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서적


1 개요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386번지에서 1981년부터 2006년까지 존재했던 서점.[1] 한때 대구라는 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서점으로서 큰 위상을 가졌었고 대구 시민들의 약속 장소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대구 향토 역사에서 있어서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서점으로 아직도 20대~30대 이상의 대구 시민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서점이다.

2 역사

제일서적이 최초로 문을 열던 때에 서점과 관련된 정보를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제일서적의 전신은 1973년에 개업한 3평짜리 조그마한 동네서점이었다. 제일서적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개업하게 된 것은 1981년의 일로 중앙파출소 건너편 4층짜리 빌딩에 입점하였다. 당시만 해도 주요 상권은 대구역근처였기 때문에 동성로 입구는 그렇게 썩 좋은 위치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에서 최초로 전문화, 대형화를 꾀하며 대구 최대의 도서백화점이라는 기치를 내걸었고, 대구 최대 상권도 점차 동성로로 이동해오는 흐름에 발맞춰 꾸준히 성장해나갔다.

다가 온 1990년대는 그야말로 제일서적의 리즈 시절.[2] 대구경북 최대의 대형서점으로 우뚝 발돋움하여 지역 서점계의 대표 랜드마크가 되었다. 도서구입도 구입이지만, "제일서적에서 보자"라는 말이 관용구가 될 정도로 제일서적은 도심지에서 만남의 장소로서도 큰 역할을 했었다.[3]

1991년부터는 서점 자체적으로 독후감상문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여 몇 년간 이어나갔다. 또 대구 최초로 할인카드를 만들었고, 매달 신간 정보 책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서점이 점점 커가면서 사업확장도 꾀하여 중앙로 본점 외에 분점도 개업하였다. 중구 봉산동 대성빌딩 옆 건물에 1층짜리 제일서적 지점이 있었으며, 1998년에는 중앙네거리(현재 아웃백 건물)에 제일문고를 개업하였다. 지점답게 다소 조촐한 규모였던 제일서적 지점과는 달리 제일문고는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있는데다 바로 옆 건물에 따로 별도 매장까지 있을 정도로 꽤 큰 규모를 자랑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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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문고의 모습이 찍혀 있는 사진. (사진 왼쪽 초록색 간판)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4]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제일서적도 2000년대 들어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는데, 2000년 9월 30일 한일극장 옆 자리에 교보문고가 들어섰으며, 2003년 7월 17일에는 반월당네거리 삼성금융플라자 옆에 영풍문고가 들어선 것이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거대 서울 자본의 대형서점 두 개가 제일서적을 앞과 뒤에서 압박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 서점 시대가 개막하면서 오프라인에서의 도서 구매는 줄어들기 시작했기에, 제일서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 측면에서 모두 위기에 처하게 되기 시작했다.

위기감을 느낀 제일서적은 먼저 지점을 폐쇄하고 나중에 제일문고마저 문을 닫으며 사업을 축소시키고 본점의 인테리어를 쇄신하는 등 변화를 꾀하였지만, 2002년 당시 사장이 사고로 사망하는 악재를 겪으면서 경영의 큰 동력을 잃고 만다. 결국 변화와 쇄신의 기회를 잃어버린 채 지지부진한 모습으로 무기력한 2000년대를 보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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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17일자로 최종 부도처리되고 말았다.

대구를 대표하는 서점이었던만큼 대구 시민들에게 주는 충격은 꽤 컸으며,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사실 2000년대 들어 제일서적 외의 다른 향토 시내 대형서점들은 차례차례 사라지는 추세였다. 하늘북서점, 대구서적, 청운서림 등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본영당 서점은 대구 MBC로 이전했다가 사라졌다. 그나마 학원서림은 사업을 축소하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재 전문서점으로 거듭났다가 나중에 본영당 서점의 뒤를 이어 대구 MBC건물로 옮겨가 생존을 이어갔지만, 어쨌거나 대구 중심가에서 밀려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지역 서점가 자체의 생존이 뒤흔들리던 시기에 그나마 제일서적이었기에 그 정도라도 버틸 수 있었다는 의견이 많으며, 제일서적의 부도는 대구 지역서점 업계의 한 시대를 고하는 종언으로 해석된다. 제일서적 부도 이후 더 이상 대구를 기반으로 한 대중적인 대형서점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나올 일은 요원해 보인다.

