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항목 : 넥센 히어로즈/선수단, 야구 관련 인물(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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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죄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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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블리
넥센 히어로즈 No.88 | |
심재학(沈哉學 / Jae-hak Sim) | |
생년월일 | 1972년 10월 18일 |
출신지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
학력 | 영중초 - 충암중 - 충암고 - 고려대 |
포지션 |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5년 LG 트윈스 1차 지명 |
소속팀 | LG 트윈스(1995 ~ 1999) 현대 유니콘스(2000) 두산 베어스(2001 ~ 2003) KIA 타이거즈(2004 ~ 2008) |
지도자 | 넥센 히어로즈 2군 타격코치(2009 ~ 2010)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2011) 넥센 히어로즈 1군 외야 수비코치(2012) 넥센 히어로즈 1군 작전 & 주루코치(2013)[1] 넥센 히어로즈 1군 외야 & 주루코치(2013 ~ 2014)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2015~2016) 넥센 히어로즈 1군 수석코치 (2017~)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 ||||||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송지만(한화 이글스) 이병규(LG 트윈스) | → | 정수근(두산 베어스) 심재학(두산 베어스) 이병규(LG 트윈스) | → | 송지만(한화 이글스) 이종범(KIA 타이거즈)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
LG 트윈스 등번호 14번(1995~1999) | |||||
신동수(1994) | → | 심재학(1995~1999) | → | 류택현 (2000~2010) |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4번(2000) | |||||
송신영(1999) | → | 심재학(2000) | → | 박우호 (2002~2004)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10번(2001~2003) | |||||
강혁(2000) | → | 심재학(2001~2003) | → | 황윤성(2004~2005)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14번(2004~2008) | |||||
박진철(2001~2003) | → | 심재학(2004~2008) | → | 박경태(2009~2010) | |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8번(2009~) | |||||
팀 창단 | → | 심재학(2009~) | → | 현직 |
목차
1 소개
전 한국프로야구 선수. 2017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의 수석코치를 맡을 예정이다.
3승과 100홈런을 동시에 기록한 두명 중 한 명[2]
2 프로 선수 시절
2.1 LG 트윈스 시절
(출처 : 포토로) |
고려대학교 시절 4번 타자에 엄청난 강견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1995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다.심재학의 ㅎㄷㄷ한 홈송구. 동 시대를 풍미한 강견 심씨 외야수 심성보, 심정수와 묶여 3심이라 불리기도 했다.
신인이었던 시즌은 처참했는데, 1군 108경기에 출장해서 타율 .230 4홈런 18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타격 폼이 워낙에 특이해 교정에 교정을 거듭했다고 한다.
다음 해인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LG의 중심타선에 자리잡았고, 아마 시절 및 프로 입단 당시의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3] 1998년까지 두자릿수 홈런을 치며 활약하게 된다. 1996년에는 전해보다 기량이 일취월장하며 .285에 18홈런 72타점을 기록했다. 특이한건 18홈런 중 14홈런이 잠실에서 나왔다는 점. 타이론 우즈 이전 잠실에서 한 시즌에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한 선수로 이름을 올린다.그래 봤자 딱 2년뿐이었지만 1997년에도 똑같은 .285에 15홈런 84타점을 기록했는데, 저 타점 숫자가 이승엽, 양준혁 다음으로 많았으며 홍현우, 김기태보다도 많은 것이었다. 유지현이나 서용빈, 이병규가 출루를 겁나게 잘 했으니깐
1998년에는 성적이 다소 하락했다. 그래서였을까 심재학의 강견을 눈여겨보던 LG의 천보성 감독과 정삼흠 투수코치는 1998 시즌 종료 후 엄청난 병크를 저지른다.
그것은 바로 심재학을 투수로 전향시키는 것!!
