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 농구 협회

(NBA에서 넘어옴)
미국 4대 프로 스포츠
농구미식축구아이스하키야구
NBANFLNHLMLB
미국의 농구 리그
구분명칭
프로1군NBA
동부 컨퍼런스 / 서부 컨퍼런스
2군NBA D-League
동부 컨퍼런스 / 서부 컨퍼런스
서머리그라스베이가스 서머리그 / 올랜도 서머리그 / 유타 서머리그
여자부WNBA
독립리그IBA / PBL / ABA
대학농구NCAA Division I / NCAA Division II / NCAA Division III
고교농구Division I / Division II / Division III
유소년리틀농구
† NBA와 프로리그를 양분하다 흡수합병당한 ABA와는 별개의 단체로 2000년에 창설되어 지금까지 운영중이다.

1 개요

NBA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미국프로농구협회. 30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세계 모든 농구선수들이 가고자 하는 세계 최고의 프로농구 리그. NBA라고 하면 정확히는 이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편의상 이 단체가 주관하는 프로농구리그를 가리키는 단어를 의미한다. 사실 NBL과 BAA가 합쳐지면서 둘의 이름을 합치다보니 어쩌다가 리그가 아니라 협회가 되어버렸다.

이름은 전미농구협회이지만 알다시피 이익을 목표로 하는 프로농구단체이기 때문에 국가대표 운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뭐 실질적으로는 관련이 아주 깊지만, 미국 농구국가대표는 USA Basketball 이라는 단체(직역하면 미국농구...)에서 관리한다.[1]

2 인기

스테판 커리, 르브론 제임스의 등장으로 인한 제2의 전성기

현지에서는 NBA의 현재 인기를 마이클 조던시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로 보고 있다. NBA는 압도적인 SNS 가입자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미 전 세계에서 메이저 축구리그 EPL,라리가 다음으로 가장 인지도있고 세계화가 된 프로스포츠리그이며 NBA의 평균연봉은 4대스포츠중 최다, 그리고 경기당 영업이익은 이미 MLB를 2배나 뛰어넘었다.

또한 중국에선 시진핑이 추진하는 '스포츠 굴기'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와 농구로, 중국의 농구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며 중국내 농구인구만 비공식 5억에 달한다고..

또 스타파워에서도 4대스포츠중 매우 압도적이다. SNS,인기면에서 NBA 스타를 압도할 4대스포츠 스타는 0명이며 , 쉬운 예를 들면 NHL 스타인 시드니 크로스비는 LA 레이커스 유망주인 디안젤로 러셀보다 인기가 떨어지고[2],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는 같은 지역내 크리스 폴에게 인기가 밀리는 현실이다. 또 NFL스타중에서도 일부 쿼터백을 제외하면 NBA스타보다 인기가 현저히 떨어진다.

스타파워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이제는 대부분 미국내 2위 스포츠를 자처하고 있으며 , 이를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미국의 가장 신뢰성 높은 스포츠사이트 ESPN이나 사용자가 가장 많은 야후스포츠등에서도 NBANFL 바로 뒤에 위치한다.

또 이뿐만 아니라 미국인이 사랑하는 스포츠스타 30위안에 농구선수만 15명이 넘게 포진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좋아하는 스타는 농구스타인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등이 최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

또 생활체육 인구에서도 농구는 단연 압도적이며 2016년 기준 미국인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중 하나이다. 또한 ESPN이 조사한 젊은층이 좋아하는 스포츠 순위에서도 NBANFL 다음으로 프로축구 MLS와 함께 2위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전국중계권게약에서도 NBA베이브 루스시절 미국 최고인기스포츠였던 MLB보다 2배나 더 높은 계약을 체결했으며 NBA 파이널 시청률 역시 월드시리즈의 시청률을 넘어섰다.


2.1 MLB와의 라이벌리

현재의 NBA가 스포츠의 현인기를 평가할 때 가장 주축이 돼는 SNS 가입자수 , 결승전 시청자수 , 오프라인에서의 언급력, 스타파워등 4요소면에서는 NFL에 이은 2위 인기스포츠라고 볼 수 있으나, 사실 NBA의 SNS 가입자수는 미국 1위 인기스포츠인 NFL보다 훨씬 많으므로 그렇다고 해서 NBANFL보다 인기가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런 면에서 SNS 가입자수는 미국내 인기보다는 NBA의 세계화의 인기라고 볼 수 있으며 결국 이 인기는 4대스포츠의 미국내 인기를 논할 때는 평가요소가 되기 부적절해보인다.

또 스타파워 면에서도 NBA는 암흑기로 꼽히는 00~07시절에도 팀 던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샤킬 오닐 같이 미국내에서 압도적인 스타성,인기를 가진 스타들이 꾸준히 나왔으며 이 역시도 NBA,농구 자체의 인기가 아닌 팀이 아니라 한 선수가 집중적 조명을 받을 수 있는 NBA , 농구만의 특성이라고 봐야 적절하다.

결국 NBA가 2위 인기스포츠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은 오프라인에서의 언급력, 결승전 시청자수가 있는데. 이 두 요소에서는 NBAMLB를 앞서는 게 사실이며 MLB 팬 누구도 NBA 파이널 시청률이 월드시리즈를 넘어섰다는데 의의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MLB 역시도 2위 인기스포츠라고 주장할 수 있는 요소가 3가지가 있는데, 우선은 프로스포츠의 규모를 짐작하는 매출에서 MLB가 NBA보다 무려 30억달러 (3조원) 이상 앞선다는 것. MLB는 2016년 조사 향후매출에서 비공식 113억 달러, NBA는 70억 달러 정도로 매출이 추정됬으며 또 전국시청률과는 반대로 미국은 넓고 넓은 나라다 보니 각 지역마다 지역스포츠를 중계하는 지역방송사가 있는데, 이 지역방송사 시청률에서 LA 다저스를 제외한 MLB 30개 팀이 모두 NBA팀보다 시청률이 2배 이상, 아니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이라는 것이다.

또 이외에도 NBAMLB와 시즌이 겹치지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도 힘들며, NBA,NFL이 개최되지 않는 6월부터 8월까지 총 3개월동안 미국의 전국 방송사가 중계하는 스포츠경기중 MLB 시즌경기가 매일 최상위를 다투고, 지역방송사에서는 넘사벽 1위이니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정리하자면 MLBNBA나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봐야 적합하며, MLB가 예전보다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새로 내정된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의 야구계 개혁안이나 시카고 컵스의 부흥으로 인한 MLB의 인기회복도 무시할 수 없다.

2016년 포브스가 조사한 세계 스포츠클럽 구단가치 순위에서도 보여지듯이 NBA 역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제외하면 모두 하락세이며 MLB 역시도 시카고 컵스를 제외하면 구단가치가 모두 하락세이다.

