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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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하철 참사
발생일2003년 2월 18일
유형지하철 화재, 방화
발생 위치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사망자승객, 승무원 192명 사망
실종자21명 실종
부상자151명 부상
차종대구도시철도공사 1000호대 전동차

당시의 뉴스보도

대구 지하철 참사 공식 홈페이지. 희생자가족방 게시판을 보면 그들의 아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 개요

대한민국 역대 최악의 열차 사고.

#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도한 연합뉴스의 유일한 1보 기사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라는 말만 봐서는 흔하디 흔한 단순 화재같아 보이지만...[2]

대한민국에서 철도 관련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한 범죄이자 참사로,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고로 발생한 인명피해 순위로는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326명이 사망한 남영호 침몰 사고, 304명이 사망[3]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사고, 292명이 사망한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의 뒤인 5위에 해당되며, 165명이 사망한 대연각 화재사건보다 많다. 1995년에 289명이 사망한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벌어진 지하철 화재 사망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지하철 화재 희생자를 낳은 불미스런 비극이기도 하다. 이 참사가 하필이면 유동인구가 많은 봄 방학 시즌 때 일어났기 때문에,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인명 피해 규모
사망자부상자실종자[4]
192명151명21명

발생 시점은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발생 장소는 대구광역시 중구 성내동(城內洞)[5]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발생 경위는 당시 56세였던 김대한이라는 뇌졸중[6]을 앓은, 정신지체 장애인의 석유통 방화가 원인이었다. 결국 총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사고의 여파로 약 8개월간 중앙로역뿐만 아니라 명덕역부터 신천역까지 6개 역의 영업이 중단되었으며, 전 구간이 영업을 재개할 때까지 1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이 걸렸다. 이 때문에 약 1~2년 동안 대구 지하철의 이용객은 반 이상 감소했다.

이 사고는 김대한이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다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그는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南山洞) 명덕역[7]에서 1079호 지하철을 탄 뒤 경로석에 앉아 있다가 성내동 중앙로역에서 열차가 서행하는 틈을 이용해 미리 들고 있던 석유 플라스틱 통에 불을 붙이고 바닥에 던져 화재를 일으켰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불이 치솟고 아비규환이 되자 화상을 당한 뒤 공포를 느끼고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1079호는 중앙로역에 정차 중이었고 많은 승객들이 열려 있던 출입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행 중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지하철 사령의 오판으로 정상 운행 중이던 1080호가 중앙로역 반대편 선로에 정차하고 말았다. 게다가 기관사가 출입문을 열어줬지만 마스터 콘트롤 키를 뽑고 탈출하여 출입문이 자동으로 닫혀서[8] 1079호에 비해 훨씬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였다. 기관사가 승객의 탈출에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과실이다. 기관사에게도 분명 과실의 책임은 돌아가겠으나, 사고를 해내는 초인이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재해를 맞아 규정대로 행동했던점, 비상시에도 당황하지 않고 메뉴얼대로 행동했던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일어났던 점이 가장 큰 문제다.[9] 거기다 비상시 문을 수동으로 열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10]사태를 더욱 키웠다. 더구나 방화 셔터가 일찍 닫히면서 나오려던 사람들도 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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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고로 열차는 완전히 불에 타 뼈대만 남았고 중앙로역 천장과 벽에 설치된 환풍기, 철길 바깥쪽 지붕들도 모두 녹아내려 역 구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사고 뒤 공개된 차량 내부는 시꺼먼 재와 철골만 남아있어 사고 당시의 참상을 잘 대변한다. 희생자 대부분은 직접적인 화상보다는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지만 그렇다 해도 불에 타버리는 바람에 유해들은 형체도 못 알아볼 만큼 처참한 상태였다. 사고 다음날 정부는 대구를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하였으나 사고 직후 대구광역시와 지하철 종사자들이 사고를 축소, 은폐하고 사고 열차들을 차량기지로 가져와서 대대적으로 물청소를 시키는 등 현장과 증거들을 훼손하는 부실한 대응으로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방화범과 지하철 관련자 8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그리고 부실 공사가 초래한 성수대교 붕괴사고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과는 달리 가해자가 특정 개인에 의해 일어났고, 그것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공작원이 아니라 그저 한 정신 이상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을 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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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한 정신 이상자의 세상을 향한 증오, 지하철 운영 측의 무책임, 시공 및 제조 업체의 안일함이 빚어낸 어마어마한 참사였다. 아쉬운 점은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되었다면 피해가 줄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건 후, 전 세계의 지하철을 포함한 각급 철도 시설들이 개인에 의한 테러에 대하여 갖가지 대책을 세웠고 그에 따라 전 세계의 철도가 이전보다 더욱 안전해졌다. 대표적으로 사고 직후인 2003년 중반부터 시작된 전동차 내장재의 불연재 교체 작업과 지하철 내부 시설들의 불연재 교체 작업 등[11]이 있으며 거의 모든 지하철 내에 소화기와 비상 손전등, 긴급 전화번호판 등이 갖춰지게 되었다. 또한 비상시 전동차 문을 손으로 여는 방법도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현재도 꾸준히 안내방송에 나온다.

