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宗預
(? ~ 264)
삼국시대 촉나라의 인물. 자는 덕염(德艶).
남양군 안중현 사람으로 건안 연간(196~220년)에 장비를 수행해 촉으로 들어갔으며, 건흥(223~237년) 초에 제갈량이 주부로 삼았고 참군, 우중랑장으로 관직이 올랐다. 제갈량이 죽자 오나라는 위나라가 촉이 쇠약해진 틈을 타 촉을 공격할까 우려해 파구의 수비병 1만 명을 늘렸으며, 촉이 이 소식을 듣고 영안의 수비를 강화했다.
종예가 오나라의 사신으로 파견되어 손권이 동쪽과 서쪽은 서로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면서 서쪽에서 백제의 수비를 강화한 것에 대해 묻자 양 쪽 다 수비병을 늘린 것은 사세상 당연한 일이니 추궁할 일이 아니라고 했으며, 손권이 강직함을 칭찬해 등지와 비의에 버금가는 공경을 받았다.
관직이 올라 시중이 되었다가 상서로 전임되었으며, 247년에는 둔기교위에 임명되었다. 등지가 강주로부터 돌아와 예기에서 나이 60이면 군역을 지지 않는다면서 병권을 받았으니 어찌된 것이냐고 묻자 경께서는 나이 70에도 병권을 물리지 않는데 나라고 60에 받지 못겠냐고 응수했다.
등지의 성정이 교만해 비의 등을 포함해 모두가 피했지만 종예는 홀로 굽히지 않았으며, 다시 오를 방문했지만 헤어질 때 손권이 "군(종예)이 매번 명을 받아 양국의 우호를 다져왔지만 둘다 나이가 많아 다시 만나지 못할까 두렵다."면서 손권에게 큰 진주 1곡을 선물받았다. 손권과 헤어진 것에 대해 오력에서는 종예가 동쪽과 서쪽이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나이가 들고 병이 많아 다시 명을 받들어 뵙지 못할까 두렵다고 했다.
촉으로 들어와 독영안으로 관직이 올랐다가 정서대장군에 임명되어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으며, 진남장군, 영연주자사가 되었다가 258년에 병으로 인해 성도로 갔다. 이후에는 진군대장군 영 연주자사에 임명되었고 그 때 도호 제갈첨이 처음으로 조정의 일을 통괄하게 되었는데, 요화가 제갈첨을 찾아가자고 했지만 우리 나이가 70을 넘어 욕심을 부릴 나이도 지났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어린 아이를 찾아가 늘어놔봐야 뭐하겠냐면서 찾아가지 않았다.
264년에 위나라의 공격으로 촉이 멸망되자 요화와 함께 낙양으로 호송되던 도중에 병으로 사망했다.
2 鍾豫
생몰년도 미상
조비가 종육의 봉지를 분할하도록 하면서 종연, 종소와 함께 분할받았고 열후에 봉해졌으며, 본전과는 다르게 주석에서는 종연, 종훈에게만 봉지를 분할하고 종예는 열후로만 봉해졌다.
종육의 봉지를 분할받은 사람이 종요의 동생, 아들, 손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아들이 없는 종회를 제외하고 종육, 종소 중에서 누구의 아들인지 알 수 없다.
2.1 창작물에서
진삼국무쌍7에서는 역도 토벌전에서 종회군이 있는 장소 중에 중앙에서 약간 떨어진 남동쪽의 병거에 있으며, 종예가 있는 곳으로 가면 "사마의님이 나타난 것이 사실이냐. 하지만 쫄 순 없다, 쏴라."라고 말하면서 주위에서 궁수부대가 등장하며, 파촉평전에서는 종준과 함께 북서쪽에서 원군으로 도착한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오장원 전투 7에서만 등장한다. 귀가 큰 실눈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