야구팬들이나 농구팬이나 한가지 잊은게 있다면, 현재의 MLB는 메이저리그 건국이래 데드볼 시대 이후 홈런,득점력 고갈의 가장 극심한 투고타저 기간과 동시에 스타부재,뉴욕 양키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셀러화등 최악의 악조건을 가지고 있는 상태인 반면, NBA스테판 커리,르브론 제임스 등의 슈퍼스타 등장과 세계화의 성공한 상태임에도, 현재 MLB를 확실히 앞서지 못하고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결국 NBA가 현재의 MLB를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2가지 요소인 NBA 파이널 시청률이나, 오프라인에의 인기를 앞선 건 매우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밖에 설명 안되고, 만약 MLB 스스로가 스테로이드 시대같은 제2의 득점력 강화 및 인기를 부흥하는데 성공한다면 현실적으로 NBA는 현재 가지는 위점을 다시 MLB에 내줄지 모른다.


2.2 해외에서의 인기

전세계적으로 보면 미국이 만든 구기종목에서 극강의 인기를 자랑한다.아프리카만 해도 앙골라케냐탄자니아,나미비아같은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할 수 없는 나라에까지 자주 NBA에서 팀을 보내 친선경기를 가지는데 농구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현지에서 반응은 아주 뜨겁다.[3]

중남미나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자주 해외 친선경기를 가진다.스페인이나 독일,이탈리아,이스라엘,터키나 러시아와 유라시아권 및 아랍에서도 자주 친선경기를 가러 갈 정도.

중국은 NBA에서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애덤 실버 총재가 아예 매해 중국을 방문할 정도이다. 그만큼 인기가 뜨거운데 베이징이나 상하이같은 인구가 바글바글한 대도시가 아닌 지방 도시를 방문해도 몇만명이 넘치게 몰려들 정도. 이러다보니 안타(Anta)나 리닝(Li Ning)같은 중국 스포츠 업계들이 거액을 제시하며 NBA선수들 스폰서로 나서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제시한 돈은 나이키 이상급이라 몇몇 선수가 계약하기도 했다.

필리핀도 농구인기가 엄청나서 서민들이 어려운 경제상황(보통 월급 1/3는 내야지 볼 수 있는 친선경기)에서도 친선경기하러 오면 매진이 된다.


3 NBA 소속 팀

NHL과 달리 캐나다 소속팀이 토론토 랩터스 하나 뿐이다. 이전에 밴쿠버 그리즐리스가 있었으나 흥행폭망의 문제로 연고지를 멤피스로 옮겨 이제는 오직 토론토뿐. 나머지는 전부 미국팀이다

3.1 동부 컨퍼런스

애틀랜틱 디비전센트럴 디비전사우스이스트 디비전
보스턴 셀틱스시카고 불스애틀랜타 호크스
브루클린 네츠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샬럿 호네츠
뉴욕 닉스디트로이트 피스톤즈마이애미 히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인디애나 페이서스올랜도 매직
토론토 랩터스밀워키 벅스워싱턴 위저즈


3.2 서부 컨퍼런스

노스웨스트 디비전퍼시픽 디비전사우스웨스트 디비전
덴버 너기츠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댈러스 매버릭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LA 클리퍼스휴스턴 로키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LA 레이커스멤피스 그리즐리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피닉스 선즈뉴올리언스 펠리컨스
유타 재즈새크라멘토 킹스샌안토니오 스퍼스


4 상세

NBA 로고 속의 인물은 1960년대 LA 레이커스에서 활약했던 전설의 슈팅가드 '제리 웨스트'를 모델로 하였다.[4][5] NBA의 하부리그인 NBA D리그 로고는 그 분을 모델로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고, 딱히 특정 선수의 실루엣을 그린게 아니다.[#]


4.1 규칙

NBA의 규칙은 국제 농구연맹 FIBA가 제정한 농구 규칙과 조금 다르다.
[영문으로 작성된 농구규칙 차이점]

간략하게 눈에 띄는 차이만 서술한다면

  • 3점슛 라인이 50센티미터 정도 더 멀다. (7.24m) - 한 때는 1미터 정도 더 멀었으나, 현재 FIBA나 KBL 모두 3점슛 라인을 50cm정도 늘렸다.
  • 게임시간이 쿼터당 12분. 이때문에 타임아웃도 1개 많고 파울아웃도 5반칙이 아니라 6반칙.
  • 경기 중 작전타임을 선수가 부를 수 있다.
  • 벤치에 총 13명의 선수가 앉을 수 있다.[6]
  • 수비 3초룰이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NBA룰이 FIBA에 흡수되어 국제 공인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3초룰 만큼은 KBL에서도 포기할 정도로 NBA만의 고유 규칙이다.[7]

NBA의 인기로 인해 표준농구 규칙이 NBA기준으로 바뀐 게 많다. 이전에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1st half, 2nd half로 진행되었으나 4쿼터로 운영되고 매우 익숙한 3점슛 라인도 79-80 시즌부터 도입하여 활용하던 것을(ABA기준으로는 61년) 88년 서울올림픽 부터 처음 도입했다.


4.2 살인적인 일정

NBA의 경기일정은 정말정말 빡세다. 정규시즌만 25주간(약 6개월) 82경기를 치른다.[8][9] 평균적으로 이틀에 한 경기 꼴로 경기를 치른다. 경기시간도 해외의 다른 리그보다 8분 더 많다. 거기에 백투백 경기라 하여 2일 연속 경기를 다른 구장에서 치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게 미국 동-서부를 가르는 장거리라도 얄짤없다. 거기에 플레이오프가 1라운드부터 7전 4승의 시리즈로 바뀌면서 파이널까지 갈 경우 최대 110경기, 최소 98경기를 소화한다.

다른 리그도 이렇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NBA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치루는 리그가 한국의 KBL이다. 22주에 54경기. 우선 경기수부터 30경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다가, 원정거리로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10] 세계 대부분의 농구리그는 1주에 한경기씩 해서 30경기 안팎을 치른다. 이웃 중국은 20개 팀이(군인팀 빠이 포함) 38경기.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유럽 상위리그의 경우 한 시즌에 평균적으로 34경기를 소화한다. 유로리그 결승 토너먼트까지 가는 유럽 상위권팀이 유로리그와 자국리그 다 합쳐서 8개월간 60경기정도 소화한다. 경기 시간까지 감안하여 세계 평균이랑 따졌을 경우 NBA는 거의 3배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한다. 그야말로 지옥의 레이스.[11]

이때문에 NBA에서도 경기 스케줄 조정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렉 포포비치같은 몇몇 감독들은 이 지옥같은 레이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주축선수에게 쉴 시간을 더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것이 NBA 사무국과 NBA의 주 수입원인 방송사의 심기를 거스르고 벌금을 먹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이다.

이런 빡빡한 일정이 지켜지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는데 예를 들어 1998-99시즌은 파업직장폐쇄로 50경기로 단축되었다. 2011-12시즌도 직장폐쇄로 66경기만 치뤄졌다.[12]


4.2.1 플레이오프

컨퍼런스별로 1위 vs 8위, 2위 vs 7위 식으로 16강(동부 8팀+서부 8팀)-8강-4강(컨퍼런스 파이널) 토너먼트를 치른 후, 6월쯤 동-서부 컨퍼런스 챔피언팀끼리 챔피언 결정전인 NBA 파이널을 치른다. NBA 파이널에서 우승한 팀은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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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모든 선수들의 꿈,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Larry O'Brien Trophy)

2005-06시즌까지는 승률보다 디비전 내 성적을 우선시해서 플옵 시드와 실제 승률간의 괴리가 있었다. 즉, 각 디비전 1위팀간 승률에 따라 1, 2, 3번시드를 먹고 2위팀 중 가장 성적 좋은 팀이 4번시드를 먹는 방식이었다. 이렇다보니 2005-06시즌 덴버 너기츠는 44승 38패로 승률은 서부 공동 7위였는데 당시 노스웨스트 디비전이 죄다 막장이었던 관계로 그 성적으로 디비전 1위를 차지하면서 3번시드를 가져갔다. 그리고 1라운드 대진에서 만난 6번시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가 47승 35패로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 플옵 결과도 1승 4패로 덴버의 광탈.

