어보이는 블록슛 한번은 상대가 골밑으로 못들어 오게 하고, 그것은 상대의 필드골 성공률을 낮추므로 승리를 불러온다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센터가 수비때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모든 기본기와 움직임은 러셀이 정립했다고 보면 된다. 농구를 모르는 위키러들이 이해를 못하겠다면 슬램덩크를 펼쳐놓고 채치수의 플레이를 다시 보면 된다. 그 플레이를 1960년대부터 해왔던 것. 당연하지만 한 경기 100점의 사나이 윌트 체임벌린과 라이벌 관계였다.

하지만 그가 NBA에 데뷔한 시기가 하필이면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농구계에서도 흑인들은 수비나 리바운드 같이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감독인 레드 아워백이 그의 리바운드 한개를 2점으로 생각하라는 등 인종차별에 대해서 벽이 되어주고, 그의 능력과 인성을 안 동료들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기사가 쓰여졌다고 경기를 거부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보여줬으며, 이것은 자연히 팀워크로 이어져 우승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통산 평균은 15.1점 22.5리바운드 4.3어시스트... 이건 이미 괴물 수준. 무엇보다 그의 진가인 블록 슛은 은퇴후인 1974년이나 되어야 공식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 것도 아닌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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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반지들의 위엄. 리얼 반지의 제왕.

그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스턴 셀틱스에서 보냈기 때문에 보스턴에서는 그의 번호가 영구결번이 되어있다. 미국 4대 메이저 스포츠에서 전무후무한 8연패를 하기도 했으며 NBA에서 보낸 13시즌중 11시즌을 우승. 그중 2번은 선수 겸 감독의 신분으로 우승했다. 또한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도 하다.

워낙 오래된 플레이어라 경기 전체를 보기는 힘들지만 기록에서 보여지는 단점은 바로 자유투 성공률. 시도횟수에비해 성공율은 56.1%로 상당히 저조했다. 야투율은 겉으로 보기에는 낮아보이나 빌 러셀이 뛰던시기인 50~60년대는 리그의 전체적인 평균 야투율이 저조했고(윌트 체임벌린은 공격부분에있어서 그냥 괴물이었다) 실제로 앞선 레전드 센터인 조지 마이칸의 야투율또한 4할대 초중반에불과했었다. 빌 러셀은 선수생활동안 야투율 시즌 TOP10에 4번이나 선정되었는데 이는 역대급 센터공격수인 데이비드 로빈슨과 같고 하킴 올라주원은 2번 패트릭 유잉은 3번으로 오히려 빌 러셀보다 그 수가적다. 물론 공격시도 횟수에서 조금 차이나지만 로빈슨, 올라주원,유잉등은 센터포지션에서 최상급의 공격수임을 감안해야한다. 즉 겉으로 보이는 수치만보고 빌 러셀의 공격력을 과소평가할수는 없다는것.

3 체임벌린과의 라이벌리

한국에서는 기록이란 기록은 전부 갈아 쓴 체임벌린에 비해 후달리는 이미지가 있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그딴거 없다. 오히려 우승 반지가 체임벌린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체임벌린보다 더 뛰어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개인기록에서 뒤지는 러셀이 체임벌린보다 뛰어난 선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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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5월 26일 윌트 체임벌린과.

체임벌린과 거의 동시대의 선수였는데 1:1 경기에서는 체임벌린에게 많이 졌다고 하는데, 실제 팀 대 팀 경기에서는 개인 스탯에는 체임벌린에게 뒤졌지만 팀 전적에서는 러셀이 더 앞섰다. 둘은 정규시즌에서 94번을 만났고, 러셀이 57승 37패로 우위를 점했고 스탯은 러셀은 체임벌린을 상대로 14.9점을 체임벌린은 러셀을 상대로 29.9점을 넣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49번을 만나 러셀이 29번을 승리했고 러셀은 체임벌린을 상대로 14.9점을 기록했다. 반면 체임벌린은 20번을 승리했고, 러셀을 상대로 25.7점을 득점했다.

그리고 체임벌린의 인간이 아닌 듯한 운동능력에 가려진 바가 있어서 그렇지 이 할배도 운동능력이 ㅎㄷㄷ하다. 자유투 라인에서 떠서 레이업을 하는데 이미 머리가 백보드 높이였다고...[6] 여담으로 고등학교 시절엔 메이저리그의 전설이자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감독인 프랭크 로빈슨과 농구팀에서 같이 뛰었다고 한다.

실제로 개인 능력이 좋기도 하지만, 팀 동료들의 능력을 사용할 줄 안다. 위의 상술한 플레이에서 좀 더 보충을 하자면 그는 리바운드 후 속공 패스를 자주 사용하였고, 블록을 칠 때도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주게하여 속공 전개를 펼치게 하였다. 즉, 그는 궁극의 팀 플레이어였다.

