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자모산성 전투

23px-Disambig_grey.svg.png 여몽전쟁 1차침입때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에서 벌어진 전투를 찾는다면 제1차 자모산성 전투 항목으로
23px-Disambig_grey.svg.png 병자호란 당시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서 벌어진 전투를 찾는다면 자모산성 전투 항목으로

여몽전쟁때 벌어진 전투.

제2차 자모산성 전투
날짜
고종 23년(1236년) 6월 병신일 ~ 7월 정유일[1]
장소
자모산성
(평안남도 순천군 자산)
교전국1교전국2
교전국고려군몽골군
지휘관최경후(崔景侯)
김지저(金之佇)
김경희(金景禧)
불명
병력불명불명
피해 규모??
결과
자모산성 함락.

1 기록

○병신일. (몽고군이)자주(慈州), 삭주(朔州), 구주(龜州),곽주(郭州) 등지에 진을 둘러쳤다.

- 《고려사》권26 고종 23년 6월 기사

 

○계유일. 몽고 기병 20여기가 자주(慈州) 동쪽 들판에 침입해 벼를 베던 농민 20여명을 사로잡아 전부 죽였다.

○정유일. 몽고군이 자주(慈州)를 함락시켰다. 부사(副使) 최경후(崔景侯), 판관(判官) 김지저(金之佇), 은주 부사(殷州副使) 김경희(金景禧) 등이 모두 살해당했다.
- 《고려사》권26 고종 23년 7월 기사

 

○가을 7월,몽고병이 자주(慈州)를 함락하였고, 부사(副使) 최경후(崔景侯),판관(判官) 김지저(金之佇)와 은주 부사(殷州副使) 김경희(金景禧) 등이 모두 피살되었다.

-《동국통감》권32 고려기

 

○8월, 몽골이 자주(慈州)를 함락시키고, 진군하여 남경(南京)에 이르렀다.

-《동사강목》제10하 고종 23년 기사.

2 설명

몽골은 1235년, 남송을 공격하던 차에 덤으로 고려침공을 개시한다. 탕우타이(唐兀台)가 이끄는 몽고군은 6월 경인일에 압록강을 건너 영삭진(寧朔鎭) → 가주(嘉州)[2] → 운암역(雲岩驛)[3] → 박주(博州)[4] → 자주[5] 순으로 움직였다.

이에 자주부사 최경후, 판관 김지저, 은주부사 김경희 등이 병력을 자주산성으로 집결시켜 몽고군을 상대로 1달 동안 분전을 했으나 패배했고 모두 살해당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포로로 사로잡힌 듯 보인다.

3 기타

6년전 벌인 전투와 비교될수 있지만 제1차 자모산성 전투 당시엔 몽고의 주력군을 상대한게 아니었던 반면 몽고와의 두번째 전투때는 몽고의 주력군과 맞서 싸웠다. 더군다나 1231년엔 전투 말미에 이미 고려가 회안공(淮安公) 왕정을 보내 강화조약을 맺었기 때문에 몽고군이 전투를 중단하기도 했다.
  1. 양력으로는 1236년 7월 15일 ~ 1236년 8월 15일
  2. 계사일에 점령
  3. 을미일에 점령
  4. 을미일에 점령
  5. 병신일에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