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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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이 한국의 데즈카 오사무라면 이쪽은 나가이 고

1 개요

허영만과 함께 7, 80년대 한국 만화를 이끈 주역[1]

대한민국만화가.노래는 이문세 만화는 이현세라 카더라

1954년 9월 19일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출생.[2]

세종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 문화컨텐츠교육센터 대표교수, 한국 만화가 협회 회장, 경찰홍보자문위원 등의 직함을 갖고 있고 2006년에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의원도 맡았다.

대한민국의 만화가 중 인지도 면에서 1, 2위를 다투는 인물. 지금은 구세대 작가로 명성이 좀 떨어진 것 같지만 전성기였던 80년대에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만화계의 지존 중의 지존이었다.[3] 특히 최고 히트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은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를 통해 TV 광고에 섭외될 정도의 지명도를 확보하였다.

좋게 말하자면 선이 굵고 강렬한 남성적인 작품을. 나쁘게 말하면 철저하게 시대의 수요에 맞게(...) 마초스러운 작품을 주로 그렸고, 이런 작풍은 1980년대 당시의 한국정서에 맞았기에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그때의 색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람에(다시 말하자면 매너리즘) 세월이 지나며 명성이 쇠퇴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4]

상당수의 작품에서는 컴플렉스적인 히스테리를 드러내는 정신상태가 위험한 막장 캐릭터가 흔히 등장한다. 후기작으로 갈수록 성인만화적인 사고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드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원래 장래희망은 화가였고 미술적 능력은 매우 뛰어나다. 소묘 그림을 보면 입이 떡 벌어져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정통 실력파이자 극화체로 봐서는 현존 만화가중에 1, 2위를 다툴 정도의 실력파. 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 일본 만화를 국내 실정에 맞게 베끼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많은 종류의 그림들을 모사하다 보니 자신의 독특한 그림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공장의 전설은 공장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중퇴를 자칭했었고, 워낙 오랫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온 덕분에 해당 학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사실인 것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훗날 단행본으로 나온 버디 3권 후기에서 "사실 난 고졸이다."라고 밝혔다. 헌데 만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덕분인지, 아니면 전성기가 지났기 때문인지 별다른 논란 없이 넘어갔다. 마침 신정아 사건과 겹쳤던 탓에, 양심을 회복하기 위한 선언이라기보다 들통나는 것보다 낫다 싶어서 하는 수 없이 밝힌 게 아니냐는 의심의 여지가 남았다.

작중 캐릭터들 중 인기가 높은 캐릭터를 골라서 돌려 사용하며[5], 2010년까지도 이런 시스템으로, 대부분이 대본소 만화나 가끔 웹툰 아니면 스포츠 신문연재로 유료 연재로 살고 있다. 80년대 인기 작가들이 몰락한 것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셈.

자주 쓰는 캐릭터로는 까치(오혜성), 엄지, 마동탁 등이 있다.[6] 자세한 사항은 이현세의 레귤러 멤버 참조.

캐릭터는 동일하더라도 일단 한번 작품을 내면 그 속편격인 작품은 절대로 내지 않는다는 신조를 지켜왔다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소재에 도전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반면 부실한 설정으로 인한 비판도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항목에 추가 기술한다.
한편, 이현세의 일대기를 다룬 KBS 1TV <인간극장> '고등어와 크레파스'가 95년 방영됐는데 영화배우 박세준이 주인공 이현세 역을 맡았다.

2 주요 이슈

2.1 대본소 체제의 개편

1982년 공포의 외인구단의 성공은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만화시장인 대본소의 시장구조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었다. 공포의 외인구단 이전에는 대부분의 작품이 단편 위주였는데, 이는 빨리 완결을 보고 싶어하는 독자의 요구, 책을 갖추기 쉽다는 업주의 요구, 현금 회전이 빠르다는 출판사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공포의 외인구단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독자의 요구가 "장편은 좋지만 완결은 빨리 보고 싶다"는 방향으로 변화했다.[7]

이로 인해 출판사에서는 장편을 빨리 완결지을 수 있는 작가들을 선호했고, 작가들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스토리, 작화, 배경 등 분업 체제를 도입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분업 체계 자체가 "대본소 시스템"이라는 용어로 굳어졌다. 분업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문제는 빠른 완결을 위해 작품 질이 저하되었다는 점[8]과 이름만 달 뿐 작품에 손도 대지 않는 일부 작가에 의한 착취 구조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유명 작가의 경우도 직접 작품을 관리하는 A팀과 그렇지 않은 B팀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았다.

