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풍종호의 무협소설 『검신무(劍神舞)』와 『투검지(鬪劍誌)』에 등장하는 당대의 원후파(元侯派) 장문인이다. 어릴 때부터 원후파 제자가 되었는지 그의 나이 십 대 때에 청성파(靑城派)의 하후염과 같이 여행을 한다. 이때 하후염이 살생을 많이 일으킨다는 이유로 백 년 전의 녹림왕(綠林王)이 머물렀다는 녹림의 산채인 용채를 멸절시키는데, 종리당이 조해도인과 함께 그 흔적을 다 묻어버리는 뒤처리를 한다. 이처럼 함께 여행도 해서 친분이 깊기 때문인지 종리당의 성격도 하후염처럼 호쾌하고 거침이 없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시선 등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점도 비슷해서 종리당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날건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날뛰어서 별호도 노룡격호(怒龍擊虎)이다. 종리당은 자신의 이런 성격을 잘 알았기에 당연히 장문인 자리를 맡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전대 장문인이었던 계명선생(啓明先生)이 원후오귀(元侯五鬼)에 기가 눌리지 않고 문중을 이끌어갈 만한 이가 종리당 밖에 없다고, 제자들을 동원하여 그를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은 다음 강제로 장문인 자리를 넘긴다.[1]
종리당의 제자로는 배원세 한 명으로, 원무산에 온 한 고관대작의 망발에 그가 화가 나 상대를 지목하며 무분별하게 목을 따오게 시켜서 배원세의 별호가 무념귀(無念鬼)가 되게 한다. 이 일로 인하여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자 종리당은 제자들을 이끌고 날름 대회합이 열리는 청성파로 피신한다.[2] 덕분에 그는 수십 년 만에 육검협(六劍俠)의 뒤를 잇는 도운연이 사천오흉(四川五凶)을 기왓장으로 때려눕히는 모습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도운연이 육검협처럼 파문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자 종리당은 제자의 경험을 늘리기에는 좋은 기회라 여기고 배원세를 동행시킨다.[3]
이후 종리당은 배원세와 함께하는 도운연의 여행을 지켜보며 문중 제자들과 약 삼 년 동안 청성파 운리관에서 지내다가 원무산으로 돌아간다. 그제야 그는 장로들인 오검귀가 구귀(九鬼)와 금모하 등을 거두어 가르친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나 금모하는 원후파의 시조인 귀후(鬼侯)의 검(劍) 중 귀룡아(鬼龍牙)[4]의 음검(陰劍)을 검총(劍塚)에서 꺼냈기에 오랜 세월 봉인된 요룡(妖龍)을 죽이기 위한 원후파의 인연자가 된다. 그래서 장문인인 종리당으로서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귀둔(鬼遁)에 있어서 뛰어난 가문이자 원후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영호가의 가주인 영호인과 함께 금모하를 직접 만나기로 한다. 그리하여 금모하는 영호인으로부터 원후파의 인연자가 해야할 일인 요룡을 죽이는 것에 대해 전해 듣고는 이 사명을 거부하고, 귀룡아의 음편을 포기한다. 그는 아직 자신과 얽혀있는 팽하려와의 인연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종리당은 장문인의 권한으로 금모하가 자기 일을 정리하고 원후파의 인연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기까지 최소 십 년은 개입하지 않고 기다리기로 한다.
2 무공
- 검령비결(劍靈秘訣) : 원후오귀가 옛 이야기만을 듣고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사단계 마검비전(魔劍秘傳)을 복원하여 익히고 있다면, 종리당은 익히지는 않았지만 원후파의 장문인답게 제대로 비전을 이어서 누구보다 마검비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 ↑ 심무강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고, 제무견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크게 웃을 정도였다.
- ↑ 관에서 원후파에 화풀이할 수 없으니 괜한 원무산 주변의 양민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원무산을 떠나는 유민들이 발생하였고, 이들 중 일부가 나중에 도운연과 배원세가 합류한 사호표국의 표행을 털려는 녹림도로 변모한다.
- ↑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으거라는 말로 동행을 시킨다. 이 덕택에 배원세는 한층 더 성장을 하고, 도운연은 혜광검(慧光劍)의 초식을 배운다.
- ↑ 양검(陽劍)과 음검으로 나뉘어져 있다. 양검은 장문인에게 전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