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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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9.17~1989.11.16

대한민국 제1공화국 당시 실제 학살행위가 확인된 군인들
탁성록송요찬최덕신추가바람

국군에 복무하면서 양민학살 만행과 후에 월북을 저지르는 행위를 한 대한민국 군인의 흑역사를 저지른 인물중 한명
보수와 진보양쪽에서 모두 비판받아도 싼 인물

한국 광복군 출신으로 중국군[1]에 복무했고 해방 이후에는 국군 장성이 되서 한국전쟁 막바지에는 휴전회담 대표를 역임하였다. 육군 중장으로 전역한 후에 박정희 정권하에서 외무부 장관과 서독(독일)주재 대사를 역임했고 공직에서 은퇴한 뒤에는 천도교 교령까지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군인과 외교관으로 나라에 봉사한 인물같은데...

한국전쟁 당시에는 거창 양민 학살사건으로 대변되는 영호남 지역의 양민학살의 원흉으로서 지탄받았고[2] 서독 대사 역임시는 동백림 사건의 책임자였으며 이상한 소문[3]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동백림 사건을 주도한 후에 서독 정부와의 교섭에 실패해서 국제적인 외교문제로 비화하게 만든 인물이다. 이때문에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은 사태수습을 위해서 최덕신을 내쫓아버렸다.

정권에서 내쳐진 최덕신은 천도교 교령으로 취임하는데,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감인지 서서히 친북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아예 외국에 거주하면서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공개적으로 한국전쟁 북침설을 주장하는 등 친북 활동을 벌이다가 1986년 북한으로 망명하였다.[4] 현재까지 최홍희와 더불어 최고위층 월북자.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전쟁 당시 훈공이 박탈되지는 않았고 인민의 에어브러쉬질로 유명한 북한과 달리 한국전쟁 관련 기록도 그대로 남아있다.

김일성은 10대 소년시절에 최덕신의 부친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선생이 만주에 설립한 화성의숙을 다닌 과거가 있는데, 김일성은 이런 인연을 들면서 최덕신을 설득했다고 한다.

북에서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며 사망시 김일성이 직접 조문왔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황장엽과 마찬가지로 북한판 현충원인 대성산혁명렬사릉에 묻혔다.

2000년대 북한 이산가족 방문단이 왔을때 최덕신의 미망인 류미영이 남한에 와서 남겨진 가족들과 상봉했다.

현재까지 남한 최고위직의 월북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상당히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 사회주의의 정신적[5] 우월성을 보여주는 연작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6] 그의 일대기도 방영했다.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면서 독립군을 이끌고 귀환했지만 미군에 의해 좌절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카리스마있는 지휘관으로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박정희 정권에 대한 실망감과[7] 북에 있는[8] 아버지가 잘 살면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아들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과거를 상징하는 사진 세장에 총질을 하고[9] 북한에 들어가서 편안한 일생을 보내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었다. 결론은 불쏘시개
  1. 장제스가 지도하는 국민혁명군을 말한다.
  2. 최덕신조차도 게릴라전에서는 중국 국민당군(국민혁명군)이 자주 했던 견벽청야 즉 청야전술이 해결책이라고 했었다.
  3. 도시전설급 이야기인데 독일 여비서와 NTR하다가 복상사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다만 이 이야기는 남한 정부의 모략일 가능성도 있다.
  4. 천도교는 10년 뒤인 1997년에도 오익제 교령이 월북해서 큰 곤욕을 치뤘다.
  5. 물질적으로는 어려운걸 인정한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사회주의권 영화를 비교해 보면 동독이나 소련 영화는 사회주의의 합리성을 강조하는데 반해 북한영화는 일관되게 민족주의적 순수성과 정신력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일본군?
  6. 90년대 후반부터는 독립운동가나 사회현상, 기타 다른 주제로 나갔지만 초기는 월북자 전기 영화였다
  7. 북한 영화에서 이부분에서 동백림 사건과 김대중 납치사건이 재현된다. 물론 사실과 다르게도 영화에서 최덕신은 동백림 사건이 터지자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냐며 노발대발한다.
  8. 최덕신의 아버지는 한국전쟁때 납북되었다
  9. 군인으로서의 과거, 외교관으로서의 과거, 천도교 교령으로서의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