공포의 외인구단 성공 신화는 이러한 장편 대본소 만화를 모두 이현세의 아류로 만드는 부작용도 일으켰다. 이현세는 모작들에 민감하게 반응했고[9], 1984년 까치, 엄지, 마동탁을 의장 특허 등록하였다.[10] 1980년대 후반에는 이현세 프로덕션을 설립, 문하생들에게 독립의 기회를 주는 한편 이현세 아류들과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독립한 문하생들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결국 1990년대 초 이현세 프로덕션을 해체했다.

당시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독립한 문하생이 박원빈으로[11], 이후 박원빈은 야설록이 스토리를 맡은 제2의 킬러 시리즈로 대본소 만화를 모조리 느와르물로 바꿔놓는 대박을 터뜨렸고, 이현세는 오히려 이에 영향을 받아 회색도시를 통해 느와르물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로 인해 작가들의 작품들이 개성 없이 획일화된 데다 1990년대 초반 일본만화 개방 전 해적판들의 범람, 1990년대 후반 청소년보호법 발효 및 IMF로 인한 대여점 난립 및 대본소 폐점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었고, 이현세도 1990년대 중반 대본소 시스템 탈피를 선언하고 잡지 및 신문 연재에 집중했다. 그 밖에 문정후김성모가 이현세 문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 아마게돈 애니메이션화

아이큐 점프 연재작이었던 아마게돈은 90년대 초 애니메이션 산업개발 열풍이 불어닥칠 당시 정작 애니메이션 쿼터제는 시행되지 않아서 TV에서 방영된 대다수의 만화영화가 여전히 외제였지만 애니화되어 극장에 걸렸지만 쫄딱 망했으며, 이후 출시된 플라이트 슈팅 게임이나 그보다 더 뒤에 제작된 RTS 게임 역시 쫄딱 망했다. 문제는 이 실패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을 국내 높으신 분들에게 심어주어 산업이 성장할 기회를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이현세 본인의 말로는 너무 진행이 이상하고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게 최대 패인. 결과적으로 아마게돈은 이현세의 경력과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일대 자폭테러가 되어버렸다. 이현세 본인도 자신이 만화가로서는 몰라도 애니메이터로서의 능력은 너무나 없다는걸 절감했다고 하지만, 이후 애니메이션과 교수도 겸직하며 애니메이션 작업에 여러가지로 관여하며 악연을 이어갔다.[12]

다만 심형래 같은 경우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아마게돈 백서를 만들어서 상세한 제작내역 및 제작비, 수익 및 제작 일화를 공개했으니 그나마 양심은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으나, 방송 인터뷰에서 "그냥 재수없어 그랬다"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2.3 천국의 신화 논란

흔히 천국의 신화수간강간, 근친 등의 요소로 인해 예술과 외설의 경계로 인한 논란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정확한 내용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논란이다.

문제시된 내용은 원시시대에 대지의 여신형 캐릭터가 동물들과 정사를 한 뒤 동물들을 낳는 것 등이나, 이에 대한 묘사는 농담 하나 안 보태고 성교육 비디오보다도 볼 게 없다. 대지의 여신은 원시인들이 자기 동물들을 죽여버리고 잡아먹는데 크게 상심하여 반 자살 기믹으로 사라지며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일종의 야만과 전설시대의 종언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시나리오 전개상으로도 크게 부자연스럽거나 문제될 부분이 없다.

실제로 검사 측은 상황이 예술과 외설의 판가름으로 흘러가자 성인용 천국의 신화에 무혐의 처리를 내리고, 미성년자보호법 2조를 근거로 청소년판 천국의 신화를 약식기소하게 된다. 문제시된 내용을 수정하여 발매된 청소년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연상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이현세는 1998년에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에 항소했으나 2000년에 1심에서 패소, 2002년에 2심에서 승소, 2003년에야 최종심에서 미성년자보호법 2조가 위헌판결을 받게 되며 승소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스트레스 때문에 애초 100권 기획이었다고 하는 천국의 신화는 훨씬 짧게 끝났다. 자세한 사항은 천국의 신화 항목 참조.

