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금을 부르는 존칭
主上
본래의 호칭은 전하까지 붙여서 주상전하(主上殿下)라고 쓰지만 보통 주상이나 전하로 떼어쓰는 것이 보통이다. 신하들은 2인칭으로 전하를 썼지만 3인칭으로는 주상이라고 했으며, 상왕, 대비 등등의 국가적으로 아랫사람이지만 가족적으로는 윗사람인 왕의 친족들은 2인칭으로 주상 주사아아아앙 츄상! 줏쌍!을 썼다. 비슷한 말로 '금상(今上)'도 쓰였다.
보통 전하를 붙였지만 공민왕 때에는 폐하를 붙여 주상폐하로 호칭한 기록이 고려사에 있다.
한편 성상은 천자국의 군주를 지칭하나 중국과 고려, 조선 모두 쓰였다.사실 주상이라는 용어또한 성상처럼 왕뿐만이 아니라 천자국의 군주에게 사용한 기록이 있다
지금 주상(主上 = 한나라 헌제)께서는 어리고 심약하여 간신들이 조정을 주물러 중원이두려워 떨고 있으니, 영웅호걸이 재능을 떨칠 시기입니다. 출처 : 위서 상림전
선주는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말했다, “한실(漢室)이 무너지고 간신이 천명을 훔쳐 주상(主上)께서 몽진 길에 오르게 되었소. 나는 스스로의 덕과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천하에 대의를 펴고자 했으나 지술(智術-지모)이 얕고 부족해 창궐(猖蹶-실패, 좌절)하다 오늘에 이르렀소. 그러나 뜻은 여전히 버리지 않았으니, 장차 어찌 해야 할지 알려 주시겠소?” 출처 : 촉서 제갈량전
제갈량이 탄식하며 말했다, “법효직이 살아 있었다면 능히 주상(主上)을 제지해 동쪽으로 가시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동쪽으로 가셨다 하더라도 필시 경위(傾危-형세가 위태로워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출처 : 촉서 법정전
2 중국의 인물
周尙
생몰년도 미상
단양태수로 주유가 그를 찾아가서 안부를 물었다고 하며, 이 때 손책이 장강 동쪽을 건너가기 위해 역양까지 진군할 때 손책이 재빨리 글을 보내 주유에게 이를 알렸다. 이후 손책이 강동을 공격하러 나아가면서 편지를 보내 주상은 주유와 함께 부름을 원술의 부름을 받아 주상은 단양태수에서 물러나 원윤이 단양태수로 임명되면서 주유와 함께 수춘으로 갔다.
주상을 대신해 임명된 원윤은 손책의 부하인 서곤의 공격을 받아 단양태수에 취임하지 못해 주상의 후임으로 손책이 임명한 오경이 단양태수가 되었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손견이 죽고 손책이 원술에게 의지해 떠났는데, 둘은 헤어졌다면서 주상이 단양태수가 될 때 주유가 그를 따라 서성으로 떠났던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