4 역대 최고의 수비수

당연하겠지만, 그의 수비력은 NBA역사를 상징할 만큼 압도적인 역대 1위의 수비수이다. 수비수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스탯은 NBA에서는 MLB등과 다르게 아직없고 빌 러셀은 비교적 초창기 선수이기에 그당시 디펜시브 레이팅도 존재치 않았고 그나마 1개있는 디펜시브 윈셰어 수치가있는데 이 수치에서 비교적 적은 13시즌을 뛰고도(윈셰어는 비율이 아닌 누적수치, 당연히 커리어가 긴 선수가 높게나온다.)정규시즌 133.64로 압도적인 1위[7]를 보이고 있으며 플레이 오프 디펜시브 윈셰어 역시 21.76이라는 엄청난 수치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있다.[8] 2차적인 수비수치뿐만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스탯이라고 할만한 블락,스틸등이 집계되지않았음에도 디펜시브만으로 133이라는 엄청난 윈셰어를 보이고 있다.

실제 경기에서의 빌 러셀의 수비는 당시 영상등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고, 워낙 오래전이라 직접 경기를 직관해본 세대들이 대부분 적게 잡아봐야 70대이고 80~90대 세대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식의 표준화가 어렵다 . 하지만 얼마없는 영상물과 당시 뉴스와 신문같은 언론매체, 그와 함께 경기했던 동시대 다른 레전드 선수들[9]의 증언등으로 추정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맨투맨 디펜스는 지옥과 같은 수준으로 맘만 먹으면 굳이 블락이나 스틸을 노리지않고도 찰가머리 같은 수준으로 끈질기게 마크맨을 따라붙는다. 이 또한 매우 영리해서 커리어 중후반기에는 정규시즌의 중요치않은경기 스코어가 벌어졌을시는 힘을 비축해뒀다가 플레이오프나 파이널, 중요한 경기등에서는 엄청난 수비 집중력으로 상대 공격수를 괴롭게한다.

2. 팀 디펜스 역시 역대급인 BQ를 이용해서 전방위적인 수비를 펼치며 빠른발과 번개 같은 손속으로 상대의 턴오버를 유발하며, 기본적으로 매우 거칠고 맨투맨수비가 일상화된 60~70년대에 최초로 초창기의 팀 디펜스의 이론을 정립했다고 할만큼 블루칼라 스타일의 팀수비를 구현했다. 블록을 워낙 전략적으로 사용해서 팀원에게 공이 가도록 유도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

3. 그의 진정한 무서움은 정규시즌보다 포스트시즌에 있다는것. 실제 플레이했던 상대팀 선수의 증언에 의하면 경기 시작부터 4쿼터 끝날때까지 항상 집중력을 처음같이 유지했으며 클러치 상황에서의 디펜스만으로도 상대 주력 공격수들이 주눅이 들어 보스턴 셀틱스 = 승리라는 방정식이 항상 플레이오프 경쟁팀의 선수들 머릿속에 깊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고한다. 이미 경기시작부터 빌 러셀과 셀틱스는 이겨놓고 싸운다는 이야기.

이러한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공식적인 키는 2m6에 불과하지만[10] 관련 내용 디켐베 무톰보이상의 블록능력에 데니스 로드맨의 맨투맨능력 벤 웰라스급의 팀 디펜스능력을 갖춘 센터라고본다면 크게 무리가 없을것이다. 수비력 자체적인 능력을 떠나서 굳이 비슷한 유형의 수비수를 본다면 알론조 모닝과 흡사하며, 빌 러셀의 증언으로도 주로 다른포지션인 팀 던컨, 케빈 가넷등의 이름과 함께 동포지션에서는 그나마 모닝의 이름또한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편이다.


만약 NBA 초창기부터 올해의 수비왕, 올 NBA 디펜시브팀이 있었다면 13년연속 수비왕(DPOY), 13년연속 올 NBA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오를것이다. 빌 러셀은 몸이 완전히 망가진 마지막 시즌인 68-69시즌에도 디펜시브퍼스트팀에 올랐는데, 빌 러셀의 은퇴시즌에 처음으로 NBA디펜시브 팀이 생겼다. DPOY는 그보다 15년정도 후에 생겼고..당시 센터부분 디펜시브팀 경쟁자들은 수비력으로는 누구에게도 빠지지않을 시대를 지배했던 수비형 센터들인 네이트 써몬드, 폴 사일러스, 윌리스 리드 그리고 수비형 센터로 막 전환을 끝낸 윌트 체임벌린등이다..커리어 마지막해에 이들 기라성같은 수비센터들을 제치고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든 것 자체만으로도 그의 위엄을 잘 나타낸다고 볼수있는데 심지어 그는 시즌 MVP수상만 5번에 올스타와 NBA팀셀렉션까지 더하면 우주적인 업적을 달성했음을 알수있다. 파이널 MVP까지 그의 시대에는 없었으므로 만약 이런 수치들이 있었다고 가정할시 빌 러셀의 업적은

시즌 MVP 5회, 올해의 수비왕 13회,올 NBA 디펜시브팀 13회, 올 NBA팀 11회(퍼스트 3회 세컨드 8회), 12년연속 올스타(루키시절을 제외하고 전부 올스타 선정됨),올스타 MVP1회, 선수생활 13년중에 우승 11번[11], 파이널 MVP 6회[12]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조던 이전의 역대 1위선수라는 칭호가 결코 조금의 과장도 아님을 알 수 있다.

