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서

諸葛緖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장수. 제갈충, 제갈굉[1]의 아버지.

255년에 태산태수로 있을 때 관구검이 반란을 일으키자 등애의 지휘하에 적을 막는데 성공했다.

263년에 옹주자사로 있을 때 촉 정벌이 시작되자 등애, 종회와 함께 대장이 되어 기산으로부터 출병했다. 무위에 주둔해 강유의 퇴로를 막는 역할을 맡다가 강유와 싸울 때 음평, 교두에 주둔해 강유가 물러나서 양안관을 구원하지 못하게 했으며, 그러나 강유가 공함곡 북쪽 길을 통해 옹주를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속아서 30리나 후퇴했다가 강유가 교두를 빠져나와 검각으로 퇴각하게 되었다.

뒤늦게 추격했지만 강유를 놓쳤고 강유는 검각에 도착해 종회를 틀어막는다. 주어진 임무에 실패해 붕떠있는 상태였던 제갈서에게 등애가 면죽을 통해 성도로 가자는 제안[2]을 해왔으나, 제갈서는 강유와 싸우라는 명을 받았다면서 종회와 합류하기 위해 검각으로 간다. 그러나 종회는 제갈서에게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죄목을 씌워 체포되어 수도로 끌려가면서 제갈서의 병력은 종회가 거느리게 되었다. 등애가 성도를 함락시키는 대공을 세웠으니 제갈서는 순간의 선택으로 역대급 전공을 세울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그렇게 중간에 강판된 덕분에 종회의 반란으로 종회와 등애가 모두 죽고 성도가 피바다가 되는 아수라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65년에 사마염이 서진을 건국하자 태상이 되었다가 위위까지 오른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촉 정벌 때 등애군의 소속으로 등장해 음평, 교두를 지키다 영수의 계책에 속아 교두를 돌파당하며, 검각에서 강유를 공격하다가 패퇴하자 성난 종회에게 죽을 뻔 하지만 그가 등애의 부하이니 살려줘야 한다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으로 살아남는다. 그의 군대는 종회에게 편입되었으며, 등애가 자신의 장수를 그렇게 막 다룬 것에 분노해 종회와의 사이가 갈라지는 계기가 된다.

2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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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10,11
삼국지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모든 능력치가 50을 넘지 못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48/41/38/58. 기사, 제사는 있지만 무력 관계로 위력은 안습.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45/43/27/48/50으로 합계 213. 특기는 화시 1개로 무특기는 간신히 면했다.

삼국지 11에서는 더 너프되어 합계 204! 그런데도 이 능력치의 반을 해도 100이상이 된다는 것을 통해 백하팔인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다.

삼국전투기에는 히비키 단으로 등장. 앞에서 로버트 가르시아로 패러디된 양회와 헷갈리지 않기 위함인지(단의 퍼스널 컬러가 분홍색이다) 위군임에도 군복 색이 빨간색이 아니고 분홍색이다.
  1. 諸葛厷/諸葛宏, 자는 무원(茂遠)으로 빼어난 재능을 지녔으며, 진나라에서 사공주부를 지냈다.
  2. 음평의 샛길로 산 타는데 같이 가자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