(출처 : 포토로) |
당시 LG의 사령탑이던 천보성 감독은 투수가 필요하게 되자, 당시 투수코치인 정삼흠과 의논 끝에 중심타자 심재학을 좌완투수 심재학으로 전향시켰다.[4][5] 정삼흠 투수코치가 심재학에게 투수 전향을 권유할 때, 용병이 외야 한 자리를 차지하는게 대세[6]라는 근거를 들어 '계속 외야에서 뛸 경우 돌아올 것은 트레이드다!' 라는 말로 꼬드겼다고 한다. 당시 심재학의 변
강한 어깨 탓에 최고 구속은 145km/h를 찍었으나 제구가 전혀 되지 않았고, 아무래도 타자와 투수가 쓰는 근육이 다른 탓에 투구하는 내내 어깨 근육통에 시달렸다. 결국 투수로 15경기(선발 10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평균자책점 6.33을 기록하며 망했어요로 전락했다. 결국 시즌 막판 타자로 다시 전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출처 : 포토로) |
따봉
LG와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심재학은 시즌 후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결국 자신의 생일인 1999년 10월 18일에 투수 최원호를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에 트레이드됐다.[7][8]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한 심재학은 다시 방망이를 잡으며 2000 시즌 .265 21홈런 75타점을 기록하며 현대의 2번째 우승을 견인한다.
사실 이 시절 성적만 보면 초라해 보이지만, 선구안이 괜찮은 편이어서 출루율이 높은 편이었다.
2.3 두산 베어스 시절
그러나 당시 선수협 사태로 미운 털이 박혔던 심봉사심정수의 보복성 트레이드 맞상대로 지목되어 2001년 2월 9일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됐다. 당연히 두산 팬들은 심정수를 왜 내보내냐며 분노하였고[9]이는 조직적인 항의 운동으로까지 발전하며 공식 홈피 곰대가 1주일 폐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1년 후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채.. 저 당시 두산 팬들에게 심죄악이라고 대차게 까인건 덤.[10]
그러나 심재학은 두산에서 대폭발(!)하며 2001년 1군 117게임에 출장, .344 24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결국 개인 통산 2번째 우승 반지이자 2년 연속으로 우승 반지를 끼는 영광을 얻었다. 200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2루에서 3루로 주루도중, 김한수의 송구를 머리에 맞았지만,[11] 고통을 참고 홈까지 달려 득점 주자가 되었다. 그리고 6차전에서는 장종훈이 그랬듯 희생플라이로 두산의 승리를 매듭지었다. 2001 시즌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획득.
하지만 2002년 타율이 무려 1할이나 감소하는 부진을 겪었고,(.245 15홈런 57타점) 2003년에는 .236 5홈런 27타점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들었다. 첫 해 심재학이 미친 활약을 보여주며 양측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전형적인 윈-윈 트레이드로 심정수-심재학 트레이드는 남게 될 줄 알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심정수가 보여 준 성적에 비해 많이 밀리는 것이 사실이다.
2.4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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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시즌 종료 후 두산 베어스는 리빌딩을 목적으로 KIA 타이거즈와 심재학 = 황윤성 + 박진철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KIA로 이적한 심재학은 2004 시즌 128게임에 나와 타율 .281 22홈런 81타점을 기록, 삼성시절과 비교하면 비교적으로 먹튀짓에 가까운 활약을 하던 마공갈마해영과 부상에 시달리고 태업 의혹이 있었던 박재홍의 몫까지 활약하며 시즌 종료 후 3년 총액 18억 원에 FA 계약을 한다.
그러나 FA 계약 후 2005 시즌에는 부상에 시달리며 부진, 1군 94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치며 .254 12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2005년 4월 30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신용운을 울리는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신용운에게 담배셔틀을 시킨 모양이다. #
2006, 2007 시즌에는 부상에 허덕이며 1군 56게임과 25게임에만 출장했으며, 결국 2008년에는 개막전에서 단 1타석에만 들어서고 2군으로 내려간 후 안재만과 함께 6월에 웨이버 공시되었다. 웨이버 공시된 후 그는 KIA 구단에다가 지도자 연수 요청을 하면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심재학의 선수 경력은 이것으로 끝났다.
2.5 평가
이러한 전적 탓에 대다수의 야구 팬들은 심재학을 FA로이드만 쩌는 그저 그런 선수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생각을 해 봐야할 것이 심재학은 생각보다 괜찮은 선수였다.