2.4 스토리 작가 소송

한편 히트작 중에 실제로는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는 만화가 대부분으로, 김민기야설록 같은 스토리 작가들이 주로 이현세표 히트작들의 스토리를 써냈다. 이현세가 직접 이름을 명확히 밝힌 야설록의 경우와 달리 초창기 멤버였던 김민기는 나중에 공포의 외인구단 저작권 문제로 소송을 걸었다.

김민기와의 불화는 공포의 외인구단이 만화 이외의 다른 매체로 옮겨지던 시절부터였다. 김민기는 "스토리가 만화로 만들어졌을 때는 만화가의 재능이 앞서는 일이겠지만 영화로 만들어졌을 경우에는 원작자의 몫"이라고 주장했고, 이현세는 "극본을 갖고 와서 써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흥행에 성공했다고 더 많은 고료를 요구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은 지옥의 링을 마지막으로 결별했고, 김민기는 이후 고행석과 콤비를 이루어 활동하였다.관련링크

이 문제에 있어서는 스토리 작가에게 선금을 지급하는 거래 방식이 관건이다.[13] 당시 대본소 시스템은 총판의 책 판매부터 출판사의 고료 지급까지 대부분의 거래가 현금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책이 얼마나 팔릴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서 업계 종사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따라서 출판사 및 작가는 선금 지급을 통해 스토리 작가에게의 의무를 다했고 이후의 만화 판매의 리스크는 출판사 및 작가가 짊어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만화를 벗어난 영화화 및 애니메이션화에 대해서는 스토리 작가의 지분에 대한 재협의가 필요하다는 스토리 작가측의 주장도 타당하다.

3 비판

3.1 일까

작품에서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 표현이 빈번하게 나온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나 한일전을 그린 스포츠물 이외에도 맥락없는 반일감정이 난무한다.

남벌 등 야설록과 작업한 작품들은 한국인마저 거부감이 좀 들 정도로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표방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는 손병호 감독이 외인구단 선수들에게 경기 잘하라고 하면서 난데없이 "일본은 경제력이나 여러 조건이 좋지만 세계 평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너희들은 일본처럼 되지 마라~~!" 이런 대사를 한다.

게다가 회색인간에서 홍콩에 있는 일본은행을 터는 강도짓을 일본은 우리에게 빼앗은 게 많으니 이건 정당한 거라고 개드립치면서 홍콩 경비원과 출동한 홍콩 경찰들을 마구 사살한다.

뿌사리 까치에선 스모가 씨름이 원조라고 하면서 스모 선수들은 죄다 찌질한 악역으로 묘사한다.

판게아에선 일본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걸 무척 고소해하며 일본이 가라앉아야 한다는 사상을 보인다. 뭐 여기에선 일본인들이 지진 피해를 한반도로 옮기려하는 시도(...)를 하며 먼저 건드렸다고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다만 후기작인 늑대의 피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일본인들이 나오는 걸 봐서는 작품의 성향이 달라진 것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일까 작품에서 반대로 작중에서 일본을 과대하게 높게 평가하는 내용이 보이는 것은 강하고 우수한 일본을 이겨버리는 한국에 대한 민족주의 양념이 아닌가 볼수 있다.

3.2 발고증

한국의 양산형 성인만화의 공통적인 문제점이지만 작가의 유명세로 인해 많은 주목을 받은 만큼 많은 비난도 받는 부분이다.

천국의 신화에서는 고대 아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치우천왕의 군대가 돼지감자를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돼지감자는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중세 시대 유럽을 거쳐 아시아에 보급되었고, 한국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무가지 신문 데일리줌에 연재했던 늑대의 피에서는 신라시대에 안경(...)이 나오는 건 둘째치고, 울릉도에 거주하는 해적이 일본 전국시대 갑옷을 입는 것도 모자라 에도시대 중기나 돼서야 완성되는 고급 예장인 카미시모를 해적 졸개가 입고 등장하며, 사누키 우동을 잔치음식으로 내온다. 게다가 당시 개봉했던 영화 음양사를 보고 베낀 건지 해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이 히로마사에 도손. 게다가 이들은 울릉도에 살고 있고, 결국 주인공과 협력하여 악역(주인공의 적대 파벌이 장악했다)인 신라군과 싸워 이겨서 독립을 쟁취한다. 즉, 울릉도를 일본 땅으로 그리고 있다.