또한 2005-06시즌의 경우 서부 1, 2위의 승률을 거둔 스퍼스와 매버릭스가 같은 디비전이라 메인 이벤트여야 될 이들의 대결이 2라운드에 벌써 이뤄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2006-07시즌부터는 포맷이 바뀌었는데 기존처럼 디비전 1위팀 세팀과 이들을 제외하고 가장 성적이 좋은 팀 하나를 묶어서 이들 네팀들을 성적순으로 세우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같은 디비전에서 서부 1, 2, 3위팀이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2005-06시즌까지는 서부 1위팀만 1번 시드를 받고 나머지 팀들은 4, 5번 시드가 되어 1라운드에서(!!) 맞붙게 된다. 그러나 바뀐 방식으로는 위의 예시에서 1위팀은 1번시드, 2위팀은 2번시드를 받고 나머지 디비전의 1위팀들이 각각 3, 4번 시드를 받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더라도 서부 3위팀이 5번시드를 받아 좀 억울한 감이 있지만 기존 방식보다는 훨씬 공평하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웬만해선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면 디비전 우승팀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기존 방식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강한 디비전에 속한 팀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 상당히 균형잡힌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2015-16시즌부터 각 컨퍼런스에서 승률이 높은 8팀이 디비전 성적과 관계없이 실제 승률 순으로 플옵 시드를 배정받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디비전 1위가 가지는 이점들도 사라졌다. 기존 룰에서는 승률이 조금 낮아도 디비전 1위만 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론, 최소 4번 시드까지 보장됐지만 변경된 제도에서는 극단적인 경우[13] 아예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승률 순으로 시드를 배정하므로 이제는 상위 시드팀이 무조건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타이브레이커 룰도 변경되었다. 승률이 같은 두 팀이 발생할 경우 플레이오프 시드배정과 홈코트 어드밴티지 모두 맞대결 성적이 제일 우선순위가 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룰에서 승률이 같은 두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경우 한 쪽이 디비전 우승팀이면 그 팀이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갔지만 2015-16시즌부터는 먼저 맞대결 성적으로 타이브레이커 룰을 따진다. 디비전 우승을 못한 팀이 디비전 우승팀을 만나더라도 맞대결 성적에서 우위에 있는 경우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 올 수 있게 된 것. [출처]

4.3 서고동저

(e_vs_w는 동부 팀이 서부 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 w_vs_e는 서부 팀이 동부 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 e_h2h는 동부 팀 기준 승률이다. 2015년 4월 기준 e_h2h는 41.6%이다.)[출처]

1990년대까지 팀전력상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던[14] 양대 컨퍼런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밸런스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해 서부팀의 압도적인 우위가 지금까지 이어오는 중이다.

NBA 팬들 중에서는 동부 컨퍼런스가 가짜리그, 서부 컨퍼런스 하위리그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걸 단순히 악의적인 폄하로 받아들이기엔 실제로 동부팀과 서부팀의 전력차가 심하게 차이가 난다는 게 문제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의 경우 컨퍼런스 개편을 해 서부 일부 팀을 동부 쪽으로 소속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2015-16시즌 초반, 동부팀들의 약진으로 서고동저가 해결되나 싶었으나, 그냥 동부가 평준화되었던 것 뿐이었다.(...) 서부의 강팀들인 골든스테이트, 샌안토니오가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바로 아래의 오클라호마와 LA 클리퍼스가 서부라서 승수와 순위에 손해를 보고 있을 정도. 서부 1위 골든스테이트는 30점차에 가까운 가비지 게임으로 동부 상위권팀들을 박살내며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15][16][17] 역대 최고의 1위, 2위 팀이 모두 서부에 포진해 있으며 재능 최강의 팀이라는 오클라호마시티도 서부팀이다. 게다가 NBA팀 15명 중 11명이 서부이며, 기량발전상과 신인상, 수비왕, 득점왕 및 MVP 모두 서부에 있다(...). 한번 스타플레이어들을 추려서 어떤 선수가 동부이고 서부인지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각이 나올 것이다.

2015/16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이 논란은 한번 더 터지기도 했다. 일단 플레이오프만 보면 클리블랜드가 토론토에게 2패를 당한 것 이외에는 동부 플레이오프를 말 그대로 박살내면서 올라온 반면, 골든스테이트는 서부 플레이오프에서 오클라호마시티와의 혈투를 겪으며 올라온 상황이었다. 이때 이미 동부는 클리블랜드를 제외하면 특별히 강한 팀이 없다는 여론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파이널에서 골든스테이트가 스플래시 듀오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2경기 연속 클리블랜드를 가비지로 보내버리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오클라호마시티와의 7전제가 실질적인 파이널이었다는 드립까지 나올 정도. 물론 오라클 던전에서의 경기긴 했지만... 향후 클리블랜드의 반격이 어떨지에 따라 이 논란의 규모가 결정될 예정이다. 결국 1,2차전의 2연패를 극복하고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클리블랜드가 우승을 거머쥐면서 논란이 많이 줄어든 상황이 되었다.

4.4 서머 리그

해마다 오프 시즌이 되면 NBA는 서머리그를 열어 유망주들의 기량을 팬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해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신인과 NBA 진출을 노리는 해외 유망주들, 하위 리그에서는 꿈의 무대 입성을 노리는 이들을 초대해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커리, 듀란트, 조지, 크리스 폴, 블레이크 그리핀 등 대학 무대를 평정했던 이들이 서머리그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팬들에게 선보이며 각 구단 스카우터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현재의 NBA 서머리그라스베이거스, 올랜도, 유타 3개 대회가 운영되고 있다.