플루크 시즌이라는 말을 듣긴 하나, 커리어하이인 2001년의 RC/27은 94이종범, 02이승엽과 동급이고 03이승엽보다 높다.[12]
또한 통산 타율은 .269로 2할 7푼도 채 되지 않는 그래봤자 1리 차이지만 평범한 기록이지만, 통산 출루율은 무려 .378로 타율과의 갭이 1할이 넘는다. 게다가 타율과 출루율의 차이가 크고 작고를 떠나서, 통산 출루율 .378과 통산 OPS .827은 3000타석 이상 뛴 선수들 중에서도 각각 16위와 26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또한 홈런 역시 통산순위에서 현재 공동 26위.(다른 한 명은 바로 김한수)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외로 쏠쏠한 타자였음에는 틀림없다. 타율이 매우 낮아보여서 그렇지, 타율만 중시하던 예전과는 달리 OPS가 일반화되면서 출루율을 많이 고려하는 등 야구에 관한 시각 자체가 많이 진일보한 요즘에 뛰었다면 또 어떻게 평가받았을지 모르는 부분.
문제는 타격시 스윙 스피드가 굉장히 느렸다는 것. 몸집만 보면 거포이고, 때리면 홈런인 것 같은 타구를 날렸는데 플라이가 된다든지... 그렇기 때문에 타율이 낮았던 건지도 모른다.
3 지도자 시절
2008 시즌 후 김시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히어로즈의 2군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2009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됐다.
장민석을 2군에서 지도하여 이택근 이후 넥센 히어로즈의 주전 중견수로 키워낸 사람이긴 한데...타격코치로서의 평은 그리 좋지 않다. 2011년 1군 타격코치 시절 히어로즈 물타선의 주범으로 까이곤 했다.
3.1 2012년
과거 이승엽을 키워 냈던 박흥식 히어로즈 2군 감독이 1군 타격코치로 올라오면서, 외야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가끔씩 TV에 시프트를 옮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옮기는 장면이 나온 다음 공은 옮기기 전 위치로 날아가는 일이 자주 있어서 시프트를 옮기는 장면이 나오면 '죄악시프트' 라고 부르며 긴장타는 사람이 어느정도 있다.
3.2 2013년
2012 시즌 종료 후 염경엽 감독 취임으로 공석이 된 작전,주루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13] 대신 외야수비코치는 한화 이글스에서 최만호 코치가 옮겨왔다.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선수들의 뇌주루가 속출해 심죄악으로 불리며 적잖이 비판받았다. 염경엽 감독의 질책 및 격려와 본인의 공부를 통한 노력으로 주루 지도능력이 어느정도 향상될 줄 알았으나 2013시즌 넥센의 도루성공률이 최하위를 달리면서 회의론이 대세가 되었다.
2011년엔 팀 타자 수준 자체가 낮아서 실드가 쳐졌지만 12년에 도루성공율 1위했던 팀이 2013시즌에 바로 꼴지로 떨어진 걸 어떻게 실드 칠 수 있는가?[14] 그리고 최만호는 한화에서 주루코치로 호평받았던 코치여서 최만호와 심재학의 보직을 바꿔야 한단 소리도 꽤 있었다.
결국 2013년 8월 28일 심재학 코치 본인의 요청으로 최만호 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었다. 그리고 최만호는 금지어가 되었다.
하지만 이후 충격적인 이야기가 드러났으니.......
2014년 베이스볼긱과의 인터뷰에서 선수시절 총 도루 개수가 25개란 사실이 나온 데다, 2015년 인터뷰에서 심재학이 가장 많이 도루를 한 것이 2001년 두산 시절의 7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염경엽 감독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일화가 되었다.
3.3 2014년
넥센의 1루·외야수비 코치를 맡고 있다. 작년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을 토로하는 인터뷰도 했다. # 참고로 인터뷰 내용에 나오고, 밑의 각주에도 있지만, 그렇게 자기 마음고생을 심하게 만든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감독인 염경엽이라고.... 염감독이 자기한테 보고 배운 게 있으니까 잘 할 거라고 하면서 맡겼단다.
3.4 2015년
1월 15일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에 1군 타격코치였던 허문회와의 계약이 불발되면서 공석이 된 1군 메인타격코치 자리를 맡았다.[15] 이로서 심재학은 2012년 역대급 주루시즌 다음 연도에 주루코치를 맡고, 2015년에는 2014년 역대급 타격시즌의 다음 연도에 타격코치를 맡는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게 된다.