일단 살아남은 사람들도 가스 노출에 의한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살아야 한다. 가스 자체의 유독 성분도 문제지만 고열의 가스로 인해 피부와 호흡기에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설사 몸에 아무런 이상 없이 무사히 빠져나온 사람들이라 해도 후일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목숨이 왔다갔다 했던 당시의 충격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생하고 있다. 참고로 PTSD 자체가 이 참사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선 그런 병이 있었냐 수준[12]으로 없는 질병 취급을 받았는데, PTSD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이 병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확립시켜 준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13] 희생자들과 그에 관계된 유족들은 지금도 이 사고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생존자들은 대부분 사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충격으로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을 일으킨 사람, 울화병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 등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아닌 대구 시민들 중에서도 지금도 대놓고 도시철도를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뉴스를 보면 사고가 난 후 다른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지하철 창문을 깨고 나가거나 선로를 따라 인근 역으로 가서 나간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쪽은 거의 모두 부상 하나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14] 사고가 일어난 이후 시간이 흐른 지금은 화재 흔적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상태지만 [15] 사고 당시부터 2년 6개월을 넘는 시간 동안 해당 역 근방의 지하도 전체에 굉장한 어떻다고 표현을 하기 힘든 냄새가 흘러넘쳤으며 그와 함께 통행인의 수는 매우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일들이 있다고 추정된다.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 같은 것은 당연하고 지하도는 상당한 시간 동안 스산한 분위기에 유동 인구마저 상당히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로 참사의 흔적이 이어졌었다.

한편 피의자 김대한은 당시 화상을 입어 달아나던 중 북구 노원동3가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범죄 사실이 드러나 검거, 구속되었다. 그는 마치 정신 이상처럼 굴려는 듯 진술이 뒤죽박죽이었으며, 정신이상자가 저지른 사고라는 기사가 나오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부채질하는 거 아닌가 우려도 나왔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판단에 의하면 정신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심신장애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았고 항소하여 2심에서는 무기징역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상고는 포기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그는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가, 2004년 8월 30일 지병인 호흡 곤란과 뇌졸중으로 급사했다.[16]

이 사고로 중앙로역 구조물 안전문제가 제기되어, 중앙네거리 국채보상로 교차점을 제외한 중앙대로 대구역 - 반월당 구간이 전면 통제됐다. 이로 인해 시내버스들은 계산오거리 혹은 봉산육거리로 우회 운행했으며, 402번같은 경우는 아예 북성로 구간을 포기하고 한때 한일극장으로 다녔다. 사람들은 차단된 도로 위로 당연히 걸어다녔다.(......)

사고일인 매년 2월 18일추모 행사를 하고 있는데, 2013년부터 10주기가 되어 올해인 2016년에는 13주기가 되었다. 9주기인 2012년에는 한겨레21에서 특집으로 생존자들의 증언과 이후의 삶을 기사화했다. "우리는 생존자가 아니다"

대구 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에선 사고 10주기에 즈음하여 세 편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상> 아물지 않는 유가족 고통 <중> 후유증 시달리는 부상자들 <하> 부상자 처우 및 향후 대책

2013년 2월 15일, 김범일 대구시장은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시민 담화문을 발표하여 위로의 말을 전한 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한 도시를 만들 것을 약속했다. #

참사 10주기가 되는 날인 2013년 2월 18일, 대구 각지에선 추모 행사가 열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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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12주기 추모벽이 중앙로 역 지하 2층에 마련되었다고 한다. 국민성금 5억 2000만원을 들여 길이 27m, 폭 3m, 340㎡ 넓이로 조성되었으며, 추모 공간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벽과 사건 당시 불에 그을린 벽과 그리고 화재의 열기에 수화기가 녹아내린 공중전화, 당시에 있었던 매점, 혈압측정기, 지하철 사물함, ATM기와 희생자의 유류품 등도 전시하고 있다.