남벌에서는 같은 전투기가 이륙, 비행, 공격을 하는데 디자인이 F-14, F-15, F-16으로 차례차례 바뀌는 3단 변신 신공을 보여준다사실 트랜스포머...음?.

블루 엔젤 몇몇 장면에서는 리볼버 권총의 사격시 자동권총처럼 탄피가 옆으로 튀어나가는 충격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세계사 넓게 보기에서는 독프전 때 독일군이 티거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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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이야기가 있음에도 모 신문칼럼에서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해 "국군이 빡빡머리가 아니라 긴머리를 하고있다. 고증에 안 맞는 것이 한국 영화의 문제."라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참고로 이 부분은 오히려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자문을 받아 고증을 제대로 한 사례.

그리고 일까로 그린 작품에도 저런 항일 고증도 어이가 없는 게 많은데, 남벌에서 출격하는 한국군 조종사에게, 장군이 막걸리를 따라줘서 마시는 장면은 카미카제 따라하기다. 게다가, 일본인 형수의 기모노를 찢고 아버지의 생일에 불러대는 노래가 선구자인데 작사자인 조두식이 친일파 논란이 있다.

회색인간에서도 홍콩경찰을 대거 살해한 무장강도 주제에 일본은행을 털기에 우리가 하는 짓은 애국이라느니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놓고 정작 오혜성이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가 고향의 봄이다. 이 노래 작곡가로 유명한 홍난파 역시 친일파로 어느정도 유명한 인물.

3.3 마초이즘

사실 시대상의 문제겠지만, 만화에서 남성우월주의적 사고가 비춰지는 장면이 간간히 나오는 편이라 지금보면 사람에 따라선 좀 보기 불편하다. 특히 남벌은 이게 좀 심한 편.

4 현재

시간이 지나면서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등으로 많은 80년대 만화가들보다는 낫지만 슬슬 은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통해 경험을 쌓은 허영만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14]

2007년~2010년까지 스포츠서울에서 버디라는 골프만화를 연재했는데 이 역시 그저그런 만화라는 평이 많으나, 나름대로 이현세답지 않게 재미있다는 평도 많은 편이고 200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버디 이후 비정시공이라는 작품을 연재하다가 완결했고, 2010년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레드파탈이라는 작품을 새롭게 연재하다가 신문 만화로 70회도 못 채우고 완결해 버린 뒤 2011년 신작 소식이 없던 와중에 2012년 위암 초기 판정을 받고 수술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작품을 쉬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많이 수척해지고 흰머리가 엄청 늘어났다... 2013년 만화 삼국지 10권을 냈으며 2014년 8월 6일부터 일간스포츠 지에 남벌 이후 20년만에 승마를 소재로 한 신작을 연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목에만 연재하고 소리소문없이 2015년 7월초에 끝났다.

그러다가 2016년에 난데없이 천국의 신화 후속을 네이버 웹툰에 연재중이다. 20년전에는 19금 만화라고 하던 것인데
그리고 네이버 화요웹툰의 한국만화거장전에서 '아버지의 추억'이라는 단편집이 나왔다. 작중 시점은 30년 만에 왔다는 언급과 9살 당시 일어난 일을 회상했다는 점 등을 보아 회상 당시 1994년, 회상했던 과거는 당시 9살이었던 1964년으로 추정된다.

4.1 만화 이외의 활동

고우영, 강철수, 허영만과 마찬가지로 외도를 많이 한 작가다. 퀴즈프로 게스트나 취재 여행을 겸한 리포터 활동으로 만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얼굴은 익히 알 정도다.[15]

경찰청 캐릭터인 포돌이가 이현세 화백의 작품이다. 또한 부산에 손수 벽화를 제작하기도 했고 맥주와 프린터 같은 TV 광고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는데, 사투리가 심해서 목소리는 대체로 더빙에 의존했다.[16] 2011년에는 모 종합금융사 광고에 딸과 함께 출연하여 데셍솜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2014년에는 한국공항공사의 새 캐릭터인 포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게임 제작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초이락 게임즈와 손을 잡고 베르카닉스라는 온라인 게임의 제작도 참여하고 게임을 바탕으로 그린 만화도 기획 및 제작[17]했지만 이 베르카닉스라는 게임이 한국 온라인 게임사에 한 획을 긋는 대형 흑역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4.2 정치 활동