3 매장 구성

본점은 4층짜리 빌딩에 자리해 있었는데, 층별 바닥면적은 그리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대신 층수가 4층이나 되었기 때문에 전체 연면적은 대형서점이라는 명칭에 걸맞을만 했다.

1층은 서점의 얼굴로서 중앙로 쪽으로 정문이, 동성로 쪽으로 후문이 나 있었다. 일반적인 문학과 에세이 류의 서적이 비치되어 있었는데 시집이나 베스트셀러 코너가 있었고, 그 외 신간 홍보 책자나 서점 광고물 등이 비치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특이하게도 매장 한가운데 계단을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지하 층을 만들어서 컴퓨터나 게임 관련 상품을 팔기도 했다.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 역시 정문과 후문 쪽, 두 군데에 있었다.

2층은 아동서적이 주로 비치되어 있었다. 후문 쪽의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에는 잡지류가 있었으며 아동서적 한 켠에는 만화 잡지와 만화책 단행본들이 일부 판매되고 있었다. 그 외에는 종교 관련 서적들이 나머지 면적을 차지했다.

3층은 각종 예체능 관련 서적과 문고판, 전집류, 외국서적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참고서, 문제집 종류와 볼펜 같은 간단한 문구류도 판매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원출판공사에서 나온 추리전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외국서적을 쉽게 구하기 힘든 시절이라 비록 소량이었지만 꽤나 유용하게 이용한 사람들이 많았다.

4층은 각종 인문과학, 자연과학 책들과 여타 기술 관련 서적 등 전문서적류를 주로 비치해 두었었다. 가장 높은 층에 있기도 했고 어려운 책들 위주로 꽂혀있었던 곳이라 서점 내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물고 조용했던 층이었다.

각 층마다 카운터가 따로 있었으며, 90년대까지는 제일서적 전용의 갈색 봉투에 구입한 책을 포장해주었다.

1988년에 제작된 서점 광고 영상은 이 곳에서 볼 수 있다. 제일서적 광고 영상

4 폐업 이후

폐업 이후 서점 자리는 한동안 빈 건물로 있다가 리모델링을 거쳐 1층에 2007년 2월에 스타벅스 193호점이 들어섰다. 그런데 특이하게 제일서적 공간을 다 차지하지 않았기에 후문 쪽 일부 공간은 여전히 텅 빈 채 남아 있었으며, 후문에는 2009년까지도 옛 제일서적 간판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그런데 스타벅스 체인점도 사라지고[5] 1층에는 CU 중앙파출소점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2016년 9월에 폐점했다. 2층에는 한스델리가 있다.
  1. 제일서적이라는 간판을 걸고 대구 시내에 개업한 연도가 1981년이며, 전신이 된 서점 자체의 최초 개업은 1973년이다. 역사 부분에서 후술.
  2. 사실 1990년대는 제일서적뿐만 아니라 대구 향토서점 전체의 리즈 시절이기도 했다. 이 당시에 대구 시내에는 제일서적 외에 대구서적, 하늘북서점, 학원서림, 청운서림, 본영당 서점 등 향토 대형서점들이 득실득실 했었다.
  3. 제일서적이 폐점한 뒤로는 한일극장이 만남의 장소 자리를 물려받았었다.
  4. 당시 구조물 안전문제 때문에 국채보상로 교차점을 제외하고 대구역네거리 - 중앙네거리, 중앙네거리 - 반월당 구간을 전면 차단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 도로 위로 걸어다녔다. 이로 인해 봉산육거리 혹은 계산오거리로 우회해서 시내버스들이 다녔고, 402번같은 경우는 대구시민회관 및 북성로 구간을 포기하고 한때 한일극장으로 다녔다.
  5. 이후 YBM어학원에서 대구백화점 본점 방향에 스타벅스가 생긴 것으로 보았을 때, 스타벅스는 사실상 뒷쪽으로 이전한 듯하다. 그리고 건너편에도 스타벅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