비극이 일어난 지 13년이 흐른 2016년, 이 사건으로 부모님을 잃은 유족 박성찬 씨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경남 양산 자택을 방문했다. 박성찬 씨는 참사가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비규환이었던 상황 속에서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대구시민회관에서 지내던 유가족들을 수시로 방문해 유가족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사건 수습을 위해 애썼던 그 때의 고마움을 표시하여 누리꾼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기사

2 희생자들의 애절한 마지막 메시지

「잘 잤어요. 여긴 날씨 맑음. 오늘 하루 보고 싶어도 쬐금만 참아요.」
  • 사고 발생 7분 전 예비 신부 송혜정 씨가 예비 신랑 이호용 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좀 있으면 중앙로역을 지난다. 곧 갈게. 조금만 기다려."
  • AM 09:50분, 서동민씨가 선배 송두수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저녁밥 맛있게 준비해 놓을 테니깐 오늘 빨리 퇴근해요!"
  • 사고 발생 4분 전 김인옥 씨가 남편 이홍원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줘요...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 싶어!"
  • 사고 발생 8분 후 통화기록 중
"지현아 나 죽어가고 있어. 나를 위해 기도해줘."
  • 개신교 모임 강사 허현 씨가 강사 강지현 씨에게
"엄마가 여기 와도 못 들어와!"
  • AM 09:54분, 대학생 딸이 어머니 김귀순 씨에게 한 통화기록 중
"아... 안 돼... 안 돼!"
  • AM 09:58분, 이현진 양이 어머니에게. (이현진 양은 이해에 서울대학교 사회과학 계열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해 서울대학교 입학식에서는 식전에 추도 의식을 가지고 예정된 신입생 환영 행사를 취소했고 유족은 보상금으로 서울대 측과 협의하여 장학 기금을 조성하였다. 여담이지만 이현진 양은 사망 전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동생에게 '누나가 잘 못해줘서 미안하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메시지도 남겼다.
"불이 났어. 나 먼저 하늘나라 간다."
  • 김창제 씨가 부인에게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 장계순 씨와 딸 이선영 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
"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뭐하노, 빨리 나온나."
"못 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머이 애들 잘 좀 키워주이소."

  • 아들 박정순 씨가 노모 황점자 씨에게. 이날 그는 직장을 얻으러 가는 중이었다.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 어머니 최금자 씨가 아들에게

3 현장 사진과 추모 메시지

팔공산에 위치한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는 당시 불에 탄 1079호 전동차 몇 량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사건을 가정해서 인체에 무해한 짙은 연기를 뿌려놓고 당시의 사건을 체험할 수 있다. 사족으로 대구경북지방병무청 소속의 사회복무요원이 소양교육을 받을 때 두 반 중 한 반이 이곳으로 견학을 간다. 나머지 한 반은 포스코로 가는 듯하다.

2013년 2월 7일에는 대구도시철도공사 임직원들이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대구광역시 시민안전테마파크에 방문했다. 대구도시철도공사가 지난 10년간 중앙로역 화재 참사와 관련된 공식적인 활동을 자제한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개통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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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이야기

관련 사건/사고와 관련되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되었기 때문에 관련 내용들을 대구 지하철 참사/관련 이야기로 분리조치되었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

5 지금도 위험은 계속된다

2010년 하반기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을 중심으로 기이한 흡연자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사도 아닌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 흡연을 하는 20~30대로 보이는 남자들로 객차와 객차 사이를 연결하는 격실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17] 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의를 일으킨 30대 남자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다른 승객들이 흡연을 제지하거나 다른 칸으로 넘어가려고 문을 열면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폭력을 가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노숙자처럼 보이는 남자도 있고 머리를 금발염색양아치 같은 남자도 있다고 하는데 주로 2호선과 4호선에서 출몰하는 듯하다. 관련 링크

하는 짓으로 볼 때 상당한 위험 인물들로 보는 즉시 귀찮다 생각 말고 기관사 혹은 서울메트로코레일에 신고하자.