5 트리비아

그리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09/10시즌부터 NBA 파이널 MVP에게 수여하는 트로피의 명칭을 그의 이름을 붙인 빌 러셀 트로피라 명명하였다.[13]

그는 가까이로는 그와 함께 플레이했던 선수뿐만아니라 까마득한 후배들에게까지 엄청난 존경을 받고있는데, 인종차별의 잔재가 상당수 남아있었던 50~60년대에 선수생활을 했었고 특히나 그가 선수생활을보낸 보스턴은 상대적으로 대학생활을 보낸 자유러운 분위기의 서부 샌프란시스코에비해 인종차별이 심했었다.[14] 이런 환경에서 오직 인품하나로 백인감독과 백인위주의 팀원들의 신뢰를 얻었으며 은퇴이후에도 여전하다. 많은 선수들이 심지어 마이클 조던보다 빌 러셀을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주장하는일이 비일비재하기때문. 당연하지만 이런주장을 했던 선수들은[15] 60~70년대 그와 함께했던 선수들이나 감독 기자등 전문가들의 비중이높으며 조던의 우세를 주장하는 선수,전문가들은 이보다 후인 90~00년대 현업에 종사했던 경우가많다.

그의 후배중에 대표적인 러셀빠로는 저메인 오닐알론조 모닝을 들 수 있다. 저메인은 실제로 공개편지를 통해 빌 러셀을 존경한다고까지했고 심심치않게 그에대한 존경을 언론에서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는편이다. 그외에도 셀수없을만큼 많이있지만 팀 던컨역시 인터뷰에서 가장 같이 뛰어보고싶은 선수로 빌 러셀을 언급하기도 했다.
  1. 현 애틀란타 호크스의 전신
  2. NBA All-Defensive Team 선정은 1969년부터 시작되었고 러셀은 그 첫번째 선정자 중 한명이다. 그런데 이때가 러셀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었다.
  3. 우승 반지만 무려 11개였다.
  4. 그의 라이벌인 윌트 체임벌린도 2번밖에 우승을 못했다 다 러셀 때문이다
  5. 비록 절대다수의 농구인들과 팬들이 조던을 역대 최고선수라고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빌 러셀이 조던보다 덜 위대하다"고 섵불리 말하는 사람도 없다. 매직 존슨은 "조던은 역대 최고의 선수(player)지만, 빌 러셀은 역대 최고의 승리자(winner)."라고 말했을 정도. 말장난같지만 그가 얼마나 위대하며 후배 선수들의 존경을 받는지 짐작가능한 부분이다.
  6. 사실 체임벌린이 러셀보다 족히 10cm는 크고 훨씬 무거운걸 감안하며, 운동능력이라도 비슷하지 않으면 막을수가 없다.
  7. 2위가 팀 던컨의 106.11
  8. 역시 이부분 2위는 팀 던컨의 17.02
  9. 주로 제리 웨스트, 존 하블리첵
  10. 현재 측정법으로는 2m11쯤은 된다. 단, 키에 비해 팔이 길어 윙스팬이나 스탠딩 리치등은 윌트 체임벌린과 맞먹었고, 실제 파이널 MVP시상식등을 보면 현재 측정법으로 7풋이넘는 덕 노비츠키와도 나란히 서있을때 별 차이가 없었으니 실제로는 센터로서 나무랄때없는 신체조건인것. 게다가 러셀 시대에는 센터들이 거의 203(초창기)~208 정도였으며 그의 라이벌들도 체임벌린 정도를 제외하년 비슷한 키였다. 그래서 신체적 불리함은 별로 없었다. 당연히 체임벌린보단 딸리지만 이 분은 신체적으론 거의 규격외 괴물이다.
  11. 1번은 커리어 2년차때 소포모어 징크스로 밥 페팃에게, 또 1번은 미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 흑인 감독 겸 선수라는 엄청난 중압감에 수비형센터로 막 전환을 시작한 윌트 체임벌린의 필라델피아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12. 파이널 우승이 11번인데 그중 절반정도인 6번만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고 가정할시..근데 이정도 가정도 과소평가한것이 애시당초 파이널 MVP의 명칭이 몇년전부터 빌 러셀 파이널 MVP로 이름이 바꾸었다. 정규시즌보다 포스트시즌, 그것도 파이널같은 큰 경기에 강한 그의 커리어상 이정도 가정조차 무의미해보인다.
  13. 재미있는 사실은 이 빌 러셀 트로피 첫 수상자가 보스턴 셀틱스의 최대 라이벌인 LA 레이커스코비 브라이언트이다. 파이널 상대는 보스턴 셀틱스...
  14. 실제로 빌 러셀의 저택침대에 백인우월주의자가 침대 한가운데에 똥을 싸놓은행위는 유명하다. 이외에도 인종차별에 대항해서 셀틱스 백인동료들은 한데뭉쳐 러셀을 옹호해서 집단행동이나 성명을 내는일이 잦았다.
  15. 대표적으로 그의 라이벌인 윌트 체임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