NBA Summer League
리그 명창설년도참가팀경기장위치수용인원
라스베이거스 서머리그2004년24개팀콕스 파빌리온네바다주 패러다이스2,500명
토머스 & 맥 센터18,776명
올랜도 서머리그2001년10개팀암웨이 센터플로리다올랜도18,846명
유타 서머리그2015년4개팀비빈트 스마트홈 아레나유타
솔트레이크시티
19,911명
존 M. 헌츠맨 센터15,000명


4.5 샐러리 캡

NBA의 샐러리 캡 제도는 굉장히 복잡한데 샐러리 캡을 절대로 넘지 못하는 하드캡이 아닌 소프트캡을 채택하고 있다. 래리 버드 예외조항(Larry Bird exception) 등 프랜차이즈 스타를 우대하는 수많은 예외 조항이 있는(사실 래리버드 예외조항은 소프트캡에 반영되지 않음으로 사실 하드캡이던 소프트캡이던 관계없다. 래리버드 예외조항이 있다고해서 소프트캡은 아니다.) 소프트 캡이기 때문에 다수의 구단이 샐러리 캡을 넘는 금액으로 연봉 총액을 구성할 수 있다. 하드캡은 정해진 수치를 넘는 것이 불가능이고 만약 넘게되면 사상 최악의 조치가 가해지기에 이면 계약KBL을 통해 유지하는 반면 소프트 캡은 넘는 만큼은 사치세를 물면 된다. 얼마면 돼? 내가 너 돈으로 사겠어 이 조항으로 인해 1996-97, 1997-98 2시즌의 마이클 조던 같은 경우는 혼자서 팀 전체의 샐러리캡을 넘는 3천만불 이상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았다.[18] 그런데도 스카티 피펜같은 피해자[19]가 생기기 때문에 선수들의 불만이 많은 제도. 그런데 이 예외조항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쏙 빠져버렸다(...). 자세한 것은 샐러리 캡 항목 참조.


5 역사

5.1 창설 이전

최초의 프로농구 리그는 1899년에 창설된 NBL이었지만, 오래 못 가 1904년에 해체되었고, 그 다음 1925년에 ABL이 창설되었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1931년에 해체되었다.[20]

그러나 1930년 FIBA의 창설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농구 종목 채택을 계기로 농구의 저변이 넓혀졌고, 1933년에 ABL의 재개, 1937년에 NBL이 창설되어 NBA의 탄생을 위한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5.2 창설 이후

1946년에 BAA라는 이름으로 창립, 1949년도에 NBL[21]을 흡수합병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BAA 시절 원년 팀은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뉴욕 닉스, 디트로이트 팰컨스,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스탁스, 워싱턴 캐피톨스, 토론토 허스키스,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 세인트루이스 봄버스, 클리블랜드 레벨스, 피츠버그 아이언맨이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팀은 뉴욕 닉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보스턴 셀틱스이다.

1948년에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포트 웨인 졸너 피스톤즈, 로체스터 로열스, 인디애나폴리스 제츠 등 4개팀, 1949년에 시라큐스 내셔널즈,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시보이건 레드스킨스, 데이턴 렌즈(Dayton Rens), 덴버 너게츠(현재의 덴버 너게츠와는 무관), 앤더슨 패커스 등 6개팀이 각각 합류함으로써 17개 팀 체제가 정립되었으나, 너무 많아서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자, 다음 해에는 11개 팀으로 줄었고, 1954년부터 8개팀 체제로 바뀌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셀틱스의 황금기 등으로 주목을 받자, 1960년대부터는 새 팀의 가입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1976년부터 경쟁단체인 ABA를 흡수하면서 4개팀(인디애나 페이서스, 뉴저지 네츠, 덴버 너게츠, 샌안토니오 스퍼스)이 가입했고, 줄리어스 어빙이 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1970년대까지 NBA보다는 대학 농구가 인기가 많을 뿐더러 결승전마저도 녹화로 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없었고, 게다가 여러 번 터지는 선수들의 마약 스캔들 등으로 이미지가 안 좋아졌던 적이 있었다.[22] 심지어는 덴버 너기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유타 재즈를 위시한 3개의 비인기팀들이 합병을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데뷔, 1984년에 입단한 마이클 조던의 활약으로 NBA는 인기가 급상승했고, 마침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미식축구에 좀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 대신 세계적인 인기가 미국 내 구기종목 중에서 최고라 유럽 및 아시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상당하다. 농구인기가 많은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세계 2위라고 한다.[23] 메이저리그에서 이걸 보고 자신들도 중국 진출을 했으나 그다지 성과는 없다. 미국구기종목에서 가장 국제적으로 홍보를 잘한 프로 스포츠로 알아준다. 앙골라나 여러 아프리카 및 많은 나라에 현역선수들이나 농구 유망주들을 보내 친선경기 및 사인회를 꾸준히 하기 때문이다.

2011년 7월부터 단체교섭이 결렬되어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덕분에 시즌아웃이 될 뻔한 상황에서 타팀으로 이적도 막혔기에 선수들이 타국 리그로 건너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단체교섭이 늦게나마 타결되어 2011년 크리스마스에 시즌 개막하기로 합의하고 [2011~12시즌을 66경기 시즌으로 진행했다.]

2014년까지 총재는 유대인 출신인 전직 변호사 데이비드 스턴(1942년생)으로 1984년부터 총재를 맡고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NBA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것에는 엄청난 기여를 했다. 다만 30년 가까운 장기집권에 대하여 스턴에 대한 반대도 심해져서[24] 결국 스턴은 2014년 딱 30년 만에 총재에서 물러나고 부총재인 애덤 실버(역시 유대인)가 5대 총재가 되었다. 현재로서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괜찮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는 편.[25]


6 역대 총재

  • 초대 : 모리스 포돌로프 (1946~1963) - 참고로 NBA 정규시즌 MVP 수상자에게 주는 모리스 포돌로프 트로피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 2대 : J. 월터 케네디 (1963~1975) - 훗날 그를 기리기 위해 'J. 월터 케네디 시티즌십 어워드'가 만들어졌다.
  • 3대 : 래리 오브라이언 (1975~1984) - NBA 파이널 트로피의 주인공. 이분은 과거 민주당 소속 중역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한 바 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로도 알려진 바 있다. 그는 NBA에서 9년간 일하면서 1976년에 ABA를 합병시켰고, 1975년에는 CBS와 중계권 계약을 맺은 뒤에 1980년대 초반부터 중계권료를 최고액으로 올렸으며, 1983년에는 샐러리캡 제도를 도입했다.
  • 4대 : 데이비드 스턴 (1984~2014) - 현재의 NBA를 만들어 낸 장본인.
  • 5대 : 아담 실버 (2014~ )


7 아시아의 NBA 도전사[26]

순서이름국적클럽기간
1왕즈즈중국댈러스 매버릭스
LA 클리퍼스
마이애미 히트
(2001~2002)
(2002~2003)
(2003~2005)
2야오밍중국휴스턴 로켓츠(2002~2010)
3멍크 바터중국덴버 너기츠
샌안토니오 스퍼스
토론토 랩터스
(2002)
(2002~2003)
(2003~2004)
4하승진대한민국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2004~2006)
5타부세 유타일본피닉스 선즈(2004)
6이젠롄중국밀워키 벅스
뉴저지 네츠
워싱턴 위저즈
LA 레이커스
(2007~2008)
(2008~2010)
(2010~2011)
(2016-)
7쑨웨중국LA 레이커스(2008)
8하메드 하다디이란멤피스 그리즐리스
피닉스 선즈
(2008~2013)
(2013)

최초로 NBA에서 활약한 아시아인 선수는 1947년에 뉴욕 닉스에서 뛰었던 와타루 미사카(1923~ )인데, 구태여 역사에 이름을 남길 필요까지 없는게 그는 순수 일본인이 아닌데다 겨우 3경기만 뛰었기 때문이다.[27]

이후 반세기 동안 NBA에는 아시아인 선수가 전무한 상황이었다가[28] 2001년에 중국의 왕즈즈(王治郅)가 댈러스 매버릭스에 들어오면서 NBA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해 2002년에 야오밍과 멍크 바터가 진출, 2004년에 한국의 하승진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통해 진출했고, 같은 해에 일본의 타부세 유타가 진출하는 등 아시아 출신 NBA 리거들이 늘어났지만, 결국 성공한 선수는 야오밍뿐이다.