6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

사건 이후 수도권 전철이고 부산지하철이고 할 것 없이 부랴부랴 차량과 시스템을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당시 굴러다니던 차량들은 유독성 가스의 원인으로 지목된 의자 시트를 전부 뜯어내고 은색 쇠 시트로 바꾸었으며 그 이후로 제작하는 신형 차량들의 경우에는 내연재가 사용된 시트가 채택되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경우 나중에 내연 시트를 쇠 시트 위에 덧붙였다. 현재 2호선과 4호선은 쇠 시트로 전면 교체되었다.[18]

또한 이 사건 이후로 전국 지하철 내의[19] '테마열차' 투입이 거의 없어졌다. 이전만 해도 지하철에서는 가끔 특수하게 책을 끼워서 이동하는 도서관 열차나 불교 장식을 한 봉축열차를 운행한다거나 하여튼 별의별 신기한 한정 열차를 굴렸었지만 이 사건 이후로 안전 가능성이 기존 차량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이쪽도 불에 취약하다는 분석이 나온 탓인지 사건이 일어난 뒤 한동안 테마열차 운행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경의중앙선도서관 열차와 같이 테마열차가 재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건 이전만큼은 못하다. 지금도[20]

이와 관련해서 역사 인테리어에서도 인공암반 소재를 사용한 모든 도시철도역(e.g. 구 충무로역)의 인공암반을 철거 리모델링하는데 간접적인 영향력이 컸다. 인공암반이 화재시 유해물질 발생한다는것이 큰 이유고 울퉁불퉁한 구조로 인해 연기로 인한 시야가 없는 상황에서 머리를 부딪히는등 2차 피해 우려는 덤.

그 외에도 다행스럽게도 언론과 여론이 충분한 사회적 관심을 보인 덕인지 유사 상황을 가정한 대피훈련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객실 내, 역사 내 안내 방송안내 영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우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승객들의 인식 수준도 높아졌고 출입문 수동 개폐 요령이나 소화기 사용 방법 등에 대해서도 전보다 더 잘 알게 되었다. 이전에 매우 작게 안내되어 있던 비상시 문 개방 방법도 크게 문이나 문 바로 옆 좌석 위에 붙게 되었다. 서울지하철에서는 운행 시간 중 일부를 할애하여 특정 역에 지하철을 멈추고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 수동 개방 방법을 시연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21] 이후 설치되는 스크린도어에도 비상 개방 레버를 크고 눈에 띄기 쉬운 색으로 만들고 비상시 사용할 수 있음을 알리는 문구를 붙였고 화재를 대비해 방독면과 산소통, 손전등이 다수 비치되었다. 화재시 비상 탈출 경로 안내문도 추가로 역마다 부착되었다. 플랫폼의 영상장비에는 역에 비상 정차했을 때나 터널에서 비상 정차했을 때 탈출하는 방법 영상을 주기적으로 상영해주고 있다.[22]

한편, 참사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은 역내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승객들이 승강장의 안전선 밖으로 넘어가거나 안전펜스에 손을 대는 행위를 엄금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승강장을 순찰 중이던 공익근무요원이 즉각 제지한다. 공익근무요원이 없을 경우 역무실에서 방송을 통해 제지한다. 그러나 작정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23]은 즉시 제지할 수 없기 때문에 스크린도어 확충이 필요하다. 현재 대구 도시철도의 전 역사 내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는 타지에 비해 매우 적은 편이다.[24]