2001년에 천국의 신화와 관련하여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이현세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며 <만화로 보는 이회창>, <이회창의 아름다운 인생>을 그린 바 있었다. '꼬마야 너 이름이 뭐니?' '회창이요, 이회창!' 이에 다음 카페 신동명천제단 측은 대문을 통해 이현세의 이러한 정치 행보를 "표현의 자유에 힘쓴 동지들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깠다. 그 외에도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후보를 지지하는 만화인 <감자꽃 트랙터>를 그린 걸 보면 정치 자체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4.3 개인사

파란 만장한 개인사 이야기는 사실 어깨동무 등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데 그게 각각 달랐다. 후술할 어른의 사정 때문인데, 당시 메카시즘으로 인한 연좌제가 서슬퍼렇던 시절이라서 함부로 말하기도 어려웠던 것.

어깨동무나 인간극장 재현드라마에 의하면 큰 아버지가 한국전쟁때 병으로(어깨동무) 혹은 군대에서(인간극장)[18] 사망했고, 생부는 군 미필을 위한 도주로 장기적으로 가출 상태였다.

문제는 2011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밝혔는데, 일제 시대 돈 벌려고 만주로 간 둘째 큰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인민군 장교로 돌아왔고, 수복 후에 그게 문제가 돼서 큰 아버지가 헌병대에 끌려간 후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부역자로 몰려서 처형되고 시체가 암매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집안사 탓에 이현세는 태어나자마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큰 어머니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는데, 친부는 작은 아버지로,[19] 친모는 작은 어머니로 알고 자랐고 이 사실을 스무살 무렵에야 알게되어 오랫동안 방황했다. 헌신적인 두 어머니는 그런 이현세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주었고 덕분에 이현세는 방황하는 중에도 만화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현세 자신은 색약으로 인해 미대 진학을 못 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20]. 토크쇼 땡큐에서는 생활고도 생활고 였지만 연좌제로 인한 불이익이 너무커서 대학을 갈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대학을 못갔지만 지금은 대학교 교수가 되어 교정을 누비고 있으니 어찌보면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1998년 집에 강도들이 들어와서 모친이 살해된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나중에 범인들을 잡고 상황을 보니 주로 강도 강간 전과를 가진 상습적인 10대 가정파괴범들이었고, 그 상황에서 이현세의 모친이 가족들을 살리려고 저항하는 바람에 처참히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범인들은 미성년자임에도 이례적으로 사형, 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되었다. 만화가 이현세씨 노모 살해범 사형-무기등 중형선고

동생으로 이상세가 있는데, 이현세 어시그룹을 이끌었고 나중에 따로 독립했으며 80년대 후반에 잠깐 소년 잡지 연재를 하다가 주로 성인물에서 활약하지만 평은 극과 극이다. 실제로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는 한눈에 봐도 이상세의 색채가 짙다.

번역가이자,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를 연기했던 조상구씨와는 고교(경주고등학교) 동창이자 절친한 사이라고 한다.

만화가 안세희와는 매제관계라 한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의 팬이라 한화 이글스 홈페이지와 전광판 애니메이션 작업도 그가 직접 담당하기도 했다.##

평소 을 대단히 즐기는 주당이라고 한다. 남자 만화가[21] 중에서는 술 실력(?)을 당해낼 자가 없다는 썰까지 있을 정도다.

