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中庸

1 유교의 경전

사서오경
사서오경
논어맹자대학중용시경상서주역춘추예기

논어, 맹자, 대학과 더불어 사서에 들어가는 유교경전.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썼다고 알려져있으며[1], 유교의 기초가 되는 책이다. 원래는 대학과 마찬가지로 예기 제 31편 중용편에 속한 글이나 송나라때 독립되어 출간되었다. 수-당시기를 거쳐 불교가 유입되면서 유교경전을 공부하며 따르던 많은 학자들은 불교경전의 체계적인 사상과 명료하게 정리된 형이상학적인 면의 학문적 강점을 받아들였고, 정자와 주자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유교경전을 정리하여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성립시키는데 집중하였고, 이 과정에서 간결하고 명료한 사상을 정리한 문헌으로 주목받은것이 예기에 포함되어 있던 대학과 중용이다.

예전에는 중용에서 다루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내용이 자사의 시절에 존재하였을거라 보기 어렵기에 중용을 송대에 쓰여진 글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의 한 고대 무덤에서 자사가 쓴 글로 추정되는 글이 발굴되어서 중용이 자사가 썼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시 되어가는 중이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판본은 대체로 송나라 때 주자의 수정을 거친 중용장구를 따르고 있다. 전체 33장으로 각 장의 이름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2]

중용이라는 말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중용은 가운데를 지키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적절함에 있다. [3] 다시 말하자면 중용이란 지금 가장 적절 것을 의미한다. 실제 『중용』의 구절을 보면 감이 잡힌다.

仲尼曰:
중니[4]께서 말씀하셨다:

君子中庸, 小人反中庸。
군자는 중용에 합하고, 소인은 중용에 반한다.[5]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군자의 중용[6]이란, 군자다웁게 때에 들어맞게끔 함이며,

小人之中庸也, 小人而無忌憚也。
소인의 중용이란, 소인다웁게 거리끼는 바가 없음[7]이다.]

중용의 중에 대해서 환중(還中), 적중(的中), 표준(表準)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환중은 문의 지고리를 나타내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모든걸 변화시키는 중이다. 적중은 관계 속에서 가장 올바른 형태이며 표준은 보편적인 도덕적 윤리를 나타낸다. 주자는 이 중 환중은 도가의 사상과 비슷하여 환중을 중으로 받아들이는건 옳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적중과 표준을 중으로 해야 한다고 하였다.

중간만 가라. 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용과 중간은 전혀 다르다! 만일 인사를 한다고 치자. 인사를 할 때 어린아이나 어른에게 손을 흔드는 동시에 고개숙인다면 중간이고, 어린아이에게는 손을 흔들고, 반면에 어른에겐 고개숙이는 방식으로 인사하는 게 중용이다. 참 쉽죠잉?

2 서양철학에서의 중용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말한 삶의 자세로,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은 이상적인 자세이다.

과도-중용-부족

만용-용기-비겁
둔감-절제-방종
낭비-후덕-인색
아첨-친절-퉁명

3 성공회의 중용

영국 종교 개혁의 개혁 방향으로 가톨릭개신교의 극단에 빠지지 않고 동서 교회 분리 이전의 초대 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1. 이견이 많았으나 70년대 들어 한나라 시대의 글이 출토됨으로써 자사의 저작임이 확인됐다.
  2. 도올 김용옥은 자신의 책 《중용 인간의 맛》을 내면서 각 장에 이름을 붙였다. 1.천명, 2.시중 3.능구 4.지미 5.도기불행 6.순기대지 7.개왈여지 8.회지위인 9.백인가도 10.자로문강 11.색은행괴 12.부부지우 13.도불원인 14.불원불우 15.행원자이 16.귀신 17.순기대효 18.문왕무우 19.주공달효 20.애공문정 21.자성명장 22.천하지성 23.기차치곡 24.지성여신 25.성자자성 26.지성무식 27.존덕성장 28.오종주장 29.왕천하장 30.중니조술 31.총명예지 32.성지천덕 33.무성무취.
  3. 도올 김용옥은 서양철학자 아리스토텔리스의 중용 개념이 유동적인 동양의 중용과는 달리 용기같은 넘침과 두려움같은 모자람을 양 끝으로 하는 눈금의 고정된 가운데를 상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훨씬 유연하고,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개념과 자사의 중용 개념이 유사하다는 논문도 있기 때문에, 양자의 비교에 있어서는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다.
  4. 공자의 자字.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할아버지의 자를 함부로 부를 수 있는지는 학계에서 살짝궁 논란이 있지만, 휘명자호諱名字號에 쓸데없이 엄격해진 것은 확실히 당송唐宋 이후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예법은 어땠을지 누가 알까나... 일단, 공자 사후 자사가 『중용』을 집필했을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였으니(묵자墨子라든지, 열자列子라든지), 『논어』처럼 자왈子曰로 표기했다가는 혼란의 우려가 있으므로 이와 같이 표기했다는 설이 지배적. 사실 그냥 공자왈孔子曰이라 하면 유명한 공씨가 공자 한 명이니 얼추 되지만서도... 뭐, 손자 입장에서 자기 할아버지를 '공 선생님〔孔子〕'이라 부르기도 껄끄러웠을 것이다. 하라부지(...)를 친근하게 부르고 싶었던 손자의 마음이 아닐런지? 그렇다면 꽤나 모에하게 느껴진다(...).
  5. 사실 원문이 그렇듯이, '합하다'를 안 써도 된다: "군자는 중용이요, 소인은 반중용이다." 근데 이렇게 하면 후술할 문단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라? 소인이 반중용反中庸이라면 아래에 있는 소인지중용야小人之中庸也는 문장 사이에 있던 반反이 탈자된 건가?" 여기까지면 별 문제 없는데, "그럼 내가 빠진 글자 넣어서 고쳐야지, ㅎㅎ"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기도... 이정二程과 주자朱子가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이라는 게 함정(...).
  6. 군자가 '행하는' 중용 내지는 군자가 중용을 '행하는 자세'로 파악하면 편하다. 아래 소인지중용小人之中庸도 마찬가지.
  7. 무기탄無忌憚ㅡ우리가 회의 장소나 면접장에서 흔히 듣는 '기탄없이 말해 보라!'라는 말이 바로 이 뜻이다.이로써 회의와 면접이 우리에게 소인 되기를 강요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중용을 행함에 있어서 경솔해서는 안 되고 항시 상황을 깊게 살피고 또 스스로를 살피며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