아시아인들의 NBA에서 활동하는데 있어 실질적으로 가장 큰 장벽은 운동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NBA에서 그나마 몇년동안 살아남았던 선수들, 야오밍, 이첸리엔, 왕즈즈 등은 NBA에서 비슷한 체격을 가진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들이었다. [29] 사실 아시아에서도 종종 NBA급의 체격을 가진 선수들이 종종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흑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백인급에 버금가는 운동능력을 지니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농구는 좁은 공간에서 거대한 덩치들이 자주 부딫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힘과 점프력이 안되면 살아남을 수 없고[30], NBA는 페이스가 무지막지하게 빠른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피드와 체력이 안되면 끝이다.

NBA에서 운동능력이 쳐지기로 유명한 191cm가드 스티브 내쉬의 점프력이 79cm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운동능력이 좋기로 유명한 183cm 가드 이상민의 전성기 점프력이 85cm정도이다. 한마디로 NBA기준 저질 운동능력도 한국 기준으로는 상급이라는 것. 제레미 린 역시 191cm에 경기 중 덩크를 성공시킬 정도로 아시아인으로서는 사기급의 운동능력이지만, NBA 가드 기준으로는 평균을 약간 뛰어넘는 수준이다. (점프력과 힘은 평균 수준에 스피드는 상위권)

최진수의 경우 NBA포워드급의 신장을 지녔지만 NBA도 아니고 NCAA에서조차 뒤쳐졌는데, 점프력이나 스피드는 기준에 어느 정도 됐지만 파워가 지나치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와 운동능력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NBA진출이 기대되었던 유망주였지만, 대학 수업 문제도 있고 실력 문제도 있어서 결국 NCAA에서 국내로 돌아와야했다.

한국의 경우, 무조건 승리위주로 하는 학원스포츠 문화도 걸림돌로 꼽힌다. 제레미 린이 린새니티 열풍을 일으킬 당시, "국내에서는 지나치게 억압적인 학원스포츠 문화에서는 린같은 선수가 탄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31] 실제로 국내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학생선수들은 감독의 불호령과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그 결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국내 선수들은 프로레벨에서조차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또한 본인의 의향에 상관없이 키가 크면 무조건 센터를 시키는 풍토도 학생선수들의 재능을 꽃피우는데 제약을 준다. 케빈 가넷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센터급의 신장이었고 공식 포지션은 센터였지만, 포인트가드를 포함해 5가지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다. 이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마찬가지였으며, 미국 학원스포츠에서는 보통 선수 본인이 실력이 되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의 거의 비정상적인 승부욕과 노력, 최고의 재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진심으로 농구를 사랑했다는 점이 크다.[32] 실제로 조던은 "농구를 가르치려면 먼저 농구를 즐기고 사랑하는 법부터 가르치라. 기술은 그 다음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농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는 것 외에 뭔가 특출난 걸 해낼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했던 허재같은 선수는 그야말로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사실 허재는 정봉섭최인선이라는 당대의 대인배감독 밑에서 선수생활을 한 것이 크지만또한 야오밍 역시 다른 중국선수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NBA스타일을 배우려고 했던 점에서 "전형적인 아시아 선수의 스타일"이 NBA에서 살아남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만 찍어내는 천편일률식의 양성문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

7.1 한국에서의 NBA

1990년대에 마이클 조던드림팀을 앞세운 NBA의 세계화 전략을 통해 한국에도 NBA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1990년대 초중반 슬램덩크마지막 승부, 그리고 농구대잔치의 붐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NBA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당시 초등학생들까지도 NBA를 챙겨보고 선수들의 카드를 모았을 정도. 적어도 TV에서 NBA를 보기는 지금보다 편했을 정도다. AFKN이나 위성 NHK, 스타스포츠 등을 통해서 쉽게 볼 수 있었고, 지상파 방송으로는 SBS가 한창도 위원[33]의 해설과 함께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매주마다 한 경기씩 녹화중계를 했다. 이후 케이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경인방송-MBC ESPN-SBS 스포츠-슈퍼액션 등에서 생중계로 방영하였다.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NBA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나름 큰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후 90년대 NBA 세계화의 주역들이 은퇴하고 KBL이 막장이 되어 농구 붐이 사그라들면서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다소 매니악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 시절이 워낙 인기가 많았고 여전히 1980~90년대 슈퍼스타들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기에 잠재적인 국내에서의 인기는 실제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리고 KBL이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팬들이 상위호환인 NBA로 갈아타는 모습도 심심치않게 나타나고 있다 카더라.

현재 국내 TV 중계권은 2014년부터 SPOTV에서 갖고 있다. 2015-16 시즌에는 skySports도 중계권을 구입하여 skySports에서도 SPOTV가 제작하는 중계방송이 송출되고 있다. 2015시즌 부터 꾸준한 중계를 통해 팬덤의 저변이 확대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스테픈 커리라는 슈퍼스타의 스텝업과 그가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73승 신기록 레이스를 통해 국내 NBA 팬덤이 점점 확대되었다. 자연스레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비교하는 여론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과거 90년대 NBA에 빠졌다가 관심을 접은 사람들이 다시 NBA를 보기 시작했다. 중계방송의 확대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이 쉬워지고 국내의 언론들도 NBA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점차 국내의 NBA 열기는 상승할 전망이다.

8 관련 항목


9 역대 파이널 우승 횟수

우승준우승우승 연도준우승 연도
보스턴 셀틱스1741957,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6, 2008
1958, 1985, 1987, 2010
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16151949, 1950, 1952, 1953, 1954,
1972, 1980, 1982, 1985, 1987,
1988, 2000, 2001, 2002, 2009,
2010
1959, 1962, 1963, 1965, 1966,
1968, 1969, 1970, 1973, 1983,
1984, 1989, 1991, 2004, 2008
시카고 불스601991, 1992, 1993, 1996, 1997,
1998
-
샌안토니오 스퍼스511999, 2003, 2005, 2007, 20142013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441947, 1956, 1975, 20151948, 1964, 1967, 2016
필라델피아 76ers361955, 1967, 19831950, 1954, 1977, 1980, 1982,
2001
디트로이트 피스톤즈341989, 1990, 20041955, 1956, 1988, 2005
마이애미 히트322006, 2012, 20132011, 2014
뉴욕 닉스261970, 19731951, 1952, 1953, 1972, 1994,
1999
휴스턴 로키츠221994, 19951981, 1986
애틀랜타 호크스1319581957, 1960, 1961
워싱턴 위저즈1319781971, 1975, 1979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1219771990, 1992
시애틀 슈퍼소닉스[34]1219791978, 1996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1220162007, 2015
밀워키 벅스1119711974
댈러스 매버릭스1120112006
볼티모어 불리츠[35]101948-
새크라멘토 킹스101951-
피닉스 선즈02-1976, 1993
유타 재즈02-1997, 1998
브루클린 네츠02-2002, 2003
올랜도 매직02-1995, 2009
시카고 스택스[36]01-1947
워싱턴 캐피톨스[37]01-1949
인디애나 페이서스01-2000
오클라호마시티 썬더01-2012

