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洗禮
bap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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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교의 성사

세례란 죄를 씻는것을 말한다. 주로 그리스도교의 세례 의식을 말하는데 가톨릭정교회에서는 세례성사라고 칭하기도 하며, 개신교에서도 성서에서 나오는 2가지 성찬과 세례에 대해서는 성사로 인정한다.

말 그대로 물을 부어서 상대를 씻어준다는 의미인데, 1차적으로는 '씻어주어 깨끗하게 된다'는 상징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2차적인 의미로 '그리스도처럼 묻히고(물에 잠기고) 부활한다(물에서 나온다)' 하고 우회적인 해석을 한 이래 바울식 해석이 많이 퍼졌다.


1.1 역사

성경을 기준으로 할 때, 신약에서 세례자 요한예수에게 해준 것이 모티브로 보이며, 초기 교회에서도 시행했던 의식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의 유대교 전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전통으로, 세례는 세례자 요한이 만들어낸 것이다.[1] 그래서 세례자 요한을 'John the Baptist'라고 부르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온전한 창작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하여 세례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전례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서기 50년대 후반~80년대로 추정되는 기간에 작성된 시리아 지방 시골 교회에서 작성했다고 추정하는 문서 '디다케'에 세례 관련 규정이 보인다. 디다케에 따르면 세례는 원래 흐르는 물에 몸을 완전히 담가 행한다. 날이 춥거나 해서 흐르는 물, 즉 강가나 시냇가에서 할 수 없다면 욕조등에 물을 담가 거기에 몸을 담그라고 한다. 그리고 그마저도 할 수 없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마에 물을 3번 부으라고 규정한다. 디다케 규정에 따르면 강이나 시냇가에서 몸을 담금이 정식이고, 나머지는 몽땅 약식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침례교 방식도 약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교할 때마다 소 한마리가 희생되는 미트라교보다 저렴해 기독교가 미트라교보다 교세가 확장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였다 카더라

디다케 원문에는 '살아있는 물'(흐르는 물), '죽어있는 물'(고인 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슬람에서는 예배를 볼 때 손과 발, 얼굴 등을 물로 씻고 난 뒤 참가하라고 하는데, 이 때 흐르는 물에 씻어야 한다. 그래서 모스크에서는 흔히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그 물에 씻고는 한다. 이 또한 세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관습일 것이다.

사회 제도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리스도교 문명권에서 세례라는 관습은 호구 조사와 세수 확보를 아주 쉽게 하는 제도였다.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일종의 정치권력이 공백이 있는 상태에서 이민족 왕조들이 흥망성쇄를 거듭함에도 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은 기존 법과 제도를 지키면서 남은덕중의 하나가 세례였으며 출생과 사망, 혼인등은 유럽왕조들이 후대에도 거대한 관료국가가 되었어도 교회몫이었다. 그래서 딱히 기독교 신자도 아닌 현대이전 유럽인들의 출생기록이 교회에서도 찾을수있는것이다.
현재 평소엔 교회출석하지않는 사람들도 관혼상제는 교회에서 하는 전통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1.2 침례

가톨릭이나 성공회, 개신교장로교, 루터교회감리교사제목사가 약식으로 약간의 성수를 머리에 적시는 정도이다.[2] 반면 동방 정교회나 개신교의 침례교를 위시하여 순복음교단과 같은 오순절파에서 세례자 요한의 형식을 최대한 따르는 '침례'를 행한다. 이 밖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3]에서도 침례를 행한다. 침례를 하는 교파들에서도 가운을 입고 침례 하는 곳이 있고[4], 평상복 차림으로 침례하는 곳도 있다.


1.3 교파별 신학 차이 (유아세례, 재세례)

세례를 받으면 인간이 받은 원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며,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느니 못하느니 문제는 매우 시끄러운 신학적 논쟁. .

일단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세례성사라는 형식 자체에 하느님의 은총이 임재한다고 여기며 그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세례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길이 열린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들은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를 내세운다. [5] 다만 현실적으로 한국의 개신교 가톨릭 교단 모두 세례자를 교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군대등 단체 세례는 인원수가 워낙 많은데다가 자의로 받는 경우가 아닌사례도 많아서 개신교회의 경우 대체로 교인으로 직접 교회 명부에 등록하거나, 1년이상 출석한 사람을 교인의 기준으로 삼는등 교단마다 차이는 있으나 세례자수=교인수로 세지 않는다.