단지 스크린도어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역사들이 건설된 것이 스크린도어가 도입되기 이전이였기 때문에 제연(除燃)설비가 승강장 상부에서 공기를 공급하고, 하단의 선로 쪽에 공기를 빨아들이고 외부로 배출하는 방식[25]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게 되면 연기를 승강장과 선로로 분리, 격리는 가능하게 되지만 승강장에서는 외부 공기를 공급하기만 하고 발생하는 연기를 역사 외부로 배출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 반대로 선로에서는 공기를 그냥 빨아들이기만하는데 흔히 생각하기에는 공기를 외부로 빨아당기면 끝인거 아닌가 싶지만 그렇게 되면 공기의 압이 낮아져서 연기가 외부로 빨려가는 량이 적어지므로 비효율적이며, 정상적인 제연설비는 효율성을 위해 외부공기를 공급하고, 연기를 배출하는 두 개가 한 세트로 병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부 역사의 스크린도어의 경우 상단부가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26]
즉, 이러한 화재로 인한 참사를 겪은 대구 지하철입장에서는 아무래도 화재쪽에 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고, 그 때문에 일부러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전 구간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단지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하다.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하고 딱 한 달이 된 2005년 11월 19일에 경대병원역에서 유사 범죄가 벌어질 뻔했으나, 곧바로 이걸 감지한 영남공고 학생 3명과 당시 비번이었던 경산소방서 소속의 소방원 1명이 덮쳐서 붙잡았다. 그리고 객차 내에 불에 탄 흔적도 없어서 사건은 곧 종결됐다.

앞서 언급했듯 PTSD라는 질병을 양지에서 공론화시킨 첫 사례로 꼽힌다. 물론 5.18 민주화운동이나 삼풍백화점 사고에서도 PTSD 환자는 많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당시 신경정신과) 상담 자체가 터부시되고 의지드립이 난무하던 시대였다가 이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PTSD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하여 후대의 참사 처리에 있어 PTSD 치료는 외적 부상 치료 이후에 반드시 행해지는 치료로 자리잡은 것도 그나마 이 대구 지하철 참사로 인해 고쳐진 점 중 하나다.