심재학이 타격코치를 맡았던 2011시즌의 엄청난 물빠따를 경험했던 넥센팬들은 불안감에 휩싸였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어 시즌 초부터 방망이의 기복이 상상초월이었다. 한 경기 메가히어로즈포 터지고 나머지 경기는 개점휴업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4월 9일 잠실서 두산의 유네스키 마야에게 136구 노히트노런을 내주는 참변을 초래했다. 심판이 노골적인 넥센안티 박근영임을 고려해도.
6월 30일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심재학 코치 “뭘 치라는 얘기 안 해…확신만 심어줄 뿐”
후술하듯 특이한 티배팅 공을 직접 고안해 냈는데, 이게 의외로 괜찮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7월 31일 마산 NC 1차전에서 홈런 4방이 터지며 타격에서 봇물이 터지자 해설자 왈 심재학 코치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다며 활짝 웃는 모습을 카메라로 잡아주기도.
타격포텐이 터지면서 혀갤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3.5 2016년
2014년의 클린업 트리오가 모두 증발해버린 상황에 전력이 당연히 약화될거라고 좆전문가들이 모두 예측한 상황에서 나머지 선수들의 타격이 향상되면서 그 구멍을 나름 메우고, 특히나 유재신, 박정음 같이 타격이 좀 아니다 싶은 선수들이나 신진급 선수들의 타격이 좋아지는게 확연히 보이면서 지도력 논란은 조금 사그러드는 편이다.
티배팅 공이 진화해서 이번엔 강속구 대처용으로 공에 색을 칠해 피칭 머신으로 돌려서 선수들이 타격하지 않고 색깔만 맞추며 동체시력을 키우는 새로운 훈련법을 고안해내었다. 처음엔 잘 못보더니 며칠 해보니까 공 색깔을 금방 다들 알아보더라고. 성공 여부를 떠나서 선수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6월 24일에는 심재학이 뜬금없이 엔트리에서 말소되고 2군의 송지만 코치가 콜업되었다. 성적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코칭에 큰 문제도 없어서, 아니 오히려 성적이 더 좋아지고 있는 와중이라 도대체 교체될 이유가 없어서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전날 훈련때 속이 안좋아 병원에 갔고, 급성 맹장염으로 수술을 받아 그랬다는 소식에 팬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다행히 회복이 빨랐고, 본인의 의지도 강해서 주말 3연전만 빠지고 28일에 다시 복귀했다. (그리고 그렇게 심재학 없이 치뤘던 4경기에서 넥센은 1승 3패를 당했다. 그것도 3연전 상대가 친정인 LG였다.)
선수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면서도 애정어린 조언과 기술적인 부분을 같이 짚어주는 코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선수와 격이 없으면 선수에게 구타당하면서도 좋다고 웃는다. (박정음의 데뷔 첫 홈런이 나왔는데, 언제나처럼 선수들은 무관심 세레머니를 하려고 준비중이었고, 코치님도 하시라고 선수들이 그러니까 심재학 코치도 슬쩍 끼었다. 근데 박정음은 코치님까지 그러실줄은 몰랐다며 마구 때렸다. 근데 고유라 기자의 트윗에 의라면 그 와중에 박정음이 힘이 많이 세졌다고 또 칭찬을 섞는다.) 그 합법 갑이 무서워하는 심재학을 막 때린다
9월 19일 롯데와의 경기에선 김하성의 타구를 2루수 김대륙이 실책사실은 안타였는데하여 모든 주자가 싹쓸이 들어왔는데 단 1점만 인정하여 기록원들에게 감정적으로 야구할 꺼예요? 라고 무섭게 따졌다(...)염경엽 : 그로브 닿았잖아요 안타지!결국 실책이 아닌 안타로 정정되면서 3점 모두 인정되었다.
그리고 프런트 출신의 장정석 감독이 취임하면서 수석코치 자리를 구단에서 제안받았는데, 아직 수락여부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10월31일날 발표된 코칭스테프명단에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4 기타
- 이분이나 저분, 그분들에 가려져 있어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빵 사건의 제4 용의자로 추정되었다. 그래서 빵재학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나 위의 세명에 비해 그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게다가 이분의 증언으로 범인이 사실상 요분으로 확정되는 분위기라 묻혔다. 그리고 현재는 그분으로 확정.