세례를 받음으로서 원죄를 용서받고 신앙이 온전해진다고 가르치는 가톨릭과 달리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과 신학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 주장하며 세례는 부수적인 형식일 뿐이라고 본다. 개신교 신학자들의 입장에서 세례라는 형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이후 그것을 확인하는 차원의 예식이다. 가톨릭의 중세 전통은 세례를 받으면 그 이전의 모든죄가 사해진다는 믿음이 있었는데[6] 세례 자체로 죄가 사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다.


유아 세례의 경우는 예로부터 유서깊은 떡밥이었는데, 4세기 교부시대에도 배교자는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배교자에게 성사를 받은것은 유효한가가 중요한 논쟁이었고, 종교개혁시기 루터주의와 칼뱅주의(츠빙글리)에 영향을 받아 새롭게 등장한 독자 개혁노선 재세례파들은 [7]들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성인이라도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고백한자만이 다시 (가톨릭에서 벗어나) 재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는데 루터주의, 칼뱅주의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루터나 칼뱅은 가톨릭 교리중에 성경에 명백하게 잘못 된 것이 아니면 기존 해석과 제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8]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재세례파는 현대 비종교인의 논리와 비슷한데 "아이가 자유의지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때 세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신앙이 뭔지도 모르는 애한테 무슨짓이냐?"고 비판한다. 또한 가톨릭 교회를 거짓된 교회로 여겼고 나중에 자신들을 탄압하는 루터주의와 칼뱅주의도 가톨릭에 오염(?)된 산물로 보았기 때문에 재세례파 입교자는 기존의 잘못된 신앙을 청산하고 올바른 신앙안에서 다시 태어났음을 증명하기위해 성인도 재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재세례파와 루터파, 칼뱅주의 개혁교단의 교회론의 차이 때문이다. 재세례파는 자유의지에 따라 하나님을 영접한 자들만이 교회에 출석할'자격'이 있다 보았는데 재세례파의 주장에 반대한 루터와 칼뱅은 교회 구성원들 모두 죄인이며, 악인도 상당수고 진정한 신앙인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그렇지 못한이들을 구제하는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9] 따라서 교회 입교에 자격의 제한을 두지 않았다. 루터는 재세례파들의 재세례 논리를 케케묵은 자격주의 공로주의로 여겨 교부시기 아우구스티누스와 맞선 초기 펠라기우스주의가 되살아난것으로 보았는데[10] 루터와 칼뱅 모두 성인은 앞서 성서상 해석을 두고 비판했고 유아세례 또한 기존 성서해석을 인정하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자녀를 신앙안에서 올바르게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재세례파의 논리에 반대했다.

한편 유아 세례를 지지하는 다른 기독교 종파인 가톨릭의 경우, "유아 세례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선물이다. 자녀가 지성이 발달한 후 성당에 오기 싫어한다면 안나오면 그만이다"는 입장.


현재 가톨릭 및 개신교의 대부분 경우는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주라고 하나, 개신교중 대표적으로 침례회 처럼 유아 세례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에 소수만 남은 재세례파는 앞서 종교개혁시기 개신교와 가톨릭 양쪽에게 공격을 받았는데[11], 이 교파의 주장은 인간이 짓는 이런저런 죄 중에서도 순결에 관련된 죄가 가장 크기 때문에, 결혼하기 직전에 정식 세례를 받아 인생에서 가장 큰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골자이다. 현재 캐나다 지역에는 재세례파중 후터파[12]가 많이 이주했고, 메노나이트 교도들도 유럽에서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정착한 케이스. 재세례파중에 아미시들도 있는데 과거 유럽에서 박해받던 전통을 이어나가 다른 교파와 교류를 차단하고 종교적 이유로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18~19세기 식의 삶을 고집한다.


