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암동 여관방 유부녀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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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8년 서울 종암동의 한 여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이 사건으로 뜻밖의 과거 행적이 밝혀졌다.

2 상세

1968년 5월 25일 서울 종암동의 달성여관에서 여인의 피살 사체가 발견되었다. 시체는 양말로 목이 졸려서 숨져 있었는데, 젖가슴에 브래지어만 걸친 외에는 알몸인 상태였고, 입에는 팬티로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시체의 신원은 하월곡동에 사는 신 모(30)의 아내 조정애(24)로 밝혀졌다. 방 안에서는 찢어진 쪽지가 발견되었는데, '남편이 있는 줄 알면서도 당신을 죽이고 싶도록 사랑했다'는 내용이었고, '한선우'라고 서명되어 있었다.

종업원의 진술에 따르자면, 25일 자정 너머 20대 청년이 들어와서 방을 하나 내주었는데, 멋부린 옷차림에 작은 키였다고 한다. 오후 2시 경에 방 앞에 가서 체크아웃하라고 일렀더니 '하루 더 묵어 가겠다'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때까지 종업원들은 여자가 방에 들어갔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던 상태. 이윽고 8시 반 쯤에 예의 남자손님이 '여자가 자고 있으니까 깨우지 말라'면서 나갔다. 그후 11시쯤 단골 손님이 찾아와 그 방을 달라고 하기에 문을 노크했지만 응답이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더니 여인이 죽어 있더라는 것.

경찰은 청계천의 양화점에서 일하던 조 여인이 당일 아침에 정상대로 집에서 출근길에 나섰지만 직장에 나오지는 않았으며. 1년쯤 전부터 불륜관계였던 남자가 있었음을 알아내고는 치정살인으로 간주, 수사에 착수했다. 마침 사체에서는 정액이 검출되었고, 방 안의 담배 꽁초에서도 타액이 검출되어 단서는 많이 있었다.

조 여인은 남편 신씨와 7년 전에 결혼하여 아이도 있었지만 남편이 실직 상태여서 백화점 점원 등으로 대신 일하였고, 1년쯤 전부터 양화점에서 일하였는데, 그 때부터 '미스터 한' 이라 부르는 영화 기술자와 자주 만났다고 했다. 경찰은 이 '미스터 한'이 경북 대구광역시 출신의 영화 조명사로, 본명은 이선우[1]이고, 최무룡 프로덕션 등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뜨내기이며, 충무로 조명연예협회에서 일하다가 각종 조명기구를 훔쳐 달아나기도 했으며 남창동의 하숙집에서도 밀린 하숙비를 갚기는커녕 주인집 라디오까지 훔쳐서 자취를 감춘 것을 알아냈다.

3 결과

사건으로부터 1주일 뒤, 진범 이선우는 경북 달성의 경찰서에 자수,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는 조 여인에게 남편과 헤어지고 자신과 시골로 내려가서 같이 살자고 종용했지만, 조 여인은 괴로와하면서 남편에게 돌아가겠다고 주장했다고. 결국 조 여인이 잠든 뒤에 목을 졸라 죽였다는 것이다. 다만 미리 여관 현관에 여벌 구두를 숨겨두었다가 바꿔 신고 나간 것으로 볼 때 경찰은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계획 살인으로 판정하였다.

원래 범인 이선우는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 16살 때 홀로 상경하여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여관 종업원으로 있을 때 마침 창녀로 일하던 조 여인과 만났던 적이 있었다는 것. 조 여인은 6/25 동란때 어머니를 잃고 사창가로 빠져들었지만 그 와중에도 미용학원을 다니며 재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년 뒤 조 여인은 창녀 생활을 청산하고 동대문시장에서 고무신장수로 새출발했고, 그 때 남편인 신씨와 만나 결혼했다. 그러던 중 1년쯤 전부터 이선우와 재회하여 불륜에 빠져들었고, 그 외에도 3,4명의 외간 남자들이 더 있었지만 근래 들어 심적으로 괴로와하면서 이들을 멀리하였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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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 발견을 보도한 1968년 5월 27일 경향신문)
  1. 또는 이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