- 프로야구매니저의 2013년 6월말 업데이트에서 OB-두산의 3번째 레전드 카드로 추가될 예정이다. 팬들은 심정수나 우즈를 냅두고 고작 입단기간 3년에 1년 반짝한 선수한테 레전드를 주냐며 어이없다는 반응. 물론 우즈는 나중에 추가 되었지만 정작 심정수는 두산 버젼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는데 박재홍도 현대와 SK 두가지 버젼이 모두 있는데다가 심지어 용병인 다니엘 리오스마저도 기아와 두산의 2가지 버전으로 나왔다는걸 생각하면 심정수 두산버젼을 추가하지 않고 심재학의 소개란에 당당히 우동학 트리오라 적은것은 누가 봐도 프야매 측의 병크.
- 1985년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한국이 우승할 때 주요 선수였다. 그래서 2014년에 한국이 29년만에 리틀야구에서 우승을 차지할 때 경기를 허구연과 함께 해설을 했다. 참고로 상대 팀엔 제이슨 배리텍이 있었다. 1985년도 대회에서 심재학의 활약에 대해 아는 위키러의 추가바람
- 지금이야 죄블리로 까임의 대상이지만, 대학 재학 중에는 엄청난 악마로 이름날렸다고 한다. 합법으로 유명한 그분도 아직 심재학 코치만 보면 얼굴을 제대로 못 본다고...프로팀에 오고 나서도 군기반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프로팀에도 별 선수들이 다 있다 보니 대학 시절만 못했던 모양. 가장 대표적인 안습한 예로 한참 어린 동생인 정수근과[17]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했던 짬뽕 사건이 있다.[18][19]
- 2015 시즌 들어가면서 독특한 티배팅 공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기사
5 타자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안타 | 타율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5 | LG 트윈스 | 106 | 239 | 55 | .230 | 10 | 4 | 4 | 18 | 32 | 2 | 57 | .356 | .376 |
1996 | 118 | 389 | 111 | .285 | 15 | 1 | 18 | 72 | 59 | 1 | 75 | .468 | .395 (5위) | |
1997 | 117 | 411 | 117 | .285 | 23 | 1 | 15 | 84 (3위) | 54 | 5 | 56 | .455 | .363 | |
1998 | 124 | 412 | 110 | .267 | 22 | 1 | 11 | 70 | 47 | 0 | 66 | .405 | .360 | |
1999 | 1 | 0 | 0 | .00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안타 | 타율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0 | 현대 유니콘스 | 130 | 430 | 114 | .265 | 30 | 1 | 21 | 75 | 66 | 3 | 66 | .486 | .361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안타 | 타율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1 | 두산 베어스 | 117 | 369 | 127 | .344 (2위) | 20 | 1 | 24 | 88 | 84 | 7 | 93 | .599 (3위) | .473 (2위) |
2002 | 119 | 383 | 94 | .245 | 16 | 3 | 15 | 57 | 56 | 2 | 73 | .420 | .361 | |
2003 | 111 | 276 | 65 | .236 | 16 | 0 | 5 | 27 | 28 | 1 | 42 | .348 | .332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안타 | 타율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4 | KIA 타이거즈 | 128 | 372 | 105 | .282 | 23 | 2 | 22 | 81 | 64 | 1 | 85 | .532 | .408 |
2005 | 94 | 252 | 64 | .254 | 9 | 0 | 12 | 39 | 34 | 3 | 50 | .433 | .373 | |
2006 | 56 | 119 | 21 | .176 | 5 | 0 | 2 | 7 | 7 | 0 | 16 | .269 | .268 | |
2007 | 25 | 51 | 12 | .235 | 4 | 0 | 0 | 4 | 9 | 0 | 7 | .314 | .328 | |
2008 | 1 | 1 | 0 | .00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통산(14시즌) | 1247 | 3704 | 995 | .269 | 193 | 14 | 149 | 622 | 539 | 25 | 686 | .449 | .377 |
6 투수 연도별 주요 성적
연도 | 소속팀 | 경기 | 이닝 | 평균자책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1999 | LG 트윈스 | 15 | 48⅓ | 6.33 | 3 | 3 | 0 | 0 | 48 | 36 | 32 |
- ↑ 8월 28일 최만호 외야수비코치와 보직을 바꾸었다. 그리고 최만호가 심재학보다 못한 코칭(사실 심재학은 도루와 거리가 먼 선수였다. 다만 최만호는 한화 시절 보직이 주루코치이기도 했고... 이걸 감안하면, 최만호는 더 비난받는다.)을 보이면서 새로운 금지어가 되었다.
