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전세계적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로부터 70개 이상의 분파가 설립되었다.
아래에는 대표적인 분파들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
1 다윗파
Davidian Seventh-Day Adventist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발생한 분파 중 하나이다. 웨이코 참사를 일으킨 주범이다.
불가리아 태생의 이민자 출신 후테프(Victor T. Houteff)는 한 친구를 통해 1919년 재림교회 기별을 받게 되는데, 평소 미국에 뿌리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재림교회가 가르치는 성경 예언에 깊이 매료된다. 후테프는 단번에 숫자에 빠져 들었다. 그는 성경의 모든 구절과 내용들이 예언의 성취라고 보았는데, 다니엘서 8장 14절의 이천삼백주야뿐 아니라 “한 문장의 모든 글자, 모든 단어, 모든 어구가 성경이 담고 있는 (숨은) 진리를 푸는데 뜻한바 일관된 표현을 주는 나름 저마다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특히 관심 있었던 성경은 다니엘서,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 계시록을 비롯한 선지서들이었고, 그는 이런 연구가 재림교회의 예언연구와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여겼다. 1929년, 후테프는 자신의 교리적 이해를 체계적으로 완성하고 이를 <목자의 지팡이(The Shepherd’s Rod)>라는 이름으로 정식 위원회에 제출한다. 여기서 ‘지팡이’는 복합적 의미를 띠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The LORD’s voice crieth unto the city, and the man of wisdom shall see thy name: hear ye the rod, and who hath appointed it)”는 미가서 6장 9절의 말씀이면서, 또 하나는 의의 증인들인 144,000을 통해 진리로 사람들을 이끄는 ‘하나님의 (안내의) 지팡이’이기도 하다.
이에 캘리포니아합회12인위원회는 후테프를 출교 조치한다. 그는 재림교회 목회자를 포함한 자신을 따르는 일군의 동조자들과 함께 텍사스주 웨이코(Waco) 외곽의 브라조스강 유역에 있는 200에이커의 땅을 구매하고 농장을 만들어 그 지명을 갈멜산센터(Mt. Carmel Center)라 부른다. 단체명을 다윗파안식교(Davidian Seventh-Day Adventists) 줄여서 DSDA라고 명명한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선교 대상은 물론 재림교인들이었다.
오래전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던 후테프는 52세에 같은 캠프에 있었던 자신보다 서른여섯 살이나 어린 소녀 플로렌스 허맨슨(Florence Hermanson)과 재혼을 하게 되면서 DSDA는 일인체제에서 집단-친족체제로 뒤바뀌게 된다. 자신의 장모를 교단 조직의 서기로 앉히고, 자신의 어린 아내를 교회의 비서로 임명한다. 그러다가 1955년 후테프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며 집단이 붕괴된다. 이에 부인 플로렌스는 스스로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입증할 강력하고 절대적인 필요에 노출되고 말았고, 결국 1959년 4월 22일에 성경이 예언한 ‘심판의 날’이 온다고 선언한다. 1930년대 후반 100여명의 신자들에 그 중 3분의 1일 어린아이였던 집단 구성에서 DSDA를 이루는 교인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가지고 1500여명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흘러갔고,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졌으며 고작 50여명 남짓한 골수 추종자들만 갈멜산에 남게 된다.
1.1 다윗가지파
Branch Davidian Seventh-Day Adventist
이때 벤자민 로덴(Benjamin Roden)이 조직을 추스린다. 그는 후테프가 사망했을 당시, 조직 내 짧은 리더쉽의 공백기가 있을 때 지도자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플로렌스의 ‘빗나간 예언’과 지도력을 통해 DSDA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으며, 따라서 “죽은 지팡이(dead rod)에서 벗어나 산 가지(living branch)에 접붙이라”는 설교를 하게 된다. 아론의 죽은 지팡이에 싹이 난 사건을 토대로 구성된 설교는 분파 잔당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는 훗날 다윗가지파(Branch Davidians)의 신학적 정초가 된다. 그가 57세 때 지리한 법정공방과 소송을 통해 갈멜산을 비롯한 대부분의 부동산을 손에 넣게 되고, 1962년 스스로를 GADSA라고 명명하게 된다. 여기서 GADSA는 General Association of Davidian Seventh-Day Adventists를 뜻한다. 분파에서 또 하나의 분파가 갈라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아내 로이스가 더 뛰어난 수완을 발휘한다. 눈에 띄는 것은 그녀가 특히 삼위일체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존재하는, 이른바 양성구유의 존재자며, 성령은 여성, 성자도 재림할 때에는 여성의 몸을 입고 임한다는, 당시로써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 보더라도 과격하고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공식 잡지 <쉐키나(SHEkinah)>도 발행한다. 이 잡지는 그녀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안겨 주었는데, 영지주의 복음서, 과거와 현재의 여러 종교 신화를 이합집산하여 하나님의 여성성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여성신학자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호소력을 지녔다. 이로 인해 그녀는 WCC 회기에 초청받기도 했으며 재림교회와 관련이 없는 단체들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1978년 10월 22일, 남편 로덴이 지병으로 죽자, 로이스는 자신이 엘런 화이트을 잇는 예언자라 공언하며 다시 전면에 등장한다.