10 기타

  • 2011년경 촬영된 <Ultimate All-star Fantasy Draft>에서 찰스 바클리, 케빈 맥헤일,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스티브 커, 케니 스미스 등 NBA 출신 해설자들이 모여서 역대 NBA 선수들을 놓고 가상 드래프트를 펼쳤다. NBA 전현직 농구인들이 대충 선수들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 참고로 바클리는 올스타전인줄 알고 앨런 아이버슨을 1픽으로 골라버렸으며(...) 케빈 맥헤일은 셀틱스 출신답게 셀틱스 레전드 래리 버드를 2위로 뽑았다.[38] 이게 웬 떡이나며 마이클 조던을 픽하려는 레지 밀러에게 주변에서 "샘 보위"를 픽하라고 놀리고 있다 : [##]
  • NBA 선수의 평균 체격 조건은 12-13시즌을 기준으로 신장 6'7" (약 201cm), 체중 222lbs (약 101kg)이다.[39][40] 미국 4대 스포츠 중 신장은 가장 크고 체중은 NFL 다음으로 무겁다.
  • 아디다스가 유니폼 독점 계약을 맺어왔으나 2016-17시즌 부터는 나이키가 유니폼을 제작하게 된다. 또한 KBL과 유럽 각국 농구리그처럼 유니폼에 광고 부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41]
  • 흔히 관심없는 사람들은 흑인선수들만 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경우도 있는데, 2015년 기준으로 NBA선수의 인종 비율은 흑인 74.4%, 백인 23.3%, 기타(히스패닉+동양인)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NBA역사상 흑인비율이 80%를 넘은 적은 거의 없으며(1995년과 2011년이 약 80%로 가장 높았다)[42][43], 특히 2011년부터는 유럽 선수들의 NBA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백인 비율 더 높아지는 추세이다. 물론 미국의 4대 인기 스포츠 중에서는 흑인 비율이 가장 높다. 다만 구단주들은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인 샬럿 호네츠 빼고 백인들이 다수이다.
  • 백인 스타들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긴 하지만 "미국 출신 백인"의 경우 거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프로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소년 시스템이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어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팀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이 많고 미국의 흑인선수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학원스포츠 문화로 창의적인 플레이와 뛰어난 운동능력이 장점이라면, 이도저도 아닌 미국의 백인선수들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덕 노비츠키(독일), 가솔 형제(스페인), 스티브 내쉬(캐나다) 등 최근 몇년간 두각을 나타난 백인선수들은 거의 유럽이나 비미국 출신이며, 미국 백인 슈퍼스타는 케빈 러브 정도 뿐이다. (외형상 백인으로 보이는 클레이 탐슨이나 블레이크 그리핀 등은 흑인으로 분류된다)
  • 드레스 코드가 존재한다. NBA의 게임, 인터뷰, 자선행사등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은 힙합스타일의 복장[44]을 착용할 수 없다. 코치는 정장 혹은 재킷을 착용해야한다. 이러한 드레스 코드는 05-06 시즌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04-05 시즌 인디애나-디트로이트의 경기중 벌어진 초유의 관중폭행 사태[45]로 인한 리그의 이미지 하락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 여타 다른 북미 스포츠처럼 리그패스라는 이름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북미스포츠들과 달리 해외에서도 NBA의 인기가 높은 덕에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어지간한 나라에 모두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구독비는 해당 나라의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다. 한국의 경우 현재 리그패스 프리미엄 기준 연간 299,999원/월간 34,999원, 리그패스 기준 239,999원/월간 27,999원. 구독비 자체가 MLB.tv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편인데, [46] MLB.tv와 달리 동시 시청도 불가능[47]하기 때문에 공구 등의 편법도 불가능해 체감 가격은 더더욱 비싸게 느껴지는 편이다. 라지만 VPN으로 저렴한 국가로 우회하여 결제하는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1.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데 대부분 프로선수이지만 국가대표로는 별개의 단체인 대한농구협회(KBA)소속으로 출전한다.
  2. 물론 미국 한정.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캐나다 국대팀 주장이기도 한 크로스비의 인기는 한국에서 전성기 시절 박지성의 위치를 생각하면 된다.
  3. 아프리카가 축구 인기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았는데 농구도 인기 엄청나다. 케냐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이 농구를 하고 싶었는데 어찌 림을 구해서 대충 나무로 골대를 만들어 집 근처에 뒀더니만 아주 현지인들이 몰려와 덩크를 시도하고 그 곳이 대놓고 농구경기장이 되어버린 일화가 있다...공과 골대와 공간만 있으면 농구도 많이 한다고..
  4. 해당 디자이너 앨런 시겔은 웨스트를 모델로 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정작 웨스트는 로고가 자기를 모델로 했다는 걸 당시에 모르고 있었다.
  5. 또한 NBA는 아직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웨스트가 모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있다. NBA 역사상 최장기간을 집권했으며 세계적인 규모의 리그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두 사람 중 하나로 꼽히는 (다른 한 명은 물론 마이클 조던) 전 총재 데이빗 스턴은 "기록이 없다"며 코멘트를 거부했으며 현 총재 아담 실버도 이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 물론 이는 눈가리고 아웅에 가까우며, NBA 선수들을 포함해 모든 관계자들은 로고의 모델이 웨스트라는 걸 잘 알고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NBA의 공식 홈페이지의 제리 웨스트 페이지에 담긴 비디오 제목 자체도 그의 별명인 "The Logo"이다. 즉, NBA는 사실상 인정한 것. 디자이너 시겔은 NBA가 웨스트 모델 설에 대해 공식적으로 "도시 전설(urban myth)에 불과하다"고 입장을 정리하는 것에 대해 "그들(NBA)은 리그를 한 개인에 묶어두기보다는 제도화(institutionalize)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와 같은 추측에 대해 웨스트는 동의하면서, "(로고사용은) 개인(웨스트 본인)을 영예롭게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리그의 이미지를 홍보하고자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웨스트는 "그래도 로얄티를 좀 받았다면 멋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끝 참고로 제리 웨스트는 모델료는 물론이고 로얄티를 지금까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NBA가 로고 사용으로 인해 매년 벌어들이는 라이센스비가 30억달러(한화 약 3조5천억원)에 달한다는 걸 생각하면, NBA가 웨스트가 로고 모델임을 인정했을 경우 그에게 지불했을 비용이 매년 수백만달러에 달했을 수도 있다. http://mentalfloss.com/article/63937/does-jerry-west-get-royalties-being-nba-logo