- ↑ 다른 한명은 김성한.
- ↑ 그래도 1990년대 후반 LG의 4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 ↑ 심재학은 충암고등학교 시절 투수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지만, 고려대학교 진학 이후에는 줄곧 타자로 출장해 왔다. 때문에 단순히 어깨가 좋고, 한때 투수를 해 봤다는 이유로 프로에서 투수로 전업하는 것은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 ↑ 사실 심재학의 투수 전향은 전임 이광환 감독도 추진했던 일이다. 이를 앞장서서 반대한 사람은 당시 수석코치를 맡고 있었던 천보성... 이를 두고 벌어진 이광환 vs 천보성의 갈등은 이광환 감독이 중도 퇴임한 여러가지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자기가 코치일 때는 반대하면서 전임 감독을 밀어내더니, 정작 감독이 되니 다시 추진... 이건 뭐...
- ↑ 이 시기에 펠릭스가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리고 마이클 앤더슨이 LG와 재계약에 실패한 후 쌍방울 레이더스로 떠나면서, 마무리가 공석이었다.
- ↑ 이 당시 LG는 투수가 없어서 심재학을 투수로 전향시킨 상황이었다. 그런데 심재학의 투수 전향이 실패로 끝나자 심재학만큼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였던 최원호를 트레이드로 받아온 것.
- ↑ 심재학은 96~97 시즌에 날아다녔다. 또한 95시즌을 앞두고 1차 지명으로 데려온 선수였다. 그리고 최원호는 98시즌에 10승을 거두었으며, 96시즌을 앞두고 1차지명으로 데려온 선수였다. 둘 다 99년에 부진했으니, 다시 잘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트레이드해 버렸다.
- ↑ 심정수는 2000년 당시, LG 마무리인 장문석을 탈탈 털고서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시리즈로 두산을 보냈기에 더욱 분노했다. 더군다나,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몫했었고...
- ↑ 이 때문에 심정수는 정들었던 두산을 떠난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 ↑ 그리고 공은 이상한 곳으로 튀어 버렸고, 심재학이 득점 주자가 되었다.
- ↑ 다만 이승엽의 경우 홈런 신기록을 달성한 03시즌이 상징적인 의미는 크더라도, 99년도와 02년도가 더 높이 평가받는다.
- ↑ 2014시즌 중 인터뷰에 의하면 이 자리에 오른 이유가 사실 염경엽 감독의 제안 때문이었다고 한다. 1년 동안 본게 있을 것이라면서 시켰다고.
- ↑ 사실 2012년에는 염경엽 감독이 주루코치였으므로 염경엽의 주루코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2011년에도 팀 도루는 꼴지였다.
- ↑ 하지만 허문회는 당일 자로 넥센과 재계약하는 흠좀무한 상황을 보여줬다.
- ↑ 나이키는 2013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유니폼 및 스포츠 장비 스폰서를 맡았다.
- ↑ 어려봤자 4살 차이. 정수근이 빠른생일임을 감안하면
- ↑ 그런데 이게 빵 사건마냥 별 얘기가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설은 경기 도중에 멋대로 짬뽕을 시켜먹는 정수근을 보고 화가 난 심재학이 이를 꾸짖었는데 정수근이 이에 반발하자 결국 방망이 들고 대치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다른 설로는 배가 고팠던 심재학이 짬뽕을 먹고 있는 정수근을 보자 자기도 한입만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삐쳐서(...) 싸우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있다.
빵 사건도 그렇고 이래저래 사건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구만 - ↑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벌어진 2003년 시즌이 끝난 후 심재학과 정수근 둘 다 두산을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