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연호


1 개요

현재 북한에서 사용하고 있는 연도 표기 방식으로, 김일성이 탄생한 1912년을 원년, 즉 1년으로 한다. 흔히 '주체력'이라고도 하나 연도를 제외한 날짜는 모두 서력기원을 따르기 때문에 엄밀하게 따지면 그다지 적합한 용어는 아니다. 연호역법은 엄밀히 따져서 다르기 때문.

2 역사

사실 주체연호 표기는 김일성이 살아있던 1980년대 후반부터 비공식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한국 광복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원흉으로 꼽히는 최덕신 전 외무부 장관이 1986년 4월 월북 이후 쓴 저서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1988)에서는 최덕신 본인이 김일성에게 '자주력'이나 '주체력' 사용을 제안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고 서서히 논의가 다시 되기 시작하는데, 김일성 탄생 85주년을 하루 앞둔 1997년 4월 14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기관지인 청년전위에 실린 오영재의 시 <4월에 부르는 노래>에서 "1912년을 김일성기원 원년으로" 표현이 등장하면서 표면화되었다.

그리고 김일성 사망 3주기인 1997년 7월 8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현 내각) 5개 기관은 공동결정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일데 대하여>를 작성하고 다음 날인 7월 9일 오후 7시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의 '중대방송'을 통하여 주체연호 사용과 태양절(4월 15일) 제정을 공식화하였다. 공동결정서에서는 제정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수령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당중앙의 령도따라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 완성하려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 군인들의 한결같은 지향과 념원의 반영이다.

그 후 북한은 동년 8월 25일 중앙인민위원회 명의로 <주체연호 사용규정>을 채택하고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부터 주체연호 사용 원칙과 방법을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장 1997년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49주년 기념사설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가 김정일에게 보낸 축하편지가 방송을 통해 보도되면서 공식적으로 처음 주체연호 표기가 사용되었다. 당시 사설에서는 북한 정권 수립년도인 1948년을 '주체37(1948)'로, 축하편지에서는 1997년 9월 9일을 '주체86(1997)년 9월 9일'로 표기하였다. 당시 조선중앙방송 등 북한의 언론 매체에서는 이 주체연호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아래는 조선중앙방송의 1997년 9월 10일 보도 내용 일부.

전국의 기관, 기업소, 공장, 농장들과 각계층 인민들이 공화국 창건기념일인 9월 9일부터 일제히 주체년호를 쓰기 시작했다. 조국의 최북단 온성으로부터 분계연선도시 개성시 판문군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의 곡창 열두삼천리벌로부터 동해안의 공업도시 함흥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는 수령님의 한생과 더불어 밝아온 우리 시대 주체시대의 요구와 수령님의 령도따라 승리와 영광에 찬 길을 걸어오면서 간직한 절절한 념원을 빛나게 실현한 한없는 기쁨속에 첫 주체의 년호를 새기는 력사적인 화폭들이 펼쳐졌다.

3 사용법

<주체연호 사용규정>에 따르면 김일성 출생년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하며, 편의를 위해서는 주체연호와 함께 괄호 안에 서력기원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원칙은 주체 연호이기 때문에 출판물, 건축물, 문서 등 공적 분야는 물론 서신거래 등 사적 분야에서도 주체연호에 의거해야 한다고 정하였다.

연도 표기의 예를 들면

주체105(2016)년

이런 식으로 적는다는 것.

그리고 1912년 이전 시기의 경우에는 그냥 서력기원 연도만 사용한다.

4 트리비아

중화민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중화민국 연호도 1912년이 원년이기 때문에 주체연호의 숫자나 중화민국 연호의 숫자나 둘 다 같다. 물론 그 의미는 하늘과 땅 차이지만... 극단적인 대만 독립파라면 그게 그거다. 참고로 중화민국 연호는 쑨원이 중화민국을 건국한 해를 기준으로 한다.

5 구하는 방법

서기 x년([math]x\gt1911[/math])은 주체 [math]x-1911[/math]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