  6. 이는 원래 2011-12시즌 일정의 빡빡함때문에 예외적으로 CBA에서 조건부로 확대했었는데 그 이후 시즌에도 적용되었다.
  7. 이외에 수비 3초를 사용하는 리그는 극도의 공격적인 성향의 리그인 중국의 CBA정도.
  8. 같은 지구 팀간 4경기(16경기)+같은 컨퍼런스 팀간 3~4경기(36경기)+타 컨퍼런스 팀간 2경기(30경기).
  9. KBL은 NBA 정규리그 종료할때쯤 플레이오프까지 모든 일정이 끝난다. 그만큼 NBA의 일정은 빡세다.
  10. 하지만 KBL도 리그 선수층에 비해 일정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장 사용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
  11. 단순히 경기수만 많은게 아니라 경기시간 자체도 48분으로 국제규격이나 다른 리그에 비해 긴 데다가 페이스도 빠르다. 또한 선수들의 체격조건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거구들과 몸으로 부딫히는 데서 오는 체력 소모가 더 크다. 김승현의 경우에 전성기 시절 시카고 서머 캠프에 잠깐 참여했다가 체력이 도저히 안되서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다. 서머 캠프도 이정도인데 정규시즌 리그는.. 실제로 대학시절 30경기 안팎을 뛰다가 NBA에서 82경기를 처음 치르게 되는 신인 선수들은 초반에 아무리 잘하던 선수들도 중반 (보통 50경기 정도 치른 올스타전 전후)쯤 되면 체력의 한계를 나타나며 부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걸 NBA에서는 보통 Rookie Wall"라고 부른다.
  12. 두 차례 모두 파업(strike)이 아니라 직장폐쇄(lockout)였는데 국내팬들은 이 차이를 인지 못하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다고 나서는 것이고 직장폐쇄는 회사 측에서 일자리를 주길 거부하는 것이다. NBA의 경우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새로운 연봉체제에 대한 선수노조와 구단주(일반 노사갈등에 대입하면 사측의 입장에 해당한다)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13. 나머지 두 디비전에서 승률 상위 8팀이 나온 경우
  14.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당시까지만 해도 동부의 근소 우위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당대에 잘나가던 소위 "왕조"가 어느 팀들이었는지 감안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참고로 서부팀인 LA 레이커스가 80년대를 주름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컨퍼런스 전체로 봤을 때는 보스턴과 디트로이트 등으로 대표되는 동부 쪽이 전체적으로 전력상 우위였다.
  15. 동부 1위 클리블랜드, 동부 3위 시카고도 모두 당했다.
  16. 사실 이번 시즌 골든스테이트는 딱히 동서부를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나머지팀들을 학살하고 있다. 서부 2위 샌안토니오도 30점차 대패를 당했으니..
  17. 그래도 서부 다른 팀중에는 최소한 골스 상대로 경기다운 경기 한 팀들이 있다. 깨지기전까지는 골스 상대로 홈 33연승을 하던 샌안 스퍼스, 2월 막일 명경기를 연출하며 미친 커리만 아니었으면 이겼을 법한 오클 이라던가. 동부 교류전은 대부분을 골스가 무난하게 박살내고 있는 판이다.
  18. 다만 커리어 대부분을 NBA 평균을 겨우 넘는 수준의 헐값으로 뛰었다. 1995-96시즌 조던의 연봉은 피펜의 292만불보다 조금 더 많은 385만불. 사실 조던은 1996-97, 1997-98 두 시즌 동안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기는 했지만 그가 NBA 전체의 가치에 영향을 줄 정도로 거물인데다 불스에 가져다 준 수익을 감안하면 연봉면에서는 오히려 피펜보다도 더 억울하다고 볼수 있다. 포춘지는 조던이 98년 은퇴당시 농구관련 사업에 100억달러 정도의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는데 그가 커리어 내내 받은 연봉은 1억달러도 안 되었다.
  19. 피펜의 1996-97시즌 당시 연봉은 225만불로 론 하퍼(384만불)나 룩 롱리(279만불)보다도 낮은 팀내 6위였다. 조던이 은퇴하자마자 다른 팀으로 낼름 튀어버린게 이해가 갈 정도. 허나, 불스시절 마이클 조던의 연봉은 마지막 2시즌을 제외하면 피펜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다. 참고로 조던과 피펜이 헐값에 뛴건 샐러리캡 제도 때문이 아니라 80년대에 초장기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NBA는 9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며 거액의 중계계약을 맺는 등 수익이 엄청나게 커졌다. 샐러리캡은 BRI(농구 관련 수익)의 50% 언저리로 계산되기 때문에 수익이 커지만 당연히 샐캡도 커진다. 이에 개나소나 백만불 연봉을 넘기고 주완 하워드, 샤킬 오닐 등은 천만이 넘는 연봉을 받았는데 이미 장기계약으로 묶여있던 조던과 피펜은 의도치않은 염가봉사를 하게 된 셈. 참고로 피펜은 루키 시즌 끝나고 10년 계약을 맺었고 조던은 이미 슈퍼스타이던 시점에 장기계약을 맺었는데 두 선수 모두 계약 당시엔 괜찮은 금액이었다. 조던은 당시 기준으로 버드, 매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계약이었고 피펜도 당시 20분을 뛰는 평범한 벤치멤버에게는 상당히 많은 액수였다. 두 선수의 실책이라면 NBA는 수익이 그렇게 단시간 안에 크게 상승할 걸 예측하지 못한 것과 너무 장기계약을 맺었다는 것.
  20. 현재 NBA에 존재하는 팀인 보스턴 셀틱스가 ABL 팀인 '오리지널 셀틱스'에서 따온 것이다.
  21. NBA 이전에 존재했던 미국의 프로농구리그
  22. 이것 때문인지 1984년에 부임한 데이비드 스턴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마약 퇴치 정책이다.
  23. 월간 루키 2012년 10월호 참고. 코비 브라이언트 및 NBA 중국 수익관련기사
  24. 이전 글에는 마치 스턴이 드림팀 결성에 기여한 것처럼 나왔으나 전혀 아니다. 처음에는 결사반대하고 막으려다가 IOC에게 여러 모로 굴복한 것일뿐.
  25.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LA 클리퍼스 前구단주 스털링 사건에 관해 신속하게 처리해 많은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6. 제레미 린 등 순수 아시아 대륙 태생이 아닌 선수들은 제외.
  27. 이 사실을 최초로 다룬 <바스켓볼 다이제스트> 2002년 2월호에 의하면 그가 뛸 당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의식이 팽배했으며, 감독은 그에게 한 마디 건네지 않은 데다 구단으로부터 강제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농구에서 뺄 수 없는 흑인 선수조차도 미국에서 제대로 뛰기 어렵던 시절이니.
  28. 굳이 억지로 엮어 본다면 1988년에 마이애미 히트에서 데뷔해 NBA에서 10여년간 주전으로 활약했던 로니 세이컬리(레바논 태생)이 있었고, 1995년 오프시즌에 유타 대학교 출신인 중국인 선수 마젠(马健)이 LA 클리퍼스의 트레이닝 캠프에 초청받았으나 당시만 해도 아시아인들의 기량이 검증되지 않았던데다가 신장과 포지션에서의 역할이 매치 되지 않는 트위너로 전락하면서 입단이 무산되었고, 후웨이동 역시 1998년과 2000년에 댈러스 매버릭스올랜도 매직에서도 각각 제의가 들어왔으나 부상으로 무산되었다. 북한의 유명 농구선수 리명훈 역시 1999년에 캐나다로 가서 NBA 진출을 위해 맹훈련했으나 결국 NBA 문턱에는 못 갔다.
  29. 특히 이젠롄은 케빈 가넷에 비견될 정도로 NBA기준으로도 사기적인 운동능력을 지녔다. 야오밍은 절대적으로 보면 운동능력이 낮은 편이지만 226cm 이상의 소위 말하는 "거인"센터중에는 단연 최강이었다.