5 주요작

  • 대표작
    • 까치의 제 5 계절 - 미우라 아야꼬의 베스트셀러 빙점에서 소재를 따와 그린 야구 만화. 이현세의 페르소나인 오혜성/마동탁/엄지 트리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만화다.
    • 공포의 외인구단 - 스토리는 김민기. 영화 및 드라마화.[22]
    • 지옥의 링 - 권투만화. 조상구 주연으로 영화화.
    • 국경의 갈가마귀
    • 까치와 고독한 영웅들 - 권투만화
    • 떠돌이 까치 - KBS에서 애니메이션화.
    • 고교 외인부대 - 보물섬 연재작. 이때 보물섬에서도 최고 인기작이었다.
    • 제왕
    • 억세게 재수없는 녀석들 - 축구만화
    • 범잡이
    • 무자리 까치 - 소년중앙 연재작.
    • 스카라무슈 - 만화잡지 보물섬 데뷔작. 프랑스 혁명 당시 활약한 평민 검객 스카라무슈의 일대기
    • 영원한 제국 - 만화광장 연재작. 만화광장은 최초의 성인만화잡지였기 때문에 연재 당시는 성과 폭력의 표현 수위가 높았으나, 잡지 폐간으로 인한 연재중단 후 대폭 수정되어 재판되었다.
    • 선착순 - 스포츠서울의 만화 공세에 밀린 일간스포츠가 상황 반전을 위해 기획했던 야심작
    • 트릭의 왕 - 이현세의 최고 반전명작
    • 대지의 권법사
    • 레베카 화일
    • 버디
    • 복서
    • 암호명 머지션
    • 이 땅에 내가 남은 것은 의기천추[23]
    • 춤추는 애벌레
    • 블루엔젤/엔젤 딕 - 스토리는 양병설[24]
    • 탁류 - 오혜성을 주인공으로 한 기업만화. 마동탁은 혜성이 일하는 회사의 라이벌 그룹인 대운그룹의 후계자로 나오고, 신제품을 둘러싼 경제 암투가 마쓰이 상사와의 국제 재판까지 이어진다.
  • 기타
    •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후보가 낸 동명의 자서전을 만화화한 것. 선거운동 차원에서 상당한 양이 무료(!)로 뿌려진데다 만화였기 때문에 어린이들로부터 상당히 많이 읽혔다. 세간에 알려진 정주영의 일화 대부분은 여기서 나온다.
    • 감자꽃 트랙터 - 정주영 회장 선거물.
    • 만화 이회창 - 2002년 16대 대선 이회창 후보 홍보물. '회창이요, 이회창' 등의 대사로 아햏햏 디시 시절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 시기상 위에 써놓은 '시련은 있어도..'의 벤치마킹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만큼 크게 퍼지지 못했다 회장님은 돈이 많으셨지
    • 촌놈 이현세 컴퓨터를 배우다 시리즈[27]
    • 폴리스 6부작 - 만화방의 대히트작이나 1부를 제외하고는 이현세가 직접 손댄 건 없고 이현세 휘하의 만화공장 화실 중 한곳에서 그린 만화. 이병헌 주연의 TV 미니시리즈가 있다.
    • 굿바이 썬더 - 승마를 주제로 한 신작. 일간스포츠와 레진코믹스 에서 동시 연재되고 있다.
    • 이현세의 세계사&한국사 넓게보기&바로보기[28]
  1. 허영만과 이현세는 단순한 원로 만화가라고 보기 힘들다. 당장 편집장들 부터가 이현세는 1등, 허영만은 2등이라고콩라인 할정도로 만화계의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동시에 대본소 체제등의 비판점도 있긴 하다. 사실 따지고본다면 대본소 체제의 문제를 만들었다는건 좀 엇나가는 얘기이기는 하지만(그 이전에는 독점출판사의 횡포가 심했기 때문) 공장만화 시스템의 구축에 어느정도 역할을 한건 사실이다.
  2. 출생 당시는 강원도 울진군으로, 1963년에 경상북도로 편입되었다. 유년기에서 고교(경주고등학교 출신)시절까지는 경북 경주에서 성장하여 경주를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3. 70년대 이상무에게 밀려 늘 2등하던 허영만이 1등을~! 외치면서 노력했더니 80년대에는 후배 이현세 때문에 또 2등했다고...대놓고 편집장에게 "허선생은 2등전문이구먼"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4. 90년대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에 출연해서 고백한 바에 의하면 80년대에도 이런 질문을 꽤 받았고 대학가 축제때 게스트로 초대돼서 운동권 학생들에게 비슷한 질문과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절치부심해서 낸 작품이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라는 작품. 하지만 망했어요
  5. 80년대 국내 만화계에선 지극히 평범한 흐름이었으며 당시 인기만화가들 중 캐릭터를 돌려쓰기 안 한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예를 들어 허영만의 이강토, 이우정의 맹코, 맹열, 이상무의 독고탁, 김철호의 성일, 고행석의 구영탄, 이진주의 하니 등등.
