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목제

동진의 역대 황제
8대 강황제 사마악9대 효종 목황제 사마담10대 애황제 사마비
묘호효종(孝宗)
시호목황제(穆皇帝)
연호영화(永和, 345년 ~ 356년)
승평(升平, 357년 ~ 361년)
사마(司馬)
담(聃)
팽자(彭子)
생몰기간343년 ~ 361년
재위기간344년 ~ 361년


건원 원년(343년)에 사마악과 저산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팽자로 건원 2년(344년) 8월, 사마악의 병세가 위급하자 중서감 유빙과 정서장군 유익 형제는 회계왕 사마욱[1]을 후사로 세우기로 했다. 중서감 하충은 겨우 2살 밖에 안되는 사마담을 태자로 봉하자고 했는데 왠지 사마악은 어린 아들을 태자로 봉했다. 9월, 사마악이 사망하자 황제가 되었는데 저태후가 섭정하고 하충이 보좌했다. 하충은 재능과 식견이 있고 도량이 넓으며 친족이나 지인을 사사로이 돌보지 않고 나라를 잘 다스렸다. 영화 2년(346년) 정월, 하충이 죽고 좌광록대부 채모와 사마욱이 정사를 보좌했다.

이 때는 중원 지역이 혼란에 빠져 중원에는 후조를 염민이 멸하고 염위를 세웠고 전진 부견이 천왕에 즉위했으며[2] 전연의 모용준이 염위를 멸망시켰다. 이 틈을 타서 환온은 북벌을 감행했는데 영화 3년(347년), 성한을 쳤다. 환온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한을 멸망시키고 후주 이세를 사로잡았으며 서촉 지방을 수복했다. 또 영화 10년(354년)에는 전진을 쳐서 낙양을 함락시키고 평승루에 올랐다. 강주자사 사마훈과 함께 장안을 수복하기 위해 관중을 쳤는데 위연이 제안했다는 그 전설자오곡 계책을 그대로 활용했다가 보급로가 끊겨 철수했다. 사실 환온은 장안을 함락시킬 수도 있었으나, 개인 의지 부족으로 시일을 끌었다.[3]환온의 북벌은 큰 공을 세워 동진을 찬탈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꿈은 그의 아들 환현이 이루다가 말았고 결국 유유가 그 꿈을 이룬다. 환온은 낙양으로 수도를 옳기자고 했지만 사마담의 무관심과 강남에 뿌리를 박은 사대부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한다.

그 외에도 정북대장군 저곤, 중군장군 은호 등도 북벌 러시에 뛰어들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일단 본인들의 능력은 장군이라기에는 너무나 허접했고 오히려 청담가에 가까웠으며 국고가 비었고 치밀한 계획도 없었다. 사마담은 승평 5년(361년) 5월, 재위 18년 만에 19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7월에 영평릉에 안장되었다.[4]
  1. 사마예의 막내아들로 사마악의 숙부
  2. 부견은 죽을 때 까지 황제가 되지 않고 천왕이라고 칭했는데 그의 아들 부비가 그를 황제로 추존했다.
  3. 부견의 재상으로 유명한 왕맹(자는 경략)을 이 때 만났는데 를 잡으면서 태연히 의견을 교환하고 학식이 엄청났다. 이에 환온은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는데 왕맹은 자신의 스승에게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승은 환온 따위를 따라 나서지 말라고 했는데 왕맹은 모친 모시는 것을 핑계로 환온의 제안을 거절하고 부견을 따른다.
  4. 참고로 1980년 영평릉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남경 막부산에서 발견된다. 사실 짧은 기록과 출토 유물 등으로 추정하는 것이긴 하지만 역대 동진 황릉이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는 중요한 발견이다.