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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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삼흠(鄭三欽)
생년월일1961년 11월 5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고성군
학력명지고-고려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좌타
프로입단1985년 1차지명 3순위
소속팀MBC 청룡-LG 트윈스(1985~1996)

1 소개

90년대 신바람 야구의 선봉장

KBO 리그 선수. (투수) 야간 경기에 강해서 "부엉이"라는 별명이 있다.[1]

LG 트윈스가 "신바람 야구"를 이끌며 리즈 시절 승승장구하던 1990년대의 에이스로, 늦게 터진 김태원, 신인 이상훈, 소방수 김용수와 함께 LG 트윈스의 마운드를 이끌었다. 최고 145km/h 내외의 빠른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었지만 전성기 때에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완급 조절에도 능한 모습을 보였다. 통산 성적은 12시즌 106승 121패 47세이브 1,894.2이닝 ERA 3.62 50완투 11완봉승.

2 현역 시절

2.1 프로 이전

지금은 야구부가 존재하지 않는 명지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다.[2] 문제는 명지고 야구부가 당시 고등학교 야구부들 중에서는 약체였다는 것. 그래서 고려대학교로 진학하고 난 뒤 투타를 오가며 열심히 뛰었음에도 선동열-안언학-한영준 등의 더 힘세고 강했던 유망주급 동기들에 묻혔다. (..)

거기다 이미 들어와있던 선배들, 그리고 그 뒤로 들어오는 후배들에게도 치이던 정삼흠은 팔꿈치 부상으로 신음해야 했고, 이것은 정삼흠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정삼흠은 1984년 일종의 파견 형식으로 실업야구 팀 포항제철에 입단해 실업 신인왕을 수상하고 1985년 드래프트에서 MBC 청룡에 입단하게 된다.

2.2 MBC 청룡 시절

첫해에 중간계투(롱 릴리프)로 등판을 시작한 정삼흠은 무려 192이닝을 소화한다.[3] 선동열과의 취중 대결도 이 때 벌어졌는데, 전날 둘이서 술을 왕창 마신 다음 [4] 취한 상태로 등판. 그리고 그 결과 정삼흠은 7이닝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고, 선동열은 완봉승 (..) ..무 무서운 남자! “새벽까지 아무리 먹여도 다음 날 보면 싱싱하니, 결국 나만 망가졌지 뭐.”- 정삼흠의 회고[5]

하지만 MBC 시절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등판했음에도 승수보다 패수가 훨씬 많았다. 물론 득점지원이 좋아진 1990년대에도 패수가 많긴 했지만, MBC 청룡은 약체였으니...

1988년 시즌 종료 이후 새로 취임한 배성서 감독이 강압적인 스파르타 훈련을 강행하자[6] 이에 반발해서 여기가 공산당입니까?라는 공개발언으로 항명하기도 했다.[7] 당시 군대같던 운동부 선후배 위계질서를 감안해 보면 엄청난 사태. 이 때문에 1989년은 시즌 후반부가 되어서야 나왔을 정도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 배성서 감독은 선수단과의 갈등과 성적 부진으로 시즌 종료 후 백인천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다만, 89년 9월 24일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동대문 더블헤더 2차전에서 세이브를 거뒀는데 당시 선발승을 거뒀던 김태원은 이 날 열린 동대문구장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의 승리투수가 됐다.

2.3 LG 트윈스 시절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한 럭키금성은 팀을 "LG 트윈스"로 바꾸었고, 골프옹 백인천이 선수들의 지지를 받으며 첫 감독이 되었다. 백인천은 정삼흠에게 고정 마무리 투수 자리를 주었고, 8승 23세이브를 거두며 기대에 보답한다. 그리고 첫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4차전에서 말끔히 승리를 지켜내기도.[8]

그 후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연속으로 두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선발의 한축으로 뛰다, 나이가 들어 부진하자 1996년 은퇴를 선언한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의 최다패 기록을 갱신한다. 후문으로는 사실 2-3년 더 뛸수 있었는데, 이후의 감독직을 노리고 코치짭밥을 쌓기 위해 일찍 은퇴했다고 한다. 코치를 거부하고 현역을 연장하려던 김용수와는 대조적인 부분..

3 은퇴 이후

현역에서 깨끗하게 물러난 정삼흠에게 트윈스는 코치직을 제안했고, 정삼흠은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트윈스가 기대한 만큼의 실적을 내지는 못한 채 LG를 떠나게 되었다.[9] 당시 외야수로 잘 뛰던 심재학에게 투수 전향을 꼬드겨서 커리어를 망친 것도 코치 정삼흠이다! 물론 천보성감독의 지시가 있긴 했지만. 심재학 항목 참조.

2004년에는 SUPER ACTION에서 일본프로야구 해설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신일고, 부천고 감독을 지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고 선수 스카우트와 관련한 비리 문제로 구속되었던 일로 인해 사실상 지도자로 다시 서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2012년 12월 현재 성남 분당구 야탑동의 한 야구교습센터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자세한 상황은 해당 지역 주민의 추가바람.

2016년 10월 현재 중국야구리그 장쑤(江蘇) 천마팀에서 총괄코치로 활동 중이며 내년에 4년 정식계약을 체결하기로 되었다고 전했다.

여담으로 정삼흠을 정상흠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사만루2에서도 유니폼에만 정상흠으로 나올정도

4 역대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85MBC 청룡41192⅔912503.131698499
19861852⅔12104.61573821
198733
(4위)
195⅓613202.861718085
(5위)
198827139⅔516005.671637543
198921100⅔57303.67925137
연도소속팀경기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0LG 트윈스55168⅓8923
(2위)
02.781336685
199139180⅔1215804.1817659114
199246
(2위)
180⅓1411504.0417279128
(5위)
199330198⅔
(2위)
15
(2위)
11002.991846493
199427186⅓15
(5위)
8002.951735476
19952616389003.811547282
199625136⅓88004.291396876
통산12시즌3881894⅔
(6위)
1061214703.621783790939
  1. 끼고다니던 안경때문에 부엉이 닮았다고해서 붙여졌다는 말도 있다(.....)
  2. 보통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초~중학교 때부터 야구에만 몰두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삼흠의 경우는 늦은 편이다.
  3. 물론 1980년대 투수들은 혹사가 심했기 때문에 100이닝 이상은 기본으로 소화해야 했다. 중간계투라고해도 못미더운 패전처리가 아닌 이상은 얄짤 없었다.
  4. MBC 청룡 감독선동열의 컨디션을 영 좋지 않게 만드려고 지시했다고 하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인과 관계가 제대로 확인된 건 아니니, 설레발은 금물.
  5. 출처 http://sports.news.nate.com/view/20120619n04270?mid=s1001
  6. 참고로 배성서 감독은 이현세의 만화 외인구단에 나오는 캐릭터인 손병호 감독의 실제 모델이다.
  7.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이 있는데, 김재박, 이광은, 신언호 등 고참 선수들이 배성서 감독의 강압적인 훈련을 꺼려 했고, 당시 주장이던 김재박은 배성서가 자신의 대학 시절 스승이었기 때문에 직접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신진급인 만만한 정삼흠을 사주하여 항명 사태를 일으켰다는 카더라도 있다.
  8. 참고로 3차전에서 9회말 백인천의 지시로 일부러 투런홈런을 맞았는데,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9. 2003년 김재현이 음주측정 거부로 입건 되었을때 김재현의 차량에 같이 동승했었는데,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서 시즌 후 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