  6. 참고로 마동탁 타입의 캐릭터는 어디서나 안경을 쓰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신라 하대(통일신라)를 배경으로 한 만화에 등장해도 안경을 쓰고 있다. 신라의 오버 테크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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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다만 그 이전에도 대본소 만화의 질이 좋았냐면 그건 아니었던것이 사실 1970년대 당시에는 독점출판사가 횡포를 부리며 만화가를 착취하던 시기였고 표절도 강요했을 정도로 막장이었던 시기였기는 하다. 이현세는 그 막장시기에서 벗어나면서 빚을 본 경우라 할수있고.
  9. 이후 대본소 시스템의 대부로 떠오른 박봉성의 경우도 이현세 캐릭터 모방으로 시작하였으나, 출판사 사장과 장태산의 주선을 통해 이현세로부터 캐릭터 사용에 대해 묵인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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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공포의 보디체크, 스트라이커의 전설 등이 "글:이현세"를 달고 출간되었다.
  12. 하지만 출판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만화"로 치부해 버리는 국내 높으신 분들의 인식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보는 쪽이 타당하다. 김영삼 정권 때 쥐라기 공원 쇼크로 인한 컨텐츠 산업 진흥법이 통과된 후 전국의 4년제 혹은 2년제 대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애니메이션과나 만화과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인지도 있는 인물을 섭외해서 홍보는 해야겠고 진짜 애니메이터 중에서는 그렇게 인지도 있는 인물이 없고 하다 보니 이현세씨가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된 것.
  13. 신세계(감독, 각본), 악마를 보았다(각본), 혈투(감독, 각본), 부당거래(각본)을 쓴 박훈정도 만화 스토리 쓰면서 미리 선금을 받아서 놀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계 안습
  14. 사실 날아라 수퍼보드 초반이나 따따뚜뚜나 망치 등을 보면 허영만 역시 이런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바 있다.
  15. 여담이지만 이렇게 외도를 많이 한 작가임에도 허영만 사칭 사기범이 2011년에도 버젓히 돌아다니다가 적발됐다. 자세한 건 허영만 항목 참고.
  16. 텔레비젼 광고로 나온 맥주 광고와 프린터 광고는 성우 한상덕 씨가 연기했다.
  17. 본인이 직접 그린 건 아니다.
  18. 90년대 만화가 소개 서적에는 국민방위군 사건의 희생자라고 했다.
  19. 이현세가 9살 되던 때, 경주역에서 일하다가 발 밑에 있던 전선을 보지 못하고 밟으셔서 감전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그때 삼촌인 줄로만 알아서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고, 심지어 장례식장에 얼굴도 안 비췄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일화는 이현세의 수필 '고등어와 크레파스'에 나와 있으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수필이다.
  20. 2014년 6월 28일 안동 특강에서 스스로 이렇게 밝혔다. 생활고로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도 한다.
  21. '남자' 만화가인 이유는 여자 만화가 중 황미나처럼 이현세보다 더한 주당들이 있기 때문. 특히 황미나는 이현세 본인도 인정할 지경이다.
  22. 황미나 화백이 각본을 잠깐 썼다. 전형적인 졸작.
  23. 총 3부작으로 1부는 몰라도 2부는 2진급 공장에서 손댔을 가능성이 크다. 스토리 작가가 야설록이었는데 1부에서 손을 떼는 바람에, 척 봐도 스토리도 그림체도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24. 김성모의 대털 이전에 벌써 고증을 쌈싸먹은 범죄 도구가 나온다.
  25. 환빠 등 민족주의가 심각하게 들어가 평이 안 좋은 작품(참고로 야설록은 진짜로 환빠다). 그때문인지 최지룡은 자기 동인지에서 "난 이현세란 작가를 찢어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다"는 글까지 쓴 바 있지만, 글의 마무리는 천국의 신화 사태 당시 문제가 된 청소년보호법 및 검열에 대한 비판이었다.
  26. 이현세가 개인사정으로 보물섬에서 연재 중단후 복간했다. 원래는 열혈스포츠물인데 복귀후에는 오컬트물로 변신했다.
  27. 한대희, 강창래 공저. 중간중간 이현세의 삽화와 만화가 들어간 컴퓨터 입문서 시리즈. 1993년부터 1995년까지 MS-DOS편, 텔넷 PC통신편, 아래아 한글 2.5편 총 3권이 출간되었다.
  28. 마지막 화에 9.11테러 주동자인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2011)을 미국 패권주의에 의한 희생으로 묘사하는듯한 부분이 있어 논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