2 돌나라
박명호가 설립한 신흥종교이다.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에 집단주거지인 한농마을이 있다.
3 생애의 빛
강병국 목사가 설립한 선교센터이다. 안식일 교인들에게 견고한 토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제칠일 안식일교회에서 제명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병국 목사는 안식교에서 목회를 하던 목사였지만 목사인 자신이 거듭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경을 다시 연구하였다. 성경의 참된 복음을 알게 되며 거듭난 강병국 목사는 안식일교회에서 자신이 알게된 성경적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많은 성도들이 감동을 받고 거듭났으며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지만, 동료 목사들이 강병국 목사가 이설을 전한다고 지적하여 결국 강병국 목사는 안식일교회에서 목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강병국 목사는 어떤 교단이나 교파에 속해있으면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독립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전하는 생애의 빛 선교센터를 1989년에 시작하게 되었다. 생애의 빛은 안식일 교회에서 전하는 잘못된 복음이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말하고 있으며 그 뒤로 현재까지 안식일 교회와는 복음적인 문제로 충돌하고 있다.
4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
Iglesia ni Cristo | INC
필리핀의 신흥종교인 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1]의 1대 교주 펠릭스 마날로(Felix Manalo)는 이 종교를 창립하기 전에는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았고, 18세에 감리교회로 옮겨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공부하였고, 이후 장로교회에 다녔고, 재림교회로 옮겼다. 이후 1914년에 해당 종교를 설립하였다. 이 종교는 여호와의 증인처럼 과거 재림교회에 따라 반삼위일체를 수용하였다. 이 종교에 관한 글은 여기에 나와 있다.
5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개혁운동
Seventh-day Adventist Reform Movement | SDARM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개혁운동(the Seventh Day Adventist Reform Movement)과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개혁운동세계선교회(International Missionary Society of the Seventh Day Adventist Reform Movement)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단체다. 후자가 전자로부터 1952년 분리되어 나왔다. 전자를 흔히 줄여서 SDARM으로, 후자를 IMS로 부른다.
둘 다 재림교회 개혁운동을 이끄는 단체로 주로 재림교회 내 이탈자들을 선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첫 번째는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이고, 두 번째는 1914-18년에 걸친 대전이다. 전자는 교리 논쟁이었고, 후자는 전시에 대한 이해의 차이였다. 1888년 이전까지 재림교회는 두 번의 교리적 격변을 겪었는데, 첫 번째는 삼위일체를 가톨릭교회의 그릇된 교리로 보았던 관점이고, 두 번째는 소위 닫힌 문(Shut Door) 교리였다. 상당히 복잡한 논의를 간단히 줄여 말하면, 당시 미국 청교도들의 일반적인 정서처럼 재림신앙을 가진 초기 재림교인들은 그들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의 마지막 주자(혹은 적자)라고 여기고 있었고, 가톨릭교회의 모든 신앙적 유산을 파괴하는 것을 그들의 최종 목표로 삼았다. 그러한 교리들을 열거하면, 1) 주일 미사 준수, 2) 크리스마스 기념, 3) 삼위일체, 4) 성체성사(성찬식), 5) 세례(유아세례), 6) 교황권 등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개혁하는 정도에 따라 여러 신앙적 스펙트럼이 나타났고, 그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 것이 바로 1888년 미네아폴리스에서 있었던 총회였다.
SDARM
공식 사이트(영어)
한국 공식 사이트
IMS
공식 사이트(영어)
한국 공식 사이트
6 하나님의 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광안리교회의 장로였던 안상홍은 재림교를 탈교하고 안상홍 증인회를 설립하여 교주가 되었다. 이후 현재의 하나님의 교회로 개명되었다. 현재에는 장길자가 어머니 하나님의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