7 관련 문서

  1. 실제로 이 사건을 단순한 방화에 의한 참사로 분류해야 하는지, 명백한 "테러" 로 분류해야 하는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김대한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사건은 "테러"(묻지마 테러)로 보는 것이 맞다.
  2. 보통의 단순 화재도 이런 1보는 거의 매일 나온다. 검색되는 기사 중 가장 빠른 기사이자 1보 자체도 연합뉴스뿐이다. 그래서 더욱 역설적으로 대구 지하철 참사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1보 기사.
  3. 2015년 현재 기준으로 사실상 구조된 172명 외의 인원인 304명은 사망한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4. 아직도 실종된 상태로 사망자와 진배없지만, 사망자는 시신이 없더라도 사망이 인정되었지만 이 경우는 사망이 인정되지 않은 경우다. 이쯤 되면 죽었는데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시신은 있는데 훼손 상태가 심하여 신원 확인은 물론이요, 더욱 심한 경우에는 성별도 판별이 불가능한 시신도 존재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신원 확인이 안 되어서 코드명으로 있다.
  5. 대구의 시내인 동성로가 있는 그 동네다.
  6. 우리가 흔히 뇌졸으로 알고 있는 그 병이다.
  7. 2015년 현재 대구 3호선과 1호선의 환승역인 그 역이다.
  8. 기관사가 일부러 마스터키를 뽑고 탈출한 것이 아니고 규정이 있었다고 한다. 1080호 기관사는 역사내 연기로 인해 1079호에 불이 붙은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지하철은 가연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배웠기에(불량 내장재로 인해 화재가 커졌다) 이렇게 심각한 화재였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였기에, 안전 관리 문제로 5년형을 선고받았다.
  9. 문명사회의 일원으로서 업무와 생활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것은 과학과 문명과 사회와 법률을 이루는 기본 법칙이다. 기관사가 사고에 있어서 최선을 강구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허나 기관사가 매뉴얼대로 행동했다면, 조직과 계획의 일원인 기관사에게 사고의 감정적 책임을 전부 돌리기보단,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에 집중해야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참으로 가슴아픈 참사지만, 과학과 문명, 예측과 안정성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문제의 초점에 보다 정확히 집중해야만 한다. 기관사가 예측되지 않은 사태인 비상시를 맞이해, 비상시를 위해 마련된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깊게 생각하지 못하긴 했으나 매뉴얼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영웅이나 초인에 대한 요구에 가깝다. 예측되지 않은 사태인 비상시에 대비한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였고 책임이 필요하다.
  10. 보통 문 옆 의자 아래나 벽면에 있는 뚜껑을 열고 그 안의 레버를 당기면 손으로 열 수 있는데 사고 전에 이 방법이 시민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레버 위치와 사용법에 대해서 아주 조그맣게 써놨기 때문에 지하철 타면서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들었다. 1호선 지하철 문짝에 크게 적혀있는 비상레버 사용법이 아니라 비상레버 주변에 작게 적혀 있던 사용법만 사고 전에 붙어 있었다. 이 방법을 알고 있던 사람이 몇몇 객차에 타고 있기는 했다.특히 1080호의 경우 4호 객차에 타고 있던 당시 금호역장 권춘섭 씨가 사태를 직감하고 비상 코크를 연 다음 문을 수동으로 탈출했다. 뉴스에서도 소개된 부분.
  11. 이 작업들 덕분에 2014년에 일어난 도곡역 방화 사건이 제2의 대구 지하철 참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12. 정신건강의학과 상담 자체가 터부시되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13. 사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및 유가족 등도 지금도 PTSD를 호소하고 있고 각 재난마다 분명히 PTSD 환자는 있어왔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야말로 PTSD를 양지로 공론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후대의 사고에 있어서도 생존자에 대한 부상 치료와 더불어 PTSD 치료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어 PTSD 치료가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10년간 큰 변화라면 변화다.
  14. 이것은 연기가 위로 올라가려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으로 화재가 나면서 생기는 열 때문에 공기가 데워지면서 대류 현상이 일어나 연기도 그 바람을 타고 위로 올라가게 된다. 화재 사고 매뉴얼에서 불이 났을 때 몸을 아래로 최대한 숙이고 저지대로 가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실제 사고 사례를 보면 연기가 많은 화재 사고 현장에서는 저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이 고지대 쪽으로 피한 사람들보다 생존률이 높다.
  15. 역에 통곡의 벽이라는 벽 너머엔 아직 일부가 남아있다.
  16. 김대한은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상반신, 하반신 모두 장애가 와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김대한의 방화 사유는 심한 우울증 후 정신 질환이 심해진 데 따른 판단력 상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대한의 아들은 대구 중부경찰서에 출두하여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문제가 있었다' 고 밝혔다. 하지만 지병인 뇌졸중으로 인한 울분을 방화로 토한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어 방화 사유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김대한의 직계 가족은 사건 이후 곧 경북 지역을 떠났다. 친척들도 이쪽 집안은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17. 되게 위험하다. 만약 고무로 된 격실에 불이 붙을 경우 고무는 누구나 알다시피 타는게 아니라 녹기 때문에 화재시에 녹은 고무가 사람 몸에 붙기만 해도 끔살당할 수 있다. 최근 도입된 전동차의 경우 객차간에 설치된 다이어프램이 불연성이고, 노후 전동차도 해당 부품을 불연성으로 교체하고 있긴 하지만 완전히 안전한 게 아니다.
  18. 겨울에는 이 쇠 시트를 열로 데워서 지나치게 차가워지는 걸 막는다. 이게 또 과민성 대장 증후군 환자들한테는 엉덩이 난방으로 불리며 또 다른 민폐로 취급받는 모양.
  19. 이래봤자 수도권 위주지만
  20. 주로 외관이나 내부에 간단히 스티커만 붙이는 정도이다.
  21. 출퇴근 시간이 아닌 승객이 적은 시간대에 행해졌다. 당시 분위기상 지하철이 늦어진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22. 요즘은 주로 승차 다이빙이나 내리는 승객 먼저 내리고 승차하라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참사의 기억이 서서히 잊히고 있는 것.
  23. 예를 들어 투신자살하는 사람
  24. 현재 1호선 반월당, 중앙로, 동대구역, 2호선 문양 ~ 대실, 반월당, 정평~영대역, 3호선 전 역사에는 이미 스크린도어를 설치되어 있었고, 현재 1~2호선 전 역에 1단계와 2단계로 나눠 스크린도어 설치 작업 중이다.
  25. 평상시에는 선로에서 차량이 역에 정차하며 발생하는 마찰열로 인한 더운 열기를 빨아들여 외부로 보냄으로써 승강장에 그 열기가 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겸한다.
  26. 단, 이 경우 열차풍과 미세먼지, 소음을 감소시키는 기능은 하지 못하게 된다.
  27. 주인공의 실종된 딸이 희생당한 사고가 바로 이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