1.4 세례를 받는 법

가톨릭개신교에서 세례를 주는 기준은 약간 다르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일정기간 동안 교리공부를 마친 새 신자에 한해서 주는 반면, 개신교에서는 아직 세례를 받은 적이 없는 새 신자가 교회에 등록하면 큰 조건을 안 붙이고 세례를 주는 편이다.

다만 가톨릭에서 교육 받은 신자에게만 세례를 주는건 아니다. 원칙적으로 세례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줄 수 있고 또한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유아 세례가 가능하고, 군대 훈련소에서 초고속 세례가 가능한 것. 또한 앞의 사례와는 조금 다르지만, 2014년에 세월호 희생자의 학부모 이호진 씨가 성당에서 교리교육 기간을 모두 채우지 않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바가 있다. 역사상 그 이전까지 보통 교황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그 나라 평신도에게 세례를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파격적인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가톨릭에서 가장 권장하는 세례는, 사제에게 교리 교육을 충분히 받은 후의 세례 혹은 유아세례 2가지이다.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유아세례를 제외한 세례에 연령제한을 두기도 한다. 이 경우, 대체적으로 중학생 연령대 이상.

1.5 교파간 세례 인정

기독교 내 타 종파 출신 입교자의 세례 인정 문제는 종파마다 다르다. 개신교는 서방교회 가톨릭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자들도 당연히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루터 칼뱅 모두 가톨릭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하고 재세례를 부정했다. 자유의지에 따라 세례 받아야 된다는 재세례파의 주장을 배격하기 위한 뜻도 있다.

따라서 개신교의 경우 세례에 대해서 가장 열린 교파이다. 정교회, 가톨릭, 재세례파는 타교파의 세례를 인정하지 않거나 엄격하게 통제하는데 비하여 개신교의 경우 세례에 대해서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타교파의 세례를 인정했으며, 개신교내 타 교단(성공회 포함)의 세례도 유효하다. 다만 재작년부터 에큐메니컬에 부정적인 보수교단(예장합동)에서 1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14년부터 가톨릭에서 받은 세례는 인정치 않기로 결의했다.] 교단의 결정일 뿐 반발하는 목소리도 결코 적지 않았는데 "장 칼뱅도 가톨릭 세례 인정했는데 한국 장로회에서 왜 유독 난리질이냐" "재세례파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며 교단 내 목소리 큰 강경파의 횡포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 침례교 계열 교단에서는 머리만 적시는 수준의 세례를 무효한 것으로 보고 침례받도록 하고 있다. 침례교파는 재세례파 일부가 합류하여 역사로 삼고 있고 전통을 받아들였기 때문.
  • 천주교: 성공회, 정교회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한다. 개신교의 세례의 경우 검증이 필요하다. 2012년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규정을 바꿔 세례/침례 증명서나 세례 사진을 제출하면 사실상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가톨릭 신앙상담 사이트 댓글이나 일선 성당 주임신부님 의견이나 웬만하면 정식으로 천주교 세례를 다시 받을 것을 권장하는 분위기이다.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면 재세례는 불필요하다는 입장은 개신교와 같다.

1.6 1에서 유래한 말

세례 의식에서 유래한 말. 다만 원 의미와는 좀 다르고 무언가를 많이 받음을 의미하는데, 주로 벼락을 맞거나 타격을 당하는 등 부정적인 맥락에서 쓰이는 경우가 잦다. 융단폭격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보면 된다.

2 우메즈 카즈오의 일본만화

일본 공포만화의 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메즈 카즈오의 문제작. 표류교실과 더불어 우메즈 카즈오의 대표작이다. 소학관에서 연재되었으며 문고판 기준 전4권 완결. ([위키피디아])
참고로 이거 소녀만화 잡지에서 연재되었다! 흠좀무..[13]

아름다움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유명한 여배우인 와카쿠사 이즈미(본명 : 우에하라 마츠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위해 사생아 여자아이를 낳아서 자신의 의 몸에 자신의 뇌를 이식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 후, 그녀의 딸인 '우에하라 사쿠라'가 자라게 되자, 마침내 뇌이식수술을 실행하고, 그녀는 딸의 몸을 빌어서 아름다운 미녀로 다시 살아난다. 급기야 딸의 담임선생이었던 타니가와와 동거하고, 타니가와의 아내를 잔인하게 괴롭히고, 비밀을 밝히려는 반친구와 기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뇌수술 장면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잔인하거나 기괴한 장면은 없지만 어린아이의 몸을 한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중년여성의 추악한 모습에 대한 묘사와 그를 통한 심리적 공포와 의외의 반전이 압권이다.