  30. KBL의 경우 하승진급의 덩치가 골밑에 있으면 그것 자체만으로 상대팀에겐 위협이 된다. 그런데 NBA에서는 하승진이 아니라 야오밍이라도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을 정도로 괴물들이 즐비하다. 야오밍은 NBA에 오기 직전에 중국리그를 완전히 평정하고 왔는데, 루키시즌 골밑에서 레이업을 하다가 같은 루키였던 211cm의 네네 힐라리우에게 뒤에서 블럭당했다. 아시아무대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무브. 쉽게 말해 KBL에서 한시즌에 덩크 블럭이 얼마나 나오는가? 그런데 NBA에서는 원맨속공의 덩크조차 종종 블럭이 나온다. 사실 블럭능력이 뛰어난 네네까지 갈것도 없이 175cm의 초단신인 네이트 로빈슨조차 야오를 한번 블럭한 적이 있다. NBA 선수들이 얼마나 상식밖의 괴물들인지 보여주는 부분.
  31. ‘엘리트주의’ 학원 스포츠에서 ‘린새니티’는 없다 http://www.koreaherald.com/view.php?ud=20140711000658
  32.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NBA팀들은 선수들과 계약할 때 스키나 오토바이, 스카이다이빙 등 부상위험이 큰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었는데, 이 중에 농구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연습도 못하는 건 아니고, 자선경기나 야외경기 역시 팀이 합의해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던은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든지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고, 이런 조항을 넣은 선수는 조던이 최초였다. 이는 일명 "농구에 대한 사랑(for the love of the game)" 조항으로 불린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조항이 상당히 흔해졌다고 한다.
  33. 당시 본업은 이화여대 농구부 감독이었다.
  34. 2008년 해체.
  35. 1954년 해체.
  36. 1950년 해체.
  37. 1951년 해체.
  38. 그는 여기서 로스터 전원을 셀틱스에서 뛴적이 있는 선수 위주로만 구성했다. 역대 최고 명문인 셀틱스는 출신 선수들과 골수팬들이 Celtic nation이라고 부를 정도로 프라이드가 강한데, 역대 최고의 선수를 자진해서 걸렀다는 점에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39. 각 포지션별 차이는 있다. 알다시피 센터가 가장 크고 포인트가드가 가장 작다.
  40. 하지만 NBA에서 가장 작은 포지션인 포인트가드도 평균 6'2" (약 188cm)로 매우 큰 편이다.
  41. 미국 프로스포츠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유니폼 광고 부착에 대해 상당히 꺼려하는 분위기이다. 돈이 되는 명명권 판매조차 빅클럽들은 꺼려하는 곳이 미 프로스포츠. 2005년 데이비드 스턴 총재 때도 이와 유사한 계획을 하려다 무산되었다.
  42.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NBA는 백인 위주였다. 영화 Glory Road에 보면 60년대 대학농구에서는 흑인들이 운동능력은 뛰어나도 머리가 더 우수한 백인선수들을 이길 수 없다는, 지금 보면 웃기지도 않는 편견이 널리 퍼져있었으며, 각 팀마다 흑인들이 면피용으로 한 두명 정도였다. 당대 최고의 팀이었던 켄터키 대학의 명장 아돌프 럽 감독은 수십년동안 단 한명의 흑인선수도 데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1966년에 사상 최초로 흑인으로만 이뤄진 팀(물론 백인 선수들도 있었지만 이 경기에서 뛰지 않았다)인 텍사스 웨스턴 대학이 켄터키 대학을 꺾고 우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흑인의 스포츠 재능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해에 준우승한 켄터키 대학의 주전으로는 훗날 NBA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명예의 전당급 감독이 되는 팻 라일리가 있었다.
  43. 50년대부터 70년대를 거치면서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엘진 베일러,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카림 압둘 자바 등 우수한 흑인 선수들이 나오면서 70년대쯤 되면 "백인선수의 우수성"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였는지 철저히 까발려진다. 그러면서 70년대에는 운영자들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흑인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는데, 이러한 위기감은 닉스가 최초로 전원이 흑인인 팀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달한다.(물론 60년대와 비교해 높았다는 얘기지 현재보다는 훨씬 낮았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흑백분리정책이 철폐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흑인들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NBA의 주고객층은 압도적으로 백인이 더 많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브 코웬스나 존 하블리첵 등 훌륭한 백인 선수들이 있긴 했지만 그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리그를 주름잡는 카림이나 줄리어스 어빙 등은 모두 흑인이었다. 이로 인해 NBA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데, 1980년도 결승 6차전은 우승이 결정된 경기임에도 녹화중계될 정도... 이 상황을 뒤집은 것이 1979년에 데뷔한 "백인" 래리 버드였다. 신인임에도 리그 최고 선수들과 대등한 수준의 엄청난 실력을 자랑했던 버드의 활약은 이미 박살난 백인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기에 충분했고, 그는 White hope(백인들의 희망)라고 널리 알려졌다.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매직 존슨과의 대학시절부터 계속된 라이벌 관계로 인해 NBA는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NBA 고객들 중에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고, 흑인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백인 팬들의 거부감도 점점 줄어들면서 더 이상 흑인이 많다는 이유로 NBA 인기가 타격을 입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게 마이클 조던이었는데, 이미지 관리의 달인이었던 그는 최고의 실력과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흑인 마이클 조던"이 아닌 "유명인사 마이클 조던"으로 알려지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을 만한 이슈나 인종논란이 생길 법한 이슈에는 조심스럽게 코멘트를 하거나 노코멘트로 일관했는데, 이와같은 그의 행보는 비록 일부 흑인 팬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백인이 대다수인 주류 미국 사회의 사랑을 받는데 도움이 되었다. 당시 그의 위상에 대해 한 방송인은 "마이클 조던 이전까지는 14세 백인 소녀가 흑인 남자 운동선수의 포스터를 방에 걸어놓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96년에 데뷔한 신인 앨런 아이버슨이 "나는 마이클을 상대할 수 있다"고 당돌하게 말을 하자, 미국의 Sports Center는 이 말에 대해 "(이 멘트로 인해) 마이클은 기분이 상했죠(offended). 그리고 마이클이 기분이 상하면, 미국이 기분이 상하는 겁니다.(And when Michael is offended, America is offended.)"라고 말하기도 했다.
  44. 저지, 모자, 두건, 티셔츠, 큰 장신구, 스니커등
  45. 자세한 사항은 론 아테스트 문서 참조.
  46. 그래도 30만원에 달하는 NFL 게임패스 보다는 싸다. 게임수를 감안하면 더더욱.
  47. 리그 패스를 시청 중인 상태에서 다른 기기로 접속하면 시청 중이던 기기의 접속이 끊기며 로그아웃 되어버린다. 심지어 태블릿으로 경기 보며 박스스코어 확인하려고 폰으로 모바일앱을 켰을 뿐인데도 태블릿이 동시 접속으로 끊기며 로그아웃 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