영화화까지 되었지만 평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이와이 시마코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1. 단, 세례라는 예식 자체는 바빌론 유수 이전에도 정결례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이것을 유대교 입교 예식으로 쓴 것은 바빌론 유수 이후 엣세네파로부터였다.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더 확장해서 다시 제정한 것이다.
  2. 이것은 사막등 물이 귀한 지역에서 약식으로 침례를 했던것이 변형되어 전해졌다는 가설이있다.
  3. 특별히 제작된 하얀색 침례복을 입는다.
  4. 이것도 평상복 위에 가운을 덧 입는 경우나, 평상복은 속옷만 남기고 벗고 가운을 덧 입고하거나, 속옷까지 침례 전용 속옷으로 갈아입고 하는 경우로 나뉜다.
  5. 가톨릭교회에서는 인간의 구원의 길에 7성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가르치는데 개신교 측에서는 이 7성사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가톨릭의 교리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7성사에서 세례와 성찬은 인정한다지만 성사 자체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보는 가톨릭의 입장과 달리 성찬과 세례는 일종의 '기념' 같은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대다수이다. 즉 '세례 받으면 신앙에 도움이 된다'는 정도이다.
  6. 그래서 기독교 초창기 개종자들은 죽기직전에 세례받는 풍습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세례받지 않은 몸으로 니케아 공의회를 주도했고, 죽기 직전에 세례받았다.
  7. 과격혁명론자들도 예외없이 재세례를 주장했으나 재세례파중에 온건 노선도 있었고, 현재 남은 재세례파들은 후자다. 일부는 침례교에 흡수 되었다.
  8. 물론 개혁주의가 루터주의에 비하여 가톨릭 전통주의에 더 비판적이다. 루터파는 성서의 권위를 가장높이 보는점은 개혁주의와 같지만 성서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한다면 성서와 충돌하지 않는이상 전통을 일부 인정하고 명백하게 나와있지 않는 기존전통은 중요치 않은 점으로 여긴다면 , 개혁주의는 성서에 없는 전통을 필요없는것으로 보거나 충돌하는것은 적극적으로 없앨걸 주장한다.
  9. 루터 칼뱅이 이어받은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교회는 환자들이 모인 병원같은 존재라고 보았다.
  10. 펠라기우스는 원죄 자유의지 구원론등 논제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논쟁끝에 이단으로 선언되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펠라기우스는 기독교인이긴 했으나 기독교가 없어도 인간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온전히 선행을 통해 구원받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논리를 떠나 성경해석에서는 중대한 결함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단처리 된것.
  11. 초창기에는 이단 제거란 명목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게 공격받았다. 가톨릭 지역에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사형이고 개신교 지역에선 영국의 경우 한번은 경고 두번째는 추방 세번째는 수장... 그러나 루터는 재세례파들이 가톨릭 교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비슷한 오류에 빠졌다고 봤기 때문에 비난은 했지만 복음으로 돌아와야 할 대상으로 즉 재교육 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았고, 츠빙글리는 재세례파 스위스 형제단이 분리되길 끝까지 막아보려 노력했으며, 칼뱅의 경우 재세례파 과부와 결혼했다. 어쨌든 이단에 물들어 교화대상으로 본것.
  12.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비폭력 무저항주의 재세례파 상공인이 많았고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율을 중요시 여겨 저울을 속이지 않고 물건을 이윤을 추구하지 않기에 물건을 싸게 팔아서 다른 종파에도 평가가 좋았고 막시밀리안 2세 시절까지는 보호 받았으나 종교전쟁 발발이후 합스부르크가 영지인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에서 박멸... 수준으로 탄압받았고 뿔뿔이 흩어져 후에 신대륙에 정착
  13. 근데 웃긴 건 연재잡지가 꽤나 막장만화가 많이 연재되기로 유명한 소녀 코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